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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카오.

마음이 둥실둥실 떠있는 카오루 군과, 땅에 다리가 붙어 있는 카나타 군의 이야기.

※자살하려는 카오루의 군 묘사가 있습니다 

※약간 미래 조작





밀렸다 돌아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전부터, 하카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시간 중 하나였다. 그래서 죽는다면 바다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런 일을 실천하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무섭다. 죽는 건, 무서워.



그래서, 지금밖에 없다고 생각해, 하카제는 자신을 붙잡는 여러 잡념을 뿌리치고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물속에 발을 내디뎠다.



신발은 원래 벗어야 하던가, 사고의 그물을 빠져나와 떠오른 생각에 하카제는 잠시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런 잡다한 생각을 하고 있으면 어떤 무서운 일도, 특별한 일도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한 걸음, 또 한 걸음, 하카제는 필사적으로 사고를 멈추고 나아갔다. 모든 것에서 도망치려면 이게 절호의 기회였다. 분명 지금 놓치면 두 번 다신 없다. 틀림없이. 그게 분명 자신이 가야 할 길이었다. 여러 가지 변명을 구사하고, 어둠에 맡겨, 아무것도 보지 않도록 노력했다.



머지않아, 정말 돌아갈 수 없는 경계다. 목에서 흔들리는 수면에 하카제는 처음으로 발을 멈췄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고 크게 한 걸음 내디딘 하카제의 귀에 닿은 것은, 어쩐지 무척 그립고, 들은 적 없는 목소리였다.





「카오루, 데리러 왔어요~」



푸카, 푸카. 평소 페이스로 천천히 말하는 신카이는 이상하게 유무 없는 압력을 갖고 있다. 이런 점은 역시 제 유닛의 리더를 닮았다고, 삼기인이라는 그들 공통의 이름을 떠올린 하카제는 한숨을 쉬고 일어섰다.



「나 하나 없어도 늘 잘 되잖아」

「그래도, 카오루가 있는 편이, 편하니까요~」



게다가 생선들도 기뻐한다고, 정말인지 망상인지 하카제는 판단할 수 없는 말을 하면서 신카이는 하카제의 손목을 단단히 잡고 부실로 불렀다. 이런 권유로 하카제가 얌전히 따라가는 건 그밖에 없다. 뭐, 한 명 더 심하게 데려가는 후배도 있지만 그의 경우는 얌전히 끌려가기 때문에 옴짝달싹 못 한다.



뭐 하러 왔냐는 시선을 보내는 부활동 후배의 시선에는 익숙해져있지만, 그래도 그가 평소처럼 잔소리하지 않는 건 그의 목덜미를 꽉 잡은 신카이의 뜻을 살핀 것이다. 최근, 하카제는 부활동에 자주 얼굴을 비추고 있다. 그건 신카이가 바라기 때문이다. 이 후배는 신카이가 하는 일을 헛되게 할 수 없다.



「수조 교체는 어떻게 해?」

「이 아이들이 커져서, 다른 수조로 옮기는 거에요」



도우라는 작업을 물으면 신카이는 이미 하카제에게 손을 떼고 수조를 사랑스러운 듯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 서서 보고 있으니, 확실히 수조 위는 작은 케이스에서 헤엄치는, 지난달 말에 태어났다는 아이들이 조금씩 커져 있었다. 이 케이스는 좁아졌겠지.



「흐응. 이 케이스에서 나오기만 하면 안 돼? 아직 아기잖아」

「맞아요. 아직 아기니까, 다른 수조로 나누는 거에요」



먹혀버리니까, 간단히 이어진 말에 하카제는 살짝 놀라, 귀여운 얼굴을 한 작은 물고기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재킷을 벗고 소매를 걷은 뒤 하카제도 둘을 따라 신카이의 지시대로 물고기를 바꿔 넣고, 어항 청소를 하거나 요즘 익숙해진 부활다운 일을 묵묵히 이었다. 해양생물부에 하카제가 몸을 둔 것은 바다를 좋아한다는 최소한의 말과 땡땡이치기 쉽다는 중요한 동기이기에, 그동안 성실하게 부활에 참가한 적도 없고 물고기에 대한 깊은 애정도 없다. 그래도 물고기를 보살피는 일은 그리 싫어하지 않았다. 어찌 됐든 그들은 조용하니까.



