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역o 다들 봐주셨으면 해서 올립니다.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8596617

치카다 선생님의 작품입니다.

선생님 말씀 : 엇갈린 짝사랑을 목표로 썼습니다. 하치라이입니다.



*



하치야 사부로는 원치 않게 얼굴을 빌려주는 사람의 심경을 모른다. 사부로는 항상 빌리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상할 수는 있다. 때때로 장난삼아 쓴 후배에게서 불평불만이 들려올 때가 있다. 그래서 뭐, 그냥 그런 거겠지 하고 생각한다.

후와 라이조의 얼굴을 처음 빌렸을 때, 사실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지금의 사부로에게서 보면 거짓말 같지만, 그런 시기도 있었다는 소리다.

추측이지만, 늘 하는 방식으로 고른 것이다. 갖고 있는 가면을 늘어놓고, 오늘은 이거, 그런 가벼움으로. 처음 사람의 얼굴을 빌리는 경험은 언제든지 신선하다. 그걸 최대한 즐기기 위해 사부로는 늘 어린애처럼 장난치며 노는 것이다. 반응은 다양하다. 어이없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화내는 사람도 있다. 그걸 보고 그 뒤의 대응을 정하는 것이 사부로의 일상이었다.

라이조 때도 그랬다. 라이조는 그때 어떻게 했던가. 역시 조금 포기한 느낌이 있다. 그래도 라이조에게 딱 달라붙어서 장난치는 것은, 왠지 모르게 무척 재밌었다. 라이조는 성실하고 우수한 반면 이상한 부분에서 나사가 빠져 있다. 한 번 생각에 잠기면 사부로가 뭘 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게 재밌어서, 사부로는 질리지도 않고 라이조를 바라봤다. 그 후 다시 가벼운 마음으로, 좀 더 이 얼굴을 빌린 채로 있자고 생각한 것이었다. 주변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부로가 금방 질릴지 질리지 않을지는 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이미 익숙해졌다.


사부로, 그거, 내 얼굴. 언제까지 하고 있을 셈이야


라이조의 얼굴을 흉내 내는 것에 익숙해질 무렵, 본인에게 그런 질문이 왔다.


글쎄, 언제까지일까. 적어도 당분간은 계속할 생각인데


사부로는 그렇게 답했다. 확실히 라이조의 얼굴로 있는 건 재밌지만, 진심으로 싫어하기 전에는 그만둬야지, 라고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대놓고 뻔뻔하게 나오면, 더 귀찮아지기 전에 해결할 수 있다. 자주 사람을 잡아먹을 것 같다고 듣는 표정으로 라이조를 본 그때였다.


어쩔 수 없네


라이조가 쓰게 웃었다. 사부로는 입을 떡하니 벌렸다. 말투에 표정까지 거절의 뜻을 담은 무언가가 돌아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뿐?

, 그냥 듣고 싶었던 것뿐이니까

「……그래


라이조가 이 얘기는 이제 끝, 이라는 얼굴을 해서, 사부로는 입을 뻐끔거리다 다물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 용서받았다 하고 느낀 것이다.

사부로는 언질을 잡았다고 득의양양하게 웃어도 된다. 어찌됐든 당사자의 보증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슴 속에서는 소화 안 되는 응어리가 남아 있었다. 본인이 싫어하면 귀찮으니까 적당히 끝내는 게 가장 편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터다. 방금 전까지는. 그 뒤 사부로는 이전보다 더욱 라이조의 변장에 신경을 기울이게 됐다. 어쩌면, 가슴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안개를 없애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익숙해졌을 변장은 되돌아보면 조잡한 것투성이였다. 머리카락 감촉도, 피부색도, 세세한 외모도, 그런대로 생기긴 했지만 실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개선의 발판으로 우선 라이조로 변장하기 위한 도구 전부를 갈아엎기로 했다. 마침 한 방에서 홀로 지내게 된 걸 다행으로 여기고, 하루의 절반을 라이조 관찰에 쓰다 보니 보다 못한 선생님들이 못을 박는 일도 잦았다. 라이조의 성격이 저만큼 너그럽지 않았다면 위에 구멍이 뚫렸을지도 모른다. 사부로는 자신의 몰두하는 성격 못지않은 그의 대범함에 다시 한 번 감사했다.

라이조 쪽도, 사부로가 하는 일에 완전히 무관심한 것도 아니었다. 라이조는 저래 봬도 눈치가 빠르다. 변장 도구를 새롭게 바꿀 때마다, 전이랑 다르네 하고 지적받고, 거울 앞에서 홀로 오만상 짓는 걸 들켰을 때는 폭소 당했다. 사부로는 어떻게든 저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재현할 순 없을까 하고 온갖 고생을 다했기에, 부끄러움에 마구 뒹굴었다.

이런 저런 일이 있는 사이, 어느 샌가 사부로가 라이조로 변장하는 것이 당연해졌다. 바보 같은 이야기지만, 사부로는 명물 콤비니 뭐니로 불리게 되고 나서 처음으로 깨달은 것이다. 라이조의 얼굴은 왠지 모르게 짐작이 갔다. 분명, 그때처럼 쓴 웃음을 짓고 있다.

깨달은 뒤, 사부로는 방에 돌아와 다시 라이조를 봤다. 얼마든지 봐도 괜찮다, 변장을 위해 관찰하고 있다는 명목이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조금씩 다가갔다.


사부로, ……사부로


말을 걸려와서 깜짝 놀랐다. 라이조의 얼굴이 눈앞에 있었고, 주저하면서도 어깨가 맞닿아 있다.


