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이치마츠를 유괴해버린 나르시스트 카라마츠와, 유괴되어도 꽤 여유로운 이치마츠가 카라마츠를 평범하게 대하는 이야기. 제목대로 푹신푹신한 유괴 외금 생활 하고 있습니다. 카라마츠만 형제가 아니라는 설정. 그리고 모 기생충의 집이 도쿄가 아닌 곳에 있습니다. 죄송.


유괴감금의 야한 이야기도 좋아하지만, 너 진짜 감금된 거 맞아? 엄청 여유롭네? 같은 이야기도 좋아해서 후자를 목표로 썼습니다. 살벌하지만 달달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항상 살벌이 어디론가 날아갑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달달하고 꽤 현실적인 느낌으로 쓴 것 같습니다. 갑자기 쓰고 싶어져서 빠르게 쓰고 빠르게 올려서, 말도 안 되는 오타나 모순이 있다면 죄송합니다…


카라이치가 너무 좋아서 마츠2기 기다리고 있습니다.


*




「오늘 말이야~, 도플갱어랑 만났는데」


장남의 엉뚱한 발언은 늘 있는 일이다. 때문에 장남을 제외한 다른 형제는 그 엉뚱한 말에 특별히 반응하지도 않고 묵묵히 저녁을 입에 넣었다. 결국 무시다. 그러나 우리가 장남을 대하는 방법이 엉성한 건 맞지만, 무시당한 당사자에게는 늘 있는 일로는 끝나지 않을 사건인 모양이다. 설마 아무런 반응도 없을 거라 생각하지 못한 장남은 있을 수 없다며 한명 한명의 얼굴을 봤다. 지그시 바라보는 것은 다들 알고 있지만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반응하면 너무 귀찮은 일에 얽힌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장남이 형제 모두의 얼굴을 본 뒤 약 1분. 생각에 잠긴 장남이지만, 겨우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았는지 탁자를 치며 일어섰다.


「에, 혹시 나 무시당하고 있어?!」

「눈치채는 거 느려」


토도마츠의 쐐기로 무시당하고 있다는 슬픈 현실을 완전히 깨달은 것 같다. 장남은 믿을 수 없다면서 다시 형제를 봤다. 우리한테 말해도 뭘 믿을 수 없는지 모른다. 이 사람의 엉뚱한 이야기에 어울려서 좋았던 적이 없는데 누가 자진해서 목을 넣겠는가.


「거짓말 거짓말! 진짜 무시? 뭐야 너희를 위해 말해줬더니, 무시하는 건 심하지 않아~?!」

「늘 있는 일이야, 시꺼 장남」


떼쓰는 장남에게 쵸로마츠가 짜증내며 시비를 걸었다. 이건 좋지 않은 흐름이다. 쵸로마츠의 명예를 위해 말하지만 자칭 상식인을 사칭하는 그가 항상 짜증 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금의 쵸로마츠는 누가 봐도 살기를 낸다. 분명 내가 모르는 곳에서 이미 장남의 피해를 받았겠지. 그래서 관종 모드 장남이 말을 건다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음이 틀림없다. 오소마츠의 얼굴이 관종 모드에서 쵸로마츠 괴롭힘 모드로 바뀌는 것을 체념하며 바라봤다.


「에ー! 쵸로마츠 오늘 평소보다 신랄하지 않아?! 아, 혹시 레이카랑 악수 방해해서 아직도 한이 맺혔냐? 하~~고작 악수 정도로 싫다, 이러니 동정은」

「너도 동정이잖냐!」

「악수하면 레이카랑 섹스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쵸로시코스키는 악수만으로 당분간 반찬으로 떼울 수 있다는 소리?」

「레이카가 아니라 냐쨩!!…아ー, 이제 무리! 앞으로 나와 새꺄!!」


역시 귀찮아졌다. 장남의 도발에 넘어간 쵸로마츠를 보고, 나는 내심 큰 한숨을 쉬었다. 차남이 완전히 장남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버린 이상 여기서 선택지는 두 개밖에 없다. 하나는 도플갱어랑 만났느니 하는 장남의 말을 듣거나, 다른 하나는 쵸로마츠의 분노가 폭발해 형제 싸움으로 발전하기를 기다리거나. 후자는 전자보다 상당히 귀찮을 테니 나는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도플갱어가 뭐야」


신나서 쵸로마츠를 괴롭히는 장남이었지만, 내가 이야기를 도플갱어로 돌린 순간 좋은 질문이라는 듯 눈을 빛내며 나를 보았다. 쵸로마츠 괴롭히기는 그만둔 것 같지만, 이 얼굴은 끝까지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해방되지 못하는 녀석이다. 무척 귀찮지만 어쩔 수 없다. 왜냐면 쵸로마츠를 화나게 하는 건 싫고, 더 이상 떠들면 이틀째 카레를 먹는 쥬시마츠의 역린을 건드릴 것 같고, 토도마츠는 얼른 카레를 먹고 휴대폰을 시작했다. 자칭 상식인인 차남이 장남이라는 소용돌이에 뛰어들어 버린 이상 마츠노가 삼남인 마츠노 이치마츠가 어떻게 할 수밖에 없었다.