유닛 연습이 있다고 먼저 나간 후배를 배웅하고, 먹이 주기나 비품 점검 따위를 하고 있자 창 밖에서는 완전히 해가 떨어졌다. 유닛 연습엔 안 가도 되냐는 말에 하카제는 마음에도 없는 대답을 적당히 둘러댔다.



「괜찮아. 꼭 있어야 할 때는 사쿠마상이 말하니까」

「오늘은 없어도 되는 날, 인가요?」

「응, 그렇지. 뭐 후배들은 불평하겠지만~, 내가 없어도 별일 없어」

「…그럼, 바다에 가요, 카오루」



같이. 하카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빨리 가야 하는 이유는 하나도 없고, 이런 시간부터 생각 없이 만날 여자애를 꼬실 마음도 없다. 안성맞춤이었다. 그리 판단하니 신카이가 부른 이유를 알았다. 그는, 지금 하카제를 제어하려는 것이다. 좀 나쁘게 말했지만 신카이는 하카제를, 아마 어떻게 하려는 거다. 그래서 이렇게 부활동에 불러 제 옆에 하카제를 두려 하고, 하카제가 신카이의 행동에 얌전히 따르는 것은, 그에게 빚을 져 약점을 잡혔기 때문이다.



하카제가 자살을 시도한 밤, 그를 구하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음 날 아침을 맞게 한 건 신카이였다.







「요즘 부활동에 나가게 됐구나」

「…그래서?」

「뭐, 좀 더 이쪽에도 나와줄까 했다네, 여자와의 데이트는 그만두지 않았나?」

「그만둔 거 아니야. 잠깐 쉬는 거니까.…아니,그거랑 유닛 연습에 올지 말지는 다른 이야기 아니야?」


귀찮은 사람한테 잡혔다고 눈을 찌푸렸다. 대낮에 다닐 리 없는 사쿠마와 만난 것은 보건실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잠을 보충하려고 온 거지만, 평소 제 관에서 자고 있는 사쿠마가 이런 시간에 일부러 보건실에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 말 하려고 기다렸어?」

「듣기 안 좋구먼, 이 몸도 보건실에 볼일이 있을 뿐일세」



그러셔, 한숨을 쉬었다. 비 때문에 옥상에도 못 가니까 보건실로 온 건데, 부실로 가야 했나 하고 새삼스럽게 떠올렸다. 펌프 소리가 반복해서 나는 그 부실은, 무음보다 오히려 조용히 들려서 기분이 좋다.



「카오루 군, 무리해서 연습에 참가하라는 말은 아니네. 그저 이 몸은, 좀 더 카오루 군과도」

「미안 사쿠마상. 수면 부족이라 좀 힘들어. 자도 될까?」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사쿠마 옆을 지나 커튼을 쳐 사쿠마와의 거리를 만들었다. 한숨이 들렸지만 무시하고 눈을 감았다. 수면 부족은 사실이다. 집에서는 편히 잔 적이 없다. 언제 어디서든, 하카제가 설 자리는 없었다. 딱히 그게 괴롭지는 않다. 그야 비교 대상이 없으니까 무엇이 괴로운지 모른다. 자기가 있을 곳이 있다면 어땠을지, 그건 하카제 자신과 상관없는 이야기다. 모르는 일은 아무래도 좋다.



어항 안에 있는 꿈을 꾼 것은, 그런 생각을 안고 자서인지도 모른다. 이상하게도 숨이 가쁘지 않은 어항 속에 홀로 앉아 있었다. 어항은 교실보다 좁고 살기에는 거북한 크기였는데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런가, 여긴 내가 있어도 될 곳이구나, 생각하니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아 안도의 숨을 쉬니 뻐끔뻐끔하고 거품이 천장으로 빨려들었다. 생선에게 하듯, 천장에서 먹이를 주는 건 신카이였다. 여긴 부실의 어항 중 하나인 것이다. 그래, 그럼 여기라도 좋지 않을까 하고 카오루는 먹이를 무시하며 눈을 감았다. 아무튼 졸렸다. 잘 수 있는 곳이 필요했으니까, 왠지 평온한 꿈이었다.