역시 이건 좀 가까워


라이조는 드물게 곤란해하는 눈치였다. 미안하단 말을 입안에서 우물거리며 떨어졌다. 견제되버렸군, 싶었다. 저만치 가까운 거리는 안되는 것 같다. 그럼, 불의를 가장하고 부딪혀본다면? 친한 척하면서 어깨를 안는 건? 대체 어디까지라면 허락되는 걸까. 그 생각이, 분명히 사부로가 넘고 만 일선이었다.

잠시 후, 그때가 왔다. 그것은 계획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이뤄졌다. 적어도 사부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심정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참을 수 없는 충동이 뒤섞이는 것은 명백했다. 라이조가 스스로 얼굴을 바싹 댄 순간을 노려서, 입술을 빼앗은 것이다.

닿아버렸다가 통용하는 건 처음 한순간뿐이겠지. 하지만 닿자마자 바로 사부로의 의식에서는 속일 생각마저 날 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이렇게 부드러울 수가! 그런 본능 같은 사고가 눈 깜빡할 사이 사부로의 뇌내를 물들였다. 바로 옆에서 라이조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뜨이는 걸 봤으니까, 다음 행동은 예상이 됐다. 어깨를 밀고 도망치려는 건 이번엔 봐주지 않는다. 손목을 잡고 몸을 꽉 껴안았다. 기세로 밀어붙이는 모습이 됐지만, 사부로는 상관하지 않았다. 엄마의 젖을 먹는 아기의 열성처럼, 라이조와 입술을 맞추는 데 열중해 있었다.

라이조의 눈은 크게 뜨인 채 계속 이유를 찾고 있었다. 풀려나자마자 가쁜 한숨을 쉬는 직후에 튀어나온 말도였다. 사부로는 그때 처음으로 자신이 저지른 일에 직면했다. 라이조가 가슴을 부여잡고 거친 숨을 내쉬는 사이, 사부로는 몸에서 핏기가 싹 빠지는 감각에 벌벌 떨었다. 라이조는 이유를 찾고 있다. 하지만, 뭐라고 변명해야 할까. 왜 이런 짓을 했냐고 물어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했다, 고밖에 말할 수가 없다.

라이조는 어떻게든 숨을 고른 것 같다. 조용히 참을 성 있게 사부로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고 입을 열었지만 해도 괜찮은 말은 한마디도 떠오르지 않는다. 낚아 올린 생선처럼 입을 뻐끔거리고 있는 모습은 도리어 우스웠을 것이다. 비참함에 눈물까지 나온 그때였다. 라이조의 한숨이 들렸다.


지금 말 못하겠으면, 괜찮아. 그래도 말할 수 있게 되면 가르쳐줄래?


그 말에, 사부로는 두말 없이 수긍했다. 목 가죽 한 장이 이어져있어서 살았다고, 생각했다. 라이조는 목에 뭐가 걸렸는지 잠깐 동안 기침을 했지만, 그것도 곧 잦아들었다. 그 후로는 웃음이 나올 만큼 평소와 같았다. 하지만 사부로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저 문제가 뒤로 미뤄졌을 뿐이다. 여전히 라이조에게 설명해야 하는 책임이 존재하고 있다.

책임을 다하기 전에 두 번째가 일어났다. 첫 번째는 해질녘이었지만 이번엔 조용한 오후였다. 때마침 쉬는 날에 라이조는 팔베개를 하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 방에 들어가고 그것에 우연히 마주치게 된 사부로는, 너무나 무방비해 아연실색했다. 친구라고 생각한 녀석에게 그런 짓을 당한다면, 경계하게 되기 마련 아닌가. 라고 생각해도, 평소대로 대해주는 게 고마웠다.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보내고 있으면, 제 안의 모순되기 짝이 없는 욕망에 눈을 감을 수 있으니까.

어째서일까. 자는 얼굴을 보며 사부로가 자문자답했다. 아무 이유 없이 그런 대담한 짓을 저지른 자기 자신이 믿기지 않는다. 그때의 머릿속을 더듬어 보아도 이유라곤 한 조각도 찾을 수 없다. 끈적끈적한 욕망의 잔상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라이조의 얼굴은 정말 가까워서, 바로 닿을 수 있었다. 아주 조금, 저항도 했었나. 상당히 놀랐던지 사부로도 간단히 막을 수 있는 귀여운 행동이었지만. 다음이 있다면 주먹이 날아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은 아무것도 못 하겠지. 곤히 자고 있으니까.

어느새 조금 줄어든 거리를, 사부로는 한숨으로 메웠다. 한 번 닿으면 떨어질 꽃이라도 되는 것처럼, 살짝 겹쳤다. 입술은 약간 건조했다. 하지만 가볍게 누르면, 금방 부드러움을 맛볼 수 있었다. 사부로는 조금씩 각도를 바꿔서 입을 맞추며, 남김없이 그것을 만끽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맛보고 만족했다고 느껴도, 또 다시 다음을 원하게 된다. 질 나쁜 약을 복용했을 때 같았다.

꾹 누르고, 천천히 문지르는 걸 끝없이 반복하고 있는 사이에 조용하던 라이조에게서 반응이 나타났다. 감긴 눈꺼풀이 흠칫흠칫 움직인 것이다. 일어날 것 같다, . 사부로는 준비했다. 쭉 뻗은 손발이 난동을 부려도 억누를 수 있게끔.