「도플갱어는 도플갱어지!」

「무슨 마츠 말하는 거야」


동정 괴롭힘으로 분이 풀렸는지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에게 질문을 거듭했다. 말투부터가 아직 화난 것 같지만, 여기서 열심히 듣는 걸 보면 쵸로마츠답다고 생각한다.


쵸로마츠가 무슨 마츠를 말하는 거냐고 묻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다섯 쌍둥이이다. 드문 다섯 쌍둥이 형제. 게다가 모두 남자에 무직이라는 슬픈 현실을 안고 있다. 오소마츠, 쵸로마츠, 나, 쥬시마츠, 토도마츠는 타인이 보면 거의 같은 얼굴이다. 그래서 쵸로마츠의 질문은 어떤 면에서 당연했다. 같은 얼굴이 다섯 개나 있는데 같은 얼굴이 더 있냐고. 도플갱어라면 매일 만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소마츠의 도플갱어와 만났다는 말은, 역시 장난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마 쵸로마츠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콩트, 도플갱어 같은 별거 없는 놀이를 형제 누군가와 하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우리의 생각을 빗나가, 오소마츠는 왠지 신이 나 가슴을 펴고 말했다.


「카라마츠」

「하?」


카라마츠.


「그게 뉘겨」


모르고 진심으로 질문했다. 그게 누구지.


「도플갱어라니까」

「에, 그거 진짜야?」

「진짜라고! 진짜 닮았다니까~굉장하지? 설마 우리가 실은 여섯 쌍둥이인가? 라고 생각했어」


동생 둘의 눈치를 봤지만 둘 다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누구도 장남의 도플갱어 발언에 관련되지 않았다. 그럼 진짜인 걸까? 아니 이 장남이니까 다 새빨간 거짓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공의 이름이 순간적으로 나올 정도로, 이 사람이 머리를 굴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즉, 정말 의외로 우리 형제를 빼닮은 마츠가 있다는 걸까. 그렇다면 세상은 좁다. 이름까지 비슷하다니 있을 수 없다.

자신 이외의 전원이 놀란 상황에 만족했는지, 오소마츠 형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만족스러운 표정은 무너졌다.


「아」


정말 부자연스럽게, 꼭 방금 엄청 중요한 게 생각났다는 듯이 "아"라는 장남의 말과 함께.


장남 이외의 마츠는 그 비현실적인 "아"에 머리를 싸맸다. 아무튼 그 "아"는 장남 특유의, 뭔가 뒤가 켕길 때 나오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대개 꺼림칙한 일도 가볍게 사과하는 장남이 말하기를 주저할 때는 드물다. 그래서 장남의 "아"가 나온 이상, 뭔가 큰일이 일어날 것이 틀림없다. 슬프다, 이십몇 년 동안 같이 지내면 그 정도는 알게 된다.


「그 카라마츠라는 녀석, 나쁜 놈은 아닌데 실은 호모래~」

「하아?!」

「구라지?!」

「체ーーーー인지!!」


너무나 가볍게 던진 충격적인 사실에 나만 목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마음은 모두와 같았다. 아니 아니 아니 그건 너무 예상 밖 아니야? 꺼림칙한 일이 그거?

같은 얼굴을 한 남자를 호모라고 표현한 업적을 이루자마자 카라마츠라는 존재가 오소마츠가 만든 가공의 존재설이 완전히 사라졌다. 장난으로 같은 얼굴을 한 호모를 낳은 의미를 모르니까, 아마 카라마츠는 존재함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알았으니 어쩌냐는 것이다. 그럼 이 이야기는 오소마츠 형의 장난이고, 사실은 카라마츠가 없다는 쪽이 낫다. 그야 남이 보면 같은 얼굴을 한 남자가 호모라고. 즉 우리 형제 모두가 호모 의혹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뭐야 그거 무서워.


「아니 호모랄까? 그, 심한 나르시스트? 같은? 그러니까 호모인 거야」

「하? 뭐란겨?」


심한 나르시스트라서 호모가 됐다? 잘 모르겠다. 그런 우리 전원의 마음을 쵸로마츠가 대변했다. 뭐라는 거야?

모두에게 주목받는 상황이 좋은지, 장남은 거드름을 피우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귀찮지만 궁금한 건 사실이므로 얌전히 귀를 기울인다.


