싸움마츠, 고2 여름. 사이가 나쁜 카라마츠와 이치마츠


투고가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여름 방학 키워드 '여름 축제'로 쓰게 됐습니다. 주최 하시스님, 참여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0;)

달달하게 쓰려고 생각했습니다. 히익. 그래도 즐거웠어요….


*




 ▼



마츠노가 차남 카라마츠와 사남 이치마츠는 앙숙이다.


둘의 관계가 어느 날 갑자기 돌변한 것은 아니다. 초등학생, 중학생, 나이를 먹을 때마다 쌍방의 거리는 계속 틀어져 갔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담담히 대화하고, 바늘구멍 같은 자그마한 언쟁으로 폭력을 휘두른다. 서로 푸른 멍뿐만 아니라 험악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도 다른 형제들은 완전히 익숙해졌다. 주먹을 쥐고 함부로 다리를 차고, 장소도 가리지 않고 짐승처럼 싸우는 이들을 결코 단둘로 만들면 안 된다―――마츠노가에서는 암묵적 룰로 통하고 있다.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관계는 악화되어 대화도 하지 않고, 만나면 서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난폭한 수단을 쓴다. 2층에서 급한 소리가 들릴 때마다 1층에 있는 형제들은 또냐 하고 한숨을 쉰다. 멈추지 않고 방관하고, 그래도 소리가 그치지 않으면 오소마츠가 쓴웃음을 담은 표정으로 2층으로 올라간다. 그렇게 싸움이 끝나고 못마땅한 얼굴로 카라마츠와 이치마츠가 내려왔다.


「이치마츠. 볼 빨갛다」

「………」


쵸로마츠의 말에 흥 하고 거실 구석에 앉는다. 카라마츠에게 맞은 상처라고 누구나 알고 있다. 인정하면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 같아, 침묵을 지키며 고개를 숙였다. 불쾌함을 드러낸 표정으로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당해낼 수 없다. 아무리 버둥대도 그건 사실이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 상황에 응할 수 있으면 이치마츠에게 승리는 있지만, 밑에 깔리면 무의미하게 끝난다. 카라마츠의 피부가 이치마츠의 몸을 기어가면 구타와 매도의 폭풍이 펼쳐진다. 왜 이렇게 됐는지 이치마츠도 모른다. 다만 마음에 안 든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려는 카라마츠가 점점 손에서 빠져나갈 것만 같아 급하게 쫓아갔다. 어떻게든 그를 말려야 한다고 생각한 끝에 결과는, 이치마츠 외에는 모르는 진실이다.


「카라마츠는 그거네, 고양이한테 긁힌 것 같은 상처 뿐이구만」


흐히히, 오소마츠가 웃는다. 얼굴을 살짝 드니 카라마츠의 볼이나 목, 팔에 날카로운 손톱 상처가 그려져 있다. 모두 이치마츠가 한 것이다. 힘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지만 패배를 쉽게 삼킬 수는 없다. 억울함을 배어, 오소마츠의 말대로 품행 나쁜 고양이처럼 그의 피부에 손톱을 세웠다.


「…아아. 실제로도 아기고양이 같은 거고」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낮게 웃었다. 깔보고 있다고 바로 알았다. 분노와 수치로 얼굴을 붉히며 답답한 나머지 혀를 찼다.

「이치마츠, 너 카라마츠한테 덤벼드는 거 그만해~. 어차피 못 이기니까」

「덤벼드는 거 아니거든」

바로 이치마츠가 말했다.

「카라마츠도, 왜 일일이 싸우는 거야? 형아 중재하는 것도 귀찮아」

「부탁하지 않았다」


바로 카라마츠가 말했다.

오히려 방해하지 말라는 듯이 "힘든 일이군"이라고 말을 거듭했다. 비꼬는 음성에 오소마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어깨를 으쓱했다. 말리려 들지 않으면 폭력에 물든 손바닥이 이치마츠를 유린한다. 다정하게 떨쳐 버리는 모습을 잠자코 방관할 만큼 오소마츠는 굵은 신경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차남의 생각도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너무 빠져들진 않는다. 필요 이상으로 손을 내밀면 따끔한 맛을 보는 건 자신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상냥하게 웃은 카라마츠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고, 네네 알겠습니다, 오소마츠는 몸을 떼어 냈다. 기지개를 켜고 실내에서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쵸로마츠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훑어보던 교과서를 내렸다.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카라마츠의 부드러운 눈동자에 견제되어 입을 다물었다. 잘 좀 해, 중얼거리곤 오소마츠의 뒤를 쫓아 방을 나섰다.


「…아, 쵸로마츠 형」

이치마츠가 황급히 말을 걸었다.

「응, 왜?」

「어디 가」

「서점. 참고서 좀 사려고」

바로 일어서서 미덥지 못한 발걸음으로 쵸로마츠의 등을 쫓는다.

「나도 갈래」

「하? 비틀거리잖아, 좀 쉬어」

「싫어」

「싫다니…」

한숨을 섞으면서 쵸로마츠는 눈꼬리를 내렸다. 영 석연치 않은 양 말하는 쵸로마츠의 옆을 지나가, 먼저 현관으로 향한 이치마츠를 보고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쓰러져도 안 돌봐줄 거야」

「형,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그게 목적이냐. 정말」


쵸로마츠는 이치마츠에게 무르다. 그건 본인들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치마츠는 비굴하게 웃으며 아이스크림을 졸랐다. 처음에는 주춤하는 쵸로마츠였지만, 현관을 나서니 찌는 여름 바람이 감도는 것을 느끼고 살짝 입가를 들어 올렸다.


「…뭐, 가끔은 괜찮지」


태양에서 쏟아지는 열을 쬐면 콘크리트 기온이 올라 시야가 흐릿하게 흔들렸다. 푹푹 찌는 더위로 피부에 땀이 떠오른다. 쵸로마츠는 이마를 손등으로 훔쳤다. 순식간에 목 수분을 빼앗는 날씨는 별로 탐탁지 않다. 아주 싫은 추억, 행복했을 때의 추억, 여러 가지가 교차하는 여름이라는 계절은 이치마츠가 꺼릴 터이다. 얼굴을 찌푸리고 기억을 되짚어 보니 형제 모두 일심동체였다. 기억이 살아났다. 그때는 재밌었지. 순수하고, 무구하고, 아무것도 무서운 게 없었는데. 신기루에 흔들리는 시야를 뿌리치며 이치마츠는 억지로 미소를 흘렸다. 카라마츠에게 맞은 볼과 옷 아래의 멍을 어루만지며 욱신거림을 참았다.


「아이스크림은 줄게. 더우니까. 그래도 이치마츠」


서점에 가는 쵸로마츠의 옆에 섰다. 일단 아이스크림은 확보했다는 안도보다 형이 꺼내는 이야기에 내심 경계를 품는다. 시선으로 재촉하니 이치마츠를 보지도 않고 쵸로마츠가 조용히 말했다.


「남은 원한까지 맡아 줄 생각은 없어」


원한.

그 말에 고개를 갸웃한다.


「무슨 말이야?」

「맞혀봐」

「에에에…」


다 말할 생각은 없는 듯, 이치마츠를 힐끗 본 쵸로마츠는 싸늘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화난 걸까. 형의 말을 반복하며 뜻을 이해하려고 했지만 원한이라는 말에 짚이는 곳은 없다. 결국 적절한 답이 떠오르지 않아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나아갔다. 올려다보니 푸른 하늘에 자리 잡은 태양이 보인다. 사고를 빼앗는 횡포한 열이 이글거려, 이치마츠의 뇌를 충분히 데웠다. 피부에 떠오르는 땀 방울이 중력에 따라 떨어지는 감촉이 간지럽다. 마른 안구를 축이고자 눈을 깜빡인다. 그러면 눈 뒤에 새겨진 씁쓸한 기억이 떠올라 이치마츠의 기분을 다시 떨어뜨렸다. 

원한, 원한. 내심 중얼거리며 눈썹을 찌푸렸다.

(원망할 건, 아무리 봐도 내 쪽이지)

쵸로마츠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원한이라는 말에 짐작은 갔다. 카라마츠를 괴롭히며 사랑과는 정반대의 수단으로 본 것의 대가. 사실 카라마츠느 이치마츠를 심하게 다루었다. 피부와 피부가 부딪히는 순간에 생기는 심한 통증이 그의 마음을 대변한다. 이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뒤틀린 관계에 장래성은 없다. 친한 형제로 되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앞이 보이지 않는 관계에 초조함만 쌓인다. 그래서 마츠노 이치마츠는 시치미를 뗐다. 싫어, 싫어, 정말 싫어. 날 내버려 두고 어른이 되려는 네가 죽을 만큼 싫어. ―――거짓말, 사실은. 본심을 삼키고 땀으로 젖은 머리를 닦았다.


「…쵸로마츠 형, 더워」

「여름이니까」

「아아~……」


찌는 뇌와 감정을 아이스크림으로 식힌다.



 ▼



마츠노가 여섯 쌍둥이의 특기는 싸움과 불꽃놀이. 발사되는 신호에 이끌리는 한가함.

누가 했는지 모르는 말에 고개를 숙이는 사람만은 없다.


전부터 여섯 쌍둥이라는 신기한 점 때문에 많은 호기심을 샀지만, 나이를 거듭할 때마다 그것은 시샘과 질투로 바뀌었다. 잘난 척하지 마, 성가셔, 신경 쓰여―――어린 시절은 사랑받는 대상이지만 어른의 계단을 오르면서 여섯 쌍둥이를 달가워하지 않는 무리들이 늘었다. 떠받들어지는 일에 익숙해지기 위해, 처음에는 무서운 감정에 떨었지만 이윽고 형을, 동생을,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을 얻는다. 그거야말로――폭력이었다. 마츠노가를 위협하는 사람은 제재하고 우리가 만든 성을 지킨다. 한 번의 잘못이 더욱 원한을 모아 불에 기름을 붓는 싸움이 태어나고 말았다. 귀찮아하지만 혈기왕성한 그들은 싸움이 싫지 않다. 제 능력을 선보이는 데에 기뻐하는 사람, 배에 찬 울분을 푸는 자, 이유는 가지각색이지만 그중에서도 이치마츠가 싸움을 좋아하는 이유는 비뚤어져 있다.


「이치마츠 쨩」


자기에는 아직 일러, 쇠 파이프를 맞는다. 멋지게 뒤통수를 가격해 지면으로 엎드린다. 큰 충격에 기억이 날아가지만 천천히 이곳에 온 과정을 떠올린다.


여름 방학이 지난 지 벌써 며칠. 숙제는 뒤로 돌리고 칠칠맞은 나날을 보낸 이치마츠는 땡볕에서 도둑고양이의 상태가 궁금해 뒷골목을 배회했다. 그늘에 덮였다고는 해도 무더위를 가둔 뒷골목은 몸을 달아오르게 한다. 옷까지 스며드는 땀이 불쾌해 더위에 당한 고양이들을 관리해줄 때 그 일이 일어났다. 

세 남자가 이치마츠의 뒤를 쫓아 뒷골목으로 들어왔다. 쇠 파이프가 끄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그들은 천한 미소를 띠고 이치마츠를 둘러쌌다. 그들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나타났는지 예상이 간다. 기억은 나지 않으니 어차피 다른 형제들이 치근거린 상대겠지. 그들의 목적은 장남인 오소마츠인 듯하다. 모두 똑같은 얼굴이니 일단 한명 한명 싸움을 거는 거라고 알고, 그 뒤는 제재라는 이름의 린치를 받았다.

(아, 그랬지. 오소마츠 형의 외상이 나한테 왔구나)

멍하니 결론을 꺼내고 이치마츠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뒤통수를 만지니 손바닥에 미끈미끈한 감촉이 닿았다. 아무래도 피가 배어 나온 것 같다. 그렇게 알아도 이치마츠는 당황하지 않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빨강인지 파랑인지는 모르겠는데, 눈에 거슬린다고」


그들이 봤을 때 여섯 쌍둥이는 모두 같다. 별개임을 설명해도 이해하지 않는다. 빨강이든 파랑이든 초록이든, 더군다나 보라색이든 같은 얼굴인 데에는 변함이 없다. 히히, 이치마츠는 천천히 얼굴을 든다.


