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역o 다들 봐주셨으면 해서 올립니다.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8596617

치카다 선생님의 작품입니다.

선생님 말씀 : 엇갈린 짝사랑을 목표로 썼습니다. 하치라이입니다.



*



하치야 사부로는 원치 않게 얼굴을 빌려주는 사람의 심경을 모른다. 사부로는 항상 빌리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상할 수는 있다. 때때로 장난삼아 쓴 후배에게서 불평불만이 들려올 때가 있다. 그래서 뭐, 그냥 그런 거겠지 하고 생각한다.

후와 라이조의 얼굴을 처음 빌렸을 때, 사실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지금의 사부로에게서 보면 거짓말 같지만, 그런 시기도 있었다는 소리다.

추측이지만, 늘 하는 방식으로 고른 것이다. 갖고 있는 가면을 늘어놓고, 오늘은 이거, 그런 가벼움으로. 처음 사람의 얼굴을 빌리는 경험은 언제든지 신선하다. 그걸 최대한 즐기기 위해 사부로는 늘 어린애처럼 장난치며 노는 것이다. 반응은 다양하다. 어이없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화내는 사람도 있다. 그걸 보고 그 뒤의 대응을 정하는 것이 사부로의 일상이었다.

라이조 때도 그랬다. 라이조는 그때 어떻게 했던가. 역시 조금 포기한 느낌이 있다. 그래도 라이조에게 딱 달라붙어서 장난치는 것은, 왠지 모르게 무척 재밌었다. 라이조는 성실하고 우수한 반면 이상한 부분에서 나사가 빠져 있다. 한 번 생각에 잠기면 사부로가 뭘 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게 재밌어서, 사부로는 질리지도 않고 라이조를 바라봤다. 그 후 다시 가벼운 마음으로, 좀 더 이 얼굴을 빌린 채로 있자고 생각한 것이었다. 주변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부로가 금방 질릴지 질리지 않을지는 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이미 익숙해졌다.


사부로, 그거, 내 얼굴. 언제까지 하고 있을 셈이야


라이조의 얼굴을 흉내 내는 것에 익숙해질 무렵, 본인에게 그런 질문이 왔다.


글쎄, 언제까지일까. 적어도 당분간은 계속할 생각인데


사부로는 그렇게 답했다. 확실히 라이조의 얼굴로 있는 건 재밌지만, 진심으로 싫어하기 전에는 그만둬야지, 라고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대놓고 뻔뻔하게 나오면, 더 귀찮아지기 전에 해결할 수 있다. 자주 사람을 잡아먹을 것 같다고 듣는 표정으로 라이조를 본 그때였다.


어쩔 수 없네


라이조가 쓰게 웃었다. 사부로는 입을 떡하니 벌렸다. 말투에 표정까지 거절의 뜻을 담은 무언가가 돌아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뿐?

, 그냥 듣고 싶었던 것뿐이니까

「……그래


라이조가 이 얘기는 이제 끝, 이라는 얼굴을 해서, 사부로는 입을 뻐끔거리다 다물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 용서받았다 하고 느낀 것이다.

사부로는 언질을 잡았다고 득의양양하게 웃어도 된다. 어찌됐든 당사자의 보증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슴 속에서는 소화 안 되는 응어리가 남아 있었다. 본인이 싫어하면 귀찮으니까 적당히 끝내는 게 가장 편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터다. 방금 전까지는. 그 뒤 사부로는 이전보다 더욱 라이조의 변장에 신경을 기울이게 됐다. 어쩌면, 가슴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안개를 없애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익숙해졌을 변장은 되돌아보면 조잡한 것투성이였다. 머리카락 감촉도, 피부색도, 세세한 외모도, 그런대로 생기긴 했지만 실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개선의 발판으로 우선 라이조로 변장하기 위한 도구 전부를 갈아엎기로 했다. 마침 한 방에서 홀로 지내게 된 걸 다행으로 여기고, 하루의 절반을 라이조 관찰에 쓰다 보니 보다 못한 선생님들이 못을 박는 일도 잦았다. 라이조의 성격이 저만큼 너그럽지 않았다면 위에 구멍이 뚫렸을지도 모른다. 사부로는 자신의 몰두하는 성격 못지않은 그의 대범함에 다시 한 번 감사했다.

라이조 쪽도, 사부로가 하는 일에 완전히 무관심한 것도 아니었다. 라이조는 저래 봬도 눈치가 빠르다. 변장 도구를 새롭게 바꿀 때마다, 전이랑 다르네 하고 지적받고, 거울 앞에서 홀로 오만상 짓는 걸 들켰을 때는 폭소 당했다. 사부로는 어떻게든 저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재현할 순 없을까 하고 온갖 고생을 다했기에, 부끄러움에 마구 뒹굴었다.

이런 저런 일이 있는 사이, 어느 샌가 사부로가 라이조로 변장하는 것이 당연해졌다. 바보 같은 이야기지만, 사부로는 명물 콤비니 뭐니로 불리게 되고 나서 처음으로 깨달은 것이다. 라이조의 얼굴은 왠지 모르게 짐작이 갔다. 분명, 그때처럼 쓴 웃음을 짓고 있다.

깨달은 뒤, 사부로는 방에 돌아와 다시 라이조를 봤다. 얼마든지 봐도 괜찮다, 변장을 위해 관찰하고 있다는 명목이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조금씩 다가갔다.


사부로, ……사부로


말을 걸려와서 깜짝 놀랐다. 라이조의 얼굴이 눈앞에 있었고, 주저하면서도 어깨가 맞닿아 있다.


역시 이건 좀 가까워


라이조는 드물게 곤란해하는 눈치였다. 미안하단 말을 입안에서 우물거리며 떨어졌다. 견제되버렸군, 싶었다. 저만치 가까운 거리는 안되는 것 같다. 그럼, 불의를 가장하고 부딪혀본다면? 친한 척하면서 어깨를 안는 건? 대체 어디까지라면 허락되는 걸까. 그 생각이, 분명히 사부로가 넘고 만 일선이었다.

잠시 후, 그때가 왔다. 그것은 계획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이뤄졌다. 적어도 사부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심정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참을 수 없는 충동이 뒤섞이는 것은 명백했다. 라이조가 스스로 얼굴을 바싹 댄 순간을 노려서, 입술을 빼앗은 것이다.

닿아버렸다가 통용하는 건 처음 한순간뿐이겠지. 하지만 닿자마자 바로 사부로의 의식에서는 속일 생각마저 날 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이렇게 부드러울 수가! 그런 본능 같은 사고가 눈 깜빡할 사이 사부로의 뇌내를 물들였다. 바로 옆에서 라이조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뜨이는 걸 봤으니까, 다음 행동은 예상이 됐다. 어깨를 밀고 도망치려는 건 이번엔 봐주지 않는다. 손목을 잡고 몸을 꽉 껴안았다. 기세로 밀어붙이는 모습이 됐지만, 사부로는 상관하지 않았다. 엄마의 젖을 먹는 아기의 열성처럼, 라이조와 입술을 맞추는 데 열중해 있었다.

라이조의 눈은 크게 뜨인 채 계속 이유를 찾고 있었다. 풀려나자마자 가쁜 한숨을 쉬는 직후에 튀어나온 말도였다. 사부로는 그때 처음으로 자신이 저지른 일에 직면했다. 라이조가 가슴을 부여잡고 거친 숨을 내쉬는 사이, 사부로는 몸에서 핏기가 싹 빠지는 감각에 벌벌 떨었다. 라이조는 이유를 찾고 있다. 하지만, 뭐라고 변명해야 할까. 왜 이런 짓을 했냐고 물어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했다, 고밖에 말할 수가 없다.

라이조는 어떻게든 숨을 고른 것 같다. 조용히 참을 성 있게 사부로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고 입을 열었지만 해도 괜찮은 말은 한마디도 떠오르지 않는다. 낚아 올린 생선처럼 입을 뻐끔거리고 있는 모습은 도리어 우스웠을 것이다. 비참함에 눈물까지 나온 그때였다. 라이조의 한숨이 들렸다.


지금 말 못하겠으면, 괜찮아. 그래도 말할 수 있게 되면 가르쳐줄래?


그 말에, 사부로는 두말 없이 수긍했다. 목 가죽 한 장이 이어져있어서 살았다고, 생각했다. 라이조는 목에 뭐가 걸렸는지 잠깐 동안 기침을 했지만, 그것도 곧 잦아들었다. 그 후로는 웃음이 나올 만큼 평소와 같았다. 하지만 사부로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저 문제가 뒤로 미뤄졌을 뿐이다. 여전히 라이조에게 설명해야 하는 책임이 존재하고 있다.

책임을 다하기 전에 두 번째가 일어났다. 첫 번째는 해질녘이었지만 이번엔 조용한 오후였다. 때마침 쉬는 날에 라이조는 팔베개를 하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 방에 들어가고 그것에 우연히 마주치게 된 사부로는, 너무나 무방비해 아연실색했다. 친구라고 생각한 녀석에게 그런 짓을 당한다면, 경계하게 되기 마련 아닌가. 라고 생각해도, 평소대로 대해주는 게 고마웠다.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보내고 있으면, 제 안의 모순되기 짝이 없는 욕망에 눈을 감을 수 있으니까.

어째서일까. 자는 얼굴을 보며 사부로가 자문자답했다. 아무 이유 없이 그런 대담한 짓을 저지른 자기 자신이 믿기지 않는다. 그때의 머릿속을 더듬어 보아도 이유라곤 한 조각도 찾을 수 없다. 끈적끈적한 욕망의 잔상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라이조의 얼굴은 정말 가까워서, 바로 닿을 수 있었다. 아주 조금, 저항도 했었나. 상당히 놀랐던지 사부로도 간단히 막을 수 있는 귀여운 행동이었지만. 다음이 있다면 주먹이 날아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은 아무것도 못 하겠지. 곤히 자고 있으니까.

어느새 조금 줄어든 거리를, 사부로는 한숨으로 메웠다. 한 번 닿으면 떨어질 꽃이라도 되는 것처럼, 살짝 겹쳤다. 입술은 약간 건조했다. 하지만 가볍게 누르면, 금방 부드러움을 맛볼 수 있었다. 사부로는 조금씩 각도를 바꿔서 입을 맞추며, 남김없이 그것을 만끽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맛보고 만족했다고 느껴도, 또 다시 다음을 원하게 된다. 질 나쁜 약을 복용했을 때 같았다.

꾹 누르고, 천천히 문지르는 걸 끝없이 반복하고 있는 사이에 조용하던 라이조에게서 반응이 나타났다. 감긴 눈꺼풀이 흠칫흠칫 움직인 것이다. 일어날 것 같다, . 사부로는 준비했다. 쭉 뻗은 손발이 난동을 부려도 억누를 수 있게끔.

번쩍 눈이 뜨인 직후, 시선은 아직 마주치지 않았다. 아직 잠기운이 남았는지, 좌우로 흔들리다가 겨우 눈이 마주쳤다. 라이조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발버둥 칠거라고 생각한 몸은 희미하게 바르작댈 뿐이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라이조는, 의외로 냉정하다. 맨 정면에서 엿보며 사부로는 당황했다. 한참 주저하고 나서, 각오하고 라이조를 뒤돌아보았다. 그리고 잔잔한 바다의 평온함을 담은 눈을 바라보며 사부로는 결심했다.

이제 와서 변명은 못 한다. 이유를 물어도, 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했다는 것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런 변명이라면 안 하는 게 더 낫다. 그렇다고 해서 사과해서 넘길 수도 없다. 사부로는 나쁜 짓을 했다고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라이조가, 진심으로 이걸 싫어한다면, 그때는 깨끗이 접고 풀어줄 것이다.

그리 다짐하니 드디어 입을 땔 여유가 생겼다. 라이조는 가슴을 억누르고 있었지만, 그렇게 고통스러워지기 전에 그만둔 듯했다. 라이조는 이번에도 물었다.


?

「……말 못 하겠어, 미안해


이 사죄는 라이조가 요구하는 대답을 못 하는 것에 대한 것. 사부로는 마음속으로 토를 달았다. 그리고 이번엔 이쪽에서 물었다.


「……싫었어?


라이조는 이도저도 아닌 듯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때처럼 쓴 웃음을 띠며 말했다.


깜짝 놀라니까, 다음엔 한다고 말한 다음에 해줘


사부로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아아, 또 용서받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바보 같이 방심하고 있는 본체를 두고, 사부로의 감정적인 부분이 격분했다. 이런 걸 용서해도 되는 거냐, 넌 정말 그걸로 좋은 거냐, 하고. 하지만 타산적인 부분이 충고했다. 그래도 라이조는 하기 전에 예고하라고 했어. ……그건, 예고만 하면 해도 된다는 거잖아?

천칭으로 잴 것도 없이 타산적인 부분이 이겼다. 라이조에게 다가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싶은 마음에, 사부로는 뚜껑을 덮었다. 다시 가슴 속에서 떨떠름한 기분이 차오르는 낌새가 났지만, 못 본 척했다. 그렇게, 또 해도 된다는 치사한 희망에 매달린 것이다. 싫어하지 않는다는 건, 설마. 라이조도, 당하는 걸 밉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자기 전에 슬쩍 떠올린 망상은, 무척이나 달콤한 맛이 났다.

그날 밤, 사부로는 꿈을 꿨다. 낮에 있었던 꿈이다. 한창 입을 맞추고 있을 때. 라이조는 잠에서 깬 듯 눈꺼풀이 열려 있다. 새까만 눈동자에는 사부로 자신의 얼굴이 비춰져 있다. 라이조의 얼굴을 흉내 낸 그것은, 갑자기 지껄이기 시작했다.


이 얼마나 미래가 안이한 일이야. 조금은 머리를 굴려보지 그래


무슨 얘기야, 사부로는 의심했다. 왜 이런 게 말하고 있는 거지, 이상하게 여길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정말 라이조가, 이걸 바란다고 생각해?

, 그래도, 라이조는 예고만 하면 된다고

하기 전에 예고하라고 한 것뿐이다, 용서받은 정도로 기어오르지 마


내팽개치는 기분으로 사부로는 목을 울렸다.


생각해 봐, 자기랑 똑같은 얼굴을 한 남자와 키스할 때의 기분을


제멋대로 그렇게 말하고, 라이조 눈동자 속의 사부로는 침묵했다.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도 들은 것에 대해 생각했다. 사부로는 라이조가 아니니까 라이조의 본심을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 기분을 상상할 수는 없다.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남자에게 키스 당해서. ……좋은 기분이, 들 리가 없었다.

잠에서 깬 사부로는 최악의 상태였다. 온몸이 학질을 앓던 때처럼 벌벌 떨리고, 오열과 흐느낌이 그치지 않았다. 잠이 덜 깬 눈이었던 라이조가 안색이 변해서 무슨 일이냐며 달려왔다.


왜 그래? 몸이 안 좋아? 아니면 나쁜 꿈이라도 꾼 거야?

 

사부로는 신음하면서 고개를 옆으로 저은 뒤 다시 끄덕였다. 확실히 무서운 꿈이었다. 사부로는 정신적으로 호되게 당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냥 꿈이었다고 넘겨도, 정말 괜찮은 걸까.

우물쭈물하는 사이 라이조의 팔이 뻗어왔다. 어느 샌가, 꼭 작은 아이에게 대하는 것처럼 라이조에게 안겨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사부로는 이미 일어났으니까, 무서운 꿈은 밤 저편으로 도망갔어

 

따뜻한 손바닥이 등을 어루만졌다. 상처입어 갈라진 마음이 점점 진정되어온다. 온기에 매달리면서도, 가슴 밑바닥에서는 탐욕스러운 부분이 이걸 좀 더 갖고 싶다고 어울리지 않는 주장을 하고 있다. 눈물이 겨우 들어간 건 조금 시간이 흐른 뒤였다.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 버렸네

신경 쓰지 마, 누구든지 이럴 때가 있으니까

저기, 꿈이 밤 저편으로 도망갔다고 했잖아

그 이유라면, 다음날 밤에도 무서운 꿈을 꿀 것 같은데

아아, 단어 선택을 잘못해버렸네

 

말꼬리를 잡아도 라이조는 상냥했다. 낯 간지러운 기분으로 사부로는 시선을 피한다. 안겨져 있던 고개를 들었기 때문에 거리는 매우 가깝다. 사부로 쪽이 안절부절 못하고 만다. 라이조는 언제부터 이 거리를 싫어하지 않게 된 걸까. 스스로 다가온 몫은 신경 쓰지 않는 건가, 그게 아니면.

슬쩍 라이조 쪽을 엿봤다. 흐뭇한 것이라도 보고 있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하고 있었다. 하고 싶다고, 하자고, 말할까. 하지만 이렇게, 금방이라도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는걸. 들뜬 마음이 시선을 맞춘 그때, 라이조의 큰 눈에 사부로의 얼굴이 비춰졌다.

힘껏 맞은 감각이 나 사부로는 튕겨진 것처럼 몸을 내뺐다. 이제 괜찮냐는 라이조의 물음에 황급히 수긍한다. 다행이네, 한 번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 라이조가 일어서버렸다. 코 안쪽이 아프다. 다시 한 번 울지 않고 넘어간 건 사부로 나름의 최후의 긍지다. 무서운 꿈은 달아나지 않았다. 사부로 마음 한가운데에, 떡하니 자리 잡고 말았다.

그 뒤, 사부로는 두 번 다시 밝은 곳에서 손을 대지 않았다. 밤이 돼도 안 된다. 볼 수 있는 것은 보인다. 어둠에 적응한 닌자의 눈을, 사부로는 태어나서 처음 원망했다. 본심을 살짝 드러낼 수 있는 건, 달도 별도 없는 밤. 문도 창문도 꽉 닫은 칠흑의 안뿐이다. 하고 싶다면 라이조가 거부하는 일은 없었다. 포옹도, 입맞춤도.

산등성이에서 뭉게뭉게 구름이 피어오르는 그런 날이었다. 저거, 조금 라이조 머리 느낌이랑 닮았네. 그런 태평한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얼마 안 될 뿐. 하늘이 갑자기 흐려지고, 이어서 대야를 몇 번이나 뒤집은 듯한 소나기가 쏟아졌다. 주위가 완전히 어두워질 무렵에는, 이 계절에는 드물게 습기를 많이 머금은 공기가 쌀쌀할 정도였다.

잘 자라는 말을 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이불 안에서 사부로는 생각했다. 옆으로 빗방울이 들어오지 않도록 오늘 밤은 덧문을 싹 다 닫았다. 덕분에 오늘은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깜깜한 어둠이다. ……둘도 없을 만큼.

옆 이불에서 라이조가 뒤척이는 소리가 났다. 이윽고 참을 수 없어진 사부로는 목소리를 냈다.

 

라이조

「……?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금방 대답이 돌아왔다. 역시 깨 있는 것 같다. 만감의 마음을 담아 사부로는 조르는 말을 입에 담았다.

 

만져도 돼?

, 이리 와

 

라이조가 일어나는 기척이 났다. 조용한 목소리에 이끌려 사부로는 이불을 빠져나왔다. 간질간질하는 몸을 이끌고 어둠 속을 손으로 더듬어나갔다. 늘 이 시간만큼은, 마음이 불안해서 뭉개질 것 같다. 이대로 영원히 라이조의 곁에 닿지 못하는 건 아닌가, 그런 마음에 뒤쫓겨서.

그때 마침, 헤매던 손가락이 무언가를 찾아냈다. 라이조다. 라이조의 손이다. 다행이다, 기뻐.

손끝에서 차례대로 손까지 다다른다. 단단한 뼈와 그 주변에 예쁘게 붙은 근육의 감촉을, 잠옷 위에서 만끽했다. 두 팔에 올라갔을 때는 이미 라이조가 어떤 자세로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사부로는 단숨에 움직였다. 이젠 팔 안에 안아버렸다. 라이조의 체온은 아이처럼 뜨거웠다. 그 따뜻한 어깻죽지에 사부로는 바짝 다가갔다. 어리광부리듯 얼굴을 파묻고 심호흡을 한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오랜만에 제대로 숨을 쉬는 기분이다. 시원해서 그런지 땀 같은 느낌은 전혀 나지 않는다. 목욕 후의 흔적, 라이조 스스로의 피부 결만이 희미하게 향한다. 부둥켜안은 몸 사이에선 라이조의 손이 갈 곳을 찾는 것처럼 더듬거렸다. 실컷 헤맨 끝에, 결국은 사부로의 허리둘레에서 구겨진 잠옷을 잡기로 한 것 같다. 그런 조심스러움에 입꼬리를 풀어졌다. 등에 둘러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분에 넘치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해도 돼?

 

자신과 라이조, 두 몸이 서로 진정되는 걸 기다리고, 사부로는 다시 한 번 말했다. 승낙의 대답과 함께 라이조가 얼굴을 드는 기색이 났다. 허리에 얽힌 손끝에 기분 탓인지 힘이 들어갔다. 달라붙어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작은 움직임마저 전해져 오는 것이다. 사부로는 손끝을 뻗었다. 부서진 것을 다루는 듯한 그것은, 쉽게 라이조의 얼굴을 찾아냈다. 아마도 입 주변. 살며시 미끄러져 손바닥으로 볼을 감쌌다. 빨라지는 마음을 억제하면서 천천히 입 맞췄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데 언제까지고 익숙해지지 않는 부드러움이, 금방 사부로의 것이 됐다.

모아진 뺨에 무언가가 닿는다. 분명 라이조의 속눈썹이다. 긴장한 것처럼 굳어진 감촉을 하고 있던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누그러졌다. 입을 밀어붙이듯이 하면, 살짝 깜빡이는 작은 눈꺼풀까지 느껴진다. 지금 사부로가 열중하는 것은 부드러운 입술만이 아니었다. 팔 안의 온기라든가, 입 맞춘 각도를 바꿀 때마다 몇 번이고 민감한 반응을 보여주는 손끝이라든가. 무심코 천천히 집어삼키기를 반복하는 사이 힘이 빠져서, 마지막에는 축 늘어지는 몸이라든가. 그런 전부를 사랑스럽게 느끼게 됐다.

떨어지자마자 하, 하고 라이조의 입에서 공기가 새어나왔다. 완전히 숨이 찬 모양이었다.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다른 쪽을 보려고 해, 사부로는 달래는 심정으로 말을 걸었다.

 

힘들었어?

「……, 괜찮아

도중에 숨 쉬어도 돼

잘 안 돼

 

왠지 삐진 목소리다. 평화로운 마음으로 사부로는 생각했다. 그럴 생각도 없는데. 어떻게든 입에 의식을 집중해버리니까 코로 숨 쉬기 힘들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 라이조는 팔을 내빼서 도망쳐버렸다. 아직 바로 옆에 있는데도, 사부로는 뭐라 할 수 없는 섭섭함에 놀랐다. 확실히 입맞춤은 끝났지만. 조금 더 팔 안에서 라이조를 느끼고 싶었다.

 ……달리 뭔가 당할 거라고 생각한 걸까. 뭔가 더 심한 짓을. ……완고할 만큼 숨 쉬려고 하지 않는 것도, 어쩌면 입을 열고 싶지 않으니까?

그냥 상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부로의 양심을 강하게 때려눕혔다. 짐작 가는 곳이 너무 많아서 입가로도 부정할 수 없었다. 오늘은 암흑이 고마웠다. 이 상태에서 라이조에게 위로받는다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참을 수 없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사부로는 고마워와 잘 자를 말했다. 미안 이제 안 할게, 는 아직 말할 수 없다.

 

「……

 

라이조에게 돌아온 건 그 한마디뿐이었다. 졸린 거겠지. 벽을 때리는 빗소리가 갑자기 세진 낌새가 났다. 가슴 안에 후회를 안으며, 사부로는 또다시 손을 더듬어 제 이불로 돌아갔다. 왠지 라이조의 얼굴을 보고 싶다, 라는 아연한 욕구가, 채워지지 않은 채 마음에 응어리져있다.

일부러 암흑을 기다리고, 사부로의 마음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 라이조의 얼굴을 본뜬 그걸로 강요하는 걸 본인에게 보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라이조의 눈에 비친 제 얼굴을 봤기 때문일까. 지금은 사부로 스스로도 판단할 수 없었다.

남의 얼굴을 쓰면 되지 않냐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바로 떨쳐냈다. 남의 얼굴로 라이조에게 그런 짓을 한다니, 죽어도 싫다. 빨리 다 포기하고 다른 사람 얼굴로 생활하는 건 어떨까. 거의 라이조가 싫어하는 기색을 낸다면 그렇게 할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것도 타협할 수 있는 방안은 아니었다. 가장 가까운 친구의 자리를 누구에게도 양보하고 싶지 않다고, 어리숙한 마음을 달랜다.

이제 가슴 속을 전부 토로해버리는 게 속편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없는 지혜를 짜내서 뱉어낸 말도, 라이조에게 하기엔 너무나 진부하다. 무엇보다 라이조의 그 둥근 눈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사부로는 꼭 말을 잃은 것처럼 입술을 떨 수밖에 없었다.

그럼 암흑 속이라면 어떠냐, 얕은 욕망이 몸 전부를 지배해버리는 것이다. 만지고 싶어, 끌어안고 싶어, 여기도 저기도 전부. 그런 생각뿐이다. 솔직히 말하면 광폭한 충동에 밀어붙여 그렇게 할 뻔한 적도 있고, 그런 종류의 꿈을 꾸다가 땀범벅으로 일어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자신이 이렇게 약한 인간이었다니. 사부로는 자기혐오로 입술을 깨문다. 용서받는 게 이렇게 괴로운 일이었다니,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오랫동안 답이 나오지 않는 제자리걸음을 하는 기분이었다.