방과후 시간을 신카이가 부르는 대로 얌전히 부실에서 보내게 된 하카제는 그래도, 헌신적으로 일하는 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배짱은 없지만 어느  정도 일을 도우면 뒤는 조용히, 어항을 바라보는 게 일과였다. 성실하게 활동하고 있는 신카이나 후배는 설거지나 재료 운반으로 부실에 없을 때가 잦아, 그럴 때면 이곳은 물고기와 하카제와 어항만의 공간이 된다. 꽤 나쁘지 않았다.



바다에서 죽고 싶다고, 하카제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죽고 싶다는 건 아니다. 그건 중요한 구별이지, 그저 하카제는 무엇을 비관하지도 고통스럽지도 않고, 평범하게 내일도 살고 싶다. 아프고 괴로운 건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죽는다면 바다가 좋다는 건 양보할 수 없는 마음으로 갖고 있다. 이 방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하카제의 터무니없는 욕망이 어딘가 충족된 듯한 기분이 되었다.



조용하고 어두워서 기분 좋다. 언젠가 제 방을 이렇게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만, 부원들처럼 적극적으로 보살필 마음은 없고 현관 앞에서 끝없이 어항을 씻는 제 모습도 상상이 안 가 포기했다. 한두 개의 수조로 이렇게는 안 된다. 이 방처럼, 바다로 착각할 만큼 물과 거품이 있는 세계가 있는 게 좋다. 어항 하나로는 견줄 수 없다.



「카오루, 아직도 있었네요」



보글보글거리는 펌프 소리에 몸을 맡기고 졸던 하카제의 귀에 신카이의 목소리가 닿은 건 해가 떨어진 뒤였다. 천천히 고개를 드니 신카이는 뭔갈 정리하는 듯했다. 후배는 유닛 연습으로 빠진 것 같다. 곧 외부에서의 일이 있다던 말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도와줄까?」



이제 끝났다는 부정의 말이 끝나기 전에 신카이는 비품용 사물함을 닫았다.



「카오루, 지금부터 바다에 가지 않을래요?」



신카이의 말은 파도 감도는 소리가  난다. 그건 상냥하기도, 무섭기도 하고, 그는 의외로 감정적이다. 그래서 강한 파도 같은, 거역할 수 없는 목소리에 하카제는 본능적으로 혼나는 아이 같은 불안을 안았지만 결국 수긍했다. 약점을 잡혔다는 이유가 아니라, 그의 말은 하카제에게 파도와 같다. 자연스럽게 밀려오는 큰 파도가 두렵더라도, 불평하며 멈추려고는 하지 않는다. 몸을 맡길 수밖에 없는, 뭔가 대단한 일부 같은 것이었다.



오늘도 이러저러해서, 어른스러운 신카이를 따라온 하카제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어두운 물가에서 노는 신카이를 보며, 새카맣게 흔들리는 바다를 봤다. 바다에서 죽고 싶다곤 하지만, 그래도 저 안으로 들어가는 건 무서워서, 역시 이미지는 낮 바다가 좋겠다, 어긋난 사고로 그날 밤에는 내가 좀 이상했구나 회상하고 있자, 마침 신카이도 그날 일을 물어 하카제는 심해로 시선을 되돌렸다.



「카오루, 왜 그날, 바다에 들어가려고 했나요」

「…새삼스럽네」



사실, 그날에도 물어봤을지 모른다. 하지만 기억이 없다. 평소에는 곧이곧대로 용서해주는 그가 대답을 원할 때는, 어쩐지 사쿠마를 대할 때처럼 잘 뿌리칠 수 없지만 하카제는 대충 둘러댔다. 속이려는 것보다 적절하게 대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카오루가 「말하고 싶지」않다면, 묻지 않아도 되겠지만…역시, 전 카오루가 죽는 건, 싫어서」



듣고 싶다는 결론에 이른 신카이의 말은 지당한 일이었다. 자기도 만약 그를 구했다면 똑같이 말했겠지. 그가 사라지는 건 쓸쓸하다.