「왜 웃는 거야, 이치마츠 쨩」


조롱하는 남자의 목소리에 주먹을 쥔다. 별로 잘하진 않는데. 중얼거리며 쇠 파이프를 든 남자의 코를 때렸다. 생물의 급소인 코에 주먹을 맞고 뼈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통증에 신음하는 남자의 손에서 떨어진 쇠 파이프를 들어, 절대적 우위에 있다고 믿은 남은 둘의 얼굴을 옆에서 때렸다. 귀에서 뚝뚝 떨어지는 혈액은 태양 빛을 흐리는 뒷골목에서는 묘하게 까맣다. 의식을 빼앗지 않아도 전의를 잃게 하는 건 쉽다. 먼저 맞은 이치마츠도 타격은 있어, 뒷골목에서 달아나니 태양이 상처를 찌른다.


 ―――넌 피학성 음란증이네.

언제였는지, 쵸로마츠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 어려운 말이지만 담긴 의미는 알 수 있었기에, 마조히즘을 지적받았다고 알았다. 확실히 이치마츠는 육체적 고통으로 흥분을 느낀다. 일그러진 성벽임을 형제들에게 숨기고 있었는데 쵸로마츠는 훌륭하게 꿰뚫어 본 모양이다. 성에 대한 수치심을 품은 이치마츠가 마조임을 공언할 수도 없어, 그때는 적당히 속였다.

(이런 창피한 천성, 카라마츠한테는 절대 알리고 싶지 않아)

오소마츠에 얽혀 머리에 난 상처에서는 피가 뚝뚝 흐른다. 그리 깊은 상처는 아니고, 그냥 두면 혈액이 응고해 통증도 빠질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큰길을 걷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발을 앞당겼다.


도중, 문득 아는 얼굴이 보여 발을 멈췄다. 그 녀석은 파란 옷을 입고 있어 내심 혀를 찼다.

(이럴 때 썩을마츠냐)

마츠노가 차남의 모습에 저절로 발길을 돌려서 왔던 길을 돌아간다. 시간은 걸리지만 카라마츠와 만나는 것보다는 낫다. 나는 인파 속으로 들어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뒤에서 들리는 조용한 발소리. 점점 가까워질 때마다 설마 하는 생각이 부푼다. 자의식 과잉이다. 뒤쫓을 리가 없는데. 차가운 등과는 반대로 마음이 설렌다. 긴장한 거라고 언뜻 뒤를 보니 카라마츠의 모습은 없었다. 뻔하지, 희미한 낙담이 이치마츠의 표정을 흐리게 했다. 

카라마츠에게 미움받고 있다.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치마츠가 시작하고, 원하는 것이기에 비관하자고 타일렀는데. 왜 이렇게도 마음이 아플까. 어깨를 떨어뜨리고 자연스럽게 발걸음은 무거워진다. 서서히 번지는 눈물을 닦고, 이치마츠는 긴 귀갓길을 걷는다.


똑바로 말해두겠다.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사랑하고 있다.

그것은 이미 카라마츠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쿵쿵 뛰고, 목소리만 들어도 귀가 빨개진다. 관심을 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고양감을 얻는다니―――부끄럽다고 알고 있다. 그러므로 연심에 뚜껑을 덮었는데, 어른스러워지는 카라마츠가 주는 독특한 미색에 연정을 떼는 것이 아까워 졌다. 적어도 다른 이의 것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카라마츠의 시선을 억지로라도 저에게 돌리고 싶다. 호의도 아니고, 무관심도 아니다. 싫어한다는 감정을 이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간단한 도발에 낚인 카라마츠는 큰 구경거리가 되어, 분노를 드러낸 표정으로 이치마츠를 깔아 눕힌다. 뺨을 때리고 발언 철회를 요구하며, 그래도 고집을 부려서 욕하면 그의 손이 이치마츠의 피부를 만졌다. 땀이 밴 살갗이 닿는 감촉에 소녀처럼 심장이 두근거린다. 좋아, 정말 좋아, 나를 더 만져줘.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의 마음에 거슬릴 말이다. 자극되는 아픔과 함께 그때만은 카라마츠를 독점하고 있는 게 무엇보다 기뻤다. 그리고 안도했다. 미친 듯한 감정을 가져버린 동생도 모르고 카라마츠는 팔을 휘둘렀다. 나름 조절하고 있지만, 그래도 피부를 괴롭히는 통증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기쁨이 등골을 달린다. 기분 좋다. 더, 좀 더, 조르는 말을 자제하면서 더러운 욕설을 늘어놓았다. 조금이라도 오랫동안 카라마츠의 시선을 빼앗기 위해.


「…이치마츠」



(히, 익―――…?!)

낯익은, 상냥하고 달콤한 음성이 귓구멍을 자극하듯 기어들어 왔다. 순간적으로 전신의 피부에 소름이 끼쳐 바로 등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거기에 카라마츠는 없다. 두근 두근 맥박치는 심장을 누르고, 이치마츠는 식은땀을 흘렸다.

(……기분 탓…?)

더위가 일으킨 환청인가. 그것치고는 묘하게 생생한 목소리였다. 혼자 동요하면서 그 자리에 서기를 몇 초. 이윽고 제 강한 욕망이 만들어 낸 착각이라고 판단하고 다시 고개를 돌리려 하자.

「너, 이 상처는」

「으아아아아아!!」

「…길가에서 큰 소리 내지 마, 창피하다」

뒤를 돌아봤을 때는 없던 카라마츠가, 다시 앞을 봤을 때 시치미 떼는 얼굴로 거기에 있었다. 놀란 나머지 멍청한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곧 카라마츠의  멱살을 잡고 이를 드러내며 위협한다.

「너, 잘도…」

손을 뿌리치지도 않고 카라마츠가 침착한 눈으로 이치마츠를 봤다. 냉정한 눈빛에 주춤했으나 표정으로는 드러내지 않고 카라마츠를 노려봤다.

「쉽게 말 걸지 마」

「옷이 피에 젖어 있군」

「아? 아아…이 정도는 늘 있는 거잖아. 뭐야, 걱정해주는 거냐?」

흥, 카라마츠는 안색을 바꾸지도 않고 똑같이 코를 울렸다. 꼭 거울 같다. 나를 흉내 내는 것 같아서 짜증 난다. 그래도 냉정하게 뱉은 말에 이치마츠는 몹시 당황했다.


「걱정해줬으면 하는가?」

물기를 띤 야한 음성으로, 그렇게 들리다니. 마음속을 꿰뚫는 것 같아 이치마츠는 수치로 얼굴을 붉혔다. 카라마츠의 멱살에서 손을 떼고 물러서듯 거리를 잡는다.


「…그럴 리 없잖아」

그래, 걱정해줬으면 해.

「기분 나빠. 따라오지 마」

제발, 말려줘. 그래도 어차피 귀염성 없는 소리만 하니까, 말리지 마.


혐오를 드러낸 말 뒤편에 숨겨진 마음 따위, 카라마츠는 몰라도 된다. 심술궂게 지나가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고 고개를 숙인다. 최악이다. 걱정해줬으면 하는가, 라니, 보통 물어 보냐. 어금니를 물고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감당하고 있자 등 뒤에서 이름을 불린다. 무시한 나는 카라마츠에게서 떠났다. 이치마츠는 고집을 고치는 방법을 몰랐다.



아침부터 시끄럽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이 1년에 한번인 여름 축제인 모양이다. 벌써 그런 계절인가, 이치마츠는 어둑어둑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물의 신을 모시는 축제. 현지에서는 수신님이라 불리는 그것에 매년 가는 것은 마츠노가의 행사가 되었다. 옛날엔 형제끼리 가는 게 당연했지만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는 친구와, 쵸로마츠와 오소마츠는 한발 먼저 축제에 갔다고 한다. 하필 카라마츠와 남다니 최악의 사태이다. 이게 형제들의 주선이라고 모른 채 이치마츠는 머리를 싸맸다. 누추한 사람들 사이를 좋아하진 않지만 가게에 늘어선 물건들은 보기만 해도 즐거워진다. 어두운 밤에 떠오르는 가게 등불은 환상적인 비일상을 보이고, 금세 기분이 좋아져 이치마츠는 반드시 축제 기분을 맛보고 싶었다. 그래도 카라마츠를 부를 용기가 없어 혼자 축제에 갈 생각이었다. 가서 형들과 합류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여기서 착오가 일어났다. 어머니가 이치마츠와 카라마츠에게.


「둘이서 사이좋게 나누렴」


한 장의 천 엔권을 주셨다.

단 천 엔으로 욕심을 채운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무엇보다 지폐 한장을 여기서 분배하는 건 불가능하다. 머리를 감싸고 싶은 상황에 카라마츠를 힐끗 보니 그는 까다로운 얼굴로 조용히 있었다. 아 역시. 카라마츠도 당연히 싫다. 나와 함께 축제에 간다니 즐길 수 없다. 한번 생각하니 금세 기분이 안 좋아진다. 바로 도망치고 싶다. 비록 천 엔이라고는 하지만 어머니에게 임시 용돈을 탄 것은 매우 반갑다. 카라마츠도 돈이 없으니 환호할 터. 돈은 포기하고 카라마츠와 따로 행동할 건가, 결론을 지으려고 하니 그가 중얼거린다.


「…가자」


「에」

「축제, 가자고」


무뚝뚝한 말에 평소대로 욕설을 날렸다. 왜 너랑 가야 하는 건데 까불지 마. 붙임성 없는 태도에 내심 울고 싶어진다. 사실은 카라마츠가 권유해서 엄청 기쁜 주제에, 그 기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털을 곤두세우며 짖는 이치마츠에게 카라마츠는 한숨을 쉰다. 천 엔, 내가 써도 될까, 어머니가 준 지폐를 팔랑거린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카라마츠에게 천 엔을 다 주기에는 왠지 짜증이 나 어쩔 수 없이 차남과 함께 축제에 갔다.


대화 다운 대화는 없다. 묘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둘은 축제에 갔다. 이미 날이 저문 탓인지 가게 등불이 반짝반짝 빛나, 이치마츠는 "와아"하고 감탄했다. 매년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아름다운 광경에 눈을 뺏기고 만다. 코를 자극하는 고소한 냄새, 멀리까지 붐비는 인파, 카라마츠와 함께인 것도 잊고 웃음을 띤다. 문득 눈에 타코야키 가게가 들어와 이끌리듯이 다가갔다. 바로 카라마츠에게 목덜미를 잡혀 "마음대로 가지 마"라고 혼났다. 횡포한 말투보다는 닿은 것에 두근거렸다. 두근, 두근. 일부러 불쾌한 목소리로 "시끄러워"하고 카라마츠의 등을 쫓았다.

검은 탱크톱을 입은 카라마츠의 육체는 이치마츠보다 훌륭하다. 늠름한 등에 시선을 빼앗긴다. 어렸을 때는 이 등에 얼굴을 묻고, 끌어안고, 냄새도 맡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할 수 없다. 열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니 카라마츠가 고개만 뒤로 돌려서 이치마츠를 봤다.


「…이치마츠」

「왜, 왜」

「뭐가 먹고 싶지」


아무래도 천 엔의 사용처는 음식 제한인 것 같다. 운치 없는 놈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맛있는 것들이 늘어선 가게에 눈을 빼앗긴 것은 이치마츠도 마찬가지였다. 오코노미야키, 사과 사탕, 초콜릿 바나나, 원하는 것을 말하면 끝이 없다. 어떡할까 고민하자 카라마츠는 낮게 말했다.


「괜찮으니까, 먹고 싶은 걸 말해봐」

「…많은데」

몇 번이나 말하게 하지 마, 카라마츠의 눈이 찔린다. 일단 말하라는 소린가. 울컥하면서도 절망한 이치마츠가 차례대로 원하는 음식을 말했다.

「타코야키 먹고 싶어. 오코노미야키도. 솜사탕도……」


이치마츠의 말을 듣고 카라마츠는 그런가, 하고 끄덕였다. 듣기만 하냐. 생각한 반응이 아니라 뺨을 부풀렸다. 등이라도 걷어찰까, 무서운 생각이 머리에 스친다. 슬슬 카라마츠의 등에 다가가 다리를 차려고 했을 때.