적어도, 하고 바랐다. 내일 아침은 하늘이 활짝 개지 않을까. 푸른 하늘 아래 꽃피는 라이조의 미소를 볼 수 있다면, 비뚤어진 욕망도 사라져갈 테니까. 팔다리를 안은 둥근 자세로, 빗소리를 들으며 사부로는 눈을 감았다. 후와 라이조는 한 번, 비뚤어진 적이 있다. 사춘기라는 나이로 보면 겨우 한 번뿐이라는 게 적은 건 아닐까. 하지만 곁눈질로는 알 수 없는, 안에 가득 찬 삐딱한 태도는 무척이나 라이조답다고 할 수 있었다.

계기는 아주 사소한 일이었다. 동급생 하치야 사부로가 라이조의 얼굴을 즐겨 쓰게 된 것이다. 사부로가 맨얼굴을 숨기고 다른 사람의 얼굴을 빌리며 생활하는 건 전부터 있는 일이었다. 일반인이라면 깜짝 놀랄 일이지만 라이조가 있는 5학년 로반에서는 사소한 일이다.

주로 주위에 장난을 치기 위해서, 사부로는 하루 종일 달라붙었다. 나란히 선 똑같은 얼굴에 놀라는 하급생에게는 낯간지러움을 느꼈다. 동급생은 이번엔 라이조냐하는 눈빛을 했다. 사부로의 알기 힘든 변장을 설명하거나, 하급생의 순진한 반응을 평가하거나, 둘이서 과제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사이 라이조는 똑같은 얼굴이 옆에 있는 것에 익숙해지고 말았다. 쉽게 적응하기에 더욱 그랬다.

라이조의 솔직한 감상은 깜짝 놀랐지만, 그렇게 싫지도 않다였다. 애초에 멋대로 얼굴을 써서 곤혹스러워하는 라이조를 앞에 두고, 사부로는 상쾌한 얼굴로 뻔뻔하게 일관할 수 있는 남자다. 하지만 그것만 눈감아주면, 의외로 같이 있으면 재밌는 친구이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장난을 좋아하고 밝다. 신경질적인 면도 있지만, 마음씨는 나쁘지 않다. 라이조가 망설이는 버릇을 보여도 재촉하지 않는 인내심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때때로 남의 모습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마 사부로는, 얼굴을 빌리고 있는 대상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항상 살피는 거겠지. 라이조는 그렇게 생각했다. 만약 상대가 진심으로 싫어한다면 그 전에 떨어질 것이다. 사부로는 계속, 이렇게 살아왔겠지, 분명 앞으로도, 하고.

라이조에게는 싫어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온화한 모습으로 강한 거절의 말을 쓰는 게 서투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사부로의 곁에 있는 나날이 편하고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걸 사부로도 느꼈는지, 아니면 단순히 라이조의 얼굴을 흉내 내는 게 마음에 든 건지. 사부로는 라이조의 얼굴을 항상 쓰게 되었다. 동실이 된 것도 크다. 함께 보내는 시간은 현저히 늘어났다. 괴짜이지만 좋은 친구에 행복해하며 라이조는 만족하고 있었다. 그럴 터였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앙금 같은 것.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쌓이는 그것을 뭐라 부르면 좋을지, 라이조는 모른다. 하지만 만족하고 있을 터인 생활 속에서 문득 생각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얼굴을 쏙 빼닮았는데, 내가 있을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하고.

늘 장난만 치는 사부로가, 실은 꽤나 우수하다, 라는 것도 원인이긴 하다. 하지만 어차피 이유 중 하나에 지나치지 않는다. 만약 열등감이 이유라 치고 이제 와서 사부로가 라이조로 변장하는 걸 말린다 해도, 라이조의 고민은 해결의 실마리하나 잡지 못했을 것이다. 가장 큰 요인은 라이조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간단히 말하면, 스스로의 존재의의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것이다. 그걸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성격이라면, 애초에 망설이는 버릇 따위도 갖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런 나이이기도 했다. 결국 방황하는 것에 익숙해져있던 라이조는, 그것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이어간 것이다. 정말 능숙하다고도 서투르다고도 할 수 없는 뒤틀림이었다.

계기는 라이조가 생각지도 못한 형태로 찾아왔다. 어느 날 갑자기, 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사부로에게 입술을 빼앗긴 것이다.

청천벽력이었다. 깜짝 놀라고 혼란스러워 언제 어디서 왜 그렇게 된 건지, 라이조는 아직도 기억나지 않는다. 눈앞에 있었을 사부로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조차. 그저 도망치려던 손목을 붙잡힌 것만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어째서

 

겨우 입이 해방된 라이조가 말한 건, 반사적으로 나온 한 마디였다. 한심하게도 성대하게 숨이 차 있었다. 하지만 라이조가 숨을 고르고, 생각할 여유가 생겨도 사부로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라이조는 진정되지 않은 마음으로 생각했다. 사부로는 악의를 담은 장난은 하지 않는다. ……그럴 터다. 이게 장난이라 한다면 전혀 사부로답지 않았다. 한다고 마음 먹으면 전력으로 임하고, 마지막에는 속임수를 공개해 제대로 웃음을 터뜨리는, 일을 매일같이 해대는 남자다.

그래도, 그럼, 장난도 농담도 아니라고 한다면. 거기까지 생각하고 라이조의 몸은 다시 열을 가졌다. 그야 연애 사정을 잘 모르는 라이조도 알고 있다. 이런 건 보통 연인끼리 하는 것이다. 연인이 아니라도, , 좋아하는 사람에게, 라든가. ……그래도 그럴 리는 없겠지. 라이조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야 사부로는, 그런 기색 한 번 보인 적이 없다. 대단한 자만이었다.

그럼, 어째서일까. 이런 나쁜 장난을 해놓고, 사과도 안 하면서 사실은 나쁜 짓 했단 걸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짓는 건. 입이 희미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 뭔가 말해야 한다는 의식은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 마디 변명도 하지 않고 눈물까지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눈물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라이조 쪽이 먼저 뿌리를 들었다. 그러니까, 괜찮다고 해버린 것이다. 말할 수 있게 되면 이유를 알려달라고 한 건, 사과를 바랐기 때문이 아니다. 순수하게 왜 그랬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약 다음이 있다면. 다음엔 제대로, 사부로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고 싶다. 사부로의 마음을 알고 싶었다.

사부로 쪽을 신경 쓰지 않게끔 일상을 보내고 있는 사이,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왔다. 이런 단어 선택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라이조도 자고 있을 때 들이닥칠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깨어났을 때는 내심 동요했던 것이다.

라이조가 바로 정신 차릴 수 있었던 건, 보고 싶었던 사부로의 얼굴이 무척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애달픈 눈을 하고 있는 거야. 나와 입 맞추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것처럼 필사적인 얼굴을 하고 있는 거야. 그런 마음에 심장을 사로잡혀, 억지로 당했는데도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두근두근 하고 심장이 뛰어올랐다. 사부로가 풀어줬을 때, 심장은 시끄러울 만큼 요동치고 있었다.

창피한 심정으로 가슴을 억누르면서, 라이조는 다시 이유를 물었다. 바로 옆에서 얼굴을 훔쳐보고 있으면 왠지 납득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상상과 짐작만으로 알게 되는 건 싫었다. 사부로 자신의 말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태연하게 말 못 하겠어라고 했을 때는 무척 낙담했다. 이어서 사부로는 싫었냐고 물었다. 라이조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 시선을 느꼈다. 이건 또 하고 싶다는 말일까. 기분은 심히 안 좋았지만 라이조도 대답하지 않으면 불공평하다. 말할 수 없다고는 해도, 사부로는 제대로 대답해준 거니까.

싫냐 싫지 않느냐고 한다면, 라이조의 마음은 후자였다. 사부로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알고 싶다. 그런 서글픈 표정을 짓는지 알고 싶다. 다시 가까이서 저 얼굴을 보고 싶다. 입을 맞출 때, 전부 빼앗기는 듯한 감각도 싫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걸 계속한다면 언젠가 사부로가 이유를 말해줄 가능성도 없진 않으니까.

문제는 뭐라 대답해야 좋을까 다. 싫지 않아는 너무 무정하다. 그럼 하고 싶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건 유혹하는 말이잖아!

머리를 감싸고 싶은 기분으로, 라이조는 가장 완곡한 말을 골라 입에 꺼냈다. 그래도 유혹 문구다. 창피해서 사부로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사부로가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몸을 움츠린 것을, 라이조는 보지 못했다. 라이조는 사부로를 비교적 뻔뻔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사부로의 내면은, 잘 사귀어보면 의외로 섬세하고 느끼기 쉬웠다. 어느 아침만 해도 무서운 꿈을 꾼 듯 통곡했을 정도다. 나는 좀 더 사부로랑 친해지고 싶어. 사부로를 안고 진정시키면서, 라이조는 실감했다. 사부로가 해주는 것보다 더 친해지고 싶고 상냥하게 대하고 싶다. 무서운 꿈을 꾸고 낙담해있다면 기운을 불어넣어주고 싶다. 그래서 이렇게 사부로의 마음을 알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점차 라이조는 다음을 기다리게 됐다. 라이조에게 그것은 이미, 사부로와 친해지는 한 가지 방법이기도 하고, 사부로의 마음을 알기 위한 실마리이기도 했다. 연인끼리 하는 거라는 인식은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져 있었다. 그런 라이조를 비웃는 듯이, 사부로에게서 좀처럼 할게라는 말은 들을 수 없었다.

손꼽아 기다린 세 번째는 철 지난 태풍이 부는 밤이었다. 라이조에게 있어서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불을 끈 뒤였고, 덧문을 닫아 두었기 때문에 방 안은 무척 어둡다. 그래도 사부로가 하기 전에 말을 걸어준 덕분에 깜짝 놀라지 않았다. 그리고 사부로가 손을 더듬어 다가오는 걸 보고, 라이조는 깨달은 것이다.

사부로는 이 어둠을 꿰뚫어보지 못하는 듯하다. 항상 누구보다 먼 곳을 내다보고, 아무리 빠른 것도 확실히 볼 수 있는데도.

얼마나 얼굴을 흉내 내도 사부로는 라이조와 다른 인간이고, 뒤떨어지는 부분이 있으면 뛰어난 부분도 있다. 그거면 된다고, 자신도 존재해도 되는 거라고, 라이조는 겨우 납득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사부로에게 도움을 받아 고마움과 동시에 복잡한 마음을 안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라이조가 성심성의껏 노력을 다한다면, 분명 어림잡아 같은 양만큼, 사부로를 구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연극 소품도 그림자도 아닌, 다른 인간이라는 것이다.

몸에 익지 않은 폐를 끼칠지도 모른다, 사부로는 장난을 좋아하니까. 하지만 그래도 좋다. 그런 것쯤, 사부로의 옆에서 지내는 날들의 즐거움과는 비교도 안 되니까. 얄궂게도 고민의 계기인 사부로에게 감정을 휘둘리는 걸로, 겨우 라이조의 세상이 뒤틀린 것 같은 기간이 끝을 고한 것이었다. 이 사실을, 라이조는 제 마음속에 소중히 지니기로 했다. 이건 나만의 비밀.

상쾌한 기분으로 사부로를 맞이한 라이조는, 그렇게 드디어 남에게 안기는 편안함을 알게 됐다. 입 맞추는 쾌감을 알았다. 그 뒤로는 깊이 빠져드는 것처럼, 그것에 탐닉해갔다. 이 계절에는 드문, 쌀쌀한 밤이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탓이다. 평소였으면 쌀쌀한 정도의 온도였지만 라이조의 몸은 살짝 달아올라 열이 나는 것만 같았다. 저녁에 지독한 소나기가 내린 뒤부터 계속 이렇다. 밤 내내 비가 왔으면 좋겠다. 그런 이기적인 욕구를 가슴에 품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지금은 불을 끄고 이불에 들어갔다. 암흑 속에서, 뜨거운 숨이 새어나오지 않게 살며시 죽이고 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라이조는 사부로가 키스할 때 이런 밤을 즐겨 고르는 걸 습관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귀는 쫑긋 귀울이고 있다. 때문에 사부로가 말을 걸고, 드디어 왔다, 고 생각한 것이다.

라이조는 들뜬 목소리를 내지 않도록 신경 써서 대답했다. 사부로가 이 녀석이 기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좀 부끄러우니까. 희미하게 옷 스치는 소리를 내며 사부로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한 뼘밖에 안 되는 거리를 기어왔다. 라이조는 눈을 둥글게 뜨고 사부로를 바라봤다. 항상 그렇지만, 조금 표정이 딱딱하다. 긴장하고 있는 걸까. 어두운걸.

신중한 손끝이 라이조의 이불 가장자리에 닿았다. 왠지 주저하고 있다. 라이조는 초조해서 스스로 손을 뻗었다. 나는 여기 있어. 그렇게 말하고 싶은 마음을 숨기고, 손끝을 서로 닿게 했다. 눈살을 찌푸리고 있던 사부로의 표정이 활짝 밝아졌다. 꼭 부모를 찾은 미아 같다. 그걸 보고 있자니 라이조는 늘 가슴 안쪽에 불이 켜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손끝은 이제 망설이지 않았다. 짧게 정리한 손톱을 어루만지고, 손목에 다다라 팔꿈치를 잡는다. 아차 했을 때에는 이미 끌려가있었다. 꼭 안겨있으면, 그곳은 이미 사부로의 팔 안이었다.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사부로가 심호흡하는 기척이 났다. 이렇게 붙어 있으면 쓸데없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킬지도 모른다. 이렇게 추운데, 몸은 평소보다 따뜻한 것도. 창피함 때문에 몸을 뒤척였지만 사실은 온몸이 간질간질 거릴 만큼 기대 쪽이 강하다. 라이조는 사부로와 똑같은 자세가 되어 그 때를 기다렸다.

 

「……해도 돼?

 

이윽고 고개를 든 사부로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라이조는 대답하려는 중에 목이 바짝 마른 것을 깨달았다. 저도 모르게 예민해진 모양이다. 급하게 침을 삼키고 이번에야말로 대답을 했다. 차가운 손가락이 입가를 어루만진다. 이어서 손바닥이 볼을 감쌌다. 고동이 너무 시끄러워서 가슴이 아프다. 서서히 다가오는 얼굴에 시선도 맞추지 못하면서 숙이는 것도 싫어, 라이조는 고개를 든 채 눈을 꽉 감았다.

새가 나뭇가지에 앉는 듯 가벼운 모양새로 사부로의 입술이 닿았다. 그 순간 라이조의 머릿속은 단숨에 한 가지 색으로 칠해지고 만다. 부드러워. 기분 좋아. 부드러워. 그것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부드러운 입술은 남의 피부와는 분명하게 다르다.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민감하고 섬세했다. 잠깐 달라붙어, 한 숨 떨어지고, 다음에는 각도를 바꿔서 밀어붙인다. 그것만으로 등골이 오싹오싹할 만큼 부들부들 떨렸다. 이 사소한 움직임조차 사부로에게 전해지고 있겠지. 그런 확신이 라이조를 더욱 취하게 했다. 입을 맞추고, 밀어붙이고, 잠깐 떨어져서, 다시 집어삼키고. 반복하는 사이 나른하게 몸에서 힘이 빠져버린다. 의식을 붙잡고 있지 않으면 기분이 너무 좋아서 어떻게 될 것만 같았다.

 ……사부로. 사부로는 어떨까. 나처럼 기분 좋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지금도 다시, 그 서글픈 표정을 짓고 있을까. 쾌감으로 계속 눈꺼풀을 감고 있었지만, 알고 싶어서 힘들게 눈을 떴다. 자칫하면 새하얘질 것 같은 시야를 몇 번 눈을 깜빡여서 확보했다. 마지막에 겨우 보인 사부로는, 무척 괴로워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 하고 커다란 한숨이 나와 라이조는 숨 쉬는 걸 까먹을 만큼 열중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수영할 때는 더 오랫동안 잠수할 수 있는데, 어째서 매번 이렇게 되는 걸까. 사부로가 나를 신경 써줄 때면 더더욱 참을 수 없었다. 입은 떨어졌는데도 심장은 아직까지 날뛰고 있다. 그걸 깨닫고 싶지 않아서, 라이조는 팔을 내빼서 몸을 떼어냈다. 손으로 짚은 사부로의 가슴팍은 겉보기보다 단련되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 여기 있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어지러울 만큼 얼굴에 피가 솟았다. 오랫동안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문득, 뚝 뚝 하고 어렴풋이 소리가 났다. 라이조는 소리의 근원을 찾고 숨을 삼켰다.

사부로, 울고 있어.

? 어째서?

미지근한 쾌감에 잠겨있던 머릿속이 단숨에 엉망진창이 됐다. 왜 눈물을 흘리는 거야? 슬퍼서? 왜 키스할 때 본 것처럼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거야?

묻고 싶은 건 산처럼 많은데, 입을 열어도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생각지도 못한 사태에 라이조가 허둥지둥하는 사이 사부로는 고마워와 잘 자라는 말을 하고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사부로. 울고 있는 너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는 걸까. 그게 너무나 안타까워서. 라이조는 어떻게 대답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사부로가 반대편 이불로 돌아간 걸 지켜보고, 라이조도 힘없이 이불에 쓰러졌다. 눈시울이 뜨겁다. 가차 없이 내리는 빗소리가 무력함으로 흘린 오열을 지워주었다.

눈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라이조는 적어도, 하고 생각했다. 내일도 소나기가 왔으면 좋겠다. 그럼 만에 하나, 또 사부로가 하고 싶다고 해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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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pixiv.net/member_illust.php?mode=medium&illust_id=52368643



빨리해가지고 식자가 많이 엉망인데 글두했으니까 올립니다\.......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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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24

보호글 비번 1565

2018. 10. 26. 01:01

1565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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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이치마츠를 유괴해버린 나르시스트 카라마츠와, 유괴되어도 꽤 여유로운 이치마츠가 카라마츠를 평범하게 대하는 이야기. 제목대로 푹신푹신한 유괴 외금 생활 하고 있습니다. 카라마츠만 형제가 아니라는 설정. 그리고 모 기생충의 집이 도쿄가 아닌 곳에 있습니다. 죄송.


유괴감금의 야한 이야기도 좋아하지만, 너 진짜 감금된 거 맞아? 엄청 여유롭네? 같은 이야기도 좋아해서 후자를 목표로 썼습니다. 살벌하지만 달달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항상 살벌이 어디론가 날아갑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달달하고 꽤 현실적인 느낌으로 쓴 것 같습니다. 갑자기 쓰고 싶어져서 빠르게 쓰고 빠르게 올려서, 말도 안 되는 오타나 모순이 있다면 죄송합니다…


카라이치가 너무 좋아서 마츠2기 기다리고 있습니다.


*




「오늘 말이야~, 도플갱어랑 만났는데」


장남의 엉뚱한 발언은 늘 있는 일이다. 때문에 장남을 제외한 다른 형제는 그 엉뚱한 말에 특별히 반응하지도 않고 묵묵히 저녁을 입에 넣었다. 결국 무시다. 그러나 우리가 장남을 대하는 방법이 엉성한 건 맞지만, 무시당한 당사자에게는 늘 있는 일로는 끝나지 않을 사건인 모양이다. 설마 아무런 반응도 없을 거라 생각하지 못한 장남은 있을 수 없다며 한명 한명의 얼굴을 봤다. 지그시 바라보는 것은 다들 알고 있지만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반응하면 너무 귀찮은 일에 얽힌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장남이 형제 모두의 얼굴을 본 뒤 약 1분. 생각에 잠긴 장남이지만, 겨우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았는지 탁자를 치며 일어섰다.


「에, 혹시 나 무시당하고 있어?!」

「눈치채는 거 느려」


토도마츠의 쐐기로 무시당하고 있다는 슬픈 현실을 완전히 깨달은 것 같다. 장남은 믿을 수 없다면서 다시 형제를 봤다. 우리한테 말해도 뭘 믿을 수 없는지 모른다. 이 사람의 엉뚱한 이야기에 어울려서 좋았던 적이 없는데 누가 자진해서 목을 넣겠는가.


「거짓말 거짓말! 진짜 무시? 뭐야 너희를 위해 말해줬더니, 무시하는 건 심하지 않아~?!」

「늘 있는 일이야, 시꺼 장남」


떼쓰는 장남에게 쵸로마츠가 짜증내며 시비를 걸었다. 이건 좋지 않은 흐름이다. 쵸로마츠의 명예를 위해 말하지만 자칭 상식인을 사칭하는 그가 항상 짜증 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금의 쵸로마츠는 누가 봐도 살기를 낸다. 분명 내가 모르는 곳에서 이미 장남의 피해를 받았겠지. 그래서 관종 모드 장남이 말을 건다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음이 틀림없다. 오소마츠의 얼굴이 관종 모드에서 쵸로마츠 괴롭힘 모드로 바뀌는 것을 체념하며 바라봤다.


「에ー! 쵸로마츠 오늘 평소보다 신랄하지 않아?! 아, 혹시 레이카랑 악수 방해해서 아직도 한이 맺혔냐? 하~~고작 악수 정도로 싫다, 이러니 동정은」

「너도 동정이잖냐!」

「악수하면 레이카랑 섹스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쵸로시코스키는 악수만으로 당분간 반찬으로 떼울 수 있다는 소리?」

「레이카가 아니라 냐쨩!!…아ー, 이제 무리! 앞으로 나와 새꺄!!」


역시 귀찮아졌다. 장남의 도발에 넘어간 쵸로마츠를 보고, 나는 내심 큰 한숨을 쉬었다. 차남이 완전히 장남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버린 이상 여기서 선택지는 두 개밖에 없다. 하나는 도플갱어랑 만났느니 하는 장남의 말을 듣거나, 다른 하나는 쵸로마츠의 분노가 폭발해 형제 싸움으로 발전하기를 기다리거나. 후자는 전자보다 상당히 귀찮을 테니 나는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도플갱어가 뭐야」


신나서 쵸로마츠를 괴롭히는 장남이었지만, 내가 이야기를 도플갱어로 돌린 순간 좋은 질문이라는 듯 눈을 빛내며 나를 보았다. 쵸로마츠 괴롭히기는 그만둔 것 같지만, 이 얼굴은 끝까지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해방되지 못하는 녀석이다. 무척 귀찮지만 어쩔 수 없다. 왜냐면 쵸로마츠를 화나게 하는 건 싫고, 더 이상 떠들면 이틀째 카레를 먹는 쥬시마츠의 역린을 건드릴 것 같고, 토도마츠는 얼른 카레를 먹고 휴대폰을 시작했다. 자칭 상식인인 차남이 장남이라는 소용돌이에 뛰어들어 버린 이상 마츠노가 삼남인 마츠노 이치마츠가 어떻게 할 수밖에 없었다.


「도플갱어는 도플갱어지!」

「무슨 마츠 말하는 거야」


동정 괴롭힘으로 분이 풀렸는지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에게 질문을 거듭했다. 말투부터가 아직 화난 것 같지만, 여기서 열심히 듣는 걸 보면 쵸로마츠답다고 생각한다.


쵸로마츠가 무슨 마츠를 말하는 거냐고 묻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다섯 쌍둥이이다. 드문 다섯 쌍둥이 형제. 게다가 모두 남자에 무직이라는 슬픈 현실을 안고 있다. 오소마츠, 쵸로마츠, 나, 쥬시마츠, 토도마츠는 타인이 보면 거의 같은 얼굴이다. 그래서 쵸로마츠의 질문은 어떤 면에서 당연했다. 같은 얼굴이 다섯 개나 있는데 같은 얼굴이 더 있냐고. 도플갱어라면 매일 만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소마츠의 도플갱어와 만났다는 말은, 역시 장난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마 쵸로마츠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콩트, 도플갱어 같은 별거 없는 놀이를 형제 누군가와 하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우리의 생각을 빗나가, 오소마츠는 왠지 신이 나 가슴을 펴고 말했다.


「카라마츠」

「하?」


카라마츠.


「그게 뉘겨」


모르고 진심으로 질문했다. 그게 누구지.


「도플갱어라니까」

「에, 그거 진짜야?」

「진짜라고! 진짜 닮았다니까~굉장하지? 설마 우리가 실은 여섯 쌍둥이인가? 라고 생각했어」


동생 둘의 눈치를 봤지만 둘 다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누구도 장남의 도플갱어 발언에 관련되지 않았다. 그럼 진짜인 걸까? 아니 이 장남이니까 다 새빨간 거짓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공의 이름이 순간적으로 나올 정도로, 이 사람이 머리를 굴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즉, 정말 의외로 우리 형제를 빼닮은 마츠가 있다는 걸까. 그렇다면 세상은 좁다. 이름까지 비슷하다니 있을 수 없다.

자신 이외의 전원이 놀란 상황에 만족했는지, 오소마츠 형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만족스러운 표정은 무너졌다.


「아」


정말 부자연스럽게, 꼭 방금 엄청 중요한 게 생각났다는 듯이 "아"라는 장남의 말과 함께.


장남 이외의 마츠는 그 비현실적인 "아"에 머리를 싸맸다. 아무튼 그 "아"는 장남 특유의, 뭔가 뒤가 켕길 때 나오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대개 꺼림칙한 일도 가볍게 사과하는 장남이 말하기를 주저할 때는 드물다. 그래서 장남의 "아"가 나온 이상, 뭔가 큰일이 일어날 것이 틀림없다. 슬프다, 이십몇 년 동안 같이 지내면 그 정도는 알게 된다.