「…큰 의미도 없어. 그러니까, 카나타 군한테는 감사하고 있어. 카나타 군이 구해줘서 다행이라고. 정말」

「아무 일도 없어서, 카오루는 바다에 들어간 건가요」



그건 자살이라는 거라고, 죽고 싶으니까 하는 거라고 신카이가 말했다. 그는 바보도 아니니 분명 죽고 산다는 말에는 민감한 편이다. 그의 배경 따위를 짊어진 적 없는 하카제는 자세히 듣진 못했지만, 좀처럼 복잡한 환경에 사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배려할 순 없다. 하카제의 목숨은 하카제의 것이니까.



「…아무 일도 없으니까 사는 것처럼, 아무 일도 없어서 죽는 것도 이상하지 않잖아」



최대한 가시 없게 말할 생각이었지만 실패한 모양이다. 신카이가 생각에 잠긴 듯 미간을 찌푸린 게 희미한 달빛 속에서 엿보였다.



「…아무 일도 없어서, 인가요」



정말? 이라고 묻는 듯한 목소리였다. 실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신카이에게 그런 의도는 없고, 그냥 하카제가 그렇게 받아들였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뭔가 혼나는 느낌이라 하카제는 부러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무 일도 없으니까, 그런 기분이 된 것뿐. 그래서 구해줘서 고맙다고 하는 거잖아. 바다에 불린 걸까?」



물론 죽고 싶은 건 아니니까, 뒤에 붙인 말은 사실이지만 어느 정도 전해졌을지는 모른다. 다만 이것저것 있는 일 없는 일을 상상해서 걱정하거나 아파하는 건 싫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하카제는 신카이를 향해서 웃었다.



「왜 그랬냐고 해도 정말 아무것도 없어. 그냥 바다에 들어간 거지. 마가 끼었다든가 하잖아. …그러니까, 그날 일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카나타 군도 잊어 줘」

「저는,」



손을 흔들며 웃는 하카제의 시야에, 잔잔한 바다 같은 눈동자가 보였다.



「저는 그대로, 카오루를 뺏기는 게, 무서웠어요」



그 말의 의미를 잘 생각해보는 건 조금 어려워, 그리 깊이 생각하진 못했다. 그래도 다정한 말로 받아들이고 그저 온화하게, 고맙다고 웃으며 익숙한 곱슬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래 자지 못한다는 제 특징 중 하나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하카제는 기억이 없다. 아마 밤이 되면 생각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지금은.



그저 생각만 해도 인간의 뇌는 제 의식과는 어딘가 다른 곳에서 여러 가지 일을 헤아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 우수한 뇌 덕분에, 아마 하카제는 그동안 이렇게까지 쓸쓸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생각하는 것은 뇌가 해주기에 자연스럽게 결론이 나온다. 감정과는 다른 얘기로, 뇌에 맡기면 어린 하카제도 여러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엄마가 없는 것. 형, 누나와 자신이 다른 것. 아버지에게 혼나는 것. 이해할 수 없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머리에 생각을 맡기고 살아와서 밤에는 뇌도 조금은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걸까. 하카제의 잠을 방해하고 있다 해도, 그것도 머리가 마음대로 해주는 거라면 고마운 일이었다. 어려운 일이나 아무래도 안 되는 일은 최대한 생각하고 싶지 않다.



여태까지 이렇게 살면서 불편했던 적은 없다. 없을 테지만, 그날 신카이가 멈추지 않았다면 하카제는 바다에 몸을 담갔을 것이다. 그건 신카이의 말대로 자살이라는 것이다. 목숨을 끊을 정도로 뚜렷한 감정이 제 안에 있는 것에 놀라, 왜냐고 물어도 자신은 모른다. 아마 뇌에게만 시킨 대가다. 마음으로 생각하는 건 잘하지 못한다. 하카제는 항상 웃으면서, 즐겁게 살아왔을 것이다.



기억하는 건 지금 안 가면 이제 기회는 없어, 나, 이게 찬스라고 매달리는 생각으로 심해에 발걸음을 옮기던 것. 그건 냉정해진 하카제에게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살기 힘들었던 걸까. 그렇게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을 텐데.



설마 무언가를 원하고 있는 걸까 하는 결론으로 기울자 하카제는 터무니없이 비참하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대체 뭘 요구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생각도 하기 싫다. 누구한테 무엇을, 원한다는 것인가.