낯선 남자의 몸이 이치마츠에게 부딪혔다. 비틀거리는 몸을 지탱하려니 순간적으로 눈앞에 있는 카라마츠의 등을 붙잡았다.


「앗…」

「…!」


카라마츠가 놀란 듯 이치마츠를 본다. 이치마츠 또한 자신의 행동에 놀라 서서히 얼굴을 붉힌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잡아 버렸다. 빨리 떼야 하는데. 머리로는 할 행동을 알고 있는데 혼란스러움에 경직된다. 그러자 카라마츠는 냉정한 눈을 살짝 풀고 이치마츠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옷, 잡아도 된다」


아무래도 인파에서 떼어진다는 이유로 등에 매달린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설마 카라마츠가 그런 말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해, 이치마츠의 머리는 하얗게 물들었다.

 ―――웃기지 마, 기분 나쁘다고, 누가 네 옷을.

머릿속을 휘젓는 욕은 좀처럼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러긴커녕 카라마츠의 말대로, 이치마츠의 손가락 끝은 카라마츠의 옷깃을 잡고 있다.

(하, 왜, 왜 이 녀석 옷을 잡고 있는 거야)

있을 수 없는 상황에 식은땀이 흐른다. 이상하다고, 귓속에서는 마츠리바야시 소리가 울린다. 배에 울리는 북 소리, 사고를 망설이는 피리 소리, 새빨간 토리이 아래로 가니 축제에 온 참배객들로 가득 넘친다. 어쩌면 일상과 동떨어진 한때니까 평상시와 다른 행동을 한 걸지도 모른다. 카라마츠에게 욕만 퍼붓던 입술이 마비됐다. 탱크톱 감촉은 아주 기분 나쁜데도, 이치마츠는 땀이 흐르는 카라마츠의 체구를 응시했다. 눈이, 호흡이, 심장이, 모두 카라마츠에게 향한다.

(어떡하지)

어떡해야 할까.

(카라마츠의, 땀, 냄새)

가슴이, 무지 무지, 간지러워.

열에 들뜬 눈은 흐물흐물하게 녹아 간다. 신을 맞이하기 위한 피리 곡이 이치마츠를 이상하게 만든다.

밤의 장막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가게가 나란히 선 탓에 주위는 밝다. 만약 지금 그가 돌아보면 새빨간 얼굴을 보고 만다. 차라리 돌아섰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자, 카라마츠가 몸을 돌려 오코노미야키를 파는 가게로 다가간다.


「사 주겠다」

무뚝뚝한 목소리와 동시에 카라마츠는 제 지갑을 꺼냈다. 그 가운데 지폐가 몇 장 든 것을 보고 눈을 깜박인다.

「그 돈 어디서 났어」

「저금」

「거짓말」

「거짓말이 아냐」

의심하는 건 아니다. 그저 말 몇 마디라도 해 놓아야, 카라마츠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카라마츠는 오코노미야키를 사고, 타코야키를 사고, 솜사탕도 샀다. 이치마츠가 원하는 걸 하나씩 주는 그에게 "설마, 원하는 거 다 사주는 거야?" 놀림을 섞어 말을 걸자 카라마츠는 여길 보지 않고 중얼거렸다. "모두에게는 비밀로 해다오"―――그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조금씩 뜻을 되새기며, 이윽고 속으로 외친다.

그게 뭐야 그게 뭔데, 모두한테는 비밀이라니. 왜 오늘은 그렇게 다정한 거야. 날 싫어하지 않았어? 빙글빙글 입씨름을 반복하고, 이치마츠는 빨개진 얼굴로 입을 뻐끔뻐끔 움직였다. 여름의 마물에 먹힌 심장은 아무래도 명분이란 말을 송두리째 꾀어냈다. 땀을 닦는 것도 잊고,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탱크톱을 움켜쥐었다.





「…아, 불꽃」


카라마츠는 이치마츠가 원하는 걸 모두 사주었다. 엄마가 준 천 엔 지폐와 자신이 모은 돈으로 일부러 사 준 것이다. 혼자 다 먹을 수 있는 양은 아니다. 왜라는 질문은 몇 번이나 담았다. 카라마츠는 정확히 대답하지 않고 우물거리면서 신사 뒤쪽으로 돌았다. 다리 위에 앉아 산 음식을 펼쳐 "그럼 같이 먹자"하고 젓가락을 잡았다. 여기서 먹을 거냐고 놀라면서도 집에 가서 다른 형제들의 먹이가 되는 것은 아깝다. 오코노미야키를 맛보고 있으려니 나무 위에 발사된 불꽃이 보였다. 고운 빛이 피어 어두운 밤에 녹아, 뒤늦은 소리가 울린다. 고막을 떠는 기분 좋은 소리에 눈을 가늘게 뜨니 카라마츠도 오코노미야키를 먹으면서 얼굴을 들었다.


「예쁘군」

「응. ……썩을마츠랑 안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솔직한 말만이 넘쳐 속내를 감추기를 완전히 잊었다. 황급히 카라마츠의 마음에 거슬릴 만한 말을 내뱉자, 그는 불끈한 듯 미간을 찌푸린다. 이대로 때릴까, 태세를 취했지만 카라마츠의 표정은 금방 풀어진다. 미지근한 눈빛에 견디지 못해 먼저 시선을 피한 것은 이치마츠였다. 분위기가 깨진다. 축제라는 분위기에 맞춰 서로 묘한 기분에 빠진다. 원수 지간일 텐데, 두근거리는 설렘이 사고를 지배한다.


「…너는, 내가 싫은 건가」


불꽃이 핀다. 하늘하늘 내려오는 빛이 둘의 얼굴을 비춘다. 카라마츠는 부드럽게 웃었다. 평소의 이치마츠 같으면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주먹을 휘두를 것이다. 그런 사이다. 본래는. 그러나 이때만은 도망갈 곳이 없어, 카라마츠의 눈동자가 이치마츠를 제압했다. 끈적하게 얽히는 시선에 소름이 끼쳐 침을 삼키고 속눈썹을 떨었다. 대답은 정해져 있다. 물론 싫어. 본심을 드러내지 않고 준비된 말을 하면 이 자리를 참을 수 있을, 텐데.

말이 나오지 않는다.

(싫어, 싫어, 당연하잖아, 무슨 소리야)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다. 드러난 땀을 밤바람이 식히는 동안에도 이치마츠의 입술에서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이치마츠에게 시선을 돌리고, 카라마츠는 머리 위에서 빛나는 불꽃을 올려다보았다. 팡 터질 때마다 선명한 색이 흩어진다.


「…이치마츠, 왜 내가 너와 싸우는지, 알고 있나?」

느닷없이 무슨 소릴까. 아니, 카라마츠풍으로 말하면 아닌 밤중에 홍두깨인가. 상관없다. 말없이 고개를 젓자 카라마츠는 끈적하게 손을 뻗어 왔다. 손은 이치마츠의 목덜미에 왔다.

「!」

열을 가진 손가락이 목덜미를 덧그린다. 거기에는 전에 카라마츠가 만든 멍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뭐야, 여기서 하려고?」


카라마츠가 건다면 할 생각이었다. 싸움 상등. 비굴하게 입가를 비틀자 카라마츠는 "그것도 좋겠군"하고 낮게 내뱉는다. 말과는 달리 쓰다듬는 손끝은 크게 벌어진 가슴으로 기어든다. 황급히 몸을 잡아빼니 어이없게 손이 떨어진다. 안타까워하면서 지금 카라마츠가 뭘 했는지 생각만 해도 심장이 들썩인다. 가슴이 욱신거리고, 드디어 이 상황이 이상하다고 깨달았다. 마른 입술을 혀로 핥은 카라마츠가 조금씩 거리를 좁힌다. 타는 듯한 체온이 스치는 것만으로도 몸은 요란스럽게 튀어 오른다. 

귓가에서 이치마츠, 하고 질척한 목소리가 들렸을 때, 이치마츠는 "히, 익…!"하고 비명 같은 소리를 냈다. 쿵 쿵 쿵, 가슴에 부딪히는 심장 박동 때문에 호흡이 안 된다. 경악해서 시선을 헤매고 있자 카라마츠가 후후후, 웃는다.


「이치마츠의」

카라마츠의 젖은 한숨이 귀를 간질인다. 뜨겁고, 간지럽다.

「이치마츠의 품에 손쉽게 들어갈 방법은, 싸움밖에 없다」

귀에 들어간 한숨은 뇌를 녹인다.

「날 매도하는 이치마츠의 목소리를 가까이서 들으려면, 깔고 누를 수밖에 없어서」


질척질척한 저림이 사지에 감돌아, 손끝이 경련한다. 이상하다. 이런 전개는 상상도 못 했다. 서서히 떠오른 눈물이 눈을 덮고 이치마츠의 시야를 흐리게 한다. 멀리서 울리는 불꽃 소리가 묘하게 두드러져 이치마츠의 귀에 닿는다. 후들거리는 현기증이 느껴지는 상황에 조용히 호흡을 흐트린다. 하아, 하아, 하아, 짐승 같은 한숨은 이치마츠뿐만 아니라 카라마츠도 마찬가지였다. 열정을 드러낸 서로의 호흡이 섞여 꿈결 같은 기분이 되어, 이치마츠는 조금 있다가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야, 너」

카라마츠는 쓰게 웃었다.

「오늘은 이치마츠가 고분고분해서. …싸우지 않아도, 이치마츠를 만질 수 있지 않을까…했다」

「……잘, 모르, 겠는데」

「미안, 나도 모르겠다. 미안해. 내일부터는 원래대로 싸울 테니까」

「………」


카라마츠의 손이 천천히 이치마츠의 등을 두른다. 이치마츠가 화를 안 내는지 눈치를 보는 모양이다. 조심스러워하다 힘이 들어가 몸을 껴안는다. 진한 땀 냄새에 비명을 지르고, 이치마츠는 부들부들 떨었다. 왜 카라마츠의 팔 안에 있는 걸까. 영문을 모르고 굳어 있자 불꽃이 터졌다. 각양각색의 빛이 꽃잎이 되어 밤하늘에 흩어진다. 당황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역시 불꽃놀이는 아름다웠다.


「…불꽃은 예쁜데, 넌 정말…」

오늘의 주역은 틀림없이 불꽃이다. 형제, 하물며 남자끼리 껴안고 있다니 미쳤다고 볼 수밖에 없다. 쥐어짠 말에 카라마츠는 퉁명스럽게 속삭였다.

「……불꽃보다 이치마츠가 더,」


너 오늘 진짜 어떻게 된 거야.

사람이 바뀐 것처럼 달콤한 말을 늘어놓는 카라마츠에 입술을 물고 말을 죽였다. 지금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이치마츠도, 아마 카라마츠도 모를 것이다. 멀어지는 마츠리바야시 소리에 홀린다. 한여름의 추억에 둘은 졸면서 빠져들었다.





「이치마츠. 넌 정말 짜증 나는군」

「썩을마츠. 너도 진짜 더러워」

담담한 말다툼. 몇 초 후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는 몸싸움으로 넘어갔다. 이것이 마츠노가의 일상. 이치마츠는 마음속으로 살며시 안도했다.




모두 아는 대로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는 앙숙이다.

정보를 덧붙이자면, 이치마츠는 연심을 감추려고 주먹을 꺼냈다. 가까운 형제가 되는 것은 어렵다. 적어도 그의 시선을 한시라도 좋으니 독점하고 싶다. 스스로도 한심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만둘 수가 없다. 뺨을 맞고 받아칠 때마다 피부 냄새가 주위에 흩날린다. 더위에 찌든 땀이 짙어져 이치마츠의 몸을 뿌리부터 끓게 했다. 이 순간 카라마츠의 눈에는 이치마츠밖에 보이지 않는다.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복잡한 감정이 뒤섞이면서도 독점욕이 뱃속을 가득 채운다. ――카라마츠한테 다가가고 싶어. 나만을 요구했으면 좋겠어. 동생이라는 출발점을 이용하면서, 동생 같지 않은 행동으로 마음을 채운다. 이렇게 둘은 순조롭게 멀어지고 사라진 관계 뒤처리도 못 한 채 어른이 될 터였다.