「그 카라마츠라는 녀석, 나쁜 놈은 아닌데 실은 호모래~」

「하아?!」

「구라지?!」

「체ーーーー인지!!」


너무나 가볍게 던진 충격적인 사실에 나만 목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마음은 모두와 같았다. 아니 아니 아니 그건 너무 예상 밖 아니야? 꺼림칙한 일이 그거?

같은 얼굴을 한 남자를 호모라고 표현한 업적을 이루자마자 카라마츠라는 존재가 오소마츠가 만든 가공의 존재설이 완전히 사라졌다. 장난으로 같은 얼굴을 한 호모를 낳은 의미를 모르니까, 아마 카라마츠는 존재함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알았으니 어쩌냐는 것이다. 그럼 이 이야기는 오소마츠 형의 장난이고, 사실은 카라마츠가 없다는 쪽이 낫다. 그야 남이 보면 같은 얼굴을 한 남자가 호모라고. 즉 우리 형제 모두가 호모 의혹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뭐야 그거 무서워.


「아니 호모랄까? 그, 심한 나르시스트? 같은? 그러니까 호모인 거야」

「하? 뭐란겨?」


심한 나르시스트라서 호모가 됐다? 잘 모르겠다. 그런 우리 전원의 마음을 쵸로마츠가 대변했다. 뭐라는 거야?

모두에게 주목받는 상황이 좋은지, 장남은 거드름을 피우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귀찮지만 궁금한 건 사실이므로 얌전히 귀를 기울인다.


「카라마츠는 대단해. 자길 엄청 좋아하고 발언은 안쓰럽고. 너무 안쓰러워서 그 녀석이랑 조~금만 말했는데 형아 지금 갈비뼈 개박살났다고?」

「말만 해도 갈비뼈 부러진다고?! 무섭잖아!」

「너도 얘기해보면 안다니까! 진짜 부러져! 뭐, 형아는 갈비뼈가 부러져도 열심히 카라마츠 군이랑 얘기했답니다. 대단하지?」


우리는 잠자코 이야기를 재촉했다. 그러자 장남은 아~처럼 뭔가 신음하더니 시선을 이리저리 헤맸다. 곤란하다. 이 남자의 말문이 막히다니 이만저만한 비밀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숨을 삼켰다.


「카라마츠는 나르시스트잖아?」

「아니 모르겠는데」

「그렇다는데. 그럼, 그 나르시스트는, 의미를 모르겠는데, 자기 자신이랑 사귀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지?」

「응 모르겠어」

「응…나도 모른다고…얼굴이 똑같은 나랑 만난 게 운명이니 뭐니 해서, 형아 고백받았습니다」


무슨 악몽일까. 너무 애통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한순간이지만 장남을 동정했다. 하지만 그런 동정은 어디론가 날아갔다. 왜냐면 그 얼굴은 아직 모든 참회를 마친 얼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개 남자한테 고백받을 정도면, 이 남자는 전원이 모이기 전에 형제에게 맨 처음 보고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이 녀석의 머리가 비어있다는 건 형제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런 장남이 드물게 말끝을 흐리면서 우리에게 보고하다니, 뭔가 더 말하기 어려운 일이 있다.


「대체 뭘 숨기는 거야」


나는 재촉했다. 장남은 조금 미안한 얼굴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숨기고 있는 건 아닌데~…거, 남자한테 고백받았으면 당연히 거절하잖아? 그야 난 여자애가 좋걸랑. 기회만 있으면 지금 당장 귀여운 여자애랑 한발 하고 싶고. 그래도 카라마츠는 운명이니 뭐니 하면서 날 안 놓아주더라고, 아니면 그대로 집까지 데려갈 것 같아서 무서웠어~어떻게든 도망가지 않으면 몸이 위험하다고 진심으로 생각했어. 그래서 난 그 녀석한테 제안을 했지. 이야~그때의 난 냉정하지 못했으니까~어쩔 수 없어~」


온몸의 털이 서는 것을 느꼈다. 장남이 눈을 피하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설마, 설마 이 녀석.


장남은 죄책감을 느끼기에 질린 듯 눈 돌리기를 멈추고 웃으면서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나, 다섯 쌍둥이라 같은 얼굴이 네 개나 있어. 그래서 다 지켜보고, 너랑 제일 닮은 놈이랑 사귀는 게 좋지 않겠어? 라고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생을 팔아먹은 장남은 나를 포함한 다섯 형제에게 반죽음당했다.





라는 이야기를 한 게 어제. 아마 아직 24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시간을 모르니까 추측이지만.


「일어났나? 마이 스위트 허니」


아직 하루 안 지났거든. 이런 일이 되리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나의 이름은 카라마츠. 자주 헷갈리니 설명하지만 가타카나로 카라, 한자로 마츠다. 잘 부탁하지. 나의 사랑스러운 사람이여」


친애하는 쿠소 장남님.

네 덕분에 나는 무사히 유괴됐습니다. 뒤져.



아마 고양이를 보러 가려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덮쳐졌다고 생각한다. 집을 나온 것까지는 기억이 나지만, 점찍어둔 아이들과 만난 기억은 없었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한 뒤에 어슬렁어슬렁 집을 나오는 나도 나라고 생각하지만, 장남을 줘팼더니 농담을 까먹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역시 이 이야기를 현실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눈앞에 닮은 얼굴이 있는 지금의 상황은 확실히 현실이었다.


「기분은 어떻지? 조금 전까지는 새근새근 고이 잠든 얼굴을 나에게 보여줬다만, 지금은 안색이 안 좋군. 물이라도 마시겠어?」

「아니…됐어」

「기다려다오」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녀석이 물을 가지러 가서, 나는 상황을 조금이라도 파악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봤다.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방 안은커녕 창문 밖을 바라봐도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기다렸지, 허니」

「…감사」


웃으면서 내민 물을 순순히 받자 남자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웃었다. 잘 모르겠지만 이 녀석은 정말 기뻐 보였다.


유괴범에게 받은 물을 머금으며 어제 장남이 한 이야기를 떠올린다. 도플갱어라니 농담 말라고 생각했지만, 눈앞의 남자를 실제로 보니 정말 도플갱어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같은 얼굴로만 보일 것이다. 게다가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 감탄했다. 도플갱어가 실제로 존재하는구나. 그리고 다시 감탄한 것은 우리의 얼굴이 특별히 잘생기지도 않았고 눈앞의 이 녀석이 잘생긴 것도 아닌데, 이런 초라한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는 절대로 이해 못 할 감성이었다. 허니라니 죽어도 말 못 한다. 게다가 남자한테.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지」

「응?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녀석이 왜 나르시스트가 됐는지,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우선 탈출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행히 유괴라는 비인도적인 일을 당하고 있지만 쇠사슬로 연결되거나 그런 에로  만화 같은 짓은 당하지 않았다. 남자인 내가 그런 짓을 당했다면 일어난 순간 자존심이 부서져 즉사했다.


「여긴, 당신 방…이네요」

「그래. 오늘부터 여기서 같이 살자!」


아, 이 녀석 위험해. 사람 말을 안 듣는 타입이다. 장남에게 들은 대로 마이 스위트 허니는 확실히 안쓰럽지만, 무엇보다 위험한 녀석이라는 걸 순식간에 깨달았다. 잘 생각하면 자기자신과 사귀고 싶다는 시점에서 위험하고, 사람을 납치해놓고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것도 위험하다(나이 먹은 성인 남성이 쉽게 유괴당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더 말하자면 내 의지를 모두 무시하는 것도 큰일이다. 너무 위험하다. 이 녀석을 그렇게 자극해서는 안 된다. 나는 신중하게 말을 고르면서  발언했다.


「같이…」

「아아, 그렇다! 의식주 무엇 하나 불편하지 않아. 난 의식주로 고생한 적은 없으니까. 너는 내 애인이며 분신이니, 나와 다른 일을 시킬 수는 없잖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물론 입으로 말하진 않지만.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이 표정으로 나왔는지, 날 유괴한 범인은 친절하고 정중하게 설명해 주었다.


「모르겠나 허니?」

「네…」

「그럼 설명하지. 괜찮다, 내가 아는 걸 네가 모를 리 없어. 너는 나고, 나는 너니까」

「…」

「나는 나를 사랑한다. 그리고 네 외모와 쿨한 성격을 사랑하지. 어제…아, 이름을 잊어버렸지만 됐어. 어쨌든 빨간 그의 뒤를 밟아 밤새도록 너희 집에서 모습을 살폈다만, 네가 가장 쿨하고 나이스 가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집에서 나온 네 외모를 보고 확신했지, 운명의 여신은 너와 내게 웃었다…고. 그 목소리는 냉정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재촉하는 쿨 가이잖나? 용모도 성격도 퍼펙트하다니, 나와 사귈 수 밖에 없다! 아아, 사랑한다 나!」


세게 안기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 녀석은 글렀다. 한시라도 빨리 병원을 소개해줘야 한다. 아니 이런 놈한테 얽히지 말라고 쿠소 장남. 왠지 저항할 힘도 사라졌다. 아마 뇌가 폭발했겠지.


「허나 난폭한 짓을 한 건 정말 미안하다. 믿어다오, 정말 이런 짓을 할 생각은 없었어. 그저 네 모습을 보니 흥분해버려서…뒤에서 세게 안았더니, 힘이 너무 셌는지 네가 기절해서 딱 맞으니 여기로 데려왔다」

「뭐가 딱 맞냐」


무심코 본심이 나왔다. 망했다고 생각했지만 이 유괴범은 제가 듣기에 나쁜 말은 안 듣는 멋진 귀를 가진 것 같다. 웃기만 하고 내 발언에 기분이 상한 것 같지는 않았다. 대화는 아주 조금밖에 안 했는데 이 녀석에 대한 인식을 몇분 전과는 좀 바꿔야겠다. 이 녀석은 진작에 위험함을 넘었다. 국가를 흔들 수준의 위험 인물이다. 아니, 쓰레기 니트 하나를 납치한 정도로 허풍 떤다고 생각하지만, 내 작은 세상에서는 메이데이 메이데이. 하지만 아무리 구난 신호를 보내도 도움이 오지 않는 것은 분명했다. 내가 얼마 동안 기절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제 오늘로 나의 실종 신고가 나올 리는 없고 부모님도 형제도 기본적으로 드라이하니 잘못하면 한달이나 수색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탈출하려면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밖에 없다.


「저, 여기가 어딥니까? 당신의 집 같은 게 아니라, 장소가 어딘지」


내가 도망간다고는 조금도 생각 못 할 남자에게, 일단 시험 삼아 직구로 질문했다. 가까우면 빨리 도망쳐서 집으로 돌아가자.


「여기? 규슈다만」

상상한 수십배나 대이동했다.


「도쿄는 출장으로 간 것뿐이니까. 출장도 어제로 끝이고, 널 여기로 데려왔다」


정말 성가신 일을 해주셨다. 그럼 난 얼마 동안 기절한 거야. 하늘을 우러러봤지만 보이는 건 낯선 천장뿐이라 조금 눈물이 나왔다. 원래 멘탈이 그렇게 강한 편이 아님을 이제서야 생각하고 말았다. 이 녀석이 너무 이상해서 완전히 잊고 있었다.


한 번 슬퍼지니 무용지물이었다. 아아, 도쿄의 부모님. 고양이. 덤으로 형제들이여. 나는 여기서 죽을지도 모릅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오열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하늘을 보면서 울었다. 에, 왜 이 녀석이 우는 거야. 의미를 모르겠는데. 빨개진 눈으로 유괴범을 보니 놈은 나를 보면서 울고 웃었다.


「드디어 나와 연결돼서, 기쁜 거군」


아니거든.





유괴 첫날은 내가 깨어난 게 밤이었다는 것도 있고, 함께 저녁을 먹는 걸로 끝났다. 저녁을 먹을 때도 놈은 시종 싱글벙글해서, 나 자신을 보면서 먹는 밤은 맛있구나 하고 또라이 같은 감상을 남겼다. 이 녀석에게 가장 중요한 건 똑같이 생긴 녀석이랑 먹는 거겠지. 그래서 내가 놈의 말에 맞장구를 치지 않아도 딱히 기분이 상한 기색이 없었다. 성격도 퍼펙트라고 낮에 말했지만, 내 내용물은 결국 상관 없는 게 뻔하다. 즉 내가 유괴된 이유는 어제 제일 먼저 집에 나왔기 때문이다. 이 녀석이 장남의 입발림에 넘어가지 않았으면, 내가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었으면, 애초에 장남이 이 녀석과 사랑의 도피든 뭐든 시작했으면 이런 일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장남에 대한 살의밖에 없다.


저녁은 카라아게였다. 나는 카라아게를 좋아한다고 맛있게 먹는 모습은 유괴범이 아닌 순진한 아이 같았지만 역시 유괴범이므로 공포만 느낀다. 하지만 유괴범이 내준 음식을 먹는 나도 상당히 배짱 있다. 여유롭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전혀 여유롭지 않다. 눈앞에 고양이 한 마리라도 보이면 울 정도로 불안정하다. 그럼 왜 태평하게 카라아게를 먹냐고 물으면, 내게는 아직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내일은 일하시나요」

「아까부터 생각했다만, 존댓말은 그만두지 않겠나? 난 존댓말이 서툴러서 너도 서투르잖나?」

「…내일 일해?」

「아아. 하지만 아마 7시에는 돌아올 거라 생각하니 안심해다오! 내 귀가를 기다려주는 네가 집에 있다니, 지금부터 돌아오는 게 기대된다!」


얼굴도 변하지 않고 말하는 소리는 엉망진창이지만, 뭐 상관없다. 그래, 이 녀석은 우리랑 같은 얼굴인 주제에 훌륭하게 일하는 모양이다. 집에 걸린 양복을 보면 평범한 직장인이겠지. 이건 나에게 매우 안성맞춤이었다.


「알았어」

「모처럼 이어졌는데 미안하군. 내가 없는 시간은 무척 지루하겠지만, 만나지 않는 시간이 사랑을 키운다고도 한다. 나만을 생각하며 기다려다오」


아니 안 와도 돼. 내가 나갈게. 내일은 제일 먼저 친정에 연락해서 내가 처한 상황을 전달하자고 생각하며 저녁을 다 먹었다. 드라이한 형제들이 있지만 한 명이 납치됐으니 조금은 도우려고 하겠지. 규슈는 너무 멀리 있으니까 하루는 도움이 안 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떻게든 된다. 남자가 남자한테 납치당한 안건으로 경찰에 신세를 지고 싶지는 않으니 어떻게 해줘 형제. 아니 장남은 나를 도울 의무가 있다. 

나는 형제들에 대한 믿음과 내일의 희망을 품고 잠이 들었다.




여차하면 형제가 동료가 된다.


그렇게 생각하던 시절이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장남은 노답 쓰레기였다. 다른 형제는 몰라.


다녀오세요 뽀뽀를 조르는 유괴범을 진심으로 거부했지만 결국 거부하지 못해 볼 키스로 용서하고, 깊은 절망 속으로 녀석을 쫓아낸 뒤 바로 공중전화를 찾는 여행을 떠났다. 이 시대에 공중전화는 좀처럼 없지만 1시간 정도 주변을 방황하니 찾을 수 있었다. 바지 주머니에는 기적적으로 동전이 몇 개 들어 있음을 어제 확인했으니 정든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안 받으면 어쩌나, 호출음이 울리는 동안 굉장히 두근거렸지만 친정에 연결된 순간 솔직히 조금 울었다.


「여보세요, 나 이치마츠인데」

「아? 이치마츠?」


지금 생각하면 최악이지만, 전화를 받은 건 붉은 악마였다.


「오소마츠 형? 그,」

「아침 일찍 전화 걸지 말라고~그럼 안녕―」


지금만큼 사람을 죽이고 싶었던 적이 있을까, 아니 없다.


목소리와 태도로 나타난 노답력은 아무리 생각해도 장남이다. 너무 평소 같은 녀석은 나의 희망을 몇 초로 잘라냈다. 없는 백 엔이 완전히 없어진 순간이었다. 물론 거스름돈은 나오지 않는다. 공중전화를 바닥에 내리칠 뻔했지만 아직 나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공중전화에 화풀이 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다. 지금 건 운이 나빴을 뿐. 쿠소 장남 이외라면, 제일 노답 쓰레기 이외가 전화를 받으면 내게도 아직 기회가 있다. 남은 동전 10엔 두 개와 1엔짜리. 즉 기회는 앞으로 두번. 단 두번, 그러나 두번. 

나는 아까보다 떨리는 손으로 친정 번호를 눌렀다.


「네 네 네~! 쥬시마츠임다!!」


받은 것은 한 살 아래 동생 쥬시마츠였다. 솔직히 말한다. 꺼림칙한 예감이 들었다.


「! 쥬시마츠, 나 이치마츠인데」

「아하~! 이치마츠 형임까! 응? 이치마츠 형? 이치마츠 형…오오오 이치마츠 형!!」

「응, 그래 이치마츠 형. 저기」

「잇치마츠 형! 이치마츠 형~!!」

「아니, 저, 쥬시마츠」

「이치마츠 형 전화다ーーー!!!!」

「에, 아, 쥬시,」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



지금 건 공중전화도 분위기 읽고 노카운트로 해줬으면 한다. 10엔으로 이야기를 한다니 뻔하지만, 이리 의미 없는 전화가 일본에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그 정도로 별거 아닌 전화였다. 뭐 쥬시마츠가 나온 시점에서 나의 패배는 결정되어 있다. 지금 건 내 잘못이다. 내 운이 나쁘다.


「아직, 아직 한 번 남았어」


나는 완전히 멈추지 않는 떨림을 필사적으로 누르며 전화번호를 눌렀다.


「네, 후츠마루입니다」

「누구냐고!」


나는 수화기를 본체에 던졌다. 예전부터 설치된 공중전화에 금이 간 게 보였지만 상관없다.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누른 탓에 헷갈린 모양이다. 마지막은 어떻게 봐도 내 실수였다. 후츠마루 씨의 잘못이 아니다. 한줄기 희망을 걸고 다시 주머니를 뒤져도 10엔이나 100엔도 없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완전히 답이 없다.


「망했다…」



망했다. 진짜 망했다. 이렇게 되면 최종 수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남자가 남자한테 유괴당했어요(양쪽 다 성인인 호모 안건)라니 무슨 악몽이야 라는 느낌이지만, 내게는 경찰서에 갈 길밖에 남지 않았다.


「하아…」

「잠깐, 자네」


경찰에 뛰어든 자신의 한심한 모습과, 경찰서를 찾는 수고를 생각한 나의 등에서 누가 말을 걸었다. 설마 공중전화에서 누가 말을 걸 줄은 생각지도 못한 나는 몸을 움찔하며 고양이처럼 재빠르게 뒤를 돌아봤다. 거기에 있는 것은 내가 지금 바로 생각한 존재였다.


「겨, 경찰」

「그래, 경찰」


다행이다. 찾을 시간이 절약됐다. 경찰 신세를 지기는 싫지만 눈앞에 보이니 안도로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살았다. 내 운도 아직 쓸만하다. 내 경계를 풀기 위함인지 싱글싱글 웃는 50대 정도의 아저씨, 경찰이 아니라 천사처럼 보였다. 그리고 천사 아저씨는 입을 연다. 나를 돕기 위한 말이 틀림없어, 나는 울먹이며 그 말을 기다렸다.


「아까 우연히 봤는데, 그건 자네가 한 거지?」

「예?」


그리고 천사가 가리킨 것을 보니 아무 도움도 안 된 공중전화가 있었다. 그게 왜? 머리에 물음표를 띄우면서 다시 천사의 얼굴을 보니 그 얼굴이 아까의 미소와는 다르게 바뀐 것을 보고 눈치챘다. 그 미소는 천사가 아니다.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악마의 미소이다.


「기물파손이라고 알고 있나?」

「…아!」


과연, 이해했다.


「알고 있나?」

「………죄송합니다!!」

「아, 자네! 도망가지 마!」


이 상황에서 도망가지 말라고 해서 도망가지 않는 녀석도 없을 것이다. 아니 보통 도망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튀겠습니다. 경찰 옆을 약삭빠르게 빠져나가 달렸다. 그야 거기에 머물면 확실히 경찰행이다. 몇 분 전까지 경찰서에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갈 수 없다. 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완전히 내 잘못이라 발뺌도 못 한다. 무슨 배드 타이밍일까. 아아, 그 공중전화 때문이다. 후츠마루 씨 같은 모르는 사람한테 전화를 걸어서. 아니 그 이전에 장남이 받은 게 잘못이다. 장남 진짜 뒤져라.


나는 울면서 달렸다. 기물파손. 현장 도주. 다시는 경찰서에 못 간다. 이대로 밖에 있는 것도 무섭다. 도망칠 곳은 아쉽게도 하나뿐이었다.




「꽃을 즐기는 건 무척 좋은 일이다. 난 장미를 좋아한다만, 이 화단에는 장미가 없는 게 섭섭하군. 너도 그렇지?」

「하하하…」


울면서 유괴범의 집에 돌아온 나는 자동 잠금장치라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벽에 막혔다. 그래서 아파트 앞에 심은 꽃밭의 꽃과 일체화하면서, 비참하게 경찰에 떨면서 유괴범의 귀가를 기다렸다.


「다녀왔어」

「……어서 와」


매우 본의 아니게, 마츠노 이치마츠, 한동안 이곳에서 신세 집니다.





이 녀석은 유괴했다는 자각은 추호도 없는지, 내가 밖에 나간 데에 관해서도 화내지 않았다. 화를 내기는커녕 공감해줬다. 확실히 날씨가 좋은 날에는, 다리 위에서 걸즈의 열렬한 어프로치를 기다리고 싶은 법이라는 말에는 전혀 찬성하지 못했지만, 기분을 흐리는 것은 피하고 싶어 굳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도 좋아하는 주제에 자기랑 사귀고 싶다니, 이 녀석에 관한 수수께끼는 깊어졌다.


「오늘 같은 일이 있으면 불편하겠지. 그래, 여벌 열쇠를 만들까」

「괜찮아」


확실히 밖에 나갈 때는 불편할지도 모르지만, 여벌 열쇠를 가지면 동의 상에서 함께 사는 것 같아서 싫었다. 여기에 들어온 건 분명히 내 의지지만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이므로 어쩔 수 없이 여기에 있을 뿐이다. 꼼짝없이 오늘도 건강하게 카라아게를 먹고 있을 뿐이다. 카라아게 맛있어.


「아니지!!」


아니 아니 아니, 이상하잖아. 이럴 생각이 아니었어. 유괴범이랑 같이 밥 먹는 데에 이틀 만에 익숙해진 자신의 적응력에 질렸다.


「여벌 열쇠인가…본격적으로 신혼처럼 됐군」


이 녀석은 이 녀석대로 내 말을 들을 생각을 안 한다. 필요 없다고 했잖아! 라 외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신혼이니 하는 말은 무시다 무시. 이 녀석한테 내 말이 전해지지 않는 건 조금만 같이 있어도 알 수 있으므로, 새삼스럽게 화내도 소용없다. 내 말은 완전히 무시하고, 내일은 여벌 열쇠를 만들러 가자면서 멋대로 정하고 있다. 정말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와의 대화는 괴롭다. 카라아게는 맛있지만 그건 고통이었다. 대답은 해도 안 해도 같이 있으니까 아무 말도 안 하면 되지만, 유괴범이 일방적으로 말하는 공간에 당분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미칠 것만 같다. 나는 가급적 대화라는 걸 시도했다. 대화가 아니라 목소리를 내기만 해도 조금은 유괴로 오는 스트레스의 발광을 늦출 수 있다. 지금까지 발광할 예정은 없지만.


「네가 있다고 생각하면 집에 오는 게 즐겁다. 어떻게든 일을 정시까지 모두 끝냈어」

「그래」

「아니, 실은 조금 남아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사랑 앞에서 직장은 무의미하지!」

「그러셔」

「아아 그대여, 아니 난 너무나 멋지다! 완벽한 조형미…오늘의 내게 반했다. 그렇지? 졸린 눈이 사랑스럽군 허니」

「…」



안 되겠다 미칠 것 같아!!


이대로는 안 된다. 이 녀석의 페이스에 휘말리지 마 정신이 죽는다. 유괴범의 말에 맞장구치기만 해도 안 된다. 이 녀석 내 맞장구는 전혀 안 듣는다. 나는 필사적으로 대화의 실마리를 찾았다. 이 녀석을 일방적으로 떠들게 하면 안 된다. 나를 완전히 무시할 생각은 아니니까, 내가 먼저 말을 건네면 분명 대화가 될 것이다. 힘내라 나.


「저, 저기」

「뭐지 마이 러브?」


봐 대화가 성립했다! 일보전진이라고! 스스로도 너무 작은 일보지만. 어디에 전진했는지도 모르겠고.


「그…맞아, 오늘도 카라아게네」

「응? 저녁은 매일 카라아게다만」

「진짜냐!」


대화가 성립했다고 생각했더니 충격적인 사실을 알고 말았다. 예상 밖이다.


「죽잖아!」

「? 안 죽는다만」

「빨리 죽는다는 의미야!」

「그래도 좋아하니까. 너도 그렇지?」

「아니 좋아하지만!」

「참고로 내 점심은 편의점에서 산 카라아게 도시락이다. 물론 매일」

「너 그냥 죽어!」


또 본심이 새고 말았다. 황급히 입을 막지만 유괴범은 내가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모르는 듯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이 녀석에게 나와 녀석의 관계는 내가 너고 네가 나, 인 모양이니 자기가 싫지 않은 이상 나도 싫지 않다는 게 결정사항이겠지. 이 녀석과 말하면서 바로 깨달았다. 그걸 부정해서 욱하는 것도 싫으니까 아무 말도 안 했지만, 매일 카라아게라니. 그건 마땅치 않다. 착각하지 말아 주었으면 한다. 이 녀석이 카라아게 대량 섭취가 원인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른다. 다만 아직 여길 나가려는 확신이 없는 이상, 매일 밤 카라아게는 나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냥 싫다. 엄마의 밥이 이렇게 그리운 적도 없다.