번쩍 눈이 뜨인 직후, 시선은 아직 마주치지 않았다. 아직 잠기운이 남았는지, 좌우로 흔들리다가 겨우 눈이 마주쳤다. 라이조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발버둥 칠거라고 생각한 몸은 희미하게 바르작댈 뿐이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라이조는, 의외로 냉정하다. 맨 정면에서 엿보며 사부로는 당황했다. 한참 주저하고 나서, 각오하고 라이조를 뒤돌아보았다. 그리고 잔잔한 바다의 평온함을 담은 눈을 바라보며 사부로는 결심했다.

이제 와서 변명은 못 한다. 이유를 물어도, 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했다는 것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런 변명이라면 안 하는 게 더 낫다. 그렇다고 해서 사과해서 넘길 수도 없다. 사부로는 나쁜 짓을 했다고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라이조가, 진심으로 이걸 싫어한다면, 그때는 깨끗이 접고 풀어줄 것이다.

그리 다짐하니 드디어 입을 땔 여유가 생겼다. 라이조는 가슴을 억누르고 있었지만, 그렇게 고통스러워지기 전에 그만둔 듯했다. 라이조는 이번에도 물었다.


?

「……말 못 하겠어, 미안해


이 사죄는 라이조가 요구하는 대답을 못 하는 것에 대한 것. 사부로는 마음속으로 토를 달았다. 그리고 이번엔 이쪽에서 물었다.


「……싫었어?


라이조는 이도저도 아닌 듯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때처럼 쓴 웃음을 띠며 말했다.


깜짝 놀라니까, 다음엔 한다고 말한 다음에 해줘


사부로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아아, 또 용서받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바보 같이 방심하고 있는 본체를 두고, 사부로의 감정적인 부분이 격분했다. 이런 걸 용서해도 되는 거냐, 넌 정말 그걸로 좋은 거냐, 하고. 하지만 타산적인 부분이 충고했다. 그래도 라이조는 하기 전에 예고하라고 했어. ……그건, 예고만 하면 해도 된다는 거잖아?

천칭으로 잴 것도 없이 타산적인 부분이 이겼다. 라이조에게 다가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싶은 마음에, 사부로는 뚜껑을 덮었다. 다시 가슴 속에서 떨떠름한 기분이 차오르는 낌새가 났지만, 못 본 척했다. 그렇게, 또 해도 된다는 치사한 희망에 매달린 것이다. 싫어하지 않는다는 건, 설마. 라이조도, 당하는 걸 밉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자기 전에 슬쩍 떠올린 망상은, 무척이나 달콤한 맛이 났다.

그날 밤, 사부로는 꿈을 꿨다. 낮에 있었던 꿈이다. 한창 입을 맞추고 있을 때. 라이조는 잠에서 깬 듯 눈꺼풀이 열려 있다. 새까만 눈동자에는 사부로 자신의 얼굴이 비춰져 있다. 라이조의 얼굴을 흉내 낸 그것은, 갑자기 지껄이기 시작했다.


이 얼마나 미래가 안이한 일이야. 조금은 머리를 굴려보지 그래


무슨 얘기야, 사부로는 의심했다. 왜 이런 게 말하고 있는 거지, 이상하게 여길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정말 라이조가, 이걸 바란다고 생각해?

, 그래도, 라이조는 예고만 하면 된다고

하기 전에 예고하라고 한 것뿐이다, 용서받은 정도로 기어오르지 마


내팽개치는 기분으로 사부로는 목을 울렸다.


생각해 봐, 자기랑 똑같은 얼굴을 한 남자와 키스할 때의 기분을


제멋대로 그렇게 말하고, 라이조 눈동자 속의 사부로는 침묵했다.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도 들은 것에 대해 생각했다. 사부로는 라이조가 아니니까 라이조의 본심을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 기분을 상상할 수는 없다.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남자에게 키스 당해서. ……좋은 기분이, 들 리가 없었다.

잠에서 깬 사부로는 최악의 상태였다. 온몸이 학질을 앓던 때처럼 벌벌 떨리고, 오열과 흐느낌이 그치지 않았다. 잠이 덜 깬 눈이었던 라이조가 안색이 변해서 무슨 일이냐며 달려왔다.


왜 그래? 몸이 안 좋아? 아니면 나쁜 꿈이라도 꾼 거야?

 

사부로는 신음하면서 고개를 옆으로 저은 뒤 다시 끄덕였다. 확실히 무서운 꿈이었다. 사부로는 정신적으로 호되게 당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냥 꿈이었다고 넘겨도, 정말 괜찮은 걸까.

우물쭈물하는 사이 라이조의 팔이 뻗어왔다. 어느 샌가, 꼭 작은 아이에게 대하는 것처럼 라이조에게 안겨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사부로는 이미 일어났으니까, 무서운 꿈은 밤 저편으로 도망갔어

 

따뜻한 손바닥이 등을 어루만졌다. 상처입어 갈라진 마음이 점점 진정되어온다. 온기에 매달리면서도, 가슴 밑바닥에서는 탐욕스러운 부분이 이걸 좀 더 갖고 싶다고 어울리지 않는 주장을 하고 있다. 눈물이 겨우 들어간 건 조금 시간이 흐른 뒤였다.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 버렸네

신경 쓰지 마, 누구든지 이럴 때가 있으니까

저기, 꿈이 밤 저편으로 도망갔다고 했잖아

그 이유라면, 다음날 밤에도 무서운 꿈을 꿀 것 같은데

아아, 단어 선택을 잘못해버렸네

 

말꼬리를 잡아도 라이조는 상냥했다. 낯 간지러운 기분으로 사부로는 시선을 피한다. 안겨져 있던 고개를 들었기 때문에 거리는 매우 가깝다. 사부로 쪽이 안절부절 못하고 만다. 라이조는 언제부터 이 거리를 싫어하지 않게 된 걸까. 스스로 다가온 몫은 신경 쓰지 않는 건가, 그게 아니면.