하카제가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야망은, 언젠가 엄마처럼 자길 사랑해주는 여성을 찾는 것이고, 그건 아마, 언젠가는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황당한 이야기는 아닐 터. 그러니까, 지금 고등학생이라는 나이로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비관해서 목숨을 끊는 건 아니겠지. 



왜 바다에 들어갔는지 물어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냥 죽고 싶지 않다는 게 고작이고, 그 고작으로 그에게 한 대답은 왠지 땅에 다리가 붙는 느낌이었다. 



두번째 밤을 보내도 변함없이, 신카이는 하카제를 더욱 곁에 두려고 했다. 하카제도 기본은 대답한다. 여자애 앞에서 언제나 살랑살랑한 자신으로 있으려면, 자살 시도를 했단 소문이 나서는 안 된다. 신카이를 신용하지 못하는 건 전혀 아니지만 그는 사쿠마와 같았고, 여차하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남자다. 그 강함이 무서웠다.



「카오루~, 카오루도 같이 안 할래요?」



오늘은 해가 따뜻하고 기분 좋으니까, 해도 하카제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럼 안녕, 같이 헤엄칠 상대도 좀처럼 없을 텐데, 그는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권유해 와서 속을 헤아릴 수가 없다. 언제나 그렇듯 됐다고 거절하니 강요도 않고 신카이는 혼자서 헤엄을 즐긴다. 그걸 멍하니 보는 시간은 왠지 신기했다. 불렸으니까 곁에 있는 데에 익숙해진 것도 약점을 잡힌 것도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속박된 사실에 화가 난 것도 아니다. 아니, 속박되어 있다고 느끼지 못한다. 

단순한 이야기다. 함께 하는 것이 싫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 있으면 파도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부실에서 잘 때와 같은 기분이다.



어젯밤도 잠들지 못했기에, 분수에 앉은 채 졸아버린 건 하카제의 실수이다. 정신이 깬 하카제는 부실에서 신카이의 체육복을 빌리고, 옷을 말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대로 곯아떨어져 분수에 떨어진 모양이다.



「카오루~, 괜찮아요…?」



자기도 교복 차림으로 헤엄치고 있던 주제에, 걱정스러운 물음이 조금 우스웠다. 하지만 대답할 여유도 없을 만큼 눈꺼풀이 무거웠다. 손바닥을 흔들어 대답하려고 했다.



기우뚱, 가라앉는 듯한 잠이었다.



방 안에는 신카이와 하카제와 수조들만이 있었고, 신카이의 콧노래, 펌프 소리만 들렸다. 하카제를 위한 이상의 바다만 같아, 그 안에 가라앉는 듯한 잠 속에서 점점, 늘 이것저것 열심히 해주는 뇌도 아무 생각 없이 잠들어 버린 듯했다.



이걸 원했는지도 모른다, 지친 건 자신이 아니라 뇌였을지도 모른다고, 하카제는 졸음 속에서 생각했다. 항상 냉정하게 판단해주는 머리가, 마음으론 안 그러면서 이젠 무리라고 신호를 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뭐가 그렇게 힘든지 알려주지 않으면 하카제도 모른다. 모든 일은 이유가 있는 법이다. 담담하게 이해하고, 내버려 두고, 그리고 언젠가 엄마가 되어 줄 여자를 찾아 행복해진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무엇을 그리, 못 참을 정도로 힘들어하는 걸까.



왜 그날, 바다로 도망치려 했는지 알고 싶은 건 하카제 쪽이었다.



일어나니 꽤 오래 잠들어 버린 듯 창밖이 깜깜했다. 부활동을 이유로 숙박 신고를 했다는 신카이에게 하카제는 고맙다고 한 뒤, 형에게 학교에서 자고 온다고 연락했다. 연락만 하면 그리 이러쿵저러쿵 뭐라 하진 않겠지. 중요한 건 표면적인 이유다. 이유가 있으면, 납득 할 수 있다.



「…미안 카나타 군, 그, 나한테 맞춰줘서」



그도 집에 가고 싶진 않겠지 생각하면서 한 말에, 신카이는 역시 괜찮다고 대답했다. 하카제가 없더라도, 그는 어쩌면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잠을 못 잤나요?」

「응? 어제? 뭐, 원래 잠이 얕아서…」



알고 있잖아, 새삼스러운 걸 묻는 신카이를 의외라고 여기고 하카제는 일단 웃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닌 것 같다. 그날 밤처럼 미간을 찌푸리고, 신카이는 차가운 손바닥을 소파에 누운 하카제의 뺨에 댔다.