「…메모지랑 펜 있어?」

「거기 서랍에」


요리는 거의 한 적 없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나는 서랍에서 메모지와 펜을 꺼내 가정 요리 실습과 엄마의 밥을 떠올리며 떠오르는 재료를 썼다.


「퇴근하면 이거 사 와」

「왜?」

「됐으니까 사 와!」

「아, 알겠다」


방금 전까지 맛있게 느낀 카라아게도, 매일 먹을 거라 생각하니 순식간에 맛없어졌다. 그러니 할 수 없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여기서 힘낼 수밖에 없다.



다음 날은 특별히 할 일도 없어서, 빈둥빈둥 텔레비전을 보면서 하루를 보냈다. 경찰에 도움을 구하러 갈 수 없게 된 지금 밖에 나가 자동 잠금장치 앞에서 무력함을 곱씹기는 피하고 싶으니까, 집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렇게 지내다 보니 형제 다섯이서 니트 생활을 할 무렵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였다. 단 하나 다른 것은 점심때 하는 요리 프로그램을 조금 진지하게 본 것. 먹어 본 적은 있어도 만들 수 없는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조금 배웠다. 아무래도 유괴범의 텔레비전에는 녹화 기능도 딸린 모양이라 멋대로 요리 프로그램을 매일 예약해뒀다. 아마 이 정도로 화내거나 죽이진 않겠지.


「다녀왔어」


이제 어떡할까 하고 완전히 어두워진 방 안에서 생각하고 있자, 단 며칠로 익숙해진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쓸쓸하게 내버려둬서 미안하군, 자아 어서 와 허그를」

「그런 건 됐으니까 산 거 꺼내봐」

「아, 네」


꼭 유괴당한 사람같지 않은 태도를 보였지만, 유괴범은 화난 기색도 없었다. 어쩌면 뿌리는 좋은 녀석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건 아닌가? 이 녀석의 언동은 그것만으로도 범죄 수준이다. 

유괴범이 꺼낸 재료는 내가 부탁한 물건들이었다. 꿀꺽 군침을 삼킨다. 괜찮아, 나도 할 수 있어. 지금부터 만들려는 음식은 그냥 고기 채소 볶음. 썰고 볶을 뿐이다. 괜찮아 괜찮아.


「프라이팬은 어딨어?」

「그런 건 없다고?」

「…지금 당장! 사와 짜샤! 칼도!」

「오, 오우! 알았다!」


잘 생각해 보니 맨날 슈퍼에서 산 카라아게 도시락을 먹는 남자의 집에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했다.



10분 뒤 돌아온 유괴범이 사온 프라이팬은 굉장히 고급스러워, 너한테 금전 감각이 있냐고 불평할 뻔했지만 두명 동시에 배꼽시계가 울려 입을 다물기로 했다. 나와 넌 빼닮았군 하고 방긋 웃는 유괴범은 좀 이상하다.


「그럼 카라아게를 먹자」

「사왔냐!」

「저녁을 제대로 먹지 않으면 힘이 안 난다」


이렇게 준비해놓고 내가 저녁을 만든다는 일을 전혀 깨닫지 못한 이 녀석은 심각한 바보였다. 이 남자와 만나고 조금밖에 안 지났는데, 아무래도 목소리가 죽어 있다. 평소에는 그리 큰 목소리를 내지 않는 편인데 행동이 너무 이상해서 낼 수밖에 없다. 무사히 집에 돌아가게 되면, 쵸로마츠한테 항상 수고한다고 말하자.


「앉아서 기다려」

「배고프다만…」

「나도 배고파. 그래도 기다려」


딱히 기다릴 필요는 없지만, 나 혼자 힘내는 건 왠지 분하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첫 요리는 대실패였다.


채소부터 익혀야 할지, 아니면 고기부터 익혀야 할지, 도대체 얼마나 익혀야 할지 몰라서 고작 고기 채소 볶음한테 졌다. 조심스레 맛봤지만 고기는 너무 딱딱하고 채소는 까맣다. 물론 탔다. 게다가 잘 따져 보면 프라이팬도 없는 이 녀석 집에 조미료 따위가 있을 리가 없었다. 냉장고에 있는 건 냉동 카라아게와 페트병 차뿐이고 간장과 마요네즈 등은 일절 없어, 게다가 소금이나 설탕도 없었다. 그래서 맛을 속이지도 못하고 탄 냄새만 나는 고기 채소 볶음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내가 겨우 접시에 고기 채소 볶음을 거칠게 담았다. 그러자 유괴범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건……무슨 실험 결과인가?」

「먹을 거야!」


젠장, 요리로도 안 보는 건가. 확실히 매일 슈퍼에 있는 카라아게만 먹는 이 녀석에게는 낯선 음식이겠지. 여기에 올 때까지는 매일 다른 형형색색의 음식을 먹은 내가 봐도 익숙하지 않지만. 유괴범은 고개를 갸웃하고 진짜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왜 요리를 한 거지?」

「맨날 카라아게 먹으면 질리잖아」

「나는 안 질린다만…」

「난 질려」


자포자기로 고기 채소 볶음을 입에 넣는다. 좀 차가운 탓에 더 맛없다. 게다가 쌀이 없다. 방금 부엌을 뒤지고 밥솥은커녕 햇반도 없다는 걸 확인했다. 정말 못 해먹겠다. 왜 내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지. 유괴범은 거칠게 고기 채소 볶음을 먹는 나를 보고 신기한 얼굴로 나에게 카라아게 도시락을 내밀었다.


「반드시 이게 더 맛있을 거다」

「그렇겠지」

「그걸 알면서 왜 안 먹는 거지? 내가 이렇게 맛있다고 생각하니까, 너도 카라아게가 맛있을 텐데」

「……」



고집이야, 고집. 그래도 대답하기는 짜증나니까 묵묵히 실패작을 입에 넣는다. 유괴범은 이상하다는 얼굴로 나에게 내민 카라아게 도시락을 잡아 내 몫까지 먹게 됐다. 물론 녀석은 내가 만든 음식에 젓가락을 뻗지 않았다. 뭐 나도 눈앞에 실패 요리랑 맛이 보장된 도시락이 있으면 도시락을 먹을 것이다. 알고 있어. 알고는 있는데.


「……짜증나」


이렇게 비참함을 맛보는 건 사양이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 날부터 나는 녀석에게 매일 심부름을 부탁했다. 빠르게 만든 여벌 열쇠를 받았으니 밖으로 나갈 수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위축됐고 아직 경찰이 무서워서 밖에 나서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는 조미료도 잊지 말라고 부탁했다. 포기하고 카라아게 도시락을 먹을 수는 없냐고 물었지만, 당연하게도 카라아게는 전과 똑같은 맛이라 요리 실력을 높이기로 결심했다. 요리 프로라는 요리 프로는 닥치는 대로 녹화하고, 한가한 낮에는 그걸 매일 봤다. 필요하면 되감아 보면서 지식을 쌓았다.

물론 당장 요리를 잘할 수는 없으니 한동안 더럽게 맛없는 내 음식을 먹었다. 유괴범은 내 행동을 말리지 않았지만 내가 만든 음식에 손도 안 댔다. 그게 더 화가 나서 내 의욕을 높였다. 바보 취급당하면 되돌려준다더니, 그런 기력이 나한테 있는 줄은 몰랐다. 무기력 니트로 지냈을 텐데 지금 모습을 형제가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아니, 상관없지.


그리고 요리를 만들기 시작한 닷새, 유괴범이 살짝 바뀌었다. 카라아게 도시락만 먹고 내 요리는 거들떠보지 않던 녀석이 처음으로 내 요리에 손을 댄 것이다. 녀석은 뭐라고 할 수 없는 얼굴로 바로 제 도시락으로 돌아갔다. 밥상을 엎을 정도로 화가 났지만 겨우 참았다.


요리를 만들기 시작한 지 벌써 1주일 정도 지난 어느 날. 매일 한 번은 내 요리에 손을 대게 된 유괴범이 오늘도 내 음식을 입에 넣었다. 평소대로는 감상도 없이 바로 카라아게 도시락으로 돌아가는데 오늘은 달랐다.


「…맛있어」

「!」


맛있어! 맛있다고 했다 이 녀석!


「카라아게가 더 맛있지만」


위험해 때릴 뻔했다.


그래도 녀석이 맛있다고 한 건 처음이라 나는 조금 들떴다. 오늘 레시피도 고기 채소 볶음이다. 불 조절은 실수도 없고, 조미료 덕분에 본격적인 맛이 나 분명히 오늘 요리는 썩 잘됐다. 이제 고기 채소 볶음은 졸업하고 요리 프로에서 한 레시피를 시도해도 될까 생각한 참이다. 그런 때 마침내 납치범의 입에서 맛있다는 말을 끌어냈으니, 당연히 기쁘다. 어라? 왠지 목적이 이상하지 않아? 순간 제정신으로 돌아올 뻔했지만, 정신이 돌아오면 자기혐오에 빠질 것 같아서 정신 따위는 무시하자.


묵묵히 내 고기 채소 볶음(완벽)을 입에 담던 유괴범이지만, 문득 젓가락을 멈추고 저녁 중에 자주 보는 이상하다는 얼굴로 나를 봤다.


「확실히 이건 그럭저럭 맛있다. 그래도 왜 이런 걸 만드는 거지?」


너무 새삼스러운 질문에 나는 두 손 들었다.


「계속 말했잖아. 질리니까 그렇지」

「그래도 난 질리지 않아」

「계속 말하지만, 난 질려」

「…모르겠군. 너는 내가 아닌가」


또 그거냐. 이 녀석의 수수께끼 사고는 무서워서 깊이 파고들지 않고 지금까지 지냈지만, 오늘 나는 기분이 좋으므로 내 생각을 그대로 말했다.


「너랑 나는 얼굴이 닮았지만, 다른 인간이잖아」


지극히 당연한 말을 했는데 유괴범은 무척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른 인간」

「그래, 다른 인간. 그래서 취미나 음식 취향도 달라. 나도 카라아게는 좋아하지만, 맨날 먹지는 못해」

「그런, 건가」

「원래 그래」

「…그럼, 내가 널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뭐지?」

「그건…그거야. 네가 나를 너라고 생각하니까 그래. 다른 사람인데, 착각하는 거지」

「그렇군…」


내 말에 분명히 당황한 유괴범은 얼굴을 숙이고 잠시 생각했다. 이 녀석이 제정신이라고 할까 평범해진다면 고맙지만, 혹시라도 욱하면 어떡하지. 내심 떨고 있자 유괴범은 겨우 얼굴을 들고 곤란한 모습으로 나를 봤다.


「나는 내가 아니지?」

「응」

「그럼 넌 왜 여기에 있는 건가?」

「아니 네가 데려왔잖아」


갈수록 모르겠다는 얼굴이 된 유괴범은, 더 이상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갑자기 일어서서 이를 닦고 씻고 마음대로 잤다. 지금까지는 잘 자 키스니 뭐니를 졸랐는데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혹시 나한테 정나미가  떨어진 걸까. 자신과 다른 인간이라는 현실을 들이댔으니 유괴 외금(자기 결정)생활도 이제 끝일지도 모른다. 겨우 해방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 마음이 편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난 생각보다 큰 안도감을 품지 않았다. 왜일까 생각했지만 지금이 별로 곤란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 1주일만 여기서 보냈지만, 그래도 유괴 같은 비일상이 일어나서 미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가고 싶을 때 밖에 나갈 수 있고, 유괴범은 심한 나르시스트라 나에게 연인으로서의 처신을 요구하는 것만 빼면 평범하고(이것만 빼면 유괴범의 정체성이 없어질 것 같기도 하다)낮에는 평소대로 니트 생활을 하니 차이도 별로 없다. 뭐 집에 가기 싫은 건 아니니까, 일단 기뻐하자. 돌아가면 원형이 될 정도로 장남을 패기로 결정.




라고 생각한 게 어제.

그리고 오늘, 유괴범은 아주 좋은 미소로 나에게 말했다.


「오늘은 오랜만의 휴일이니, 데이트라도 하자!」


너, 나랑 네가 다른 인간이라고 안 거 아니냐? 묻고 싶었지만 싱글벙글한 웃음을 보는 한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모드라고 요 1주일간 잘 알았으니, 난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와 남자, 게다가 같은 얼굴끼리 데이트라니 웃기지도 않는다. 하지만 어디에 가도 형제로 보일 테니 그리 나쁜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만약 이 녀석과 내가 정말 연인이었다면 그런 건 위장하면 될지도 모른다. 그런 게 있을 리는 없지만.


「어디 갈 거야」

「어디 가고 싶지?」

「응?」


틀림없이 "난 여기에 가고 싶다! 너도 그렇겠지?"라고 할 줄 알았는데, 설마 내 의지를 물으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유괴범은 당황해서 시선을 헤매는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아무래도 대답을 하기 전까지 나를 계속 볼 것 같다. 한시라도 그만뒀으면 한다. 나는 인내하며 가보고 싶은 곳을 작게 중얼거렸다.


「고, 고양이 카페…」

「고양이 카페?」

「그래 뭐 잘못됐냐! 나이 먹은 남자가 고양이 카페 간다고 바보 취급하고 있지! 안다고, 어차피 나 같은 쓰레기가 그런 델 가도 수상한 사람 취급받는다고…」

「넌 쓰레기가 아니다」

「하?」

「쓰레기도 아니고 수상한 사람도 아니야. 아무래도, 넌 꽤 부정적인 모양이군」


녀석은 곤란한 듯이 웃었다. 웃는 이유를 몰라서 내가 더 난처하다.


「아, 에, 으, 응?」

「그럼 갈까」


나는 손을 빼면서 그 녀석과 함께 방을 나왔다. 만난 다음 날에 볼 키스를 요구한 탓인지, 이제 와서 손잡은 정도로는 나에게 아무런 혐오감도 없었다.




한마디로, 고양이 최고.


휴일이기도 해서 고양이 카페는 몹시 붐볐다. 나는 사람이 많은 곳에 혼자 들어가기가 어려우므로, 휴일에 고양이 카페는 온 적이 없었다. 하지만 휴일이니 고양이는 최고로 치유됐고, 무릎 위에 한 마리의 고양이가 와줬을 때는 스스로도 알 만큼 얼굴을 빛내고 말았다. 눈앞에 앉은 녀석이 살짝 웃은 게 들려 번쩍 정신이 돌아와 부끄러움으로 고양이 배에 얼굴을 묻은 것은 평생의 불찰이라고 생각한다.


고양이를 찾아 북적거리는 가게 안에 있었지만, 같은 얼굴을 한 성인 남자가 둘이서 오는 것도 드문지 누가 말을 걸기도 했다. 형제인가요? 잘 대답하지 못하는 나와 대조적으로, 남자는 상냥하게 맞다고 대답했다. 여느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 나 이외의 사람에게는 이렇게 보이는 걸까 싶어 살짝 이 녀석의 이미지가 바뀌었다. 놈은 특별히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지만, 제 근처에 다가온 고양이를 조심스레 만지고서는 만졌다고 기뻐했다.


「즐겁군. 이런 곳도」

「고양이는 치유되니까」

「확실히」


같은 타이밍에서 웃으니, 왠지 진짜 형제 같았다.





「다음엔 어디에 가고 싶지?」

「네가 가고 싶은 데로 해」

「그런가? 그럼…」


여기가 좋다고 말한 것은 기생충 박물관 같은 미지의 영역이기에, 완전히 질색이었다. 하지만 아까는 나한테 맞춰줬으니 고집부릴 수는 없다. 냉정하게 보면 나는 왜 이런 녀석한테 고집부릴 수 없다고 신경 쓰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런 위화감은 일단 무시하기로 했다.


「이런 데를 좋아하는구나…」


물속에 전시된 득실득실한 기생충을 볼 때마다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박물관은 몹시 조용해 어떻게든 버텼다. 신나서 기생충을 보는 남자는 고양이 카페에 있을 때보다 재밌어보였다. 전혀 모르겠어. 그런 내 모습을 겨우 깨달았는지 옆을 걷는 남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미안하다, 재미없었나?」

「…」



재미 없다고 하자면 재미 없다. 기생충 따위 전혀 관심 없다. 그래도 이 녀석도 고양이에 관심 없어도 어울려 줬다. 내가 불평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


「이런 세상도 있구나 했어」

「속이 깊지?」

「너무 깊어서 모르겠어」

「솔직하군」

「그런 사람이니까. 그래도 같이 다닐게, 아까 어울려 줬으니까. 게다가 점점 기생충의 매력을 깨달을 것 같아」


애매한 발언에 그 녀석은 쓰게 웃는다. 그래도 이게 본심이니까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러고 보니 오늘은 대화다운 대화가 성립한 걸 깨달았다. 웬일이냐며 오늘의 대화를 떠올리니, 이 녀석이 내 의지를 제 의지라고 결정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역시 어제의 대화가 녀석에게 변화를 준 걸까. 그렇다면 이 머리 이상한 남자는 나와 네가 다른 존재라는 당연한 사실을 겨우 깨달은 걸까. 이 데이트가 나와 녀석이 다른 인간이라는 사실을 결착 짓기 위해서라면, 어쩌면 유괴 외금 생활도 끝일지도 모른다. 그럼 이 녀석과 나는 평생 만날 일이 없다. 규슈와 도쿄라니, 지금까지 한 번도 도쿄를 나온 적이 없는 나에게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다.


「…」

「응? 왜 그러지?」

「아무것도 아니야」


조금 섭섭할지도 모른다니, 이 녀석과 같이 있는 바람에 나도 이상해진 걸까.





「오늘은 재밌었다」

「응」


솔직히 말하면, 굉장히 충실했고 즐거웠다. 고양이 카페는 말할 것도 없고 기생충 박물관도 익숙해지니 왠지 즐거워 졌다. 나는 정말 적응력이 높다. 그리고 저녁은 역시 카라아게 가게라서 살짝 웃어 버렸다. 쓴웃음이 아니라, 진심으로 웃었다. 이제 이 녀석과의 생활에도 완전히 익숙해지고 말았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유괴됐을 때 사람은 매우 불안한 상황에 빠져, 놈이 유괴한 장본인이라고 알아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래도 나는 별도라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이후에는 불안하지도 않고 제멋대로 살고 있다. 그래서 아마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녀석에게 적의보다 호의를 품게 되었다. 단순한 유괴범과 피해자 관계였는데, 오늘 하루 내 의지를 제대로 존중해주고, 같은 타이밍에서 웃어 준 이 녀석이 이제 무섭지도 않고 싫지도 않았다.


남자의 곁을 걸으며 돌아간다. 1주일 정도만 같이 있었고, 밖에는 거의 나가지도 않았지만, 이 녀석의 집이 지금은 완전히 돌아갈 곳이 되어 버렸다.




아무 말도 없이 걸었지만 어느 정도 걸었을 때일까. 곁의 남자가 갑자기 크게 심호흡했다. 중요한 말을 하는 거라고 직감으로 알았다.


「오늘 하루, 너와 지내고 알았다」

계속 말해두려고 한 걸까. 결심을 굳힌 음성은 너무나 굳어 조금 떨렸다.

「너와 나는 다른 인간이다」


당연한 사실을 드디어 깨달았다. 나는 그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모를 만큼 둔하지 않다.


「아니, 사실은 오래전부터 깨달아야 했어. 너는 나와 다르다. 나는 매일 밤 카라아게를 먹는 게 기쁘지만, 너는 화를 내지. 나는 요리는 조금이라도 할 생각이 없지만 너는 요리를 만들어 준다. 나는 뭔가 안 되는 게 있으면 금방 포기하는데, 넌 매일 연습하고 노력했어」


걷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면서 마침내 남자는 걸음을 멈췄다. 나는 녀석보다 조금 더 걸어가 뒤를 돌아봤다. 유괴범이었을 남자는 한심한 웃음을 띠며 나를 봤다.


「난 고양이에 관심이 없었지만, 너는 고양이를 좋아한다. 그리고 오늘, 너는 나에게 고양이의 사랑스러움을 가르쳐 줬다. 나는 내 의지만을 강요했지만 너는 나의 의지를 존중했지. 너는 내가 아니야. 그야 나는…날 유괴한 상대를, 그렇게 친절하게 대할 수 없다」


유괴. 남자가 한 그 말은 몹시 무겁게 느껴졌다. 그것은 아마, 눈앞의 이 녀석이 나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이다.


「유괴 따위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넌 나고 내가 나라면, 나와 함께 하는 게 가장 행복할 거라고 진심으로 믿었어. 그래도 나와 네가 다른 사람이고, 다른 생각을 품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잖아? 이건 훌륭한 범죄다」


눈앞에서 참회하는 남자의 얼굴이 울 것처럼 일그러졌다. 아마 작은 계기로 엉엉 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남자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생각해 보면, 나와 이 녀석은 1주일 정도밖에 같이 있지 않았는데, 이 녀석의 우는 얼굴을 보는 건 두 번째다. 처음 만났을 때랑 지금. 이 녀석은 감회하면 바로 우는 남자인지, 아니면 나랑 만나고 나서부터 잘 울게 됐는지, 나는 그런 것도 모른다. 이 녀석에 대해서 모르는 게 아직 산더미 같다.


「…너를 나에게서 해방하지. 도쿄까지 바래다주면 당장이라도 자수할 생각이다. 미안해…그리고 고마워. 난 아마…처음으로 내가 아닌 누군가를,」

「저기」

「아, 뭐, 뭐지?」


말을 가로막을 줄은 생각지도 못한 남자는. 당황한 것처럼 내 말에 대답했다.


솔직히 나 자신, 지금부터 이 녀석에게 하려는 말에 무척이나 놀랐다. 그래도 울 것 처럼, 목이 메서 말하는 그 녀석을 보니 계속 말하고 싶었던 유괴의 불만이나 심한 나르시즘의 공포나 그런 게 모두 날아갔다. 불만을 말하기보다는 그런 표정 지을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었으니까 어쩔 수 없다.

이게 내 의지라면 할 수 없다.


「…조금만 더, 날 유괴해도 좋아」


살짝 떨어진 곳에 있는 남자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그야 놀랄 테지. 이런 마음을 품다니, 나도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혀 예상 못 했으니.


「하, 에, 에에?!!」

「시끄러워!」

「에, 하? 지금 왜」


그러나 말하고 나서 그 말의 창피함을 깨달았다. 이 유괴가 합의 아래에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 이 녀석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렇게 생각해서 한 말이었지만 다시 생각해도 너무 부끄럽다. 게다가 그걸 되묻다니 무슨 고문인가. 그래도 물러설 수는 없다. 나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외쳤다.


「그러니까! 같이 있어도 된다고!……카라마츠!!!」


딱히 이끌린 건 아니다. 그냥 이 녀석은 나르시스트고 좀 머리가 이상한 점을 빼면 평범한 녀석인데, 그런 평범한 녀석이 잡히는 건 사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 것뿐이다. 나는 화도 안 났고, 유괴해도 좋다고 피해자가 말한 이상 이 유괴는 합의 아래다. 합의한 다음 진행된 유괴 외금 생활은 경찰도 상대해주지 않는다. 그러니 이 녀석은 유괴 사건의 범죄자가 아니다. 


나는 카라마츠에게 다가가 눈앞에서 힘껏 박치기를 했다. 카라마츠가 놀라서 충격으로 한심한 목소리를 낸다. 멋쩍음을 감출 폭력이니까 받아줘, 전 납치범.


「왜, 왜…」

「사랑이야, 사랑. 아마」

「에에…사랑이 아프다」

「시꺼.…그런 것보다, 나랑 다른 사람인 너는, 나한테 뭐 물어볼 거 없어?」

「물어볼 거?」

「물어볼 거, 그래도 괜찮아.……카라마츠」


카라마츠는 잠시 부딪힌 곳을 아픈 듯이 두 손으로 눌렀다. 그러나 내가 녀석의 이름을 부른 의미를 겨우 눈치챘는지, 두 손을 천천히 떼고 나를 진지하게 응시했다.


다시 마주 보니 역시 눈앞의 남자는 무서운 유괴범 따위가 아니었다. 유괴범이 아니라, 거기에 있는 건 서투르면서도 진지하게, 다른 사람인 나와 마주 보려고 하는 카라마츠라는 한 사람이었다.


「…네 이름을 물어도 되는가?」


이름을 묻는 걸로 이렇게 만족하다니, 평생 없을 경험이겠지.


「이치마츠인데」

「이치마츠」

「한자로, 맨 첫번째인 '이치'에 마츠니까 너랑 똑같지. 이름까지 같구나」

「아아…그래도, 내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좋은 이름이다. 이치마츠…내 이름과 네 이름도 역시 달라. 멋진 이름을 주신 부모님께, 나도 감사하고 싶군」


이런 말을 가볍게 하니까, 역시 좀 이상한 놈이라고 절실히 느끼면서, 나와 전 납치범 카라마츠의 유괴 외금 생활은 막을 내렸다.