슬쩍 라이조 쪽을 엿봤다. 흐뭇한 것이라도 보고 있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하고 있었다. 하고 싶다고, 하자고, 말할까. 하지만 이렇게, 금방이라도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는걸. 들뜬 마음이 시선을 맞춘 그때, 라이조의 큰 눈에 사부로의 얼굴이 비춰졌다.

힘껏 맞은 감각이 나 사부로는 튕겨진 것처럼 몸을 내뺐다. 이제 괜찮냐는 라이조의 물음에 황급히 수긍한다. 다행이네, 한 번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 라이조가 일어서버렸다. 코 안쪽이 아프다. 다시 한 번 울지 않고 넘어간 건 사부로 나름의 최후의 긍지다. 무서운 꿈은 달아나지 않았다. 사부로 마음 한가운데에, 떡하니 자리 잡고 말았다.

그 뒤, 사부로는 두 번 다시 밝은 곳에서 손을 대지 않았다. 밤이 돼도 안 된다. 볼 수 있는 것은 보인다. 어둠에 적응한 닌자의 눈을, 사부로는 태어나서 처음 원망했다. 본심을 살짝 드러낼 수 있는 건, 달도 별도 없는 밤. 문도 창문도 꽉 닫은 칠흑의 안뿐이다. 하고 싶다면 라이조가 거부하는 일은 없었다. 포옹도, 입맞춤도.

산등성이에서 뭉게뭉게 구름이 피어오르는 그런 날이었다. 저거, 조금 라이조 머리 느낌이랑 닮았네. 그런 태평한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얼마 안 될 뿐. 하늘이 갑자기 흐려지고, 이어서 대야를 몇 번이나 뒤집은 듯한 소나기가 쏟아졌다. 주위가 완전히 어두워질 무렵에는, 이 계절에는 드물게 습기를 많이 머금은 공기가 쌀쌀할 정도였다.

잘 자라는 말을 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이불 안에서 사부로는 생각했다. 옆으로 빗방울이 들어오지 않도록 오늘 밤은 덧문을 싹 다 닫았다. 덕분에 오늘은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깜깜한 어둠이다. ……둘도 없을 만큼.

옆 이불에서 라이조가 뒤척이는 소리가 났다. 이윽고 참을 수 없어진 사부로는 목소리를 냈다.

 

라이조

「……?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금방 대답이 돌아왔다. 역시 깨 있는 것 같다. 만감의 마음을 담아 사부로는 조르는 말을 입에 담았다.

 

만져도 돼?

, 이리 와

 

라이조가 일어나는 기척이 났다. 조용한 목소리에 이끌려 사부로는 이불을 빠져나왔다. 간질간질하는 몸을 이끌고 어둠 속을 손으로 더듬어나갔다. 늘 이 시간만큼은, 마음이 불안해서 뭉개질 것 같다. 이대로 영원히 라이조의 곁에 닿지 못하는 건 아닌가, 그런 마음에 뒤쫓겨서.

그때 마침, 헤매던 손가락이 무언가를 찾아냈다. 라이조다. 라이조의 손이다. 다행이다, 기뻐.

손끝에서 차례대로 손까지 다다른다. 단단한 뼈와 그 주변에 예쁘게 붙은 근육의 감촉을, 잠옷 위에서 만끽했다. 두 팔에 올라갔을 때는 이미 라이조가 어떤 자세로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사부로는 단숨에 움직였다. 이젠 팔 안에 안아버렸다. 라이조의 체온은 아이처럼 뜨거웠다. 그 따뜻한 어깻죽지에 사부로는 바짝 다가갔다. 어리광부리듯 얼굴을 파묻고 심호흡을 한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오랜만에 제대로 숨을 쉬는 기분이다. 시원해서 그런지 땀 같은 느낌은 전혀 나지 않는다. 목욕 후의 흔적, 라이조 스스로의 피부 결만이 희미하게 향한다. 부둥켜안은 몸 사이에선 라이조의 손이 갈 곳을 찾는 것처럼 더듬거렸다. 실컷 헤맨 끝에, 결국은 사부로의 허리둘레에서 구겨진 잠옷을 잡기로 한 것 같다. 그런 조심스러움에 입꼬리를 풀어졌다. 등에 둘러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분에 넘치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해도 돼?

 

자신과 라이조, 두 몸이 서로 진정되는 걸 기다리고, 사부로는 다시 한 번 말했다. 승낙의 대답과 함께 라이조가 얼굴을 드는 기색이 났다. 허리에 얽힌 손끝에 기분 탓인지 힘이 들어갔다. 달라붙어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작은 움직임마저 전해져 오는 것이다. 사부로는 손끝을 뻗었다. 부서진 것을 다루는 듯한 그것은, 쉽게 라이조의 얼굴을 찾아냈다. 아마도 입 주변. 살며시 미끄러져 손바닥으로 볼을 감쌌다. 빨라지는 마음을 억제하면서 천천히 입 맞췄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데 언제까지고 익숙해지지 않는 부드러움이, 금방 사부로의 것이 됐다.