「…오늘은 왠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어요. 제가 붙잡지 않았으면, 분명 레이가 데려갔을 거에요」

「…어, …그래?」

「카오루는 여자에게, 그런 얼굴, 보이고 싶지 않죠」

「…응」

「그런 표정을, 지었어요. 그래도, 아무 말도 안 해주면서…방에서는 잘 자고, 왠지 「질투」 나네요~」



귀엽게 볼을 부풀리는 신카이에 어리둥절한 하카제는, 그런가? 하고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그러고 보니 신카이의 말대로 어제는 평소보다 더 잠을 못 자, 거울도 잘 보고 있었을 텐데 기억이 없다. 그래서 아침부터 신카이에게 발을 묶였는지도 모른다.



「…저는 카오루에게,…왜 바다에 갔냐고, 물었는데…」



카오루는, 아무것도 모르네요, 신카이는 체념한 듯 중얼거렸다.



「…무슨 뜻이야?」

「그 말대로예요. 카오루는, 자기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죠」

「아니아니, 미안, 의미를 잘, 모르겠는데…」

「저나, 레이가 더, 카오루를 잘 알지 않을까, 해요. 전 조금, 화 나 있어요」



귀여운 화난 표정 그대로 신카이가 하카제의 볼을 쥐었다. 이것도 하나도 안 아팠지만, 왠지 맞은 것처럼 충격적이었다.



「카오루가, 그날 바다에 들어간 건…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었죠.…아무것도 아닌 건, 카오루가, 하나도, 모르고 있으니까 그래요」

「…뭘」

「카오루가 없으면, 곤란한 걸요」



없으면 곤란하다고, 다시 말했다. 그 말의 의미도, 왜 지금 그런 말을 하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 달리 머리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오루는 언제나 그래요. 없어도 된다고…하지만, 저도, 레이도, 소마도, 아도니스도, 코가도, 카오루가 없으면, 곤란해요」

「아니, …그렇게 말해주는 건 기쁘지만, 딱히 난 그런 걸 비관해서 죽고 싶다고 생각한 게 아니라니까…」



정말, 배려하고 격려해줄 만한 거창한 이유는 하나도 없다는 하카제에게 신카이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 카오루가 몰라서예요. 카오루는, 살지 않으면, 곤란한 이유가 있잖아요」

「…하…?」



죽고 싶은 이유만큼 짐작 가지 않는 그 이유에, 신카이는 없으면 곤란하다고 다시 말했다. 자기들이, 하카제가 없으면 곤란하니까. 그게 하카제가 죽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걸 모르니까 죽어도 된다고 생각했다고, 그런 말을 들은 하카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정론을 말하자면 그의 마음은 고맙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야, 대체 뭐가 곤란하다는 것인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 건가. 확실히 부활이든 유닛이든, 자기가 없어도 곤란하지 않다는 건 하카제의 법칙이다. 그래도 비관하거나 무시하거나, 제 존재를 부정해달라는 건 아니다. 하카제의 꽤 우수한 머리가 생각한, 사실이다.



유닛은 사쿠마가 있으면 어떻게든 된다. 확실히 자길 잃으면 그건 마이너스겠지만, 못 해먹을 정도의 마이너스는 아니다. 어떻게든 되겠지. 게다가 실전에서는 같이 있으니까 연습에 없어도 곤란하지 않다. 그 정도의 존재다, 정말 없어져도 셋이서 할 수 있을 것이다.



부활동은 더더욱 하카제가 없어도 된다. 오히려 있는 쪽이 마이너스라고 후배도 말할 것이다.  신카이가 부탁하면 도와주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하카제는 아무것도 안 한다. 이 방에서 잠자는 정도다.



신카이와 개인적 친분도 친하긴 하지만, 신카이에게 단 한 명의 친구라는 이유도 없었다면, 하카제는 신카이의 무엇도 짊어질 수 없다. 하카제 한 명 없으면 외로울지도 모르지만 그뿐이다. 곤란한 것과는 다르겠지.