「다녀왔어」

「어서 와…어, 어라?!」

「시꺼 톳티」

「이, 이치마츠 형이다…틀림없이 어디 길에서 쓰러져 죽은 줄 알았는데…」

「어이」

「뭐, 어쨌든 어서 와.…그런데 뒤에 있는 사람은 누구야?」

「반갑군 톳티! 나는 카라마츠. 오늘부터 이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될 남자다!」

「기다려 기다려 기다려 전혀 모르겠어」

「이해가 안 된다…칭찬이지만 이번에는 처음부터 설명하지! 나는 이치마츠를 사랑하고, 할 수 있으면 계속 단둘이 있고 싶었다. 유괴가 아니라 이번에는 동거하고 싶었어! 그래도 이치마츠가 계속 형제와 떨어져서 슬퍼하는 것도 본의는 아니지. 연인이 슬퍼하는 얼굴은 보고 싶지 않아. 그럼 내가 이치마츠의 집에서 함께 살면 문제없다! 단둘은 아니지만 그 점은 타협하자고 생각한다, 언더스탠 톳티?」

「에, 이 말 꼭 이해해야 해? 무리거든!」

「후후, 넌 핑크색이 imagecolor인가? 귀여운 색이군. 미스테리어스한 보라색이 이치마츠의 imagecolor고 톳티가 핑크…그럼 나의 imagecolor는 쿨한 파랑…인가?」

「발음 짜증나! 근데 이 사람 설마 그 나르시스트 호모…」

「호모는 아니니 안심해다오 톳티. 내가 사랑하는 건 마이 데스티니 이치마츠 캣 뿐이다」

「무슨 소리여?!」

「이 녀석은 원래 이러니까 다 태클 걸면 죽어」

「왜 이치마츠 형도 그걸 받아들이는 거야?!」

「딱히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야. 또 카라마츠, 널 좋아한다고는 한마디도 안 했어」

「무정한 허니군. 그런 점도 좋아하지만,」

「보기만 해도 토나와!」


「시끄럽네 톳티」

「오, 오소마츠 형도 뭐라고 해봐! 이치마츠 형이 이상한 거 데려왔어!」

「오, 전에 본 붉은 그가 아닌가! 이제부터는 형제로서 잘 부탁한다 브라더. 그렇지, 네 이름은 오소마츠였군. 불타는 듯한 빨강…너와 어울린다」

「아~이 느낌 이 느낌! 여전히 안쓰럽네~」

「오소마츠 형」

「아, 이치마츠잖아! 정말, 지금까지 어디 갔었어? 형아 외로웠다구?」

「…너 때문이잖냐 쿠소 장남!」

「잠, 아, 아프다니까! 왜 그렇게 화내는 거야, 응~?!」

「훗, 가고 말았군…질투하지」

「어딜?!」


「저기, 지금 오소마츠 형이 이치마츠한테 끌려갔는데 대체 언제 왔던 거야…너 뉘겨?!」

「와하~! 같은 얼굴이다!」

「녹색과 노란색인가…훗, 역시 나에게 내려진 color는 파랑밖에 없는 모양이군」

「짜증나!」

「짜증나!!」

「쵸로마츠 형, 쥬시마츠 형~…살려줘, 이 카라마츠라는 사람이 우리랑 같이 산대…」

「하아?! 뭔 소리?! 뻥이겠지! 엄마랑 아빠가 허락 안 해!」

「여섯 쌍둥이?! 우리 여섯 쌍둥이?!」

「조금씩 정을 쌓으며 지내면 된다 브라더. 또 부모님께는 이미 허가를 받았어」

「왜 허락하는 거야 그 둘!」

「다섯 명이나 여섯 명이나 똑같다는 모양이다. 그리고 내가 일하고 있다고 하니 바로 같이 살자고 하더군. 오늘부터 도쿄 근무다, 잘 부탁해」

「일한다고?! 이렇게 안쓰러운데?!」

「아니 안쓰러움은 상관없어 쵸로마츠 형」

「아~! 쵸로마츠 형 갈비뼈 부러졌어! 안쓰러워서!」

「브라더에게는 용돈을 주지」

「「와! 앞으로 잘 부탁해 카라마츠 형!」」

「넘어가지 말라고!」

「앞으로 잘 부탁하지 사랑스러운 브라더들이여! 나와 이치마츠가 사랑의 버진 로드를 달리는 걸 부디 지켜봐다오!」

「OK~제대로 볼게 카라마츠 형」

「사랑?! 세크로스임까 카라마츠 형!!」


「…태클을 못 걸겠어!!」



※마피반

※모브 시점

※멋진 마피아 카라마츠는 없습니다

※위험한 일에 빠진 반장님을 카라마츠가 멋지게 돕는 일도 없습니다

※부하의 카라마츠 취급이 너무함

※뭐든지 허락하는 분 전용


*



「할 말이 있다」


언제였는지는 까먹었지만, 해외로 떠날 때 공항에서 "멋있어!"라며 카라마츠 씨가 흥분해서 충동구매한 것이었다. 취미 나쁜 선글라스 저편, 코발트블루의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눈이 여길 가만히 바라봤다.


「뭡니까?」


순간 긴장해서 목소리가 떨렸다. 평소에 바보 같은 얼굴만 하는 그 사람이 오늘은 무척 순진한 표정으로 나를 기다렸다. 뭔가 실수라도 했을까, 아니면 신경에 거슬리는 짓이라도 했을까. 후자는 짚이는 게 너무 많아서 도무지 모르겠다.


「…이런 이야기는 아무래도 형제 앞에서는 하기 뭐해서」

「네」


카라마츠 씨는 소파에 등을 기댄 채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허리를 펴더니 내게서 등을 돌렸다. 창문 너머를 보다 다시 숨을 내쉰다. 홱 등을 돌린 카라마츠 씨의 귀부터 목이 어렴풋이 붉게 물든 것을 깨달았다. 열이라도 나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그, 뭐야…소위 사랑 이야기다만」

「…네?」

「내 앞에 천사가 내려왔다…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사랑의 톱니바퀴!」

「가도 됩니까…?」




구제불능 카라마츠 씨에게 천사가 내려온 일


우리 패밀리 아래에 다른 소규모 패밀리가 들어온 것은 이미 몇년 전의 일이다. 우리의 우두머리가 지금의 보스로 바뀐 계기가 된 항쟁 때 거두었다. 그곳에 상당히 전부터 지금까지 은밀한 관계를 이어 온 공장이 있다. 이른바 블랙 공장으로 불리는 그곳은, 마피아에게 소모품인 총이나 탄환, 기타 정규 루트에서 쉽게 입수하기 힘든 무기류를 양산하고 있다.


노동자에게 꽤나 열악한 환경을 더 질 좋게 만들어 준다는 계획으로 개선한 것은 1년 정도 전이었다. 왜 내가 해야 하냐고 얼굴을 찌푸린 쵸로마츠 씨가 그 공장의 담당자가 되었다. 욕하면서도 보스의 명령에 거역할 수 없는 쵸로마츠 씨는 공장 책임자가 되어 설비 수리, 인권이 없는 시프트 스케줄 조직, 맛없는 식당 등 모든 것을 철저히 바로잡아 공장 직원에게 '쵸로마츠 님'으로 추앙받고 있다. 소문에 의하면 "쵸로마츠 님이라면 안겨도 좋아" "쵸로마츠 님이랑 눈 마주쳤어" 등 팬클럽 상태로 변한 모양이다.


쵸로마츠 씨는 시찰을 위해 그 공장에 정기적으로 얼굴을 내민다. 납기까지의 스케줄 확인, 설비 및 실제 완성된 물건 체크. 아무것도 없는 외진 숲 속에 있는 공장이다. 전보다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누추하고 공기가 안 좋다. 일부러 쵸로마츠 씨가 발을 움직일 필요는 없다고 부하들이 설득해도, 쵸로마츠 씨는 고개를 젓지 않았다.


쵸로마츠 씨가 없을 때는 그의 밑에 있는 사람이 얼굴을 내밀었지만, 그날은 모두 좀 큰일이기에 대타로 카라마츠 씨가 급하게 갔다. 카라마츠 씨는 스스로 나선 듯했다. 듣고 보니 "그치만 공장은 왠지 두근두근하잖나"라고 한다. 반짝반짝한 눈동자는 어린아이의 그것이었다.


입구 경비에게 쵸로마츠 씨 대신 왔다고 알리고, 안내하겠다는 제의를 거절해 정처 없이 방황하다가 미아가 됐다고 한다. 가도 가도 똑같은 풍경만이 이어지고 불안해서 "집 가고 싶어…"라고 울먹이다가 다리가 걸려 넘어졌다. 카라마츠 씨는 마피아 전투 때는 멋있지만 평소에는 그냥 유아다. 심부름도 제대로 못 하고, 길도 잃고, 사람한테 받은 건 의문도 없이 입에 넣어 버리고, 아무나 따라간다. 카라마츠 씨는 불안함과 무릎과 안면(얼굴부터 구른 듯)의 아픔에 마침내 울음을 쏟았다.


「으, 우우…」


그곳에 쓰러진 채 훌쩍훌쩍 우는 카라마츠 씨 앞에 천사가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풉, 촌스러」


기계 소리가 부지런히 울리는 가운데 뚝 떨어진 목소리. 문득 고개를 드니 거기에는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차가운 눈으로 카라마츠 씨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것이 카라마츠 씨가 말하는 '천사'다. 천사라니. 웃지도 못하겠네. 나는 태클을 못 걸었다.


「당신 뭐 해? 왜 우는 거야? 꼴사나워」

「하, 하지만,」

「…자, 일어나.…어라, 당신 마피아?…공장 어디로 데려다 줄까?」

「아, 아아! 고맙다!」


쭈그리면서 내민 손이 기쁘고, 손이 부드럽고 따뜻해 카라마츠 씨는 순식간에 사랑에 빠진 것이렷다.




「한 번 더 만나고 싶어…그를 생각하면 고기가 넘어가지 않아…」

「아까 먹은 로스트 비프는 뭔데? 걘 고기 아니냐?」

「손, 부드러웠지이~…보들보들했어…」

「좀 들어!」


황홀한 모습으로 "천사"라고 생각하는 카라마츠 씨의 표정은 사랑에 빠진 소녀 같았다. 기분 나쁘다. 그러나 이 사람은 내 생명의 은인이고, 상사고, 되도록 행복해졌으면 하는 사람이다. 카라마츠 씨 아래에 있는지 어언 7년, 이렇게 남에게 집착하는 발언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쵸로마츠 씨한테 부탁하는 게 어떱니까? 담당 바꿔주라고」

「그랬는데 안 된다고 했다…너한테 어떻게 맡기냐고…」

「아~…그럼 보스한테 부탁해보면…」

「오소마츠는, 쵸로마츠가 안 된다면 안 된다고」

「아~…, …포기하시는 게?」

「싫다!!」


힘차게 일어서 방안에 울리게 외쳤다. 포기라고 하지 말아다오, 간청하는 눈동자와 기세에 눌려 말문이 막힌다. 내가 제안했지만 카라마츠 씨가 쵸로마츠 씨 대타를 맡을 리는 없다. 머리가 텅 비었으니까. 사인해달라는 서류에 "잘 모르겠지만 내 사인을 갖고 싶다는 건가? 뭐 괜찮지"라고 적당히 자기 이름을 쓰는 사람이다. 게다가 자기가 스타인 줄 아는 화려한 놈.


「음…저도 부탁드려 볼게요…」

「아, 아아…! 고마워…!」

「아마 무리일 것 같지만…」

「포기하지 마! 할 수 있다! 너라면!」

「기대하지 마세요. 그렇게 기대에 찬 눈으로 보지 말아주세요」


나는 쵸로마츠 씨가 좀 거북하다. 그래도 카라마츠 씨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이 맡겠다. 혼자서 설득할 자신도 없으니, 아무런 도움도 안 되겠지만 뭐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아니 가지 말까…? 생각하면서도 카라마츠 씨와 함께 그 사람의 방을 찾는다. 문을 열고,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쵸로마츠 씨는 "안 된다니까"라고 단언했다. 카라마츠 씨는 그 자리에서 무너져 통곡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다!」

「말 안 해도 알지. 빨리 나가. 나 바빠」

「싫다! 네가 된다고 할 때까지! 계속 따라다녀 주지! 네 있는 일 없는 일 전부 이웃에게 말할 거다! 토도마츠한테 너랑 아이돌 사진을 합성해달라고 해서 뿌려 주지!」


무슨 협박이냐. 더 마피아다운 협박은 없는 거냐…. 당황하면서도 엉엉 우는 카라마츠 씨를 달래려고 등을 토닥였다. 쵸로마츠 씨는 화난 듯, 짜증 내는 듯 여러 가지가 섞인 표정을 지으며 나잇살 먹고 울부짖는 형을 내려다 봤다. "진짜 뭐 하는 새끼지 얘…" 겨우 입이 열렸다.


「저기, 정말 계속 이러니까, 적어도 같이 데려가 주시지 않겠습니까」

「…에에…, 분명 완전 귀찮아지겠지…」

「지금도 충분히 귀찮고, 아마 이대로라면 더 귀찮아질 거고, 저도 짜증 나니까요, 부탁드립니다, 쵸로마츠 씨」

「하아……알았다고! 데려만 갈 거야!」

「저, 정말인가 쵸로마츠…!」


방 카펫에 이마를 박은 카라마츠 씨가 고개를 들었다. 눈물과 콧물로 엉망이 된 얼굴을 보고 쵸로마츠 씨가 더럽다고 내뱉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나야말로 형 때문에 미안해…」


해냈다 해냈다 하고 혼자 떠드는 카라마츠 씨를 먼눈으로 바라보는 쵸로마츠 씨는, 우울함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는 너무 기대돼서 한잠도 못 잤다」

「소풍 가는 꼬맹이냐」

「나 오늘 이상하진 않은가?!」

「항상 이상하니까 안심해주세요」

「향수는 뭐가 좋을까…?!」

「진짜 사람 말 더럽게 안 듣네! 됐으니까 간다!」

「아팟! 잡지 마! 쵸로마츠 살려다오! 정말 난폭한 부하군! 누가 길들였지?!」

「너라고!」


시간이 지나도 방에서 나오지 않는 카라마츠 씨는 제 방 옷장에서 화려한 셔츠나 양복 등을 꺼내고는 거울 앞에서 패션쇼를 벌이고 있다. 가장 단순하고 (카라마츠 씨한테는) 수수한 양복을 입히는 데에 성공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그럼 넥타이는? 넥타이 핀은? 향수는? 머리는? 신발은? 반지를 가져가는 게 낫나? 꽃다발도 필요한가? 둘의 사랑의 보금자리는 어디가 좋지? 신혼여행은? 라며 이것저것 복잡하긴커녕 진도가 너무 빨라서 무섭다. 식장까지 잡을 것 같다.


「그럼 난 둘러보고 올 테니까. 카라마츠를 부탁해, 절대 여기에서 나가게 하지 마」

「네」


안내된 응접실은 공장 외관으로는 상상도 못 할 깨끗한 구조였다. 기숙하면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주어진 방을 깨끗이 만들 때 여기도 같이 개장한 것 같다. 푹신푹신한 소파는 분명 비싼 거라고 곧 이해했다. 옆에서 "푹신푹신하군!"하고 지껄이는 카라마츠 씨는 아마 모르겠지.

왠지 불안한 표정의 공장장과 함께 쵸로마츠 씨는 방을 떠났다. 카라마츠 씨가 말하는 '천사'와는 사전에 만난 것 같다. 용건은 밝히지 않았지만 방으로 오라고 해뒀다고 쵸로마츠 씨가 말했다. 아무튼 이 방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그 천사인지 뭔지가 온다는 모양이다.


「어떡하지 긴장했다…」

「땀 엄청납니다」

「왠지 속이 안 좋아…」

「그렇게 처먹으시니까 그렇죠」


차가운 차를 단숨에 마신 동시에 방문이 끼익 소리를 냈다. 카라마츠 씨는 그 소리에 크게 움찔거리며 "힉!"하고 한심한 소리를 냈다. 순간 손에 있던 플라스틱 컵을 던져서 달그락하는 소리를 내며 굴러갔다. 돌아보니 문이 천천히 열렸다.


「…실례합니다」


쭈뼛쭈뼛 얼굴을 내비친 남자는 카라마츠 씨의 얼굴을 보자마자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라, 당신…」


눌러쓴 모자 아래에 굳어 있던 표정이 조금 풀린 것을 깨달았다. 카라마츠 씨는 눈앞의 천사에게 반한 것처럼 멍하니 바라봤다. 천사가 입고 있는 작업복은 군데군데 얼룩이 나 완전히 낡아 있다. 반장이라는 글자가 크게 써진 완장이 들어와 살짝 놀랐다. 아직 10대나 스무살 안팎일 나이다. 이 공장에서 반장이란 직책은 몇 명에게 주어진 것 같지만, 이런 젊은 아이가 반장을 맡고 있는 걸까.


「마피아가 나를 보고 싶다고 해서, 무슨 일이라도 한 줄 알고 놀랐는데」

「아…아…」

「당신이었구나」

「…아,」


아니 무슨 말좀 하라고. 가●나시냐. 카라마츠 씨는 얼굴을 붉혔지만 반장님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긴장이 풀린 반장님이 안도한 것처럼 숨을 내뱉고 모자를 벗었다. 그리고 부스스한 뒤통수를 긁고, 소파와 테이블을 사이에 둔 채 건너편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래서, 무슨 일이십니까?」


반장님의 목소리는 낮고 침착하지만 아직 어린 티가 남은 음색이었다. 작업복에 싸인 몸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소매에서 나온 손목은 아이처럼 가늘다. 뺨에는 석탄 같은 잡티가 붙어 있지만 피부는 눈처럼 하얗다.


「저, 저기, 그, 저번엔 고마웠다, 살았어」


가오●시가 된 카라마츠 씨가 겨우 사람으로 돌아와 과자 상자가 든 봉투를 내밀었다. 큰 종이봉투에는 무엇을 좋아할지 몰라 온갖 과자가 쌓여 있다.


「답례로 이걸 가져왔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만」


쑥스럽게 웃는 카라마츠 씨를 보며 반장님은 의아해하면서도 봉투를 받았다. 봉투 안을 들여다보는 표정은, 카라마츠 씨의 "맛있는 과자를 많이 사왔어"라는 한마디로 활짝 밝아졌다.


「에, 과자? 괜찮아? 이렇게 많이…」

「아아, 전부 네게 주려고 사온 거다!」

「고, 고마워, 과자는 별로 못 먹어봐서…기뻐」


실제 나이가 몇 살인지는 모르지만 과자를 받았다고 알고 눈을 반짝이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아이였다. 이렇게 젊은데 반장이라는 위치에 올랐으니, 그만큼 여기에서 오래 일한 거겠지. 나도 어렸을 때는 가난해서 이와 비슷한 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었지만, 카라마츠 씨에게 구해져 패밀리에 들어갈 때까지는 과자는 한 번도 입에 대지 못했다. 분명 그는 지금 들고 있는 과자가 모두 최고급 브랜드 음식이리라고는 모를 것이다.


「고마워, 당신은 마피아인데도 좋은 사람이구나, 이런 걸 답례로 가져오다니」


봉투를 소중하게 끌어안는 모습은 확실히 귀엽다고 생각했다. 이런 소릴 하면 카라마츠 씨가 권총을 입에 넣을 테니 절대 말 못하지만.


「아니…,」


카라마츠 씨가 말을 더듬었다. 갑자기 일어나더니 나를 보고 턱 끝으로 문을 가리켰다. 나오라는 소리겠지. 쵸로마츠 씨가 "절대 나가게 하지 마"라고 한 것을 떠올렸지만 이 사람에게는 거스를 수 없다. 재촉받아서 허리를 들자 카라마츠 씨가 "잠깐 실례하지"하고 먼저 방을 나왔다.


「금방 오겠습니다」


반장님에게 말하고 카라마츠 씨의 뒤를 쫓아 방을 나왔다.





「좀 기다려줘…뭐지 저 귀여운 생물은」


카라마츠 씨는 벽을 짚고 남은 손으로 가슴을 눌렀다. 천사다, 귀여워, 괴로워, 대단해, 그런 소리를 하면서 괴로운 듯이 얼굴을 붉혔다.


「…갖고 가면 안 되는가?」

「안 됩니다」

「열심히 돌볼게!」

「개나 고양이가 아닙니다. 당연히 무리지」

「싫어 싫어 싫어 싫어!」


마침내 복도에서 떼를 쓰기 시작한다. 데리고 갈 거야! 내 신부로 할 거라고! 바둥바둥 날뛰면서 고집부리는 모습은 원하는 걸 못 사서 슈퍼에서 설치는 아이와 똑같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싫어 싫어로 대답하는 카라마츠 씨의 행동은 쵸로마츠 씨가 올 때까지 이어졌다.


「뭐 하냐 쿠소 차남!」


시찰을 마치고 공장장과 함께 돌아온 쵸로마츠 씨의 주먹이 카라마츠 씨의 머리에 떨어졌다. 카라마츠 씨의 머리가 움푹 파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굉장한 소리와 마귀 같은 형상에 바르르 떨 것 같았다. 아니 떨었다. 나와 공장장은 하나가 되어 파르르 떨었다.


「뭐 하는 거야 바보냐?! 창피하다고!」

「그, 그치만…!」

「됐으니까 간다 새꺄!!」

「기, 기다려다오…! 마이 엔젤과 좀 더 얘기할 시간을 줘…! 아직 이름도 못 들었다…!」

「시꺼!!!」


쵸로마츠 씨의 무자비한 손이 카라마츠 씨의 목덜미를 잡는다. 우리한테 볼일이 있는지, 아니면 소동을 들었는지 많은 직원이 멀리서 이 일을 보고 있었다. 그림자에서 조용히 여길 바라보는 젊은 남자들은 "쵸로마츠 님 멋있어…"라고 눈동자를 하트로 만들고 있다.


「저…왜 그러십니까?」


시끄러운 밖이 신경 쓰였는지 응접실에서 반장님이 나왔다. 팔 안에는 아직도 종이봉투가 안겨 있다. 반장님은 쵸로마츠 씨에게 끌려가는 카라마츠 씨를 보고 흠칫한 모습이었다. 싫어 싫어 싫어~하고 버둥거리던 카라마츠 씨도 반장님을 알아챘는지 조용해졌다.


「마, 마이 엔젤…!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 버렸군…!」


얼굴을 붉게 물들인 카라마츠 씨는 수치로 눈동자에 눈물이 차올랐다. 이상해서 나도 모르게 웃자 눈동자가 섭섭한 듯이 나를 노려봤다.


「마이 엔젤…?…저, 가시는 건가요?」

「아니! 가지 않아! 너와 계속 같이 있겠다! 앗, 나도 여기서 살면서 일할까?! 좋군! 나이스 아이디어다!」

「개소리하지 말고 가자고!!…미안해, 반장님」

「아, 아뇨…」


쵸로마츠 씨의 5억명 정도 사람을 죽인 듯한 흉악한 얼굴이 온화하게 바뀌었다. 눈썹을 내리고 난처한 미소를 짓자 반장님은 조금 겁먹은 듯이 눈을 피했다.


「아앗, 잡아당기지 마! 싫어, 아직 얘기도 못 했다!」

「그럼 죄송합니다, 또 다음 주에 올게요」

「쵸로마츠 듣고 있는 건가! 난폭한 녀석이군! 아, 잠, 이, 이름! 이름도 못 들었다!」


카라마츠 씨는 필사적으로 호소하지만 쵸로마츠 씨는 꼭 귀가 없는 것 같다. 카라마츠 씨는 패밀리 중에서도 상당히 체격이 좋아, 한 손으로 사과를 터뜨릴 수 있는 고릴라 인간이다. 한편 쵸로마츠 씨는 너무 가벼운 몸을 지녀서 보기에도 무력할 것 같은데, 날뛰는 카라마츠 씨를 한 손으로 가볍게 끌고 간다.


「…이름? 제 이름 말입니까?」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니 누가 옆에서 몰래 귓속말을 했다. 반장님이었다.


「아, 응…저 사람, 네,…그, 반장님의 이름을 알고 싶은 모양이라」

「하아, 알아서 뭘 하는 걸까요」

「반장님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것 같아. 그, 알려주면 기쁘겠어. 그럼 여기도 아마 조용해질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이대로라면 널 계속 마이 엔젤이라고 부를 거고」

「…방금도 생각했는데 저한테 하시는 말입니까?」

「계속 그렇게 부르고 있어」

「에…」


반장님은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표정 그대로 눈을 깜빡였다. "마이 엔젤과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냐!"라고 분노를 머금은 목소리가 날아온다. 카라마츠 씨다. "너나 빨리 와 똥꼬털 태워 먹고 싶냐!"라고 한 것은 쵸로마츠 씨였다. 부탁이라며 시선만으로 반장님에게 호소했다.


「저기!」


반장님이 큰 소리로 부르자 쵸로마츠 씨의 발길도 멈췄다. 앞을 향한 등이 돌아봤다.


「제 이름은 마츠노 이치마츠입니다. 그러니까, 저, 이상하게 부르지 말아 주세요」


그걸 듣고 방심한 듯이 멍때리던 카라마츠 씨의 등을 쵸로마츠 씨가 가볍게 찼다. 의식이 돌아왔는지 카라마츠 씨는 순식간에 눈을 반짝였다.