모아진 뺨에 무언가가 닿는다. 분명 라이조의 속눈썹이다. 긴장한 것처럼 굳어진 감촉을 하고 있던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누그러졌다. 입을 밀어붙이듯이 하면, 살짝 깜빡이는 작은 눈꺼풀까지 느껴진다. 지금 사부로가 열중하는 것은 부드러운 입술만이 아니었다. 팔 안의 온기라든가, 입 맞춘 각도를 바꿀 때마다 몇 번이고 민감한 반응을 보여주는 손끝이라든가. 무심코 천천히 집어삼키기를 반복하는 사이 힘이 빠져서, 마지막에는 축 늘어지는 몸이라든가. 그런 전부를 사랑스럽게 느끼게 됐다.

떨어지자마자 하, 하고 라이조의 입에서 공기가 새어나왔다. 완전히 숨이 찬 모양이었다.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다른 쪽을 보려고 해, 사부로는 달래는 심정으로 말을 걸었다.

 

힘들었어?

「……, 괜찮아

도중에 숨 쉬어도 돼

잘 안 돼

 

왠지 삐진 목소리다. 평화로운 마음으로 사부로는 생각했다. 그럴 생각도 없는데. 어떻게든 입에 의식을 집중해버리니까 코로 숨 쉬기 힘들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 라이조는 팔을 내빼서 도망쳐버렸다. 아직 바로 옆에 있는데도, 사부로는 뭐라 할 수 없는 섭섭함에 놀랐다. 확실히 입맞춤은 끝났지만. 조금 더 팔 안에서 라이조를 느끼고 싶었다.

 ……달리 뭔가 당할 거라고 생각한 걸까. 뭔가 더 심한 짓을. ……완고할 만큼 숨 쉬려고 하지 않는 것도, 어쩌면 입을 열고 싶지 않으니까?

그냥 상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부로의 양심을 강하게 때려눕혔다. 짐작 가는 곳이 너무 많아서 입가로도 부정할 수 없었다. 오늘은 암흑이 고마웠다. 이 상태에서 라이조에게 위로받는다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참을 수 없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사부로는 고마워와 잘 자를 말했다. 미안 이제 안 할게, 는 아직 말할 수 없다.

 

「……

 

라이조에게 돌아온 건 그 한마디뿐이었다. 졸린 거겠지. 벽을 때리는 빗소리가 갑자기 세진 낌새가 났다. 가슴 안에 후회를 안으며, 사부로는 또다시 손을 더듬어 제 이불로 돌아갔다. 왠지 라이조의 얼굴을 보고 싶다, 라는 아연한 욕구가, 채워지지 않은 채 마음에 응어리져있다.

일부러 암흑을 기다리고, 사부로의 마음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 라이조의 얼굴을 본뜬 그걸로 강요하는 걸 본인에게 보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라이조의 눈에 비친 제 얼굴을 봤기 때문일까. 지금은 사부로 스스로도 판단할 수 없었다.

남의 얼굴을 쓰면 되지 않냐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바로 떨쳐냈다. 남의 얼굴로 라이조에게 그런 짓을 한다니, 죽어도 싫다. 빨리 다 포기하고 다른 사람 얼굴로 생활하는 건 어떨까. 거의 라이조가 싫어하는 기색을 낸다면 그렇게 할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것도 타협할 수 있는 방안은 아니었다. 가장 가까운 친구의 자리를 누구에게도 양보하고 싶지 않다고, 어리숙한 마음을 달랜다.

이제 가슴 속을 전부 토로해버리는 게 속편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없는 지혜를 짜내서 뱉어낸 말도, 라이조에게 하기엔 너무나 진부하다. 무엇보다 라이조의 그 둥근 눈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사부로는 꼭 말을 잃은 것처럼 입술을 떨 수밖에 없었다.

그럼 암흑 속이라면 어떠냐, 얕은 욕망이 몸 전부를 지배해버리는 것이다. 만지고 싶어, 끌어안고 싶어, 여기도 저기도 전부. 그런 생각뿐이다. 솔직히 말하면 광폭한 충동에 밀어붙여 그렇게 할 뻔한 적도 있고, 그런 종류의 꿈을 꾸다가 땀범벅으로 일어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자신이 이렇게 약한 인간이었다니. 사부로는 자기혐오로 입술을 깨문다. 용서받는 게 이렇게 괴로운 일이었다니,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오랫동안 답이 나오지 않는 제자리걸음을 하는 기분이었다.

적어도, 하고 바랐다. 내일 아침은 하늘이 활짝 개지 않을까. 푸른 하늘 아래 꽃피는 라이조의 미소를 볼 수 있다면, 비뚤어진 욕망도 사라져갈 테니까. 팔다리를 안은 둥근 자세로, 빗소리를 들으며 사부로는 눈을 감았다. 후와 라이조는 한 번, 비뚤어진 적이 있다. 사춘기라는 나이로 보면 겨우 한 번뿐이라는 게 적은 건 아닐까. 하지만 곁눈질로는 알 수 없는, 안에 가득 찬 삐딱한 태도는 무척이나 라이조답다고 할 수 있었다.

계기는 아주 사소한 일이었다. 동급생 하치야 사부로가 라이조의 얼굴을 즐겨 쓰게 된 것이다. 사부로가 맨얼굴을 숨기고 다른 사람의 얼굴을 빌리며 생활하는 건 전부터 있는 일이었다. 일반인이라면 깜짝 놀랄 일이지만 라이조가 있는 5학년 로반에서는 사소한 일이다.

주로 주위에 장난을 치기 위해서, 사부로는 하루 종일 달라붙었다. 나란히 선 똑같은 얼굴에 놀라는 하급생에게는 낯간지러움을 느꼈다. 동급생은 이번엔 라이조냐하는 눈빛을 했다. 사부로의 알기 힘든 변장을 설명하거나, 하급생의 순진한 반응을 평가하거나, 둘이서 과제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사이 라이조는 똑같은 얼굴이 옆에 있는 것에 익숙해지고 말았다. 쉽게 적응하기에 더욱 그랬다.