축제 하룻밤. 야릇한 마츠리바야시 소리와 한여름의 바람이 현혹되어 이상한 꿈을 꾼 것 같다. 카라마츠와는 험악한 사이. 그런데도 그는 자애와 짐승이 섞인 듯한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 있다. 자신이 싸우는 이유가 뭔지 아냐고 물은 카라마츠의 의미를 헤아릴 수 없다. 당황한 이치마츠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이치마츠의 품에 손쉽게 들어갈 방법은, 싸움밖에 없다』

 ―――『날 매도하는 이치마츠의 목소리를 가까이서 들으려면, 깔고 누를 수밖에 없어서』

무자비한 말을 한다고 떨었다. 카라마츠의 이성을 날리고 즐길 생각이었는데, 그는 의외로 냉정했던 것 같다. 심장을 다섯 손가락으로 움켜쥐고 등뼈가 싸늘하게 떨리는 감각에 절망했다. 이성이나 지성은 필요 없다. 냉정한 머리로 생각하니 카라마츠가 그를 고를 리가 없다. 뻔하므로 이치마츠는 그의 말에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불꽃 등불을 받은 그가 색기 있고, 반해서 부은 마음은 더욱 악화된다. 누구에게 부딪힐 수 없는 감정에 잠식돼, 이치마츠는 떠오른 연심을 가라앉혔다. 이렇게 하면 평온해져, 이치마츠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들놈들한테 냉방을 쓰겠어, 어머니는 씩씩대며 에어컨 리모컨을 어딘가에 숨겨 버렸다. 덕분에 한여름을 가둔 실내는 몹시 무더워 아무것도 안 해도 땀이 난다. 아침부터 늘어진 이치마츠는 열대야에서 얕은 잠에 빠졌다. 이마에 드러난 땀 때문에 머리카락이 달라붙어 꿈도 최악이었다. 꿈속에서 이치마츠는 형제들에게 매도되었다. 친형에게 연정을 품다니, 미친 짓이다. 넌 이상한 새끼라고 들었다.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인 만큼 꿈이라고 알지 못한 이치마츠는 공포했다. 미안해 미안해, 몇 번이나 사과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얼마나 빌어도 모두의 싸늘한 시선은 바뀌지 않는다.

(―…………아, 꿈인, 가…!)

깨어나자, 이치마츠는 어이없는 얼굴로 잠시 천장을 바라봤다. 겨우 지금까지 꿈을 꾼 거라고 알고 안심하는 반면 심장이 아플 만큼 떠들어 댄다. 짜증나는 꿈. 최악인 꿈이다. 형제들에게 카라마츠를 향한 마음이 알려지리라고는, 정말 최악이다. 마음속에서 몇 번이나 중얼거리고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킨다.


「……당치도 않은, 꿈……히힛…」


이 마음을 그에게 전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이룰 전망 없는 연심을 언제까지 안을 생각도 없다. 적당히 버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목덜미에 흐른 땀을 손으로 훔쳤다. 열린 창문에서 후덥지근한 바람이 들어와 방 기온은 점점 오르는 듯했다. 마른 목을 손가락으로 쓰다듬고 일어선다. 휘청거리는 현기증. 가볍게 열사병이 일어난 걸지도 모른다. 사지가 무겁고 권태감이 몸을 가리고 있다. 벌레를 씹는 듯한 표정으로 혀를 차고 긴 한숨을 쉰다.

(이래서 여름은 싫어. 제길, 목말라. 머리 아파. 피곤해)

애초에 이치마츠는 몸이 강하지 않다. 정신의 어리광이라고 하면 그만이지만 사실 여름에 종종 몸 상태가 무너진다. 선풍기라도 쐬면 좋을지도 모른다. 달 뜬 몸에 땀이 너무 많아 많은 수분을 잃어 간다. 탁한 의식 그대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자.

터벅. 터벅. 터벅.

계단을 오르는 소리.

누군가 돌아온 모양이다.

시선을 움직이니 이윽고 발소리가 방 앞에 멈춰 문이 열렸다.


「……쵸로마츠 형」

녹색 파카를 든 똑같은 얼굴. 가장 먼저 색이 보여 희미하게 들뜬 머리로 바로 쵸로마츠라고 판단한다. 녹은 눈으로 애매하게 웃자, 이치마츠는 힘없는 모습으로 뒹군다.

「형. 왠지…몸이 나른해서 힘이 없어. 물 좀 가져다 줘」

「……」

쵸로마츠는 아무 말도 없다. 신경 쓰지 않고 말을 건다.

「아니면…음, 어부바」


히힛, 양손을 쵸로마츠에게 뻗는다. 물론 바라지는 않는다. 이러면 쵸로마츠가 늘 그렇듯 심한 태도와 말로 매도해 줄 거라고 알고 있어서 하는 행동이다. 한동안 쵸로마츠가 입을 열 것을 기다렸으나 얼마나 지나도 움직이려 들지 않아 그를 미심쩍게 생각한다.

"하아? 기분 나쁜 소리 마, 스스로 걸어"――쵸로마츠라면 이 정도, 경우에 따라서는 더 무뚝뚝한 말을 할 것이다. 그걸 기다렸는데 그의 입술은 굳게 닫힌 채이다. 이상해서 눈을 깜빡인다. 그러다가 흐린 시야가 선명해져 쵸로마츠의 눈이 자신을 핥듯이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끈적하게, 구석구석까지, 범하듯, 얽히는 시선에 피부에 소름이 끼친다.


「…쵸로마츠 형?」


녹색 파카를 가지고 있으니까 쵸로마츠 형. 그렇게 생각했는데.

입고 있는 건 엄마가 사온 흰 티셔츠. 그건 이치마츠도 가지고 있다. 위화감은 없다. 그럼 이 행동은 대체 뭐지, 자신에게 묻고 쵸로마츠의 손목으로 시선을 옮겼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금빛 팔찌. 그건 쵸로마츠의 취향이 아니다. 이런 걸 가진 형제는 한정되어 있다. 서서히 이해하는 가운데 이치마츠는 겸연쩍어 졌다. 딱히 혼날 짓은 안 했다. 안 했지만 이치마츠를 보는 그의 눈이 묘한 위압감을 갖고 심장을 압박한다. 침을 삼켰을 때 비로소 그 녀석이 입을 열었다.


「―――꽤 응석 부리지 않는가」


쵸로마츠의 목소리가 아니다. 역시 착각한 모양이다.

드디어 확신을 얻고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썩을마츠냐」

헷갈린다고, 낮은 목소리로 쌓자 카라마츠가 불쾌한 듯이 미간을 찌푸린다.

「멋대로 착각한 건 너잖나」

「녹색 파카」

「밑에 놓여 있었으니까. 치우려고 한 것뿐이다」

「…그게 헷갈린다는 거야」


켁, 괴로운 목소리를 흘려도 카라마츠의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희미하게 찡그린 눈썹이 그의 기분을 나타낸다. 이치마츠는 다다미 위에 대자로 누워 위협적인 눈빛으로 카라마츠를 노려본다. 방금까지 뇌속을 메운 악몽도 있고, 이치마츠도 기분이 좋지는 않다. 흥, 얼굴을 돌려도 피부를 희롱하는 후줄근한 시선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이치마츠의 얼굴을, 목을, 몸을, 하나하나 부드럽게 핥는다.

오싹, 허리 주변이 간지럽다. 카라마츠의 눈이 어쩐지 야해 보인다.


「……뭘 봐. 빨리 꺼져」


아무렇게나 몸을 돌려 무뚝뚝한 말을 내뱉는다. 더 이상 카라마츠의 시선에 노출되기 싫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파헤칠 것 같다. 이치마츠의 말을 따르지 않고 카라마츠는 발걸음을 옮겨 실내로 들어갔다. 서슴없이 다다미를 밟는 소리에 갈수록 기분이 떨어진다.


「귀까지 맛 간 거냐? 꺼지라고 하잖아. 너 따위에―――……응냣!!」


볼일 없어, 그러나 그보다 먼저 카라마츠의 손이 이치마츠의 귀를 잡았다. 놀라서 눈을 크게 뜨자 그대로 잡아당겨 억지로 카라마츠를 마주 보게 됐다. 서로 부딪히는 시선. 카라마츠의 눈은 뒷일이 무서운 압박감을 발한다. 숨이 막힌 이치마츠의 말은 나오지 않는다. 매도 하나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카라마츠의 기분이 밑바닥까지 떨어진 것을 깨달았다. 그대로 몸싸움으로 나아갈까. 한 번 말을 나누기보다 가만히 주먹을 부딪치는 게 낫다.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고 미지근한 물에 빠지고 싶다. 만약 산소가 부족해서 물 밑으로 떨어지더라도 그 편이 훨씬 좋다. ―――카라마츠는 움직이지 않는다. 평소처럼 손을 대지도 않고 이치마츠를 가만히 바라본다.


「……뭐, 뭐야」


겨우 짜낸 목소리는 불쌍할 정도로 떨고 있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여름 축제에 일어난 사건은 서로 잊었을 것이다. 원래대로 돌아갔을 텐데,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땀이 이마에 떠오르며 떨어진다. 이상한 긴장감에 휩싸인 심장이 가엾을 정도로 창백해졌다.


「…더럽군」

차가운 목소리로 카라마츠가 말했다. 하아? 의아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반문하니 땀에 젖은 이치마츠의 피부에 손가락이 기어갔다.

「땀이, 바닥에 떨어지잖아」

이치마츠의 피부를 덮은 대량의 땀이라고 이해했다. 말 안 해도 알고 있어. 일부러 얼굴을 찌푸리고 카라마츠를 노려보았다.

「…시끄러워. 손대지 마」

나른한 몸을 억지로 움직여 카라마츠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것도 허락하지 않고,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귀를, 뺨을, 목을, 어루만진다. 이치마츠의 땀으로 젖은 손이 빛에 축축하게 빛난다.


이치마츠는 현상에 만족하고 있다. 비록 그가 이성을 날리지 않고 소통 중 하나로 이치마츠와 싸운다 해도 사랑을 털어놓을 생각은 없고, 더군다나 이룰 생각도 없다. 동생으로서 이치마츠를 계속 보는 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아니면 나락에서 비극에 잠긴 채 이 마음이 썩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제 손으로 죽일 수조차 없는 사랑의 종지부를 기다리다 지쳤다.


「……우앗, 무, 무…무슨……」


뺨에 느낀 부드러운 감촉에 몸을 떤다. 수상한 모습으로 올려다보니 카라마츠의 얼굴이 상상 이상으로 가까이 있어 비명소리가 목까지 올라온다. 입술 사이로 붉은 혀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이치마츠는 허리 주변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뭐야, 뭐야, 하아? 당황한 이치마츠지만 카라마츠의 얼굴이 다가와 땀을 핥는 것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무무무무무무뭐 하는 거야 새꺄!!」

카라마츠의 안면을 손가락으로 잡고 억지로 떼어 내자, 그는 겨우 겁 없는 미소를 띤다.


「…넌 정말 나를 얕보고 있군」

「하?」

「땀은 짜다. 나쁘지 않지만」

「…아니, 그러니까」


그렇지 않아. 그게 아니라.

왜 혀로, 더럽다고 한 내 땀을 핥는 거야.

비난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도 카라마츠는 내색하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쏘아붙인다.




「―――다시는 너와 싸우지 않겠다」


무뚝뚝한 말투에 경직한다. 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몇 초, 수십 초가 지난다. 서서히 장이 식는 것을 느끼고 조용히 숨을 쉰다. 싸우지 않겠다. 그건, 유일한, 흥분하는 순간을 빼앗긴다는 것. 카라마츠의 눈을 독점하고,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단둘인 기분을 맛볼 수 있는데 그걸 잃는다는 것이다. 떨리는 혀로는 말을 할 수 없어, 이치마츠는 떨면서 카라마츠를 봤다. 그는 불량하고 다정한 미소를 얼굴에 붙였다.




왜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우린 잘하고 있었잖아. 앙숙으로서, 싸우고, 균형을 맞추고 있었을 텐데. 왜 갑자기 종지부를 찍는 거야. 의문만이 솟구쳐 이치마츠의 눈에 눈물이 떠올랐다. 울먹이는 시야로 그는 표정을 풀지 않고 이치마츠를 내려다봤다. 계속 좋아했다. 형으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남자로서, 사랑에 애가 탔다. 겨우 마음을 평온하게 할 방법을 얻었는데 그의 말은 너무나 잔인하다. 목이 막힌 것처럼 숨이 답답해 손끝이 멋대로 떨린다.