「이치마츠, 이치마츠인가! 좋은 이름이다! 이치마츠! 또 보러 오지!」

「하아…」

「또 과자를 사오겠다!」

「아, 그건, 좀 기쁠지도…」

「이치마츠 이치마츠 이치마츠 이치마츠~!」


몇 번이나 이름을 부르며 키스를 보내는 카라마츠 씨에게 쵸로마츠 씨는 "닥쳐!!!"라고 외쳤다. 그럼, 반장님께 고개를 숙이고 앞을 가는 둘의 뒤를 쫓는다. 카라마츠 씨는 쵸로마츠 씨에게 끌려가면서도 무척 행복해 보였다. 귀여워, 좋아한다, 어찌 사랑스러운 사람인가, 이게 사랑인 건가, 황홀한 모습으로 그런 말만 반복했다.




한달에 두 번 찾아오는 시찰에 카라마츠 씨와 나의 동행이 허가된 것은 보스 덕분이다. 카라마츠에게 모두 맡기는 건 불안하지만 동행 정도는 괜찮아. 지금처럼 할 일은 쵸로마츠가 해주면 난 딱히 상관 없다구?

이런 형을 남앞에 보이는 부끄러운 일은 두 번 다시 사양이라는 쵸로마츠 씨에게 보스는 그렇게 말했다. 보스는 재미있을 뿐이다. 카라마츠 씨의 사랑도, 쵸로마츠 씨에게 피해가 가는 것도.


그리고 한달에 두 번, 카라마츠 씨는 그 공장을 찾는다. 귀엽고 귀여운 반장님에게 줄 선물을 들고. 길들인 보람이 있는지 반장님도 카라마츠 씨에게 조금씩 마음을 여는 것 같다. 또 오셨습니까? 라고 하면서도 음색과 표정이 부드럽다. 어쩌면 좀만 더 노력하면 잘되지 않을까, 나는 희미하게 사랑의 성취를 기대하고 있다.


「얘기 들어 보니까, 나도 희망이 있지 않나 생각했어~」


낮 회식, 보스가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나 같은 사람이 평소 이런 자리에서 보스와 함께하는 일은 절대 없다. 그러나 카라마츠 씨가 반장님에게 사랑에 빠진 뒤 재밌으니까 말좀 해달라고 재미로 나를 식사에 초대하게 됐다.


「저, 정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는가?!」

「응, 진짜 진짜」

「고, 고백하면, 받아줄까…!」

「오~, 받지 않을까? 해버려 해버려~!」


요란하게 휘파람을 부는 보스에게 카라마츠는 수줍은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난 지금까지 이쪽 세계에 발들일 법한 여자랑만 사귀었는데, 어떠려나?」

「뭐가?」

「그 공장은 지금도 우리 거고, 전에도 그런 용도였는데 그 천사는 일반인이잖아?」

「…그렇지?」

「마피아랑 일반인이 잘될 수 있을까? 저쪽에 피해가 갈 수도 있고, 지켜주겠다 해도 그쪽이 사양할지도 모르잖아?」


보스의 말은 지당하다. 아주 제대로 된 말을 한다. 그러나 표정과 목소리는 히죽이고 있다. 샐러드 안에 있는 방울 토마토를 포크로 찍어 카라마츠 씨의 접시로 던졌다. 카라마츠 씨는 보스의 말을 듣고 아연실색한 모습으로 굳어 있었다.


「그, 그런 건가…?!」


카라마츠 씨의 떨리는 손에서 포크가 떨어졌다. 그릇에 부딪혀 테이블 위로 낙하한다. 포크 끝에 묻은 소스가 식탁보를 더럽혔다.


「에ー보통 그렇잖아? 마피아 같은 무서운 일 하는 놈이랑 같이 살고 싶다고 생각해~? 반장님도 목숨이 아까울 거 아냐?」


우리의 보스는 사소한 언행으로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기술에 능숙하다. 포크로 파스타를 칭칭 감아 입안에 넣는다. 그 눈은 장난꾸러기 같았다. 또 귀찮은 일이 될 거라고 카라마츠 씨에게 힐끗 눈을 돌린다.


「…좋아, 직장을 옮기지」


잠시 놀란 카라마츠였지만 뜻을 정한 듯 강하게 말했다.


「하아?!」

「잠깐 신입사원용 정장을 사와다오. 또 타운●크 사원판도 사와 주지 않겠나」

「아니아니아니!」

「헬로워크가 이 근처에 있는가? 되도록 공장 근처에 있는 직장이 좋다만 마땅한 곳이 있을까…」

「잠, 잠깐 기다려주세요」

「엑셀을 못 해도 고용해줄지 불안하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잠, 보스도 웃지 말고!」

「마피아는 사표를 어떻게 내지…? 넌 알고 있나…?」


고지식하게 그런 말을 하는 카라마츠 씨를 보고 보스는 배를 잡고 웃었다. 보스가 패밀리 넘버2인 카라마츠 씨를 선뜻 놔주리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카라마츠 씨라면 마피아 말고도 다른 인생을 걸어갈 것 같아 불안을 부추겼다.


「아니아니 무리라고요! 사표라니! 뭐 하시려고요?!」

「일단 사무직일까…」

「진짜 무립니다. 카라마츠 씨한테 그런 건 안 맞아요. 엑셀은커녕 워드도 못 하고 PC 타이핑도 못 하고, 애초에 PC 전원 켜는 법도 모르고 전화 중개도 못 하고, 구구단도 못 하고, 머리 안 좋고」

「너 날 바보 취급하고 있지?!」

「바보 취급이 아니라 바보라고 하는 겁니다! 바보니까 무리!」

「그런 말하지 마…!」


그러나 본인도 생각은 있겠지, 팔짱을 끼고 뭔가 궁리하고 있다. 잠시 그러다가 떠올린 듯 얼굴이 활짝 밝아졌다. 보스가 상냥하게 "왜 그래?"하고 묻는다.


「그래! 내일 반장님에게 쿠키를 만들어 주자!」

「이직 얘기는 어떻게 된 거야…」

「응…? 이직…? 그러고 보니 그런 이야기를 했군…?! 그런데 왜 옮기려고 했더라? 뭐 됐나! 지금 반장님의 얼굴이 떠올라서 말이지, 내일 만날 수 있겠어, 뭘 사갈지 생각했다만 애정을 듬뿍 담은 수제 쿠키를 가져가야겠군! 고양이 모양으로 하자!」

「하아…안 괜찮아요…」

「카라마츠 과자 만들기 좋아하는구만~」


보스는 이제 질렸는지 관심 없는 듯 잔에 남은 와인을 마셨다.





「정말, 이제 고백이든 뭐든 해주지 않을래…너 따라오는 거 엄청 귀찮아」


쿠키가 예쁘게 구워져 기분이 좋아진 카라마츠 씨를 쵸로마츠 씨는 미간을 찌푸리고 째려봤다. 건물 앞 작디작은 방에 드나드는 간수들이 튼튼한 보안을 버튼 하나로 해결했다.


「고, 고백이라니, 아직은 못 해…!」

「아니 벌써 반년인데? 반년 지났다고? 좀 남자답게 나와라 짜샤」

「그, 그래도…!」

「그래도는 개뿔, 그렇게 우물쭈물하는 동안 누가 데려간다고. 토도마츠처럼」

「윽…!」

「괜찮아? 모르는 놈이 반장님 데려가도」

「안 된다!」


카라마츠 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쵸로마츠 씨는 그럼 빨리 고백이든 유괴든 해, 라며 무서운 말을 하고 카라마츠 씨의 등을 찼다. 찬 순간 엄청난 소리가 들렸지만 괜찮을까. 차인 부분을 문지르면서 카라마츠 씨는 다짐하듯 선언했다.


「…조, 좋아, 알았다, 고백하지! 나는! 오늘! 반장님한테!」

「오오!」

「좋아, 빨리 고백하고 빨리 차여」

「왜 그런 말을 하는 건가 쵸로마츠…!」






「아, 안녕하세요」


응접실로 가자 거기에는 이미 반장님이 보였다. 쵸로마츠 씨가 공장장에게 이야기해준 모양이라, 카라마츠 씨가 오는 날에는 이렇게 부서에서 벗어나 시간을 내 준다. 카라마츠 씨가 먼저 오고 좀 늦게 반장님이 오는데 오늘은 반장님이 앞선 것 같다. 카라마츠 씨는 응접실 문을 열고 인사하는 반장님의 얼굴을 본 후 숨을 삼켰다. 그리고 조용히 문을 닫았다.


「뭐 하시는 겁니까」

「아니, 지금부터…고, 고, 고백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긴장해서…」

「됐으니까 빨리 들어가주세요」

「여, 옆에 있어주지 않겠나」

「하아?!」

「혼자서는 불안해서 죽을 것 같아…」


항상 곧게 올라간 눈썹을 내리고 부탁해!하고 손을 모은다. 평소에는 카라마츠 씨의 시중으로 여기까지 오지만, 반장님과의 시간을 방해할 수도 없어 대개 문 너머에서 기다린다. 있어달라는 건 같이 안으로 들어가자는 거겠지.


「에에…괜찮지만…」

「정말인가?!」

「제가 있는데 고백하실 수 있습니까?」

「…나는, 차이는 게 정말 무섭다. 그래서 둘뿐이면 좋아한다고 못 할 것 같아. 기죽을 것 같다. 그러니 내가 도망칠 것 같으면 때려다오」

「알겠습니다 전력으로 갈길게요」

「제발 부드럽게 차줘…내 몸은 꽤 섬세하다」

「총 세 발 맞아도 태연히 걷는 고릴라가 무슨 소리신지?」


문을 열라고 재촉받고, 손잡이를 잡는다. 잡아당기자 소파에 앉은 반장님과 시선이 마주쳤다.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는 반장님에게 속이듯이 살짝 웃는다.


「저, 반장님, 카라마츠 씨가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는데 들어주시겠습니까?」

「예? 아아, 네…」


내 뒤에 숨듯이 붙어 있는 카라마츠 씨의 손을 잡고 앞으로 끌어냈다.


「아, 저, 그, 바, 반자, 반장님」

「네」

「…그」

「네」

「…그게…!」

「네」

「…무, 무리다, 어떡하지, 못 하겠어」


울먹이는 카라마츠 씨가 여길 보고 도와달라며 눈으로 호소한다. 됐으니까 말해! 엉덩이를 걷어차자 반장님이 놀란 듯이 흠칫했다.


「윽…! 마, 말 못 해…! 무서워…!」

「왜, 왜 그러세요 카라마츠 씨, 우시는 겁니까?」

「반장님 살려줘…난 너무 무서워서…!」

「그, 잘 모르겠는데, 힘내세요」

「바, 반장님…! 너무나 상냥하다…!」


카라마츠 씨는 눈물을 흘리며 반장님의 상냥함에 눈을 빛냈다. 힘내라! 힘내라! 목소리를 거는 반장님에게 말한다, 말한다, 할거니까! 라고 얼굴을 붉히며 당장 고백하려는 카라마츠 씨의 모습은, 재미를 넘어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여, 역시 안 된다 못 해…!…잠깐 손을 잡아주지 않겠나」

「에, 내가?!」


훌쩍훌쩍 우는 카라마츠 씨가 나를 보고 어린애 같은 일을 요구한다. 언제였는지, 그건 토도마츠 씨가 중학생이었을 때 치과에 간 적이 있었다. "무서워어, 저기, 손 잡아줘…계속 거기 있어야 해?!" 엉엉 흐느끼는 토도마츠 씨를 귀엽다고 생각하며 손을 꽉 잡아줬는데, 바로 그것과 일치한다.


「부탁이다…무서워서 못 참겠어…! 손 잡아다오…!」


그러나 토도마츠 씨는 당시 아직 중학생이고, 귀여운 외모였으니 나는 귀엽다 생각한 거고, 지금 눈앞에서 손잡기를 요구하는 사람은 나보다 큰 근육 바보 노답 고릴라다. 귀엽지도 않고 기분 나쁘다.


「저, 잘 모르겠는데, 제가 잡아 드릴까요?」


표정이 썩은 나를 봤는지 구조선을 내 준 것은 반장님이었다. 카라마츠 씨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허둥거렸다.


「아, 안 된다! 그러면 심장이 폭발해버려! 손에 땀도 있고! 부끄러워! 아니 그래도 이런 좋은 전개를 쉽게 넘겨도 되는 건가…?! 으으으으…!」


머리를 감싸고 고민하는 카라마츠 씨에게, 반장님도 알 수 없다는 듯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다. 그리고 나에게 시선을 보냈다.


「카라마츠 씨 어떻게 된 걸까요…괜찮으려나」

「응, 아마 안 될걸」


너랑 만났으니까.


한숨을 내쉬는 동시에 카라마츠 씨가 그릉거리는 소리가 그쳤다. 고개를 들자 뜻을 정한 듯 반장님과 마주 봤다. 아무래도 드디어 결심한 것 같다. 이제 손을 잡을 필요도 없다는 듯 가슴을 쓸어내린다. 등을 돌린 카라마츠 씨의 표정은 알 수 없지만, 그 등에서 긴장한 분위기가 전해졌다. 끌리는 것처럼 나도 두근거린다.


「…이, 이치마츄!」



우와! 혀 깨물었다!


「네, 네」

「조, 좋아한다!」


마, 말했다!

말했다! 카라마츠 씨가! 드디어!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다! 정말 좋아! 귀여워! 안고 싶어! 엉망진창으로 하고 싶어! 지금 당장 침대 위에서 귀여워해 주고 싶어!」


욕망에 충실하네 짜샤!

욕구를 솔직하게 말하는 카라마츠 씨에게 식은땀이 흘렀지만 반장님은 뺨을 붉게 물들였다. 카라마츠 씨의 귀도, 목도, 똑같이 붉게 물들어 있다.


「그, 그러니깟, 저, 저랑, 치, 친구부터 시작하지 않겠습니까?! 우선 교환 일기부터 부탁드립니다!」


힘껏 말하고 오른손을 내밀면서 고개를 숙인다. 얼굴을 붉힌 반장님은 곤란한 듯이 눈썹을 내리고, 좀 방황하는 듯한 기색을 보인 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나, 나, 거의 맨날 여기서 일해서…일기 써 본 적 없는데, 그래도 괜찮아…?」


거기냐!

태클 걸고 싶은 마음은 산더미 같지만 말하지 않는다. 그보다 환희로 가슴이 떨렸다. 감동으로 숨이 막힐 것 같다. 시야가 눈물로 흐려진다. 그런 내 머릿속 BGM은 결혼 행진곡이었다. 카라마츠 씨 밑에 있어서 성급한 성격이 배어 버린 건지도 모른다.


구제불능 카라마츠 씨 앞에 천사가 나타난 지 반년, 겨우 봄이 찾아온 것이다.



싸움마츠, 고2 여름. 사이가 나쁜 카라마츠와 이치마츠


투고가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여름 방학 키워드 '여름 축제'로 쓰게 됐습니다. 주최 하시스님, 참여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0;)

달달하게 쓰려고 생각했습니다. 히익. 그래도 즐거웠어요….


*




 ▼



마츠노가 차남 카라마츠와 사남 이치마츠는 앙숙이다.


둘의 관계가 어느 날 갑자기 돌변한 것은 아니다. 초등학생, 중학생, 나이를 먹을 때마다 쌍방의 거리는 계속 틀어져 갔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담담히 대화하고, 바늘구멍 같은 자그마한 언쟁으로 폭력을 휘두른다. 서로 푸른 멍뿐만 아니라 험악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도 다른 형제들은 완전히 익숙해졌다. 주먹을 쥐고 함부로 다리를 차고, 장소도 가리지 않고 짐승처럼 싸우는 이들을 결코 단둘로 만들면 안 된다―――마츠노가에서는 암묵적 룰로 통하고 있다.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관계는 악화되어 대화도 하지 않고, 만나면 서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난폭한 수단을 쓴다. 2층에서 급한 소리가 들릴 때마다 1층에 있는 형제들은 또냐 하고 한숨을 쉰다. 멈추지 않고 방관하고, 그래도 소리가 그치지 않으면 오소마츠가 쓴웃음을 담은 표정으로 2층으로 올라간다. 그렇게 싸움이 끝나고 못마땅한 얼굴로 카라마츠와 이치마츠가 내려왔다.


「이치마츠. 볼 빨갛다」

「………」


쵸로마츠의 말에 흥 하고 거실 구석에 앉는다. 카라마츠에게 맞은 상처라고 누구나 알고 있다. 인정하면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 같아, 침묵을 지키며 고개를 숙였다. 불쾌함을 드러낸 표정으로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당해낼 수 없다. 아무리 버둥대도 그건 사실이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 상황에 응할 수 있으면 이치마츠에게 승리는 있지만, 밑에 깔리면 무의미하게 끝난다. 카라마츠의 피부가 이치마츠의 몸을 기어가면 구타와 매도의 폭풍이 펼쳐진다. 왜 이렇게 됐는지 이치마츠도 모른다. 다만 마음에 안 든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려는 카라마츠가 점점 손에서 빠져나갈 것만 같아 급하게 쫓아갔다. 어떻게든 그를 말려야 한다고 생각한 끝에 결과는, 이치마츠 외에는 모르는 진실이다.


「카라마츠는 그거네, 고양이한테 긁힌 것 같은 상처 뿐이구만」


흐히히, 오소마츠가 웃는다. 얼굴을 살짝 드니 카라마츠의 볼이나 목, 팔에 날카로운 손톱 상처가 그려져 있다. 모두 이치마츠가 한 것이다. 힘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지만 패배를 쉽게 삼킬 수는 없다. 억울함을 배어, 오소마츠의 말대로 품행 나쁜 고양이처럼 그의 피부에 손톱을 세웠다.


「…아아. 실제로도 아기고양이 같은 거고」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낮게 웃었다. 깔보고 있다고 바로 알았다. 분노와 수치로 얼굴을 붉히며 답답한 나머지 혀를 찼다.

「이치마츠, 너 카라마츠한테 덤벼드는 거 그만해~. 어차피 못 이기니까」

「덤벼드는 거 아니거든」

바로 이치마츠가 말했다.

「카라마츠도, 왜 일일이 싸우는 거야? 형아 중재하는 것도 귀찮아」

「부탁하지 않았다」


바로 카라마츠가 말했다.

오히려 방해하지 말라는 듯이 "힘든 일이군"이라고 말을 거듭했다. 비꼬는 음성에 오소마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어깨를 으쓱했다. 말리려 들지 않으면 폭력에 물든 손바닥이 이치마츠를 유린한다. 다정하게 떨쳐 버리는 모습을 잠자코 방관할 만큼 오소마츠는 굵은 신경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차남의 생각도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너무 빠져들진 않는다. 필요 이상으로 손을 내밀면 따끔한 맛을 보는 건 자신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상냥하게 웃은 카라마츠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고, 네네 알겠습니다, 오소마츠는 몸을 떼어 냈다. 기지개를 켜고 실내에서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쵸로마츠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훑어보던 교과서를 내렸다.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카라마츠의 부드러운 눈동자에 견제되어 입을 다물었다. 잘 좀 해, 중얼거리곤 오소마츠의 뒤를 쫓아 방을 나섰다.


「…아, 쵸로마츠 형」

이치마츠가 황급히 말을 걸었다.

「응, 왜?」

「어디 가」

「서점. 참고서 좀 사려고」

바로 일어서서 미덥지 못한 발걸음으로 쵸로마츠의 등을 쫓는다.

「나도 갈래」

「하? 비틀거리잖아, 좀 쉬어」

「싫어」

「싫다니…」

한숨을 섞으면서 쵸로마츠는 눈꼬리를 내렸다. 영 석연치 않은 양 말하는 쵸로마츠의 옆을 지나가, 먼저 현관으로 향한 이치마츠를 보고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쓰러져도 안 돌봐줄 거야」

「형,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그게 목적이냐. 정말」


쵸로마츠는 이치마츠에게 무르다. 그건 본인들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치마츠는 비굴하게 웃으며 아이스크림을 졸랐다. 처음에는 주춤하는 쵸로마츠였지만, 현관을 나서니 찌는 여름 바람이 감도는 것을 느끼고 살짝 입가를 들어 올렸다.


「…뭐, 가끔은 괜찮지」


태양에서 쏟아지는 열을 쬐면 콘크리트 기온이 올라 시야가 흐릿하게 흔들렸다. 푹푹 찌는 더위로 피부에 땀이 떠오른다. 쵸로마츠는 이마를 손등으로 훔쳤다. 순식간에 목 수분을 빼앗는 날씨는 별로 탐탁지 않다. 아주 싫은 추억, 행복했을 때의 추억, 여러 가지가 교차하는 여름이라는 계절은 이치마츠가 꺼릴 터이다. 얼굴을 찌푸리고 기억을 되짚어 보니 형제 모두 일심동체였다. 기억이 살아났다. 그때는 재밌었지. 순수하고, 무구하고, 아무것도 무서운 게 없었는데. 신기루에 흔들리는 시야를 뿌리치며 이치마츠는 억지로 미소를 흘렸다. 카라마츠에게 맞은 볼과 옷 아래의 멍을 어루만지며 욱신거림을 참았다.


「아이스크림은 줄게. 더우니까. 그래도 이치마츠」


서점에 가는 쵸로마츠의 옆에 섰다. 일단 아이스크림은 확보했다는 안도보다 형이 꺼내는 이야기에 내심 경계를 품는다. 시선으로 재촉하니 이치마츠를 보지도 않고 쵸로마츠가 조용히 말했다.


「남은 원한까지 맡아 줄 생각은 없어」


원한.

그 말에 고개를 갸웃한다.


「무슨 말이야?」

「맞혀봐」

「에에에…」


다 말할 생각은 없는 듯, 이치마츠를 힐끗 본 쵸로마츠는 싸늘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화난 걸까. 형의 말을 반복하며 뜻을 이해하려고 했지만 원한이라는 말에 짚이는 곳은 없다. 결국 적절한 답이 떠오르지 않아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나아갔다. 올려다보니 푸른 하늘에 자리 잡은 태양이 보인다. 사고를 빼앗는 횡포한 열이 이글거려, 이치마츠의 뇌를 충분히 데웠다. 피부에 떠오르는 땀 방울이 중력에 따라 떨어지는 감촉이 간지럽다. 마른 안구를 축이고자 눈을 깜빡인다. 그러면 눈 뒤에 새겨진 씁쓸한 기억이 떠올라 이치마츠의 기분을 다시 떨어뜨렸다. 

원한, 원한. 내심 중얼거리며 눈썹을 찌푸렸다.

(원망할 건, 아무리 봐도 내 쪽이지)

쵸로마츠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원한이라는 말에 짐작은 갔다. 카라마츠를 괴롭히며 사랑과는 정반대의 수단으로 본 것의 대가. 사실 카라마츠느 이치마츠를 심하게 다루었다. 피부와 피부가 부딪히는 순간에 생기는 심한 통증이 그의 마음을 대변한다. 이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뒤틀린 관계에 장래성은 없다. 친한 형제로 되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앞이 보이지 않는 관계에 초조함만 쌓인다. 그래서 마츠노 이치마츠는 시치미를 뗐다. 싫어, 싫어, 정말 싫어. 날 내버려 두고 어른이 되려는 네가 죽을 만큼 싫어. ―――거짓말, 사실은. 본심을 삼키고 땀으로 젖은 머리를 닦았다.


「…쵸로마츠 형, 더워」

「여름이니까」

「아아~……」


찌는 뇌와 감정을 아이스크림으로 식힌다.



 ▼



마츠노가 여섯 쌍둥이의 특기는 싸움과 불꽃놀이. 발사되는 신호에 이끌리는 한가함.

누가 했는지 모르는 말에 고개를 숙이는 사람만은 없다.


전부터 여섯 쌍둥이라는 신기한 점 때문에 많은 호기심을 샀지만, 나이를 거듭할 때마다 그것은 시샘과 질투로 바뀌었다. 잘난 척하지 마, 성가셔, 신경 쓰여―――어린 시절은 사랑받는 대상이지만 어른의 계단을 오르면서 여섯 쌍둥이를 달가워하지 않는 무리들이 늘었다. 떠받들어지는 일에 익숙해지기 위해, 처음에는 무서운 감정에 떨었지만 이윽고 형을, 동생을,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을 얻는다. 그거야말로――폭력이었다. 마츠노가를 위협하는 사람은 제재하고 우리가 만든 성을 지킨다. 한 번의 잘못이 더욱 원한을 모아 불에 기름을 붓는 싸움이 태어나고 말았다. 귀찮아하지만 혈기왕성한 그들은 싸움이 싫지 않다. 제 능력을 선보이는 데에 기뻐하는 사람, 배에 찬 울분을 푸는 자, 이유는 가지각색이지만 그중에서도 이치마츠가 싸움을 좋아하는 이유는 비뚤어져 있다.


「이치마츠 쨩」


자기에는 아직 일러, 쇠 파이프를 맞는다. 멋지게 뒤통수를 가격해 지면으로 엎드린다. 큰 충격에 기억이 날아가지만 천천히 이곳에 온 과정을 떠올린다.


여름 방학이 지난 지 벌써 며칠. 숙제는 뒤로 돌리고 칠칠맞은 나날을 보낸 이치마츠는 땡볕에서 도둑고양이의 상태가 궁금해 뒷골목을 배회했다. 그늘에 덮였다고는 해도 무더위를 가둔 뒷골목은 몸을 달아오르게 한다. 옷까지 스며드는 땀이 불쾌해 더위에 당한 고양이들을 관리해줄 때 그 일이 일어났다. 

세 남자가 이치마츠의 뒤를 쫓아 뒷골목으로 들어왔다. 쇠 파이프가 끄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그들은 천한 미소를 띠고 이치마츠를 둘러쌌다. 그들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나타났는지 예상이 간다. 기억은 나지 않으니 어차피 다른 형제들이 치근거린 상대겠지. 그들의 목적은 장남인 오소마츠인 듯하다. 모두 똑같은 얼굴이니 일단 한명 한명 싸움을 거는 거라고 알고, 그 뒤는 제재라는 이름의 린치를 받았다.