라이조의 솔직한 감상은 깜짝 놀랐지만, 그렇게 싫지도 않다였다. 애초에 멋대로 얼굴을 써서 곤혹스러워하는 라이조를 앞에 두고, 사부로는 상쾌한 얼굴로 뻔뻔하게 일관할 수 있는 남자다. 하지만 그것만 눈감아주면, 의외로 같이 있으면 재밌는 친구이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장난을 좋아하고 밝다. 신경질적인 면도 있지만, 마음씨는 나쁘지 않다. 라이조가 망설이는 버릇을 보여도 재촉하지 않는 인내심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때때로 남의 모습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마 사부로는, 얼굴을 빌리고 있는 대상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항상 살피는 거겠지. 라이조는 그렇게 생각했다. 만약 상대가 진심으로 싫어한다면 그 전에 떨어질 것이다. 사부로는 계속, 이렇게 살아왔겠지, 분명 앞으로도, 하고.

라이조에게는 싫어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온화한 모습으로 강한 거절의 말을 쓰는 게 서투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사부로의 곁에 있는 나날이 편하고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걸 사부로도 느꼈는지, 아니면 단순히 라이조의 얼굴을 흉내 내는 게 마음에 든 건지. 사부로는 라이조의 얼굴을 항상 쓰게 되었다. 동실이 된 것도 크다. 함께 보내는 시간은 현저히 늘어났다. 괴짜이지만 좋은 친구에 행복해하며 라이조는 만족하고 있었다. 그럴 터였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앙금 같은 것.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쌓이는 그것을 뭐라 부르면 좋을지, 라이조는 모른다. 하지만 만족하고 있을 터인 생활 속에서 문득 생각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얼굴을 쏙 빼닮았는데, 내가 있을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하고.

늘 장난만 치는 사부로가, 실은 꽤나 우수하다, 라는 것도 원인이긴 하다. 하지만 어차피 이유 중 하나에 지나치지 않는다. 만약 열등감이 이유라 치고 이제 와서 사부로가 라이조로 변장하는 걸 말린다 해도, 라이조의 고민은 해결의 실마리하나 잡지 못했을 것이다. 가장 큰 요인은 라이조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간단히 말하면, 스스로의 존재의의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것이다. 그걸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성격이라면, 애초에 망설이는 버릇 따위도 갖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런 나이이기도 했다. 결국 방황하는 것에 익숙해져있던 라이조는, 그것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이어간 것이다. 정말 능숙하다고도 서투르다고도 할 수 없는 뒤틀림이었다.

계기는 라이조가 생각지도 못한 형태로 찾아왔다. 어느 날 갑자기, 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사부로에게 입술을 빼앗긴 것이다.

청천벽력이었다. 깜짝 놀라고 혼란스러워 언제 어디서 왜 그렇게 된 건지, 라이조는 아직도 기억나지 않는다. 눈앞에 있었을 사부로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조차. 그저 도망치려던 손목을 붙잡힌 것만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어째서

 

겨우 입이 해방된 라이조가 말한 건, 반사적으로 나온 한 마디였다. 한심하게도 성대하게 숨이 차 있었다. 하지만 라이조가 숨을 고르고, 생각할 여유가 생겨도 사부로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라이조는 진정되지 않은 마음으로 생각했다. 사부로는 악의를 담은 장난은 하지 않는다. ……그럴 터다. 이게 장난이라 한다면 전혀 사부로답지 않았다. 한다고 마음 먹으면 전력으로 임하고, 마지막에는 속임수를 공개해 제대로 웃음을 터뜨리는, 일을 매일같이 해대는 남자다.

그래도, 그럼, 장난도 농담도 아니라고 한다면. 거기까지 생각하고 라이조의 몸은 다시 열을 가졌다. 그야 연애 사정을 잘 모르는 라이조도 알고 있다. 이런 건 보통 연인끼리 하는 것이다. 연인이 아니라도, , 좋아하는 사람에게, 라든가. ……그래도 그럴 리는 없겠지. 라이조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야 사부로는, 그런 기색 한 번 보인 적이 없다. 대단한 자만이었다.

그럼, 어째서일까. 이런 나쁜 장난을 해놓고, 사과도 안 하면서 사실은 나쁜 짓 했단 걸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짓는 건. 입이 희미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 뭔가 말해야 한다는 의식은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 마디 변명도 하지 않고 눈물까지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눈물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라이조 쪽이 먼저 뿌리를 들었다. 그러니까, 괜찮다고 해버린 것이다. 말할 수 있게 되면 이유를 알려달라고 한 건, 사과를 바랐기 때문이 아니다. 순수하게 왜 그랬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약 다음이 있다면. 다음엔 제대로, 사부로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고 싶다. 사부로의 마음을 알고 싶었다.

사부로 쪽을 신경 쓰지 않게끔 일상을 보내고 있는 사이,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왔다. 이런 단어 선택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라이조도 자고 있을 때 들이닥칠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깨어났을 때는 내심 동요했던 것이다.

라이조가 바로 정신 차릴 수 있었던 건, 보고 싶었던 사부로의 얼굴이 무척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애달픈 눈을 하고 있는 거야. 나와 입 맞추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것처럼 필사적인 얼굴을 하고 있는 거야. 그런 마음에 심장을 사로잡혀, 억지로 당했는데도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두근두근 하고 심장이 뛰어올랐다. 사부로가 풀어줬을 때, 심장은 시끄러울 만큼 요동치고 있었다.