「……왜,」

영문을 모르겠다. 마침내 버려진 걸까.

「……왜, 그런 말, 하는 거야」


꼴사납게 매달리기 싫다. 그야 나는 네가 싫으니까. 네 말을 신경 쓸 필요는 없어. ―――그런 건 다 거짓말이다. 아무리 버둥대도 카라마츠를 가장 좋아하고 더욱 관심받고 싶다고 생각한다. 형으로서의 다정함을 이용해, 내심 어이없다고 해도 그의 눈을 한시라도 독점할 수 있으면 된다. 될 터, 인데. 저릿거리는 둔통 때문에 의식이 뚜렷하지 않다.

싫어, 싫어, 그러지 마.

떼쓰고 싶다. 하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본심을 숨기지 않고 내뱉다니, 지금까지 한 적이 없다. 아니, 어렸을 때는 너무 고분고분해서 호의를 솔직하게 전했다. 형으로서 카라마츠를 존경하고 형의 등을 쫓고 있었는데, 왜 그런 간단한 일도 못 하게 된 걸까. 그저 감정을 말로 하는 게 너무나 어렵다. 나이를 먹고 굳은 입술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애초에 솔직해져도 자신이 원하는 것은 얻을 수 없다. 추악하게 부푼 연정을 왜 친형에게 향한 걸까. 깨달았을 때에는 눈으로 카라마츠를 쫓아 엄청난 열정을 불태워도, 어리석은 형은 알아주지 않고 지금까지 연극에 어울려 주었다.

 ―――비록 동정심이라 해도 네 상냥함을 이용해주지. 그걸로 얻는 순간의 평온은 의외로 나쁘지 않아. 언젠가 버려질 때까지 즐기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왜. 몇 번이나 반복한 의문에 눈을 깜빡인다. 머리가 아프다.


「……그런 선언 하지 마!」

열사병으로 흔들리는 뇌에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일으킨다. 카라마츠를 넘어뜨려 멱살을 잡는다. 후우, 후우, 거친 한숨을 흘리며 노려보자 카라마츠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심하지 않은가」

「아앙?」

「네가 바라는 일을 해도, 결국 난 쵸로마츠를 당해낼 수 없다」

「……하아?!」

점점 의미를 모르겠다. 의아한 표정을 짓자 카라마츠는 말을 겹친다.

「밉군, 이치마츠. 어떻게 하면…네 여길, 손에 넣을 수 있지…?」


카라마츠의 손가락이, 손톱이, 이치마츠의 가슴을 찌른다. 통증보다 먼저 카라마츠의 달콤한 눈빛에 오는 현기증. 숨이 차다. 순간적으로 카라마츠의 멱살에서 손을 떼고 망연자실한 채 그를 본다. 여기, 라고 찌른 손가락은 심장 근처를 찌르고 있다. 문질, 문질,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아프다. 동시에 간지러워서 이치마츠의 뺨이 어렴풋이 붉어진다. 그렇게 만지는 게 더 미워. 방금 내친 주제에 기대할만한 소릴 하다니.


「……네가 더 너무해」


카라마츠의 손을 두드린다. 언제까지 만질 거야. 거긴 네가 만져도 좋은 데가 아니야. 적당히 애무해도 비참해질 뿐이다. 입가를 내리고 카라마츠의 허리 주변에 올라타 지금까지 모은 감정을 조금씩 흘린다.


「질렸어? 아니면 버리려고? 같은 쓰레기 주제에 그럴싸하게 벗어나려고? 무리지. 넌 어차피 같은 구멍의 너구리. 썩을마츠한테는 밑바닥이 어울려」

「……음. 이치마츠. 넌 하나, 아니 두 세 개, 큰 착각을 하고 있군」

「착각?」

「아아」

카라마츠는 묘하게 웃는다. 눈꼬리를 내리고, 조금 곤란한 듯이. 뭘 착각했다는 거야. 얼굴을 찌푸리자 카라마츠는 다정한 목소리로 말한다.


「…사실은, 이치마츠의 응석을 받아주고 싶다」

「머리를 쓰다듬고, 안아주고, 부드러운 말로 풀어주고 싶어」

「빨개진 볼을, 할 수 있다면, 만지고 싶다」

「――그래도, 넌 그걸 바라지 않아」


카라마츠의 눈이, 목소리가, 체온이, 냄새가, 너무나 달콤해 굳어진다. 그런 이치마츠의 뺨을 만지려고 했는지, 뻗으려는 손을 허공에서 멈추고 자애로운 표정으로 웃는다.


「…그래서, 대답하려고 했는데」


슬픈 얼굴로 시선을 돌린 카라마츠는 갑자기 자조했다. 무언가를 포기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아프다.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야 그런 실없는 말은, 남자한테, 더군다나 동생한테 할 말이 아니다. 그 정도는 구별할 수 있다. 이상한 건 틀림없이 카라마츠 쪽이고, 당장 도망치고 싶어진다. 서투른 형이 무엇보다 서투르다는 거짓말,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진짜 의미는 아마. 짐작하듯 카라마츠의 눈치를 보자 그는 괴로운 듯 말했다.


「……그래도, 이제 그만두자」

「……그러니까 왜」

「그야…」

카라마츠는 말을 끊고 고뇌를 밴 목소리로 말한다.


「나도, 널 업고 싶어…!」

온순한 얼굴로 무슨 말을 할까 생각했는데. 냉정해진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뺨을 주먹으로 쳤다.



올 여름은 평소보다 더울 듯하다. 매년 뉴스에서 같은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확실히 올해는 덥다. 그야말로 머리가 이상해질 만큼 찌는 날씨다. 더위로 축 늘어진 이치마츠는 필연적으로 집에서 지내는 날이 늘어났다. 텔레비전을 쳐다보거나 토도마츠가 준 고양이 관련 잡지를 보거나, 밖에서 시끄럽게 우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빨리 여름이 끝나기를 바랐다. 가을이 되면 무더운 열기가 떠나고 카라마츠도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다. 지금 그 녀석은 제정신을 잃은 짐승이며, 제 행동이 얼마나 상식을 벗어났는지 모른다. 머리가 아픈 언동들이 생각나 얼굴을 찌푸리니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식은 보리차를 든 쵸로마츠가 거실 입구에 있었다.


「수분 안 챙기면 다시 더위 먹는다」

「…아ー…」

「카라마츠가 걱정했어」

「……」


테이블 위에 컵을 두고 쵸로마츠는 쓰게 웃는다.

그 뒤, 즉 카라마츠가 더위에 당해서 이상한 소리를 지껄인 뒤 이치마츠는 열사병으로 쓰러졌다. 라고 해도 의식은 있고 심한 현기증에 사로잡혔을 뿐 수분 섭취와 얼음 베개로 머리를 식히니 나름대로 상태가 나아졌다. 겸연쩍은 얼굴로 보리차에 입을 댔다. 목을 움직일 때마다 열에 시달리던 몸이 식어 가는 것을 느꼈다,


「좀 살겠다」

조용히 중얼거리자 쵸로마츠가 살짝 웃었다. 시선을 보내니 그는 턱을 괴고 유쾌한 듯이 입가를 풀고 있었다.

「그래서?」

「에?」

「다시 살아난 감상은」

쵸로마츠 치고는 묘한 표현을 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나름대로 걱정한 걸지도 모른다, 이치마츠는 픽 웃었다.

「…솔직히 아직 산 기분은 안 들어」


앞머리를 쓸어 올리고 책상에 엎드렸다. 나오는 한숨은 자연스럽게 무거워져, 이치마츠의 표정은 근심으로 가득했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지 쵸로마츠는 "흐응"하고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뉴스를 바라보았다. 한여름 날씨에 맞춰진 열사병 환자의 증가와, 비가 오지 않아 심각한 댐의 물 부족, 우울한 보도만 나와 기운이 빠진다.


「그 녀석이 무슨 짓 했어?」

「…했다고, 할까…」

「응」


말을 흐리고 방금 전의 일을 떠올린다. 그 녀석이 무슨 생각인지 이치마츠도 모른다. 어쩌면 동정하는 걸지도 모른다. 몇 번이나 자신에게 그렇게 타일렀건만, 좋을 대로 해석하게 된다. 원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연심을 억지로 끌어당겨 아주 기분이 나빴다. 차라리 뿌리쳤으면 한다. 기분 나빠, 수치를 몰라, 벌레가 달려가는 기분이다, 그렇게 욕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달콤하게 제 이름을 부른다. 꼭, 이치마츠를 요구하는 것처럼.


「――――…」


쵸로마츠에게 말할 수 없다. 말을 찾아도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이치마츠는 눈을 내리깐다. 긴 속눈썹이 가냘프게 떨린다. 늘 카라마츠가 싸움을 사고 둘은 다투는 사이였다. 요 몇 년에 구축된 관계성으로 악화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와서 형제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카라마츠의 특별한 사람으로 있고 싶다. 형제 중에서 유일하게 사이가 나쁘다는 포지션은 비극적이고, 게다가 고양감을 얻을 수 있다. 어차피 언젠가는 손안을 떠나 멀리 갈 사람이다. 약간의 고집은 용서했으면 한다.

하지만 카라마츠는 분명히 말했다.

 ―――사실은, 이치마츠의 응석을 받아주고 싶다.

 ―――머리를 쓰다듬고, 안아주고, 부드러운 말로 풀어주고 싶어.

 ―――빨개진 볼을, 할 수 있다면, 만지고 싶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허리가 저릿거린다. 무슨 생각으로 했는지 모를 말에 고민하고 입술을 문다. 

 ……나도 너한테 응석 부리고 싶어. 그래도 그건 동생으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욕심부리자면 연인 같은 달콤한 꿀을 원한다니―――절대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치마츠도 바보는 아니다. 카라마츠의 목소리와 표정이 동생을 향한 것은 아니라고 알고 말았다. 눈 안에 켜진 정욕의 냄새에 몸은 기뻐하고 떤다. 숙인 얼굴을 들어도 쵸로마츠의 얼굴을 볼 수 없어 고개를 숙인다. 편리한 해피 엔딩은 옛날부터 질색이었다.


「……뭐 상관 없지만, 아마 너가 부러지면 그 녀석도 만족할 거야」

그리고, 말을 이으면서 쵸로마츠는 미간을 찌푸린다.


「…쓸데없는 일로 원한을 사고 싶진 않으니까」


나직이 입안에서 구겨진 말을 자아낸다. 그러나 이치마츠의 귀에는 닿지 못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에, 왜?」

「아무것도 아니야. …아~. 너네 진짜 귀찮아…」

「하아?」

「아무튼, 카라마츠한테 응석 못 부리겠다고 나한테 오지 마! 여러모로 뒤처리 힘드니까!」

「……응?」


멍한 표정으로 놀란 이치마츠에 쵸로마츠는 한숨을 쉰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행동에 휘둘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쵸로마츠가 보면 서로 마찬가지다. 왜 쉽게 이어지지 않는지 쵸로마츠에게는 신기할 정도이다. 고분고분하고 얌전한 성격이라고 알고 있지만, 카라마츠 앞에서는 순식간에 어금니를 드러낸다. 그래서 카라마츠에게 욕구가 쌓이고 발산할 수 없어 울분에 유린된다. 언젠가 무너질 거라고 생각한 관계에 드디어 금이 간 것 같아 조용히 안도했다. 그냥 아무 일 없이 잘 되면 좋겠건만, 이치마츠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와, 뭐, 뭐야」

「아니야」

「…아픈데」

「아?」

「……」


뭔가 말하려는 이치마츠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고 만족한 쵸로마츠는 시선을 거실 입구에 돌린다. 미닫이 너머에 숨은 형의 기색에 입가를 내리고 다시 한숨을 쉰다. 과연 어떤 표정으로 여길 보고 있을지 짐작이 간다. 여유를 잃은 짐승의 시선은 너무나 날카롭고, 안타깝게 젖어 있다. 그런 눈으로 애가 탈 정도면 빨리 강간해라, 쓰게 웃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삼켰다.