그러니까, 없으면 곤란하니까 죽지 말라는 것은 어딘가 어긋나 있다고 냉정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무시하고, 신카이는 하카제에게 모를 뿐이라고 말한다.



「카오루가 없어지면 곤란해요. 그래도, 카오루가,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내가 몇 번이든, 카오루에게 알려줄게요」

「…으음, 괜찮다니까…걱정 끼쳐서 미안하긴 하지만…」

「카오루를, 걱정하는 게 아니에요. 제가, 곤란해요. 카오루, …제가, 카오루가 있어 주라고 바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제가 곤란해요.…카오루는, 그런 걸 하나도 몰라줘요…」

「있어 주라니…」

「그것뿐이에요. 전, 카오루를 좋아하니까」



좋아하니까, 곁에 있어 주라는 것. 죽지 않았으면 한다, 는 말은 정말 간단하고, 아무런 이유도 없어서, 전혀 납득 할 수가 없다. 그리고 하카제의 우수한 뇌를 완전히 쓸모없게 만들어 버렸다. 그야 그런 아무 이유 없는 말이 통한다면, 그동안 하카제의 인생은 뭐였던 걸까. 그런 마음만으로 말이 통한다면 하카제는 울부짖고 고집을 부렸을 것이다. 좋아하니까, 그런 말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있다면, 그건, 하카제가 계속 원해왔던 것이다.



엄마처럼, 절대적으로, 어떤 이유도 없이 사랑하고 받아들여 주는, 그런 애정.



하지만 사실, 손에 넣을 수 없다고 알고 있었다. 엄마는 없으니까. 사실 언젠가 누군가가 편리하게, 사랑해준다고는 믿지 않았다. 다시 태어날 수는 없으니까, 하카제가 무슨 짓을 해도 이제 엄마는 없다. 그래도, 언젠가 어떤 여자를, 덧없는 꿈으로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 게 왜 갑자기, 이런 데에서 하카제 의 앞에 나타나는 걸까.



완전히 움직일 수 없게 된 머리 탓에 아무 대답도 못 하던 하카제의 눈은, 부실의 창백한 빛과 똑같은 색으로 신카이를 보기만 했다.



「카오루가 없으면 곤란하니까, 저도 많이, 생각했어요. …왜 없어지면 곤란한지. 좋아하니까, 그런 거에요」

「…일단 물어보겠는데, 그…좋아한다는 말은,…」

「글쎄요?…뭐든, 카오루의 생각대로 해주세요. 저는, 카오루를 좋아하는 것, 뿐이니까」



원하는 애정을 얼마든지 준다는 매력적인 말을 앞두고, 카오루의 대답은 정해져 있다. 그걸 현실적으로 고치면 아마, 남자끼리면 우스꽝스러울 거고 제가 하는 말은 무척 이상해진다. 그래서 뭐라 말하면 좋을지 모른 채 뻗어진 의지 약한 손을, 신카이는 제대로 받아들여 하카제가 원하는 걸 준다는 듯, 어머니처럼, 다른 무엇보다 사랑하는 아이를 대하듯 하카제를 껴안았다.



「…없어지지 말아 주세요, 카오루. 저를 위해서, 살아주세요」

「…죽고 싶다고도, 안 했다니까…」

「네. 그래도, 또 바다에 휩쓸리지 않게요…카오루는, 제가,」



제가, 받을 거예요. 카오루를 졸라맨 말은 아까보다 꽤 직접적이었다. 반박은,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텐데, 아무 말도 못 한 채 신카이의 말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아마, 그의 수조에 들어가고 싶었던 것이다.





휴일 낮, 백화점 옥상. 하카제는 작은 무대에서 잘 아는 목소리가 반가운 말을 자아내는 걸 가족 동반석에서 떨어진 벤치에서 듣고 있었다. 오늘도 일이 있는 상대에게는 나쁘지만, 좀처럼 한가롭고 좋은 휴일이었다.



유성대의 부활이다, 신카이가 즐겁게 말한 1년 전부터, 이렇게 하카제는 시간이 맞으면 그들의 활동일에 발걸음을 돌렸다. 모두 일이나 생활이 어느 정도 잡혔으니 봉사의 일환으로 유성대 활동을 재개하지 않겠냐고 말을 꺼낸 건 리더인 모리사와였다. 이렇게 휴일 공원이나 백화점 옥상에서, 그들은 서른이 넘은 지금도 유성 블루 같은 그리운 말을 입에 담고 있다.