창피한 심정으로 가슴을 억누르면서, 라이조는 다시 이유를 물었다. 바로 옆에서 얼굴을 훔쳐보고 있으면 왠지 납득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상상과 짐작만으로 알게 되는 건 싫었다. 사부로 자신의 말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태연하게 말 못 하겠어라고 했을 때는 무척 낙담했다. 이어서 사부로는 싫었냐고 물었다. 라이조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 시선을 느꼈다. 이건 또 하고 싶다는 말일까. 기분은 심히 안 좋았지만 라이조도 대답하지 않으면 불공평하다. 말할 수 없다고는 해도, 사부로는 제대로 대답해준 거니까.

싫냐 싫지 않느냐고 한다면, 라이조의 마음은 후자였다. 사부로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알고 싶다. 그런 서글픈 표정을 짓는지 알고 싶다. 다시 가까이서 저 얼굴을 보고 싶다. 입을 맞출 때, 전부 빼앗기는 듯한 감각도 싫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걸 계속한다면 언젠가 사부로가 이유를 말해줄 가능성도 없진 않으니까.

문제는 뭐라 대답해야 좋을까 다. 싫지 않아는 너무 무정하다. 그럼 하고 싶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건 유혹하는 말이잖아!

머리를 감싸고 싶은 기분으로, 라이조는 가장 완곡한 말을 골라 입에 꺼냈다. 그래도 유혹 문구다. 창피해서 사부로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사부로가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몸을 움츠린 것을, 라이조는 보지 못했다. 라이조는 사부로를 비교적 뻔뻔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사부로의 내면은, 잘 사귀어보면 의외로 섬세하고 느끼기 쉬웠다. 어느 아침만 해도 무서운 꿈을 꾼 듯 통곡했을 정도다. 나는 좀 더 사부로랑 친해지고 싶어. 사부로를 안고 진정시키면서, 라이조는 실감했다. 사부로가 해주는 것보다 더 친해지고 싶고 상냥하게 대하고 싶다. 무서운 꿈을 꾸고 낙담해있다면 기운을 불어넣어주고 싶다. 그래서 이렇게 사부로의 마음을 알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점차 라이조는 다음을 기다리게 됐다. 라이조에게 그것은 이미, 사부로와 친해지는 한 가지 방법이기도 하고, 사부로의 마음을 알기 위한 실마리이기도 했다. 연인끼리 하는 거라는 인식은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져 있었다. 그런 라이조를 비웃는 듯이, 사부로에게서 좀처럼 할게라는 말은 들을 수 없었다.

손꼽아 기다린 세 번째는 철 지난 태풍이 부는 밤이었다. 라이조에게 있어서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불을 끈 뒤였고, 덧문을 닫아 두었기 때문에 방 안은 무척 어둡다. 그래도 사부로가 하기 전에 말을 걸어준 덕분에 깜짝 놀라지 않았다. 그리고 사부로가 손을 더듬어 다가오는 걸 보고, 라이조는 깨달은 것이다.

사부로는 이 어둠을 꿰뚫어보지 못하는 듯하다. 항상 누구보다 먼 곳을 내다보고, 아무리 빠른 것도 확실히 볼 수 있는데도.

얼마나 얼굴을 흉내 내도 사부로는 라이조와 다른 인간이고, 뒤떨어지는 부분이 있으면 뛰어난 부분도 있다. 그거면 된다고, 자신도 존재해도 되는 거라고, 라이조는 겨우 납득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사부로에게 도움을 받아 고마움과 동시에 복잡한 마음을 안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라이조가 성심성의껏 노력을 다한다면, 분명 어림잡아 같은 양만큼, 사부로를 구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연극 소품도 그림자도 아닌, 다른 인간이라는 것이다.

몸에 익지 않은 폐를 끼칠지도 모른다, 사부로는 장난을 좋아하니까. 하지만 그래도 좋다. 그런 것쯤, 사부로의 옆에서 지내는 날들의 즐거움과는 비교도 안 되니까. 얄궂게도 고민의 계기인 사부로에게 감정을 휘둘리는 걸로, 겨우 라이조의 세상이 뒤틀린 것 같은 기간이 끝을 고한 것이었다. 이 사실을, 라이조는 제 마음속에 소중히 지니기로 했다. 이건 나만의 비밀.

상쾌한 기분으로 사부로를 맞이한 라이조는, 그렇게 드디어 남에게 안기는 편안함을 알게 됐다. 입 맞추는 쾌감을 알았다. 그 뒤로는 깊이 빠져드는 것처럼, 그것에 탐닉해갔다. 이 계절에는 드문, 쌀쌀한 밤이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탓이다. 평소였으면 쌀쌀한 정도의 온도였지만 라이조의 몸은 살짝 달아올라 열이 나는 것만 같았다. 저녁에 지독한 소나기가 내린 뒤부터 계속 이렇다. 밤 내내 비가 왔으면 좋겠다. 그런 이기적인 욕구를 가슴에 품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지금은 불을 끄고 이불에 들어갔다. 암흑 속에서, 뜨거운 숨이 새어나오지 않게 살며시 죽이고 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라이조는 사부로가 키스할 때 이런 밤을 즐겨 고르는 걸 습관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귀는 쫑긋 귀울이고 있다. 때문에 사부로가 말을 걸고, 드디어 왔다, 고 생각한 것이다.