마츠노가 차남인 카라마츠와 사남 이치마츠는 앙숙이다. 라는 건 표면적인 관계.

이치마츠는 모른다. 자신이 연정을 숨기고 한시라도 카라마츠의 시선을 독점할 의도로 주먹을 휘두르는 것처럼, 카라마츠도 비슷한 이유로 주먹을 휘두른 것을. 피부가 닿을 때마다 기뻐하는 건 이치마츠만이 아니다. 더 말하자면 이치마츠보다 성가시게 집착하는 카라마츠는 분명 지금도 닿을 수 없는 답답함에 애가 탈 것이다. 정말 귀찮은 놈들이라고 혀를 차면서 웃었다.


「…여름 탓 할 수 있을 때가 기회야」


반응하는 매미 소리. 따뜻한 바람에 달라붙는 땀 냄새. 눈부신 햇살이 비친 다다미가 색을 바꾼다.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이치마츠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최근에 산 참고서를 폈다. 방학이 끝나면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이를 위한 숙제뿐만 아니라 공부에 힘쓰는 쵸로마츠를 다른 형제, 주로 오소마츠가 비웃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시간은 담담하게 지나간다. 여름은 순식간에 끝나고 가을이 찾아오고, 겨울이 찾아오고. 열 때문에 머리가 미칠 수는 없다. 어서 외고집을 그만뒀으면. 쵸로마츠는 참고서를 바라보았다.


「……쵸로마츠 형, 전혀 모르겠는데」

「아앙?」

「………아무것도 아닙니다」


왜 그렇게 기분 나빠하는 거야! 내심 외치면서도 참고서를 보는 쵸로마츠를 방해하지 않도록 방을 나가려고 했다. 미닫이를 열었더니 "와악!" "꺄아!" "써, 썩을마츠! 왜 그런 곳에 있는 거야!" "에 아니 나는……" 하는 대화가 들려 온다. 그들의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을 모양이다. 매미보다 시끄럽고 귀찮은, 고집스러운 상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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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카오.

마음이 둥실둥실 떠있는 카오루 군과, 땅에 다리가 붙어 있는 카나타 군의 이야기.

※자살하려는 카오루의 군 묘사가 있습니다 

※약간 미래 조작





밀렸다 돌아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전부터, 하카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시간 중 하나였다. 그래서 죽는다면 바다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런 일을 실천하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무섭다. 죽는 건, 무서워.



그래서, 지금밖에 없다고 생각해, 하카제는 자신을 붙잡는 여러 잡념을 뿌리치고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물속에 발을 내디뎠다.



신발은 원래 벗어야 하던가, 사고의 그물을 빠져나와 떠오른 생각에 하카제는 잠시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런 잡다한 생각을 하고 있으면 어떤 무서운 일도, 특별한 일도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한 걸음, 또 한 걸음, 하카제는 필사적으로 사고를 멈추고 나아갔다. 모든 것에서 도망치려면 이게 절호의 기회였다. 분명 지금 놓치면 두 번 다신 없다. 틀림없이. 그게 분명 자신이 가야 할 길이었다. 여러 가지 변명을 구사하고, 어둠에 맡겨, 아무것도 보지 않도록 노력했다.



머지않아, 정말 돌아갈 수 없는 경계다. 목에서 흔들리는 수면에 하카제는 처음으로 발을 멈췄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고 크게 한 걸음 내디딘 하카제의 귀에 닿은 것은, 어쩐지 무척 그립고, 들은 적 없는 목소리였다.





「카오루, 데리러 왔어요~」



푸카, 푸카. 평소 페이스로 천천히 말하는 신카이는 이상하게 유무 없는 압력을 갖고 있다. 이런 점은 역시 제 유닛의 리더를 닮았다고, 삼기인이라는 그들 공통의 이름을 떠올린 하카제는 한숨을 쉬고 일어섰다.



「나 하나 없어도 늘 잘 되잖아」

「그래도, 카오루가 있는 편이, 편하니까요~」



게다가 생선들도 기뻐한다고, 정말인지 망상인지 하카제는 판단할 수 없는 말을 하면서 신카이는 하카제의 손목을 단단히 잡고 부실로 불렀다. 이런 권유로 하카제가 얌전히 따라가는 건 그밖에 없다. 뭐, 한 명 더 심하게 데려가는 후배도 있지만 그의 경우는 얌전히 끌려가기 때문에 옴짝달싹 못 한다.



뭐 하러 왔냐는 시선을 보내는 부활동 후배의 시선에는 익숙해져있지만, 그래도 그가 평소처럼 잔소리하지 않는 건 그의 목덜미를 꽉 잡은 신카이의 뜻을 살핀 것이다. 최근, 하카제는 부활동에 자주 얼굴을 비추고 있다. 그건 신카이가 바라기 때문이다. 이 후배는 신카이가 하는 일을 헛되게 할 수 없다.



「수조 교체는 어떻게 해?」

「이 아이들이 커져서, 다른 수조로 옮기는 거에요」



도우라는 작업을 물으면 신카이는 이미 하카제에게 손을 떼고 수조를 사랑스러운 듯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 서서 보고 있으니, 확실히 수조 위는 작은 케이스에서 헤엄치는, 지난달 말에 태어났다는 아이들이 조금씩 커져 있었다. 이 케이스는 좁아졌겠지.



「흐응. 이 케이스에서 나오기만 하면 안 돼? 아직 아기잖아」

「맞아요. 아직 아기니까, 다른 수조로 나누는 거에요」



먹혀버리니까, 간단히 이어진 말에 하카제는 살짝 놀라, 귀여운 얼굴을 한 작은 물고기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재킷을 벗고 소매를 걷은 뒤 하카제도 둘을 따라 신카이의 지시대로 물고기를 바꿔 넣고, 어항 청소를 하거나 요즘 익숙해진 부활다운 일을 묵묵히 이었다. 해양생물부에 하카제가 몸을 둔 것은 바다를 좋아한다는 최소한의 말과 땡땡이치기 쉽다는 중요한 동기이기에, 그동안 성실하게 부활에 참가한 적도 없고 물고기에 대한 깊은 애정도 없다. 그래도 물고기를 보살피는 일은 그리 싫어하지 않았다. 어찌 됐든 그들은 조용하니까.



유닛 연습이 있다고 먼저 나간 후배를 배웅하고, 먹이 주기나 비품 점검 따위를 하고 있자 창 밖에서는 완전히 해가 떨어졌다. 유닛 연습엔 안 가도 되냐는 말에 하카제는 마음에도 없는 대답을 적당히 둘러댔다.



「괜찮아. 꼭 있어야 할 때는 사쿠마상이 말하니까」

「오늘은 없어도 되는 날, 인가요?」

「응, 그렇지. 뭐 후배들은 불평하겠지만~, 내가 없어도 별일 없어」

「…그럼, 바다에 가요, 카오루」



같이. 하카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빨리 가야 하는 이유는 하나도 없고, 이런 시간부터 생각 없이 만날 여자애를 꼬실 마음도 없다. 안성맞춤이었다. 그리 판단하니 신카이가 부른 이유를 알았다. 그는, 지금 하카제를 제어하려는 것이다. 좀 나쁘게 말했지만 신카이는 하카제를, 아마 어떻게 하려는 거다. 그래서 이렇게 부활동에 불러 제 옆에 하카제를 두려 하고, 하카제가 신카이의 행동에 얌전히 따르는 것은, 그에게 빚을 져 약점을 잡혔기 때문이다.



하카제가 자살을 시도한 밤, 그를 구하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음 날 아침을 맞게 한 건 신카이였다.







「요즘 부활동에 나가게 됐구나」

「…그래서?」

「뭐, 좀 더 이쪽에도 나와줄까 했다네, 여자와의 데이트는 그만두지 않았나?」

「그만둔 거 아니야. 잠깐 쉬는 거니까.…아니,그거랑 유닛 연습에 올지 말지는 다른 이야기 아니야?」


귀찮은 사람한테 잡혔다고 눈을 찌푸렸다. 대낮에 다닐 리 없는 사쿠마와 만난 것은 보건실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잠을 보충하려고 온 거지만, 평소 제 관에서 자고 있는 사쿠마가 이런 시간에 일부러 보건실에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 말 하려고 기다렸어?」

「듣기 안 좋구먼, 이 몸도 보건실에 볼일이 있을 뿐일세」



그러셔, 한숨을 쉬었다. 비 때문에 옥상에도 못 가니까 보건실로 온 건데, 부실로 가야 했나 하고 새삼스럽게 떠올렸다. 펌프 소리가 반복해서 나는 그 부실은, 무음보다 오히려 조용히 들려서 기분이 좋다.



「카오루 군, 무리해서 연습에 참가하라는 말은 아니네. 그저 이 몸은, 좀 더 카오루 군과도」

「미안 사쿠마상. 수면 부족이라 좀 힘들어. 자도 될까?」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사쿠마 옆을 지나 커튼을 쳐 사쿠마와의 거리를 만들었다. 한숨이 들렸지만 무시하고 눈을 감았다. 수면 부족은 사실이다. 집에서는 편히 잔 적이 없다. 언제 어디서든, 하카제가 설 자리는 없었다. 딱히 그게 괴롭지는 않다. 그야 비교 대상이 없으니까 무엇이 괴로운지 모른다. 자기가 있을 곳이 있다면 어땠을지, 그건 하카제 자신과 상관없는 이야기다. 모르는 일은 아무래도 좋다.



어항 안에 있는 꿈을 꾼 것은, 그런 생각을 안고 자서인지도 모른다. 이상하게도 숨이 가쁘지 않은 어항 속에 홀로 앉아 있었다. 어항은 교실보다 좁고 살기에는 거북한 크기였는데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런가, 여긴 내가 있어도 될 곳이구나, 생각하니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아 안도의 숨을 쉬니 뻐끔뻐끔하고 거품이 천장으로 빨려들었다. 생선에게 하듯, 천장에서 먹이를 주는 건 신카이였다. 여긴 부실의 어항 중 하나인 것이다. 그래, 그럼 여기라도 좋지 않을까 하고 카오루는 먹이를 무시하며 눈을 감았다. 아무튼 졸렸다. 잘 수 있는 곳이 필요했으니까, 왠지 평온한 꿈이었다.







방과후 시간을 신카이가 부르는 대로 얌전히 부실에서 보내게 된 하카제는 그래도, 헌신적으로 일하는 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배짱은 없지만 어느  정도 일을 도우면 뒤는 조용히, 어항을 바라보는 게 일과였다. 성실하게 활동하고 있는 신카이나 후배는 설거지나 재료 운반으로 부실에 없을 때가 잦아, 그럴 때면 이곳은 물고기와 하카제와 어항만의 공간이 된다. 꽤 나쁘지 않았다.



바다에서 죽고 싶다고, 하카제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죽고 싶다는 건 아니다. 그건 중요한 구별이지, 그저 하카제는 무엇을 비관하지도 고통스럽지도 않고, 평범하게 내일도 살고 싶다. 아프고 괴로운 건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죽는다면 바다가 좋다는 건 양보할 수 없는 마음으로 갖고 있다. 이 방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하카제의 터무니없는 욕망이 어딘가 충족된 듯한 기분이 되었다.



조용하고 어두워서 기분 좋다. 언젠가 제 방을 이렇게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만, 부원들처럼 적극적으로 보살필 마음은 없고 현관 앞에서 끝없이 어항을 씻는 제 모습도 상상이 안 가 포기했다. 한두 개의 수조로 이렇게는 안 된다. 이 방처럼, 바다로 착각할 만큼 물과 거품이 있는 세계가 있는 게 좋다. 어항 하나로는 견줄 수 없다.



「카오루, 아직도 있었네요」



보글보글거리는 펌프 소리에 몸을 맡기고 졸던 하카제의 귀에 신카이의 목소리가 닿은 건 해가 떨어진 뒤였다. 천천히 고개를 드니 신카이는 뭔갈 정리하는 듯했다. 후배는 유닛 연습으로 빠진 것 같다. 곧 외부에서의 일이 있다던 말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도와줄까?」



이제 끝났다는 부정의 말이 끝나기 전에 신카이는 비품용 사물함을 닫았다.