(아, 그랬지. 오소마츠 형의 외상이 나한테 왔구나)

멍하니 결론을 꺼내고 이치마츠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뒤통수를 만지니 손바닥에 미끈미끈한 감촉이 닿았다. 아무래도 피가 배어 나온 것 같다. 그렇게 알아도 이치마츠는 당황하지 않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빨강인지 파랑인지는 모르겠는데, 눈에 거슬린다고」


그들이 봤을 때 여섯 쌍둥이는 모두 같다. 별개임을 설명해도 이해하지 않는다. 빨강이든 파랑이든 초록이든, 더군다나 보라색이든 같은 얼굴인 데에는 변함이 없다. 히히, 이치마츠는 천천히 얼굴을 든다.


「왜 웃는 거야, 이치마츠 쨩」


조롱하는 남자의 목소리에 주먹을 쥔다. 별로 잘하진 않는데. 중얼거리며 쇠 파이프를 든 남자의 코를 때렸다. 생물의 급소인 코에 주먹을 맞고 뼈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통증에 신음하는 남자의 손에서 떨어진 쇠 파이프를 들어, 절대적 우위에 있다고 믿은 남은 둘의 얼굴을 옆에서 때렸다. 귀에서 뚝뚝 떨어지는 혈액은 태양 빛을 흐리는 뒷골목에서는 묘하게 까맣다. 의식을 빼앗지 않아도 전의를 잃게 하는 건 쉽다. 먼저 맞은 이치마츠도 타격은 있어, 뒷골목에서 달아나니 태양이 상처를 찌른다.


 ―――넌 피학성 음란증이네.

언제였는지, 쵸로마츠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 어려운 말이지만 담긴 의미는 알 수 있었기에, 마조히즘을 지적받았다고 알았다. 확실히 이치마츠는 육체적 고통으로 흥분을 느낀다. 일그러진 성벽임을 형제들에게 숨기고 있었는데 쵸로마츠는 훌륭하게 꿰뚫어 본 모양이다. 성에 대한 수치심을 품은 이치마츠가 마조임을 공언할 수도 없어, 그때는 적당히 속였다.

(이런 창피한 천성, 카라마츠한테는 절대 알리고 싶지 않아)

오소마츠에 얽혀 머리에 난 상처에서는 피가 뚝뚝 흐른다. 그리 깊은 상처는 아니고, 그냥 두면 혈액이 응고해 통증도 빠질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큰길을 걷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발을 앞당겼다.


도중, 문득 아는 얼굴이 보여 발을 멈췄다. 그 녀석은 파란 옷을 입고 있어 내심 혀를 찼다.

(이럴 때 썩을마츠냐)

마츠노가 차남의 모습에 저절로 발길을 돌려서 왔던 길을 돌아간다. 시간은 걸리지만 카라마츠와 만나는 것보다는 낫다. 나는 인파 속으로 들어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뒤에서 들리는 조용한 발소리. 점점 가까워질 때마다 설마 하는 생각이 부푼다. 자의식 과잉이다. 뒤쫓을 리가 없는데. 차가운 등과는 반대로 마음이 설렌다. 긴장한 거라고 언뜻 뒤를 보니 카라마츠의 모습은 없었다. 뻔하지, 희미한 낙담이 이치마츠의 표정을 흐리게 했다. 

카라마츠에게 미움받고 있다.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치마츠가 시작하고, 원하는 것이기에 비관하자고 타일렀는데. 왜 이렇게도 마음이 아플까. 어깨를 떨어뜨리고 자연스럽게 발걸음은 무거워진다. 서서히 번지는 눈물을 닦고, 이치마츠는 긴 귀갓길을 걷는다.


똑바로 말해두겠다.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사랑하고 있다.

그것은 이미 카라마츠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쿵쿵 뛰고, 목소리만 들어도 귀가 빨개진다. 관심을 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고양감을 얻는다니―――부끄럽다고 알고 있다. 그러므로 연심에 뚜껑을 덮었는데, 어른스러워지는 카라마츠가 주는 독특한 미색에 연정을 떼는 것이 아까워 졌다. 적어도 다른 이의 것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카라마츠의 시선을 억지로라도 저에게 돌리고 싶다. 호의도 아니고, 무관심도 아니다. 싫어한다는 감정을 이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간단한 도발에 낚인 카라마츠는 큰 구경거리가 되어, 분노를 드러낸 표정으로 이치마츠를 깔아 눕힌다. 뺨을 때리고 발언 철회를 요구하며, 그래도 고집을 부려서 욕하면 그의 손이 이치마츠의 피부를 만졌다. 땀이 밴 살갗이 닿는 감촉에 소녀처럼 심장이 두근거린다. 좋아, 정말 좋아, 나를 더 만져줘.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의 마음에 거슬릴 말이다. 자극되는 아픔과 함께 그때만은 카라마츠를 독점하고 있는 게 무엇보다 기뻤다. 그리고 안도했다. 미친 듯한 감정을 가져버린 동생도 모르고 카라마츠는 팔을 휘둘렀다. 나름 조절하고 있지만, 그래도 피부를 괴롭히는 통증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기쁨이 등골을 달린다. 기분 좋다. 더, 좀 더, 조르는 말을 자제하면서 더러운 욕설을 늘어놓았다. 조금이라도 오랫동안 카라마츠의 시선을 빼앗기 위해.


「…이치마츠」



(히, 익―――…?!)

낯익은, 상냥하고 달콤한 음성이 귓구멍을 자극하듯 기어들어 왔다. 순간적으로 전신의 피부에 소름이 끼쳐 바로 등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거기에 카라마츠는 없다. 두근 두근 맥박치는 심장을 누르고, 이치마츠는 식은땀을 흘렸다.

(……기분 탓…?)

더위가 일으킨 환청인가. 그것치고는 묘하게 생생한 목소리였다. 혼자 동요하면서 그 자리에 서기를 몇 초. 이윽고 제 강한 욕망이 만들어 낸 착각이라고 판단하고 다시 고개를 돌리려 하자.

「너, 이 상처는」

「으아아아아아!!」

「…길가에서 큰 소리 내지 마, 창피하다」

뒤를 돌아봤을 때는 없던 카라마츠가, 다시 앞을 봤을 때 시치미 떼는 얼굴로 거기에 있었다. 놀란 나머지 멍청한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곧 카라마츠의  멱살을 잡고 이를 드러내며 위협한다.

「너, 잘도…」

손을 뿌리치지도 않고 카라마츠가 침착한 눈으로 이치마츠를 봤다. 냉정한 눈빛에 주춤했으나 표정으로는 드러내지 않고 카라마츠를 노려봤다.

「쉽게 말 걸지 마」

「옷이 피에 젖어 있군」

「아? 아아…이 정도는 늘 있는 거잖아. 뭐야, 걱정해주는 거냐?」

흥, 카라마츠는 안색을 바꾸지도 않고 똑같이 코를 울렸다. 꼭 거울 같다. 나를 흉내 내는 것 같아서 짜증 난다. 그래도 냉정하게 뱉은 말에 이치마츠는 몹시 당황했다.


「걱정해줬으면 하는가?」

물기를 띤 야한 음성으로, 그렇게 들리다니. 마음속을 꿰뚫는 것 같아 이치마츠는 수치로 얼굴을 붉혔다. 카라마츠의 멱살에서 손을 떼고 물러서듯 거리를 잡는다.


「…그럴 리 없잖아」

그래, 걱정해줬으면 해.

「기분 나빠. 따라오지 마」

제발, 말려줘. 그래도 어차피 귀염성 없는 소리만 하니까, 말리지 마.


혐오를 드러낸 말 뒤편에 숨겨진 마음 따위, 카라마츠는 몰라도 된다. 심술궂게 지나가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고 고개를 숙인다. 최악이다. 걱정해줬으면 하는가, 라니, 보통 물어 보냐. 어금니를 물고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감당하고 있자 등 뒤에서 이름을 불린다. 무시한 나는 카라마츠에게서 떠났다. 이치마츠는 고집을 고치는 방법을 몰랐다.



아침부터 시끄럽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이 1년에 한번인 여름 축제인 모양이다. 벌써 그런 계절인가, 이치마츠는 어둑어둑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물의 신을 모시는 축제. 현지에서는 수신님이라 불리는 그것에 매년 가는 것은 마츠노가의 행사가 되었다. 옛날엔 형제끼리 가는 게 당연했지만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는 친구와, 쵸로마츠와 오소마츠는 한발 먼저 축제에 갔다고 한다. 하필 카라마츠와 남다니 최악의 사태이다. 이게 형제들의 주선이라고 모른 채 이치마츠는 머리를 싸맸다. 누추한 사람들 사이를 좋아하진 않지만 가게에 늘어선 물건들은 보기만 해도 즐거워진다. 어두운 밤에 떠오르는 가게 등불은 환상적인 비일상을 보이고, 금세 기분이 좋아져 이치마츠는 반드시 축제 기분을 맛보고 싶었다. 그래도 카라마츠를 부를 용기가 없어 혼자 축제에 갈 생각이었다. 가서 형들과 합류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여기서 착오가 일어났다. 어머니가 이치마츠와 카라마츠에게.


「둘이서 사이좋게 나누렴」


한 장의 천 엔권을 주셨다.

단 천 엔으로 욕심을 채운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무엇보다 지폐 한장을 여기서 분배하는 건 불가능하다. 머리를 감싸고 싶은 상황에 카라마츠를 힐끗 보니 그는 까다로운 얼굴로 조용히 있었다. 아 역시. 카라마츠도 당연히 싫다. 나와 함께 축제에 간다니 즐길 수 없다. 한번 생각하니 금세 기분이 안 좋아진다. 바로 도망치고 싶다. 비록 천 엔이라고는 하지만 어머니에게 임시 용돈을 탄 것은 매우 반갑다. 카라마츠도 돈이 없으니 환호할 터. 돈은 포기하고 카라마츠와 따로 행동할 건가, 결론을 지으려고 하니 그가 중얼거린다.


「…가자」


「에」

「축제, 가자고」


무뚝뚝한 말에 평소대로 욕설을 날렸다. 왜 너랑 가야 하는 건데 까불지 마. 붙임성 없는 태도에 내심 울고 싶어진다. 사실은 카라마츠가 권유해서 엄청 기쁜 주제에, 그 기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털을 곤두세우며 짖는 이치마츠에게 카라마츠는 한숨을 쉰다. 천 엔, 내가 써도 될까, 어머니가 준 지폐를 팔랑거린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카라마츠에게 천 엔을 다 주기에는 왠지 짜증이 나 어쩔 수 없이 차남과 함께 축제에 갔다.


대화 다운 대화는 없다. 묘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둘은 축제에 갔다. 이미 날이 저문 탓인지 가게 등불이 반짝반짝 빛나, 이치마츠는 "와아"하고 감탄했다. 매년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아름다운 광경에 눈을 뺏기고 만다. 코를 자극하는 고소한 냄새, 멀리까지 붐비는 인파, 카라마츠와 함께인 것도 잊고 웃음을 띤다. 문득 눈에 타코야키 가게가 들어와 이끌리듯이 다가갔다. 바로 카라마츠에게 목덜미를 잡혀 "마음대로 가지 마"라고 혼났다. 횡포한 말투보다는 닿은 것에 두근거렸다. 두근, 두근. 일부러 불쾌한 목소리로 "시끄러워"하고 카라마츠의 등을 쫓았다.

검은 탱크톱을 입은 카라마츠의 육체는 이치마츠보다 훌륭하다. 늠름한 등에 시선을 빼앗긴다. 어렸을 때는 이 등에 얼굴을 묻고, 끌어안고, 냄새도 맡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할 수 없다. 열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니 카라마츠가 고개만 뒤로 돌려서 이치마츠를 봤다.


「…이치마츠」

「왜, 왜」

「뭐가 먹고 싶지」


아무래도 천 엔의 사용처는 음식 제한인 것 같다. 운치 없는 놈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맛있는 것들이 늘어선 가게에 눈을 빼앗긴 것은 이치마츠도 마찬가지였다. 오코노미야키, 사과 사탕, 초콜릿 바나나, 원하는 것을 말하면 끝이 없다. 어떡할까 고민하자 카라마츠는 낮게 말했다.


「괜찮으니까, 먹고 싶은 걸 말해봐」

「…많은데」

몇 번이나 말하게 하지 마, 카라마츠의 눈이 찔린다. 일단 말하라는 소린가. 울컥하면서도 절망한 이치마츠가 차례대로 원하는 음식을 말했다.

「타코야키 먹고 싶어. 오코노미야키도. 솜사탕도……」


이치마츠의 말을 듣고 카라마츠는 그런가, 하고 끄덕였다. 듣기만 하냐. 생각한 반응이 아니라 뺨을 부풀렸다. 등이라도 걷어찰까, 무서운 생각이 머리에 스친다. 슬슬 카라마츠의 등에 다가가 다리를 차려고 했을 때.

낯선 남자의 몸이 이치마츠에게 부딪혔다. 비틀거리는 몸을 지탱하려니 순간적으로 눈앞에 있는 카라마츠의 등을 붙잡았다.


「앗…」

「…!」


카라마츠가 놀란 듯 이치마츠를 본다. 이치마츠 또한 자신의 행동에 놀라 서서히 얼굴을 붉힌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잡아 버렸다. 빨리 떼야 하는데. 머리로는 할 행동을 알고 있는데 혼란스러움에 경직된다. 그러자 카라마츠는 냉정한 눈을 살짝 풀고 이치마츠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옷, 잡아도 된다」


아무래도 인파에서 떼어진다는 이유로 등에 매달린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설마 카라마츠가 그런 말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해, 이치마츠의 머리는 하얗게 물들었다.

 ―――웃기지 마, 기분 나쁘다고, 누가 네 옷을.

머릿속을 휘젓는 욕은 좀처럼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러긴커녕 카라마츠의 말대로, 이치마츠의 손가락 끝은 카라마츠의 옷깃을 잡고 있다.

(하, 왜, 왜 이 녀석 옷을 잡고 있는 거야)

있을 수 없는 상황에 식은땀이 흐른다. 이상하다고, 귓속에서는 마츠리바야시 소리가 울린다. 배에 울리는 북 소리, 사고를 망설이는 피리 소리, 새빨간 토리이 아래로 가니 축제에 온 참배객들로 가득 넘친다. 어쩌면 일상과 동떨어진 한때니까 평상시와 다른 행동을 한 걸지도 모른다. 카라마츠에게 욕만 퍼붓던 입술이 마비됐다. 탱크톱 감촉은 아주 기분 나쁜데도, 이치마츠는 땀이 흐르는 카라마츠의 체구를 응시했다. 눈이, 호흡이, 심장이, 모두 카라마츠에게 향한다.

(어떡하지)

어떡해야 할까.

(카라마츠의, 땀, 냄새)

가슴이, 무지 무지, 간지러워.

열에 들뜬 눈은 흐물흐물하게 녹아 간다. 신을 맞이하기 위한 피리 곡이 이치마츠를 이상하게 만든다.

밤의 장막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가게가 나란히 선 탓에 주위는 밝다. 만약 지금 그가 돌아보면 새빨간 얼굴을 보고 만다. 차라리 돌아섰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자, 카라마츠가 몸을 돌려 오코노미야키를 파는 가게로 다가간다.


「사 주겠다」

무뚝뚝한 목소리와 동시에 카라마츠는 제 지갑을 꺼냈다. 그 가운데 지폐가 몇 장 든 것을 보고 눈을 깜박인다.

「그 돈 어디서 났어」

「저금」

「거짓말」

「거짓말이 아냐」

의심하는 건 아니다. 그저 말 몇 마디라도 해 놓아야, 카라마츠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카라마츠는 오코노미야키를 사고, 타코야키를 사고, 솜사탕도 샀다. 이치마츠가 원하는 걸 하나씩 주는 그에게 "설마, 원하는 거 다 사주는 거야?" 놀림을 섞어 말을 걸자 카라마츠는 여길 보지 않고 중얼거렸다. "모두에게는 비밀로 해다오"―――그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조금씩 뜻을 되새기며, 이윽고 속으로 외친다.

그게 뭐야 그게 뭔데, 모두한테는 비밀이라니. 왜 오늘은 그렇게 다정한 거야. 날 싫어하지 않았어? 빙글빙글 입씨름을 반복하고, 이치마츠는 빨개진 얼굴로 입을 뻐끔뻐끔 움직였다. 여름의 마물에 먹힌 심장은 아무래도 명분이란 말을 송두리째 꾀어냈다. 땀을 닦는 것도 잊고,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탱크톱을 움켜쥐었다.





「…아, 불꽃」


카라마츠는 이치마츠가 원하는 걸 모두 사주었다. 엄마가 준 천 엔 지폐와 자신이 모은 돈으로 일부러 사 준 것이다. 혼자 다 먹을 수 있는 양은 아니다. 왜라는 질문은 몇 번이나 담았다. 카라마츠는 정확히 대답하지 않고 우물거리면서 신사 뒤쪽으로 돌았다. 다리 위에 앉아 산 음식을 펼쳐 "그럼 같이 먹자"하고 젓가락을 잡았다. 여기서 먹을 거냐고 놀라면서도 집에 가서 다른 형제들의 먹이가 되는 것은 아깝다. 오코노미야키를 맛보고 있으려니 나무 위에 발사된 불꽃이 보였다. 고운 빛이 피어 어두운 밤에 녹아, 뒤늦은 소리가 울린다. 고막을 떠는 기분 좋은 소리에 눈을 가늘게 뜨니 카라마츠도 오코노미야키를 먹으면서 얼굴을 들었다.


「예쁘군」

「응. ……썩을마츠랑 안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솔직한 말만이 넘쳐 속내를 감추기를 완전히 잊었다. 황급히 카라마츠의 마음에 거슬릴 만한 말을 내뱉자, 그는 불끈한 듯 미간을 찌푸린다. 이대로 때릴까, 태세를 취했지만 카라마츠의 표정은 금방 풀어진다. 미지근한 눈빛에 견디지 못해 먼저 시선을 피한 것은 이치마츠였다. 분위기가 깨진다. 축제라는 분위기에 맞춰 서로 묘한 기분에 빠진다. 원수 지간일 텐데, 두근거리는 설렘이 사고를 지배한다.


「…너는, 내가 싫은 건가」


불꽃이 핀다. 하늘하늘 내려오는 빛이 둘의 얼굴을 비춘다. 카라마츠는 부드럽게 웃었다. 평소의 이치마츠 같으면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주먹을 휘두를 것이다. 그런 사이다. 본래는. 그러나 이때만은 도망갈 곳이 없어, 카라마츠의 눈동자가 이치마츠를 제압했다. 끈적하게 얽히는 시선에 소름이 끼쳐 침을 삼키고 속눈썹을 떨었다. 대답은 정해져 있다. 물론 싫어. 본심을 드러내지 않고 준비된 말을 하면 이 자리를 참을 수 있을, 텐데.

말이 나오지 않는다.

(싫어, 싫어, 당연하잖아, 무슨 소리야)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다. 드러난 땀을 밤바람이 식히는 동안에도 이치마츠의 입술에서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이치마츠에게 시선을 돌리고, 카라마츠는 머리 위에서 빛나는 불꽃을 올려다보았다. 팡 터질 때마다 선명한 색이 흩어진다.


「…이치마츠, 왜 내가 너와 싸우는지, 알고 있나?」

느닷없이 무슨 소릴까. 아니, 카라마츠풍으로 말하면 아닌 밤중에 홍두깨인가. 상관없다. 말없이 고개를 젓자 카라마츠는 끈적하게 손을 뻗어 왔다. 손은 이치마츠의 목덜미에 왔다.

「!」

열을 가진 손가락이 목덜미를 덧그린다. 거기에는 전에 카라마츠가 만든 멍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뭐야, 여기서 하려고?」


카라마츠가 건다면 할 생각이었다. 싸움 상등. 비굴하게 입가를 비틀자 카라마츠는 "그것도 좋겠군"하고 낮게 내뱉는다. 말과는 달리 쓰다듬는 손끝은 크게 벌어진 가슴으로 기어든다. 황급히 몸을 잡아빼니 어이없게 손이 떨어진다. 안타까워하면서 지금 카라마츠가 뭘 했는지 생각만 해도 심장이 들썩인다. 가슴이 욱신거리고, 드디어 이 상황이 이상하다고 깨달았다. 마른 입술을 혀로 핥은 카라마츠가 조금씩 거리를 좁힌다. 타는 듯한 체온이 스치는 것만으로도 몸은 요란스럽게 튀어 오른다. 

귓가에서 이치마츠, 하고 질척한 목소리가 들렸을 때, 이치마츠는 "히, 익…!"하고 비명 같은 소리를 냈다. 쿵 쿵 쿵, 가슴에 부딪히는 심장 박동 때문에 호흡이 안 된다. 경악해서 시선을 헤매고 있자 카라마츠가 후후후, 웃는다.


「이치마츠의」

카라마츠의 젖은 한숨이 귀를 간질인다. 뜨겁고, 간지럽다.

「이치마츠의 품에 손쉽게 들어갈 방법은, 싸움밖에 없다」

귀에 들어간 한숨은 뇌를 녹인다.

「날 매도하는 이치마츠의 목소리를 가까이서 들으려면, 깔고 누를 수밖에 없어서」


질척질척한 저림이 사지에 감돌아, 손끝이 경련한다. 이상하다. 이런 전개는 상상도 못 했다. 서서히 떠오른 눈물이 눈을 덮고 이치마츠의 시야를 흐리게 한다. 멀리서 울리는 불꽃 소리가 묘하게 두드러져 이치마츠의 귀에 닿는다. 후들거리는 현기증이 느껴지는 상황에 조용히 호흡을 흐트린다. 하아, 하아, 하아, 짐승 같은 한숨은 이치마츠뿐만 아니라 카라마츠도 마찬가지였다. 열정을 드러낸 서로의 호흡이 섞여 꿈결 같은 기분이 되어, 이치마츠는 조금 있다가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야, 너」

카라마츠는 쓰게 웃었다.

「오늘은 이치마츠가 고분고분해서. …싸우지 않아도, 이치마츠를 만질 수 있지 않을까…했다」

「……잘, 모르, 겠는데」

「미안, 나도 모르겠다. 미안해. 내일부터는 원래대로 싸울 테니까」

「………」


카라마츠의 손이 천천히 이치마츠의 등을 두른다. 이치마츠가 화를 안 내는지 눈치를 보는 모양이다. 조심스러워하다 힘이 들어가 몸을 껴안는다. 진한 땀 냄새에 비명을 지르고, 이치마츠는 부들부들 떨었다. 왜 카라마츠의 팔 안에 있는 걸까. 영문을 모르고 굳어 있자 불꽃이 터졌다. 각양각색의 빛이 꽃잎이 되어 밤하늘에 흩어진다. 당황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역시 불꽃놀이는 아름다웠다.


「…불꽃은 예쁜데, 넌 정말…」

오늘의 주역은 틀림없이 불꽃이다. 형제, 하물며 남자끼리 껴안고 있다니 미쳤다고 볼 수밖에 없다. 쥐어짠 말에 카라마츠는 퉁명스럽게 속삭였다.

「……불꽃보다 이치마츠가 더,」


너 오늘 진짜 어떻게 된 거야.

사람이 바뀐 것처럼 달콤한 말을 늘어놓는 카라마츠에 입술을 물고 말을 죽였다. 지금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이치마츠도, 아마 카라마츠도 모를 것이다. 멀어지는 마츠리바야시 소리에 홀린다. 한여름의 추억에 둘은 졸면서 빠져들었다.





「이치마츠. 넌 정말 짜증 나는군」

「썩을마츠. 너도 진짜 더러워」

담담한 말다툼. 몇 초 후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는 몸싸움으로 넘어갔다. 이것이 마츠노가의 일상. 이치마츠는 마음속으로 살며시 안도했다.




모두 아는 대로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는 앙숙이다.

정보를 덧붙이자면, 이치마츠는 연심을 감추려고 주먹을 꺼냈다. 가까운 형제가 되는 것은 어렵다. 적어도 그의 시선을 한시라도 좋으니 독점하고 싶다. 스스로도 한심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만둘 수가 없다. 뺨을 맞고 받아칠 때마다 피부 냄새가 주위에 흩날린다. 더위에 찌든 땀이 짙어져 이치마츠의 몸을 뿌리부터 끓게 했다. 이 순간 카라마츠의 눈에는 이치마츠밖에 보이지 않는다.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복잡한 감정이 뒤섞이면서도 독점욕이 뱃속을 가득 채운다. ――카라마츠한테 다가가고 싶어. 나만을 요구했으면 좋겠어. 동생이라는 출발점을 이용하면서, 동생 같지 않은 행동으로 마음을 채운다. 이렇게 둘은 순조롭게 멀어지고 사라진 관계 뒤처리도 못 한 채 어른이 될 터였다.