지금, 아이돌이라는 범위와는 조금 빗나간 일을 하고 있는 신카이를 비롯해 그들은 모두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특촬 일을 하는 건 모리사와 이외에는 없을 것 같지만, 이렇게 모이면 그들은 모두 생기가 넘쳐, 저들과는 다른 활동 방식에서 히어로의 모습을 보고, 하카제는 뭔가 간질거린다고 느꼈다.



그야 자신도 저 중 한 명의 히어로에게 일찍이 구원받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릴 때 얘기지만, 당시엔 나름 신카이도 열심히 생각해준 거라고 간혹 듣고 있다. 심해의 생선이 되어, 그의 수조에서 사랑받고 자란 다음 유리 너머로 바깥 세상을 보니, 세상이 이렇게나 상냥하던가. 부모도, 사쿠마도, 동료도, 친구들도, 그 까다로운 후배도 분명히 하카제를 사랑해 주었다. 자길 대신할 사람은 없다고, 당연한 사실을 알려 주었다.



항상 바다에서 죽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바다는 아무래도 하카제에는 너무 넓다. 지금은 신카이가 만들어 낸 세계가, 하카제에게 가장 진정되는 곳이다. 아무리 일로 집을 비워도 그가 만들어 낸 공간에, 저희의 집에 돌아가면 하카제는 언제든지 편안해질 수 있다.



오늘 출연은 이걸로 끝이지만, 이 뒤에도 봉사 스탭으로서의 일이 있다고 들어 하카제는 쇼가 끝나고 자리를 떴다. 한발 먼저 돌아가는 건 참을성 없겠지만 맛있는 밥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것도 중요하다. 떠나려는 순간, 블루 멋있었지, 하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하카제는 무심코 웃고 말았다.



그치, 내 히어로야. 라고, 본인에겐 아직 말한 적 없다. 하지만 계속 생각하고 있다. 그가 소중히 구해 주었기 때문에 하카제는 어른이 됐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상 속에서, 무엇도 쓸모없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먼 그날,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바다에 들어간 하카제의 진짜 이유는 역시 신카이의 말대로 모르는 일이다. 몰랐으니까, 분명 그렇게 도망치자고 생각한 거겠지. 사실은 여러 생각을 했었는데, 전부 이유를 붙여서 납득하고, 나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사는 건 조금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슬아슬한 상태에, 비참한 삶을 마음이 깨닫기 전에 죽어야 한다고 생각해, 바다에 들어갔다. 하카제는 그때 일을 지금도, 비관적이었다던가, 사실 심각하게 고민했다던가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느끼지 않기 때문에 선택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철없을 때의 이야기. 좀 더 넓은 세상을 보니, 아무것도 아닌 일로 하마터면 잃어버릴 뻔한 삶을 구원해준 건, 그날 들은 적 없을 만큼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고, 수영도 못하는 주제에 하카제를 끌어 올려 준 신카이다. 그저 좋아한다는 이유로 살아 달라고 바라고, 구해 준 그가 있어서 하카제는 지금도 무럭무럭 자라 있다. 그때부터 변함없이, 그 점에는 정말 말 못할 만큼 고마워하고 있다.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래도, 죽을 뻔한 적은 있다. 하카제의 인생에서, 그 일은 신카이와 하카제만의 비밀. 어쩌면 그날부터 계속, 하카제는 신카이의 도움을 받고 살고 있어, 조금이라도 신카이에게 무언가를 갚고 싶다고 생각했다. 같이 살게 되기까지는, 하카제도 나름 힘낸 결과다.



해서 백화점 지하까지 내려와, 하카제는 장바구니를 들고 하카제의 히어로가 좋아하는 맛있는 생선 요리를, 그의 솜씨에는 못 미치지만 준비해서 그의 귀가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제 하카제가 가라앉는 바다는, 그 어두운 밤 안에는 없었다. 그들의 방에는 오늘도 신카이의 수조가, 보글보글하는 상냥한 소리를 내며 하카제가 살아가는 세계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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