「카오루, 지금부터 바다에 가지 않을래요?」



신카이의 말은 파도 감도는 소리가  난다. 그건 상냥하기도, 무섭기도 하고, 그는 의외로 감정적이다. 그래서 강한 파도 같은, 거역할 수 없는 목소리에 하카제는 본능적으로 혼나는 아이 같은 불안을 안았지만 결국 수긍했다. 약점을 잡혔다는 이유가 아니라, 그의 말은 하카제에게 파도와 같다. 자연스럽게 밀려오는 큰 파도가 두렵더라도, 불평하며 멈추려고는 하지 않는다. 몸을 맡길 수밖에 없는, 뭔가 대단한 일부 같은 것이었다.



오늘도 이러저러해서, 어른스러운 신카이를 따라온 하카제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어두운 물가에서 노는 신카이를 보며, 새카맣게 흔들리는 바다를 봤다. 바다에서 죽고 싶다곤 하지만, 그래도 저 안으로 들어가는 건 무서워서, 역시 이미지는 낮 바다가 좋겠다, 어긋난 사고로 그날 밤에는 내가 좀 이상했구나 회상하고 있자, 마침 신카이도 그날 일을 물어 하카제는 심해로 시선을 되돌렸다.



「카오루, 왜 그날, 바다에 들어가려고 했나요」

「…새삼스럽네」



사실, 그날에도 물어봤을지 모른다. 하지만 기억이 없다. 평소에는 곧이곧대로 용서해주는 그가 대답을 원할 때는, 어쩐지 사쿠마를 대할 때처럼 잘 뿌리칠 수 없지만 하카제는 대충 둘러댔다. 속이려는 것보다 적절하게 대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카오루가 「말하고 싶지」않다면, 묻지 않아도 되겠지만…역시, 전 카오루가 죽는 건, 싫어서」



듣고 싶다는 결론에 이른 신카이의 말은 지당한 일이었다. 자기도 만약 그를 구했다면 똑같이 말했겠지. 그가 사라지는 건 쓸쓸하다.



「…큰 의미도 없어. 그러니까, 카나타 군한테는 감사하고 있어. 카나타 군이 구해줘서 다행이라고. 정말」

「아무 일도 없어서, 카오루는 바다에 들어간 건가요」



그건 자살이라는 거라고, 죽고 싶으니까 하는 거라고 신카이가 말했다. 그는 바보도 아니니 분명 죽고 산다는 말에는 민감한 편이다. 그의 배경 따위를 짊어진 적 없는 하카제는 자세히 듣진 못했지만, 좀처럼 복잡한 환경에 사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배려할 순 없다. 하카제의 목숨은 하카제의 것이니까.



「…아무 일도 없으니까 사는 것처럼, 아무 일도 없어서 죽는 것도 이상하지 않잖아」



최대한 가시 없게 말할 생각이었지만 실패한 모양이다. 신카이가 생각에 잠긴 듯 미간을 찌푸린 게 희미한 달빛 속에서 엿보였다.



「…아무 일도 없어서, 인가요」



정말? 이라고 묻는 듯한 목소리였다. 실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신카이에게 그런 의도는 없고, 그냥 하카제가 그렇게 받아들였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뭔가 혼나는 느낌이라 하카제는 부러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무 일도 없으니까, 그런 기분이 된 것뿐. 그래서 구해줘서 고맙다고 하는 거잖아. 바다에 불린 걸까?」



물론 죽고 싶은 건 아니니까, 뒤에 붙인 말은 사실이지만 어느 정도 전해졌을지는 모른다. 다만 이것저것 있는 일 없는 일을 상상해서 걱정하거나 아파하는 건 싫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하카제는 신카이를 향해서 웃었다.



「왜 그랬냐고 해도 정말 아무것도 없어. 그냥 바다에 들어간 거지. 마가 끼었다든가 하잖아. …그러니까, 그날 일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카나타 군도 잊어 줘」

「저는,」



손을 흔들며 웃는 하카제의 시야에, 잔잔한 바다 같은 눈동자가 보였다.



「저는 그대로, 카오루를 뺏기는 게, 무서웠어요」



그 말의 의미를 잘 생각해보는 건 조금 어려워, 그리 깊이 생각하진 못했다. 그래도 다정한 말로 받아들이고 그저 온화하게, 고맙다고 웃으며 익숙한 곱슬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래 자지 못한다는 제 특징 중 하나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하카제는 기억이 없다. 아마 밤이 되면 생각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지금은.



그저 생각만 해도 인간의 뇌는 제 의식과는 어딘가 다른 곳에서 여러 가지 일을 헤아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 우수한 뇌 덕분에, 아마 하카제는 그동안 이렇게까지 쓸쓸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생각하는 것은 뇌가 해주기에 자연스럽게 결론이 나온다. 감정과는 다른 얘기로, 뇌에 맡기면 어린 하카제도 여러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엄마가 없는 것. 형, 누나와 자신이 다른 것. 아버지에게 혼나는 것. 이해할 수 없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머리에 생각을 맡기고 살아와서 밤에는 뇌도 조금은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걸까. 하카제의 잠을 방해하고 있다 해도, 그것도 머리가 마음대로 해주는 거라면 고마운 일이었다. 어려운 일이나 아무래도 안 되는 일은 최대한 생각하고 싶지 않다.



여태까지 이렇게 살면서 불편했던 적은 없다. 없을 테지만, 그날 신카이가 멈추지 않았다면 하카제는 바다에 몸을 담갔을 것이다. 그건 신카이의 말대로 자살이라는 것이다. 목숨을 끊을 정도로 뚜렷한 감정이 제 안에 있는 것에 놀라, 왜냐고 물어도 자신은 모른다. 아마 뇌에게만 시킨 대가다. 마음으로 생각하는 건 잘하지 못한다. 하카제는 항상 웃으면서, 즐겁게 살아왔을 것이다.



기억하는 건 지금 안 가면 이제 기회는 없어, 나, 이게 찬스라고 매달리는 생각으로 심해에 발걸음을 옮기던 것. 그건 냉정해진 하카제에게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살기 힘들었던 걸까. 그렇게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을 텐데.



설마 무언가를 원하고 있는 걸까 하는 결론으로 기울자 하카제는 터무니없이 비참하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대체 뭘 요구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생각도 하기 싫다. 누구한테 무엇을, 원한다는 것인가.



하카제가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야망은, 언젠가 엄마처럼 자길 사랑해주는 여성을 찾는 것이고, 그건 아마, 언젠가는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황당한 이야기는 아닐 터. 그러니까, 지금 고등학생이라는 나이로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비관해서 목숨을 끊는 건 아니겠지. 



왜 바다에 들어갔는지 물어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냥 죽고 싶지 않다는 게 고작이고, 그 고작으로 그에게 한 대답은 왠지 땅에 다리가 붙는 느낌이었다. 



두번째 밤을 보내도 변함없이, 신카이는 하카제를 더욱 곁에 두려고 했다. 하카제도 기본은 대답한다. 여자애 앞에서 언제나 살랑살랑한 자신으로 있으려면, 자살 시도를 했단 소문이 나서는 안 된다. 신카이를 신용하지 못하는 건 전혀 아니지만 그는 사쿠마와 같았고, 여차하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남자다. 그 강함이 무서웠다.



「카오루~, 카오루도 같이 안 할래요?」



오늘은 해가 따뜻하고 기분 좋으니까, 해도 하카제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럼 안녕, 같이 헤엄칠 상대도 좀처럼 없을 텐데, 그는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권유해 와서 속을 헤아릴 수가 없다. 언제나 그렇듯 됐다고 거절하니 강요도 않고 신카이는 혼자서 헤엄을 즐긴다. 그걸 멍하니 보는 시간은 왠지 신기했다. 불렸으니까 곁에 있는 데에 익숙해진 것도 약점을 잡힌 것도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속박된 사실에 화가 난 것도 아니다. 아니, 속박되어 있다고 느끼지 못한다. 

단순한 이야기다. 함께 하는 것이 싫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 있으면 파도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부실에서 잘 때와 같은 기분이다.



어젯밤도 잠들지 못했기에, 분수에 앉은 채 졸아버린 건 하카제의 실수이다. 정신이 깬 하카제는 부실에서 신카이의 체육복을 빌리고, 옷을 말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대로 곯아떨어져 분수에 떨어진 모양이다.



「카오루~, 괜찮아요…?」



자기도 교복 차림으로 헤엄치고 있던 주제에, 걱정스러운 물음이 조금 우스웠다. 하지만 대답할 여유도 없을 만큼 눈꺼풀이 무거웠다. 손바닥을 흔들어 대답하려고 했다.



기우뚱, 가라앉는 듯한 잠이었다.



방 안에는 신카이와 하카제와 수조들만이 있었고, 신카이의 콧노래, 펌프 소리만 들렸다. 하카제를 위한 이상의 바다만 같아, 그 안에 가라앉는 듯한 잠 속에서 점점, 늘 이것저것 열심히 해주는 뇌도 아무 생각 없이 잠들어 버린 듯했다.



이걸 원했는지도 모른다, 지친 건 자신이 아니라 뇌였을지도 모른다고, 하카제는 졸음 속에서 생각했다. 항상 냉정하게 판단해주는 머리가, 마음으론 안 그러면서 이젠 무리라고 신호를 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뭐가 그렇게 힘든지 알려주지 않으면 하카제도 모른다. 모든 일은 이유가 있는 법이다. 담담하게 이해하고, 내버려 두고, 그리고 언젠가 엄마가 되어 줄 여자를 찾아 행복해진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무엇을 그리, 못 참을 정도로 힘들어하는 걸까.



왜 그날, 바다로 도망치려 했는지 알고 싶은 건 하카제 쪽이었다.



일어나니 꽤 오래 잠들어 버린 듯 창밖이 깜깜했다. 부활동을 이유로 숙박 신고를 했다는 신카이에게 하카제는 고맙다고 한 뒤, 형에게 학교에서 자고 온다고 연락했다. 연락만 하면 그리 이러쿵저러쿵 뭐라 하진 않겠지. 중요한 건 표면적인 이유다. 이유가 있으면, 납득 할 수 있다.



「…미안 카나타 군, 그, 나한테 맞춰줘서」



그도 집에 가고 싶진 않겠지 생각하면서 한 말에, 신카이는 역시 괜찮다고 대답했다. 하카제가 없더라도, 그는 어쩌면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잠을 못 잤나요?」

「응? 어제? 뭐, 원래 잠이 얕아서…」



알고 있잖아, 새삼스러운 걸 묻는 신카이를 의외라고 여기고 하카제는 일단 웃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닌 것 같다. 그날 밤처럼 미간을 찌푸리고, 신카이는 차가운 손바닥을 소파에 누운 하카제의 뺨에 댔다.



「…오늘은 왠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어요. 제가 붙잡지 않았으면, 분명 레이가 데려갔을 거에요」

「…어, …그래?」

「카오루는 여자에게, 그런 얼굴, 보이고 싶지 않죠」

「…응」

「그런 표정을, 지었어요. 그래도, 아무 말도 안 해주면서…방에서는 잘 자고, 왠지 「질투」 나네요~」



귀엽게 볼을 부풀리는 신카이에 어리둥절한 하카제는, 그런가? 하고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그러고 보니 신카이의 말대로 어제는 평소보다 더 잠을 못 자, 거울도 잘 보고 있었을 텐데 기억이 없다. 그래서 아침부터 신카이에게 발을 묶였는지도 모른다.



「…저는 카오루에게,…왜 바다에 갔냐고, 물었는데…」



카오루는, 아무것도 모르네요, 신카이는 체념한 듯 중얼거렸다.



「…무슨 뜻이야?」

「그 말대로예요. 카오루는, 자기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죠」

「아니아니, 미안, 의미를 잘, 모르겠는데…」

「저나, 레이가 더, 카오루를 잘 알지 않을까, 해요. 전 조금, 화 나 있어요」



귀여운 화난 표정 그대로 신카이가 하카제의 볼을 쥐었다. 이것도 하나도 안 아팠지만, 왠지 맞은 것처럼 충격적이었다.