축제 하룻밤. 야릇한 마츠리바야시 소리와 한여름의 바람이 현혹되어 이상한 꿈을 꾼 것 같다. 카라마츠와는 험악한 사이. 그런데도 그는 자애와 짐승이 섞인 듯한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 있다. 자신이 싸우는 이유가 뭔지 아냐고 물은 카라마츠의 의미를 헤아릴 수 없다. 당황한 이치마츠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이치마츠의 품에 손쉽게 들어갈 방법은, 싸움밖에 없다』

 ―――『날 매도하는 이치마츠의 목소리를 가까이서 들으려면, 깔고 누를 수밖에 없어서』

무자비한 말을 한다고 떨었다. 카라마츠의 이성을 날리고 즐길 생각이었는데, 그는 의외로 냉정했던 것 같다. 심장을 다섯 손가락으로 움켜쥐고 등뼈가 싸늘하게 떨리는 감각에 절망했다. 이성이나 지성은 필요 없다. 냉정한 머리로 생각하니 카라마츠가 그를 고를 리가 없다. 뻔하므로 이치마츠는 그의 말에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불꽃 등불을 받은 그가 색기 있고, 반해서 부은 마음은 더욱 악화된다. 누구에게 부딪힐 수 없는 감정에 잠식돼, 이치마츠는 떠오른 연심을 가라앉혔다. 이렇게 하면 평온해져, 이치마츠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들놈들한테 냉방을 쓰겠어, 어머니는 씩씩대며 에어컨 리모컨을 어딘가에 숨겨 버렸다. 덕분에 한여름을 가둔 실내는 몹시 무더워 아무것도 안 해도 땀이 난다. 아침부터 늘어진 이치마츠는 열대야에서 얕은 잠에 빠졌다. 이마에 드러난 땀 때문에 머리카락이 달라붙어 꿈도 최악이었다. 꿈속에서 이치마츠는 형제들에게 매도되었다. 친형에게 연정을 품다니, 미친 짓이다. 넌 이상한 새끼라고 들었다.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인 만큼 꿈이라고 알지 못한 이치마츠는 공포했다. 미안해 미안해, 몇 번이나 사과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얼마나 빌어도 모두의 싸늘한 시선은 바뀌지 않는다.

(―…………아, 꿈인, 가…!)

깨어나자, 이치마츠는 어이없는 얼굴로 잠시 천장을 바라봤다. 겨우 지금까지 꿈을 꾼 거라고 알고 안심하는 반면 심장이 아플 만큼 떠들어 댄다. 짜증나는 꿈. 최악인 꿈이다. 형제들에게 카라마츠를 향한 마음이 알려지리라고는, 정말 최악이다. 마음속에서 몇 번이나 중얼거리고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킨다.


「……당치도 않은, 꿈……히힛…」


이 마음을 그에게 전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이룰 전망 없는 연심을 언제까지 안을 생각도 없다. 적당히 버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목덜미에 흐른 땀을 손으로 훔쳤다. 열린 창문에서 후덥지근한 바람이 들어와 방 기온은 점점 오르는 듯했다. 마른 목을 손가락으로 쓰다듬고 일어선다. 휘청거리는 현기증. 가볍게 열사병이 일어난 걸지도 모른다. 사지가 무겁고 권태감이 몸을 가리고 있다. 벌레를 씹는 듯한 표정으로 혀를 차고 긴 한숨을 쉰다.

(이래서 여름은 싫어. 제길, 목말라. 머리 아파. 피곤해)

애초에 이치마츠는 몸이 강하지 않다. 정신의 어리광이라고 하면 그만이지만 사실 여름에 종종 몸 상태가 무너진다. 선풍기라도 쐬면 좋을지도 모른다. 달 뜬 몸에 땀이 너무 많아 많은 수분을 잃어 간다. 탁한 의식 그대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자.

터벅. 터벅. 터벅.

계단을 오르는 소리.

누군가 돌아온 모양이다.

시선을 움직이니 이윽고 발소리가 방 앞에 멈춰 문이 열렸다.


「……쵸로마츠 형」

녹색 파카를 든 똑같은 얼굴. 가장 먼저 색이 보여 희미하게 들뜬 머리로 바로 쵸로마츠라고 판단한다. 녹은 눈으로 애매하게 웃자, 이치마츠는 힘없는 모습으로 뒹군다.

「형. 왠지…몸이 나른해서 힘이 없어. 물 좀 가져다 줘」

「……」

쵸로마츠는 아무 말도 없다. 신경 쓰지 않고 말을 건다.

「아니면…음, 어부바」


히힛, 양손을 쵸로마츠에게 뻗는다. 물론 바라지는 않는다. 이러면 쵸로마츠가 늘 그렇듯 심한 태도와 말로 매도해 줄 거라고 알고 있어서 하는 행동이다. 한동안 쵸로마츠가 입을 열 것을 기다렸으나 얼마나 지나도 움직이려 들지 않아 그를 미심쩍게 생각한다.

"하아? 기분 나쁜 소리 마, 스스로 걸어"――쵸로마츠라면 이 정도, 경우에 따라서는 더 무뚝뚝한 말을 할 것이다. 그걸 기다렸는데 그의 입술은 굳게 닫힌 채이다. 이상해서 눈을 깜빡인다. 그러다가 흐린 시야가 선명해져 쵸로마츠의 눈이 자신을 핥듯이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끈적하게, 구석구석까지, 범하듯, 얽히는 시선에 피부에 소름이 끼친다.


「…쵸로마츠 형?」


녹색 파카를 가지고 있으니까 쵸로마츠 형. 그렇게 생각했는데.

입고 있는 건 엄마가 사온 흰 티셔츠. 그건 이치마츠도 가지고 있다. 위화감은 없다. 그럼 이 행동은 대체 뭐지, 자신에게 묻고 쵸로마츠의 손목으로 시선을 옮겼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금빛 팔찌. 그건 쵸로마츠의 취향이 아니다. 이런 걸 가진 형제는 한정되어 있다. 서서히 이해하는 가운데 이치마츠는 겸연쩍어 졌다. 딱히 혼날 짓은 안 했다. 안 했지만 이치마츠를 보는 그의 눈이 묘한 위압감을 갖고 심장을 압박한다. 침을 삼켰을 때 비로소 그 녀석이 입을 열었다.


「―――꽤 응석 부리지 않는가」


쵸로마츠의 목소리가 아니다. 역시 착각한 모양이다.

드디어 확신을 얻고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썩을마츠냐」

헷갈린다고, 낮은 목소리로 쌓자 카라마츠가 불쾌한 듯이 미간을 찌푸린다.

「멋대로 착각한 건 너잖나」

「녹색 파카」

「밑에 놓여 있었으니까. 치우려고 한 것뿐이다」

「…그게 헷갈린다는 거야」


켁, 괴로운 목소리를 흘려도 카라마츠의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희미하게 찡그린 눈썹이 그의 기분을 나타낸다. 이치마츠는 다다미 위에 대자로 누워 위협적인 눈빛으로 카라마츠를 노려본다. 방금까지 뇌속을 메운 악몽도 있고, 이치마츠도 기분이 좋지는 않다. 흥, 얼굴을 돌려도 피부를 희롱하는 후줄근한 시선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이치마츠의 얼굴을, 목을, 몸을, 하나하나 부드럽게 핥는다.

오싹, 허리 주변이 간지럽다. 카라마츠의 눈이 어쩐지 야해 보인다.


「……뭘 봐. 빨리 꺼져」


아무렇게나 몸을 돌려 무뚝뚝한 말을 내뱉는다. 더 이상 카라마츠의 시선에 노출되기 싫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파헤칠 것 같다. 이치마츠의 말을 따르지 않고 카라마츠는 발걸음을 옮겨 실내로 들어갔다. 서슴없이 다다미를 밟는 소리에 갈수록 기분이 떨어진다.


「귀까지 맛 간 거냐? 꺼지라고 하잖아. 너 따위에―――……응냣!!」


볼일 없어, 그러나 그보다 먼저 카라마츠의 손이 이치마츠의 귀를 잡았다. 놀라서 눈을 크게 뜨자 그대로 잡아당겨 억지로 카라마츠를 마주 보게 됐다. 서로 부딪히는 시선. 카라마츠의 눈은 뒷일이 무서운 압박감을 발한다. 숨이 막힌 이치마츠의 말은 나오지 않는다. 매도 하나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카라마츠의 기분이 밑바닥까지 떨어진 것을 깨달았다. 그대로 몸싸움으로 나아갈까. 한 번 말을 나누기보다 가만히 주먹을 부딪치는 게 낫다.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고 미지근한 물에 빠지고 싶다. 만약 산소가 부족해서 물 밑으로 떨어지더라도 그 편이 훨씬 좋다. ―――카라마츠는 움직이지 않는다. 평소처럼 손을 대지도 않고 이치마츠를 가만히 바라본다.


「……뭐, 뭐야」


겨우 짜낸 목소리는 불쌍할 정도로 떨고 있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여름 축제에 일어난 사건은 서로 잊었을 것이다. 원래대로 돌아갔을 텐데,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땀이 이마에 떠오르며 떨어진다. 이상한 긴장감에 휩싸인 심장이 가엾을 정도로 창백해졌다.


「…더럽군」

차가운 목소리로 카라마츠가 말했다. 하아? 의아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반문하니 땀에 젖은 이치마츠의 피부에 손가락이 기어갔다.

「땀이, 바닥에 떨어지잖아」

이치마츠의 피부를 덮은 대량의 땀이라고 이해했다. 말 안 해도 알고 있어. 일부러 얼굴을 찌푸리고 카라마츠를 노려보았다.

「…시끄러워. 손대지 마」

나른한 몸을 억지로 움직여 카라마츠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것도 허락하지 않고,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귀를, 뺨을, 목을, 어루만진다. 이치마츠의 땀으로 젖은 손이 빛에 축축하게 빛난다.


이치마츠는 현상에 만족하고 있다. 비록 그가 이성을 날리지 않고 소통 중 하나로 이치마츠와 싸운다 해도 사랑을 털어놓을 생각은 없고, 더군다나 이룰 생각도 없다. 동생으로서 이치마츠를 계속 보는 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아니면 나락에서 비극에 잠긴 채 이 마음이 썩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제 손으로 죽일 수조차 없는 사랑의 종지부를 기다리다 지쳤다.


「……우앗, 무, 무…무슨……」


뺨에 느낀 부드러운 감촉에 몸을 떤다. 수상한 모습으로 올려다보니 카라마츠의 얼굴이 상상 이상으로 가까이 있어 비명소리가 목까지 올라온다. 입술 사이로 붉은 혀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이치마츠는 허리 주변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뭐야, 뭐야, 하아? 당황한 이치마츠지만 카라마츠의 얼굴이 다가와 땀을 핥는 것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무무무무무무뭐 하는 거야 새꺄!!」

카라마츠의 안면을 손가락으로 잡고 억지로 떼어 내자, 그는 겨우 겁 없는 미소를 띤다.


「…넌 정말 나를 얕보고 있군」

「하?」

「땀은 짜다. 나쁘지 않지만」

「…아니, 그러니까」


그렇지 않아. 그게 아니라.

왜 혀로, 더럽다고 한 내 땀을 핥는 거야.

비난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도 카라마츠는 내색하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쏘아붙인다.




「―――다시는 너와 싸우지 않겠다」


무뚝뚝한 말투에 경직한다. 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몇 초, 수십 초가 지난다. 서서히 장이 식는 것을 느끼고 조용히 숨을 쉰다. 싸우지 않겠다. 그건, 유일한, 흥분하는 순간을 빼앗긴다는 것. 카라마츠의 눈을 독점하고,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단둘인 기분을 맛볼 수 있는데 그걸 잃는다는 것이다. 떨리는 혀로는 말을 할 수 없어, 이치마츠는 떨면서 카라마츠를 봤다. 그는 불량하고 다정한 미소를 얼굴에 붙였다.




왜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우린 잘하고 있었잖아. 앙숙으로서, 싸우고, 균형을 맞추고 있었을 텐데. 왜 갑자기 종지부를 찍는 거야. 의문만이 솟구쳐 이치마츠의 눈에 눈물이 떠올랐다. 울먹이는 시야로 그는 표정을 풀지 않고 이치마츠를 내려다봤다. 계속 좋아했다. 형으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남자로서, 사랑에 애가 탔다. 겨우 마음을 평온하게 할 방법을 얻었는데 그의 말은 너무나 잔인하다. 목이 막힌 것처럼 숨이 답답해 손끝이 멋대로 떨린다.


「……왜,」

영문을 모르겠다. 마침내 버려진 걸까.

「……왜, 그런 말, 하는 거야」


꼴사납게 매달리기 싫다. 그야 나는 네가 싫으니까. 네 말을 신경 쓸 필요는 없어. ―――그런 건 다 거짓말이다. 아무리 버둥대도 카라마츠를 가장 좋아하고 더욱 관심받고 싶다고 생각한다. 형으로서의 다정함을 이용해, 내심 어이없다고 해도 그의 눈을 한시라도 독점할 수 있으면 된다. 될 터, 인데. 저릿거리는 둔통 때문에 의식이 뚜렷하지 않다.

싫어, 싫어, 그러지 마.

떼쓰고 싶다. 하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본심을 숨기지 않고 내뱉다니, 지금까지 한 적이 없다. 아니, 어렸을 때는 너무 고분고분해서 호의를 솔직하게 전했다. 형으로서 카라마츠를 존경하고 형의 등을 쫓고 있었는데, 왜 그런 간단한 일도 못 하게 된 걸까. 그저 감정을 말로 하는 게 너무나 어렵다. 나이를 먹고 굳은 입술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애초에 솔직해져도 자신이 원하는 것은 얻을 수 없다. 추악하게 부푼 연정을 왜 친형에게 향한 걸까. 깨달았을 때에는 눈으로 카라마츠를 쫓아 엄청난 열정을 불태워도, 어리석은 형은 알아주지 않고 지금까지 연극에 어울려 주었다.

 ―――비록 동정심이라 해도 네 상냥함을 이용해주지. 그걸로 얻는 순간의 평온은 의외로 나쁘지 않아. 언젠가 버려질 때까지 즐기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왜. 몇 번이나 반복한 의문에 눈을 깜빡인다. 머리가 아프다.


「……그런 선언 하지 마!」

열사병으로 흔들리는 뇌에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일으킨다. 카라마츠를 넘어뜨려 멱살을 잡는다. 후우, 후우, 거친 한숨을 흘리며 노려보자 카라마츠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심하지 않은가」

「아앙?」

「네가 바라는 일을 해도, 결국 난 쵸로마츠를 당해낼 수 없다」

「……하아?!」

점점 의미를 모르겠다. 의아한 표정을 짓자 카라마츠는 말을 겹친다.

「밉군, 이치마츠. 어떻게 하면…네 여길, 손에 넣을 수 있지…?」


카라마츠의 손가락이, 손톱이, 이치마츠의 가슴을 찌른다. 통증보다 먼저 카라마츠의 달콤한 눈빛에 오는 현기증. 숨이 차다. 순간적으로 카라마츠의 멱살에서 손을 떼고 망연자실한 채 그를 본다. 여기, 라고 찌른 손가락은 심장 근처를 찌르고 있다. 문질, 문질,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아프다. 동시에 간지러워서 이치마츠의 뺨이 어렴풋이 붉어진다. 그렇게 만지는 게 더 미워. 방금 내친 주제에 기대할만한 소릴 하다니.


「……네가 더 너무해」


카라마츠의 손을 두드린다. 언제까지 만질 거야. 거긴 네가 만져도 좋은 데가 아니야. 적당히 애무해도 비참해질 뿐이다. 입가를 내리고 카라마츠의 허리 주변에 올라타 지금까지 모은 감정을 조금씩 흘린다.


「질렸어? 아니면 버리려고? 같은 쓰레기 주제에 그럴싸하게 벗어나려고? 무리지. 넌 어차피 같은 구멍의 너구리. 썩을마츠한테는 밑바닥이 어울려」

「……음. 이치마츠. 넌 하나, 아니 두 세 개, 큰 착각을 하고 있군」

「착각?」

「아아」

카라마츠는 묘하게 웃는다. 눈꼬리를 내리고, 조금 곤란한 듯이. 뭘 착각했다는 거야. 얼굴을 찌푸리자 카라마츠는 다정한 목소리로 말한다.


「…사실은, 이치마츠의 응석을 받아주고 싶다」

「머리를 쓰다듬고, 안아주고, 부드러운 말로 풀어주고 싶어」

「빨개진 볼을, 할 수 있다면, 만지고 싶다」

「――그래도, 넌 그걸 바라지 않아」


카라마츠의 눈이, 목소리가, 체온이, 냄새가, 너무나 달콤해 굳어진다. 그런 이치마츠의 뺨을 만지려고 했는지, 뻗으려는 손을 허공에서 멈추고 자애로운 표정으로 웃는다.


「…그래서, 대답하려고 했는데」


슬픈 얼굴로 시선을 돌린 카라마츠는 갑자기 자조했다. 무언가를 포기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아프다.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야 그런 실없는 말은, 남자한테, 더군다나 동생한테 할 말이 아니다. 그 정도는 구별할 수 있다. 이상한 건 틀림없이 카라마츠 쪽이고, 당장 도망치고 싶어진다. 서투른 형이 무엇보다 서투르다는 거짓말,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진짜 의미는 아마. 짐작하듯 카라마츠의 눈치를 보자 그는 괴로운 듯 말했다.


「……그래도, 이제 그만두자」

「……그러니까 왜」

「그야…」

카라마츠는 말을 끊고 고뇌를 밴 목소리로 말한다.


「나도, 널 업고 싶어…!」

온순한 얼굴로 무슨 말을 할까 생각했는데. 냉정해진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뺨을 주먹으로 쳤다.



올 여름은 평소보다 더울 듯하다. 매년 뉴스에서 같은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확실히 올해는 덥다. 그야말로 머리가 이상해질 만큼 찌는 날씨다. 더위로 축 늘어진 이치마츠는 필연적으로 집에서 지내는 날이 늘어났다. 텔레비전을 쳐다보거나 토도마츠가 준 고양이 관련 잡지를 보거나, 밖에서 시끄럽게 우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빨리 여름이 끝나기를 바랐다. 가을이 되면 무더운 열기가 떠나고 카라마츠도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다. 지금 그 녀석은 제정신을 잃은 짐승이며, 제 행동이 얼마나 상식을 벗어났는지 모른다. 머리가 아픈 언동들이 생각나 얼굴을 찌푸리니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식은 보리차를 든 쵸로마츠가 거실 입구에 있었다.


「수분 안 챙기면 다시 더위 먹는다」

「…아ー…」

「카라마츠가 걱정했어」

「……」


테이블 위에 컵을 두고 쵸로마츠는 쓰게 웃는다.

그 뒤, 즉 카라마츠가 더위에 당해서 이상한 소리를 지껄인 뒤 이치마츠는 열사병으로 쓰러졌다. 라고 해도 의식은 있고 심한 현기증에 사로잡혔을 뿐 수분 섭취와 얼음 베개로 머리를 식히니 나름대로 상태가 나아졌다. 겸연쩍은 얼굴로 보리차에 입을 댔다. 목을 움직일 때마다 열에 시달리던 몸이 식어 가는 것을 느꼈다,


「좀 살겠다」

조용히 중얼거리자 쵸로마츠가 살짝 웃었다. 시선을 보내니 그는 턱을 괴고 유쾌한 듯이 입가를 풀고 있었다.

「그래서?」

「에?」

「다시 살아난 감상은」

쵸로마츠 치고는 묘한 표현을 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나름대로 걱정한 걸지도 모른다, 이치마츠는 픽 웃었다.

「…솔직히 아직 산 기분은 안 들어」


앞머리를 쓸어 올리고 책상에 엎드렸다. 나오는 한숨은 자연스럽게 무거워져, 이치마츠의 표정은 근심으로 가득했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지 쵸로마츠는 "흐응"하고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뉴스를 바라보았다. 한여름 날씨에 맞춰진 열사병 환자의 증가와, 비가 오지 않아 심각한 댐의 물 부족, 우울한 보도만 나와 기운이 빠진다.


「그 녀석이 무슨 짓 했어?」

「…했다고, 할까…」

「응」


말을 흐리고 방금 전의 일을 떠올린다. 그 녀석이 무슨 생각인지 이치마츠도 모른다. 어쩌면 동정하는 걸지도 모른다. 몇 번이나 자신에게 그렇게 타일렀건만, 좋을 대로 해석하게 된다. 원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연심을 억지로 끌어당겨 아주 기분이 나빴다. 차라리 뿌리쳤으면 한다. 기분 나빠, 수치를 몰라, 벌레가 달려가는 기분이다, 그렇게 욕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달콤하게 제 이름을 부른다. 꼭, 이치마츠를 요구하는 것처럼.


「――――…」


쵸로마츠에게 말할 수 없다. 말을 찾아도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이치마츠는 눈을 내리깐다. 긴 속눈썹이 가냘프게 떨린다. 늘 카라마츠가 싸움을 사고 둘은 다투는 사이였다. 요 몇 년에 구축된 관계성으로 악화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와서 형제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카라마츠의 특별한 사람으로 있고 싶다. 형제 중에서 유일하게 사이가 나쁘다는 포지션은 비극적이고, 게다가 고양감을 얻을 수 있다. 어차피 언젠가는 손안을 떠나 멀리 갈 사람이다. 약간의 고집은 용서했으면 한다.

하지만 카라마츠는 분명히 말했다.

 ―――사실은, 이치마츠의 응석을 받아주고 싶다.

 ―――머리를 쓰다듬고, 안아주고, 부드러운 말로 풀어주고 싶어.

 ―――빨개진 볼을, 할 수 있다면, 만지고 싶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허리가 저릿거린다. 무슨 생각으로 했는지 모를 말에 고민하고 입술을 문다. 

 ……나도 너한테 응석 부리고 싶어. 그래도 그건 동생으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욕심부리자면 연인 같은 달콤한 꿀을 원한다니―――절대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치마츠도 바보는 아니다. 카라마츠의 목소리와 표정이 동생을 향한 것은 아니라고 알고 말았다. 눈 안에 켜진 정욕의 냄새에 몸은 기뻐하고 떤다. 숙인 얼굴을 들어도 쵸로마츠의 얼굴을 볼 수 없어 고개를 숙인다. 편리한 해피 엔딩은 옛날부터 질색이었다.


「……뭐 상관 없지만, 아마 너가 부러지면 그 녀석도 만족할 거야」

그리고, 말을 이으면서 쵸로마츠는 미간을 찌푸린다.


「…쓸데없는 일로 원한을 사고 싶진 않으니까」


나직이 입안에서 구겨진 말을 자아낸다. 그러나 이치마츠의 귀에는 닿지 못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에, 왜?」

「아무것도 아니야. …아~. 너네 진짜 귀찮아…」

「하아?」

「아무튼, 카라마츠한테 응석 못 부리겠다고 나한테 오지 마! 여러모로 뒤처리 힘드니까!」

「……응?」


멍한 표정으로 놀란 이치마츠에 쵸로마츠는 한숨을 쉰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행동에 휘둘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쵸로마츠가 보면 서로 마찬가지다. 왜 쉽게 이어지지 않는지 쵸로마츠에게는 신기할 정도이다. 고분고분하고 얌전한 성격이라고 알고 있지만, 카라마츠 앞에서는 순식간에 어금니를 드러낸다. 그래서 카라마츠에게 욕구가 쌓이고 발산할 수 없어 울분에 유린된다. 언젠가 무너질 거라고 생각한 관계에 드디어 금이 간 것 같아 조용히 안도했다. 그냥 아무 일 없이 잘 되면 좋겠건만, 이치마츠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와, 뭐, 뭐야」

「아니야」

「…아픈데」

「아?」

「……」


뭔가 말하려는 이치마츠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고 만족한 쵸로마츠는 시선을 거실 입구에 돌린다. 미닫이 너머에 숨은 형의 기색에 입가를 내리고 다시 한숨을 쉰다. 과연 어떤 표정으로 여길 보고 있을지 짐작이 간다. 여유를 잃은 짐승의 시선은 너무나 날카롭고, 안타깝게 젖어 있다. 그런 눈으로 애가 탈 정도면 빨리 강간해라, 쓰게 웃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삼켰다.


마츠노가 차남인 카라마츠와 사남 이치마츠는 앙숙이다. 라는 건 표면적인 관계.

이치마츠는 모른다. 자신이 연정을 숨기고 한시라도 카라마츠의 시선을 독점할 의도로 주먹을 휘두르는 것처럼, 카라마츠도 비슷한 이유로 주먹을 휘두른 것을. 피부가 닿을 때마다 기뻐하는 건 이치마츠만이 아니다. 더 말하자면 이치마츠보다 성가시게 집착하는 카라마츠는 분명 지금도 닿을 수 없는 답답함에 애가 탈 것이다. 정말 귀찮은 놈들이라고 혀를 차면서 웃었다.


「…여름 탓 할 수 있을 때가 기회야」


반응하는 매미 소리. 따뜻한 바람에 달라붙는 땀 냄새. 눈부신 햇살이 비친 다다미가 색을 바꾼다.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이치마츠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최근에 산 참고서를 폈다. 방학이 끝나면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이를 위한 숙제뿐만 아니라 공부에 힘쓰는 쵸로마츠를 다른 형제, 주로 오소마츠가 비웃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시간은 담담하게 지나간다. 여름은 순식간에 끝나고 가을이 찾아오고, 겨울이 찾아오고. 열 때문에 머리가 미칠 수는 없다. 어서 외고집을 그만뒀으면. 쵸로마츠는 참고서를 바라보았다.


「……쵸로마츠 형, 전혀 모르겠는데」

「아앙?」

「………아무것도 아닙니다」


왜 그렇게 기분 나빠하는 거야! 내심 외치면서도 참고서를 보는 쵸로마츠를 방해하지 않도록 방을 나가려고 했다. 미닫이를 열었더니 "와악!" "꺄아!" "써, 썩을마츠! 왜 그런 곳에 있는 거야!" "에 아니 나는……" 하는 대화가 들려 온다. 그들의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을 모양이다. 매미보다 시끄럽고 귀찮은, 고집스러운 상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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