라이조는 들뜬 목소리를 내지 않도록 신경 써서 대답했다. 사부로가 이 녀석이 기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좀 부끄러우니까. 희미하게 옷 스치는 소리를 내며 사부로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한 뼘밖에 안 되는 거리를 기어왔다. 라이조는 눈을 둥글게 뜨고 사부로를 바라봤다. 항상 그렇지만, 조금 표정이 딱딱하다. 긴장하고 있는 걸까. 어두운걸.

신중한 손끝이 라이조의 이불 가장자리에 닿았다. 왠지 주저하고 있다. 라이조는 초조해서 스스로 손을 뻗었다. 나는 여기 있어. 그렇게 말하고 싶은 마음을 숨기고, 손끝을 서로 닿게 했다. 눈살을 찌푸리고 있던 사부로의 표정이 활짝 밝아졌다. 꼭 부모를 찾은 미아 같다. 그걸 보고 있자니 라이조는 늘 가슴 안쪽에 불이 켜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손끝은 이제 망설이지 않았다. 짧게 정리한 손톱을 어루만지고, 손목에 다다라 팔꿈치를 잡는다. 아차 했을 때에는 이미 끌려가있었다. 꼭 안겨있으면, 그곳은 이미 사부로의 팔 안이었다.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사부로가 심호흡하는 기척이 났다. 이렇게 붙어 있으면 쓸데없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킬지도 모른다. 이렇게 추운데, 몸은 평소보다 따뜻한 것도. 창피함 때문에 몸을 뒤척였지만 사실은 온몸이 간질간질 거릴 만큼 기대 쪽이 강하다. 라이조는 사부로와 똑같은 자세가 되어 그 때를 기다렸다.

 

「……해도 돼?

 

이윽고 고개를 든 사부로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라이조는 대답하려는 중에 목이 바짝 마른 것을 깨달았다. 저도 모르게 예민해진 모양이다. 급하게 침을 삼키고 이번에야말로 대답을 했다. 차가운 손가락이 입가를 어루만진다. 이어서 손바닥이 볼을 감쌌다. 고동이 너무 시끄러워서 가슴이 아프다. 서서히 다가오는 얼굴에 시선도 맞추지 못하면서 숙이는 것도 싫어, 라이조는 고개를 든 채 눈을 꽉 감았다.

새가 나뭇가지에 앉는 듯 가벼운 모양새로 사부로의 입술이 닿았다. 그 순간 라이조의 머릿속은 단숨에 한 가지 색으로 칠해지고 만다. 부드러워. 기분 좋아. 부드러워. 그것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부드러운 입술은 남의 피부와는 분명하게 다르다.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민감하고 섬세했다. 잠깐 달라붙어, 한 숨 떨어지고, 다음에는 각도를 바꿔서 밀어붙인다. 그것만으로 등골이 오싹오싹할 만큼 부들부들 떨렸다. 이 사소한 움직임조차 사부로에게 전해지고 있겠지. 그런 확신이 라이조를 더욱 취하게 했다. 입을 맞추고, 밀어붙이고, 잠깐 떨어져서, 다시 집어삼키고. 반복하는 사이 나른하게 몸에서 힘이 빠져버린다. 의식을 붙잡고 있지 않으면 기분이 너무 좋아서 어떻게 될 것만 같았다.

 ……사부로. 사부로는 어떨까. 나처럼 기분 좋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지금도 다시, 그 서글픈 표정을 짓고 있을까. 쾌감으로 계속 눈꺼풀을 감고 있었지만, 알고 싶어서 힘들게 눈을 떴다. 자칫하면 새하얘질 것 같은 시야를 몇 번 눈을 깜빡여서 확보했다. 마지막에 겨우 보인 사부로는, 무척 괴로워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 하고 커다란 한숨이 나와 라이조는 숨 쉬는 걸 까먹을 만큼 열중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수영할 때는 더 오랫동안 잠수할 수 있는데, 어째서 매번 이렇게 되는 걸까. 사부로가 나를 신경 써줄 때면 더더욱 참을 수 없었다. 입은 떨어졌는데도 심장은 아직까지 날뛰고 있다. 그걸 깨닫고 싶지 않아서, 라이조는 팔을 내빼서 몸을 떼어냈다. 손으로 짚은 사부로의 가슴팍은 겉보기보다 단련되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 여기 있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어지러울 만큼 얼굴에 피가 솟았다. 오랫동안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문득, 뚝 뚝 하고 어렴풋이 소리가 났다. 라이조는 소리의 근원을 찾고 숨을 삼켰다.

사부로, 울고 있어.

? 어째서?

미지근한 쾌감에 잠겨있던 머릿속이 단숨에 엉망진창이 됐다. 왜 눈물을 흘리는 거야? 슬퍼서? 왜 키스할 때 본 것처럼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거야?

묻고 싶은 건 산처럼 많은데, 입을 열어도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생각지도 못한 사태에 라이조가 허둥지둥하는 사이 사부로는 고마워와 잘 자라는 말을 하고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사부로. 울고 있는 너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는 걸까. 그게 너무나 안타까워서. 라이조는 어떻게 대답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사부로가 반대편 이불로 돌아간 걸 지켜보고, 라이조도 힘없이 이불에 쓰러졌다. 눈시울이 뜨겁다. 가차 없이 내리는 빗소리가 무력함으로 흘린 오열을 지워주었다.

눈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라이조는 적어도, 하고 생각했다. 내일도 소나기가 왔으면 좋겠다. 그럼 만에 하나, 또 사부로가 하고 싶다고 해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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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해가지고 식자가 많이 엉망인데 글두했으니까 올립니다\.......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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