「카오루가, 그날 바다에 들어간 건…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었죠.…아무것도 아닌 건, 카오루가, 하나도, 모르고 있으니까 그래요」

「…뭘」

「카오루가 없으면, 곤란한 걸요」



없으면 곤란하다고, 다시 말했다. 그 말의 의미도, 왜 지금 그런 말을 하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 달리 머리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오루는 언제나 그래요. 없어도 된다고…하지만, 저도, 레이도, 소마도, 아도니스도, 코가도, 카오루가 없으면, 곤란해요」

「아니, …그렇게 말해주는 건 기쁘지만, 딱히 난 그런 걸 비관해서 죽고 싶다고 생각한 게 아니라니까…」



정말, 배려하고 격려해줄 만한 거창한 이유는 하나도 없다는 하카제에게 신카이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 카오루가 몰라서예요. 카오루는, 살지 않으면, 곤란한 이유가 있잖아요」

「…하…?」



죽고 싶은 이유만큼 짐작 가지 않는 그 이유에, 신카이는 없으면 곤란하다고 다시 말했다. 자기들이, 하카제가 없으면 곤란하니까. 그게 하카제가 죽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걸 모르니까 죽어도 된다고 생각했다고, 그런 말을 들은 하카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정론을 말하자면 그의 마음은 고맙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야, 대체 뭐가 곤란하다는 것인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 건가. 확실히 부활이든 유닛이든, 자기가 없어도 곤란하지 않다는 건 하카제의 법칙이다. 그래도 비관하거나 무시하거나, 제 존재를 부정해달라는 건 아니다. 하카제의 꽤 우수한 머리가 생각한, 사실이다.



유닛은 사쿠마가 있으면 어떻게든 된다. 확실히 자길 잃으면 그건 마이너스겠지만, 못 해먹을 정도의 마이너스는 아니다. 어떻게든 되겠지. 게다가 실전에서는 같이 있으니까 연습에 없어도 곤란하지 않다. 그 정도의 존재다, 정말 없어져도 셋이서 할 수 있을 것이다.



부활동은 더더욱 하카제가 없어도 된다. 오히려 있는 쪽이 마이너스라고 후배도 말할 것이다.  신카이가 부탁하면 도와주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하카제는 아무것도 안 한다. 이 방에서 잠자는 정도다.



신카이와 개인적 친분도 친하긴 하지만, 신카이에게 단 한 명의 친구라는 이유도 없었다면, 하카제는 신카이의 무엇도 짊어질 수 없다. 하카제 한 명 없으면 외로울지도 모르지만 그뿐이다. 곤란한 것과는 다르겠지.



그러니까, 없으면 곤란하니까 죽지 말라는 것은 어딘가 어긋나 있다고 냉정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무시하고, 신카이는 하카제에게 모를 뿐이라고 말한다.



「카오루가 없어지면 곤란해요. 그래도, 카오루가,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내가 몇 번이든, 카오루에게 알려줄게요」

「…으음, 괜찮다니까…걱정 끼쳐서 미안하긴 하지만…」

「카오루를, 걱정하는 게 아니에요. 제가, 곤란해요. 카오루, …제가, 카오루가 있어 주라고 바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제가 곤란해요.…카오루는, 그런 걸 하나도 몰라줘요…」

「있어 주라니…」

「그것뿐이에요. 전, 카오루를 좋아하니까」



좋아하니까, 곁에 있어 주라는 것. 죽지 않았으면 한다, 는 말은 정말 간단하고, 아무런 이유도 없어서, 전혀 납득 할 수가 없다. 그리고 하카제의 우수한 뇌를 완전히 쓸모없게 만들어 버렸다. 그야 그런 아무 이유 없는 말이 통한다면, 그동안 하카제의 인생은 뭐였던 걸까. 그런 마음만으로 말이 통한다면 하카제는 울부짖고 고집을 부렸을 것이다. 좋아하니까, 그런 말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있다면, 그건, 하카제가 계속 원해왔던 것이다.



엄마처럼, 절대적으로, 어떤 이유도 없이 사랑하고 받아들여 주는, 그런 애정.



하지만 사실, 손에 넣을 수 없다고 알고 있었다. 엄마는 없으니까. 사실 언젠가 누군가가 편리하게, 사랑해준다고는 믿지 않았다. 다시 태어날 수는 없으니까, 하카제가 무슨 짓을 해도 이제 엄마는 없다. 그래도, 언젠가 어떤 여자를, 덧없는 꿈으로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 게 왜 갑자기, 이런 데에서 하카제 의 앞에 나타나는 걸까.



완전히 움직일 수 없게 된 머리 탓에 아무 대답도 못 하던 하카제의 눈은, 부실의 창백한 빛과 똑같은 색으로 신카이를 보기만 했다.



「카오루가 없으면 곤란하니까, 저도 많이, 생각했어요. …왜 없어지면 곤란한지. 좋아하니까, 그런 거에요」

「…일단 물어보겠는데, 그…좋아한다는 말은,…」

「글쎄요?…뭐든, 카오루의 생각대로 해주세요. 저는, 카오루를 좋아하는 것, 뿐이니까」



원하는 애정을 얼마든지 준다는 매력적인 말을 앞두고, 카오루의 대답은 정해져 있다. 그걸 현실적으로 고치면 아마, 남자끼리면 우스꽝스러울 거고 제가 하는 말은 무척 이상해진다. 그래서 뭐라 말하면 좋을지 모른 채 뻗어진 의지 약한 손을, 신카이는 제대로 받아들여 하카제가 원하는 걸 준다는 듯, 어머니처럼, 다른 무엇보다 사랑하는 아이를 대하듯 하카제를 껴안았다.



「…없어지지 말아 주세요, 카오루. 저를 위해서, 살아주세요」

「…죽고 싶다고도, 안 했다니까…」

「네. 그래도, 또 바다에 휩쓸리지 않게요…카오루는, 제가,」



제가, 받을 거예요. 카오루를 졸라맨 말은 아까보다 꽤 직접적이었다. 반박은,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텐데, 아무 말도 못 한 채 신카이의 말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아마, 그의 수조에 들어가고 싶었던 것이다.





휴일 낮, 백화점 옥상. 하카제는 작은 무대에서 잘 아는 목소리가 반가운 말을 자아내는 걸 가족 동반석에서 떨어진 벤치에서 듣고 있었다. 오늘도 일이 있는 상대에게는 나쁘지만, 좀처럼 한가롭고 좋은 휴일이었다.



유성대의 부활이다, 신카이가 즐겁게 말한 1년 전부터, 이렇게 하카제는 시간이 맞으면 그들의 활동일에 발걸음을 돌렸다. 모두 일이나 생활이 어느 정도 잡혔으니 봉사의 일환으로 유성대 활동을 재개하지 않겠냐고 말을 꺼낸 건 리더인 모리사와였다. 이렇게 휴일 공원이나 백화점 옥상에서, 그들은 서른이 넘은 지금도 유성 블루 같은 그리운 말을 입에 담고 있다.



지금, 아이돌이라는 범위와는 조금 빗나간 일을 하고 있는 신카이를 비롯해 그들은 모두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특촬 일을 하는 건 모리사와 이외에는 없을 것 같지만, 이렇게 모이면 그들은 모두 생기가 넘쳐, 저들과는 다른 활동 방식에서 히어로의 모습을 보고, 하카제는 뭔가 간질거린다고 느꼈다.



그야 자신도 저 중 한 명의 히어로에게 일찍이 구원받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릴 때 얘기지만, 당시엔 나름 신카이도 열심히 생각해준 거라고 간혹 듣고 있다. 심해의 생선이 되어, 그의 수조에서 사랑받고 자란 다음 유리 너머로 바깥 세상을 보니, 세상이 이렇게나 상냥하던가. 부모도, 사쿠마도, 동료도, 친구들도, 그 까다로운 후배도 분명히 하카제를 사랑해 주었다. 자길 대신할 사람은 없다고, 당연한 사실을 알려 주었다.



항상 바다에서 죽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바다는 아무래도 하카제에는 너무 넓다. 지금은 신카이가 만들어 낸 세계가, 하카제에게 가장 진정되는 곳이다. 아무리 일로 집을 비워도 그가 만들어 낸 공간에, 저희의 집에 돌아가면 하카제는 언제든지 편안해질 수 있다.



오늘 출연은 이걸로 끝이지만, 이 뒤에도 봉사 스탭으로서의 일이 있다고 들어 하카제는 쇼가 끝나고 자리를 떴다. 한발 먼저 돌아가는 건 참을성 없겠지만 맛있는 밥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것도 중요하다. 떠나려는 순간, 블루 멋있었지, 하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하카제는 무심코 웃고 말았다.



그치, 내 히어로야. 라고, 본인에겐 아직 말한 적 없다. 하지만 계속 생각하고 있다. 그가 소중히 구해 주었기 때문에 하카제는 어른이 됐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상 속에서, 무엇도 쓸모없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먼 그날,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바다에 들어간 하카제의 진짜 이유는 역시 신카이의 말대로 모르는 일이다. 몰랐으니까, 분명 그렇게 도망치자고 생각한 거겠지. 사실은 여러 생각을 했었는데, 전부 이유를 붙여서 납득하고, 나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사는 건 조금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슬아슬한 상태에, 비참한 삶을 마음이 깨닫기 전에 죽어야 한다고 생각해, 바다에 들어갔다. 하카제는 그때 일을 지금도, 비관적이었다던가, 사실 심각하게 고민했다던가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느끼지 않기 때문에 선택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철없을 때의 이야기. 좀 더 넓은 세상을 보니, 아무것도 아닌 일로 하마터면 잃어버릴 뻔한 삶을 구원해준 건, 그날 들은 적 없을 만큼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고, 수영도 못하는 주제에 하카제를 끌어 올려 준 신카이다. 그저 좋아한다는 이유로 살아 달라고 바라고, 구해 준 그가 있어서 하카제는 지금도 무럭무럭 자라 있다. 그때부터 변함없이, 그 점에는 정말 말 못할 만큼 고마워하고 있다.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래도, 죽을 뻔한 적은 있다. 하카제의 인생에서, 그 일은 신카이와 하카제만의 비밀. 어쩌면 그날부터 계속, 하카제는 신카이의 도움을 받고 살고 있어, 조금이라도 신카이에게 무언가를 갚고 싶다고 생각했다. 같이 살게 되기까지는, 하카제도 나름 힘낸 결과다.



해서 백화점 지하까지 내려와, 하카제는 장바구니를 들고 하카제의 히어로가 좋아하는 맛있는 생선 요리를, 그의 솜씨에는 못 미치지만 준비해서 그의 귀가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제 하카제가 가라앉는 바다는, 그 어두운 밤 안에는 없었다. 그들의 방에는 오늘도 신카이의 수조가, 보글보글하는 상냥한 소리를 내며 하카제가 살아가는 세계를 만들고 있다.





이왕 쓰는거니까 보정좀 해봤습니다...........근데인제 안할듯 세네장 할 때는 재밋엇는데 개노잼

제가 네이버 블로그를 어케 했을까요? ???? 



이것은 린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글.......^^ 엄마인생최애 린네....

린네에게는 인생을 걸 수 있어요.........필립이는 돈이 없어서 못키우고잇음.........ㅠㅠ

필립아 미안하다. 애미를 원망해라



어쩜ㅠ이 코디를 입은 린네는 왜이렇게 큐트할까요?

귀염뽀작이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음 아근디 보정 지지리도 못했다....

그냥 즈룬이가 제일 잘된 것 같음...;;;;;;; 린네의 애매한 머리톤



글고 린네가 첫슈싸를 얻었습니당. 가루루 슈싸가 매우 잘 어울리고 귀엽네용^^

그러나 돈이 없어서 팔앗음 ㅋ............린네야 엄마를이해해줘.........쓰레기엄마....

린네는 불효해도 괜찮다 엄마가 쓰레기라서

찍은 사진은 많은데 컴으로 옮기기 귀찮아가지고 이거밖에 없네요........아귀차나,,,,

글고요즘 귀찮아서 프리파라 잘 안 감,......아니어차피 저번주에 많이갈겻걸랑요

돈도 없으니 8월은 휴픞할 필요가 있음. 그리구 검은마법사님이 오셨으니까요ㅎㅎ

검마님 충성충성충성~~!!!!~~~~반레온아카이럼데미안데몬스우오르카힐라매그너스윌루시드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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