「카라마츠는 대단해. 자길 엄청 좋아하고 발언은 안쓰럽고. 너무 안쓰러워서 그 녀석이랑 조~금만 말했는데 형아 지금 갈비뼈 개박살났다고?」

「말만 해도 갈비뼈 부러진다고?! 무섭잖아!」

「너도 얘기해보면 안다니까! 진짜 부러져! 뭐, 형아는 갈비뼈가 부러져도 열심히 카라마츠 군이랑 얘기했답니다. 대단하지?」


우리는 잠자코 이야기를 재촉했다. 그러자 장남은 아~처럼 뭔가 신음하더니 시선을 이리저리 헤맸다. 곤란하다. 이 남자의 말문이 막히다니 이만저만한 비밀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숨을 삼켰다.


「카라마츠는 나르시스트잖아?」

「아니 모르겠는데」

「그렇다는데. 그럼, 그 나르시스트는, 의미를 모르겠는데, 자기 자신이랑 사귀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지?」

「응 모르겠어」

「응…나도 모른다고…얼굴이 똑같은 나랑 만난 게 운명이니 뭐니 해서, 형아 고백받았습니다」


무슨 악몽일까. 너무 애통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한순간이지만 장남을 동정했다. 하지만 그런 동정은 어디론가 날아갔다. 왜냐면 그 얼굴은 아직 모든 참회를 마친 얼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개 남자한테 고백받을 정도면, 이 남자는 전원이 모이기 전에 형제에게 맨 처음 보고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이 녀석의 머리가 비어있다는 건 형제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런 장남이 드물게 말끝을 흐리면서 우리에게 보고하다니, 뭔가 더 말하기 어려운 일이 있다.


「대체 뭘 숨기는 거야」


나는 재촉했다. 장남은 조금 미안한 얼굴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숨기고 있는 건 아닌데~…거, 남자한테 고백받았으면 당연히 거절하잖아? 그야 난 여자애가 좋걸랑. 기회만 있으면 지금 당장 귀여운 여자애랑 한발 하고 싶고. 그래도 카라마츠는 운명이니 뭐니 하면서 날 안 놓아주더라고, 아니면 그대로 집까지 데려갈 것 같아서 무서웠어~어떻게든 도망가지 않으면 몸이 위험하다고 진심으로 생각했어. 그래서 난 그 녀석한테 제안을 했지. 이야~그때의 난 냉정하지 못했으니까~어쩔 수 없어~」


온몸의 털이 서는 것을 느꼈다. 장남이 눈을 피하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설마, 설마 이 녀석.


장남은 죄책감을 느끼기에 질린 듯 눈 돌리기를 멈추고 웃으면서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나, 다섯 쌍둥이라 같은 얼굴이 네 개나 있어. 그래서 다 지켜보고, 너랑 제일 닮은 놈이랑 사귀는 게 좋지 않겠어? 라고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생을 팔아먹은 장남은 나를 포함한 다섯 형제에게 반죽음당했다.





라는 이야기를 한 게 어제. 아마 아직 24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시간을 모르니까 추측이지만.


「일어났나? 마이 스위트 허니」


아직 하루 안 지났거든. 이런 일이 되리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나의 이름은 카라마츠. 자주 헷갈리니 설명하지만 가타카나로 카라, 한자로 마츠다. 잘 부탁하지. 나의 사랑스러운 사람이여」


친애하는 쿠소 장남님.

네 덕분에 나는 무사히 유괴됐습니다. 뒤져.



아마 고양이를 보러 가려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덮쳐졌다고 생각한다. 집을 나온 것까지는 기억이 나지만, 점찍어둔 아이들과 만난 기억은 없었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한 뒤에 어슬렁어슬렁 집을 나오는 나도 나라고 생각하지만, 장남을 줘팼더니 농담을 까먹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역시 이 이야기를 현실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눈앞에 닮은 얼굴이 있는 지금의 상황은 확실히 현실이었다.


「기분은 어떻지? 조금 전까지는 새근새근 고이 잠든 얼굴을 나에게 보여줬다만, 지금은 안색이 안 좋군. 물이라도 마시겠어?」

「아니…됐어」

「기다려다오」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녀석이 물을 가지러 가서, 나는 상황을 조금이라도 파악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봤다.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방 안은커녕 창문 밖을 바라봐도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기다렸지, 허니」

「…감사」


웃으면서 내민 물을 순순히 받자 남자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웃었다. 잘 모르겠지만 이 녀석은 정말 기뻐 보였다.


유괴범에게 받은 물을 머금으며 어제 장남이 한 이야기를 떠올린다. 도플갱어라니 농담 말라고 생각했지만, 눈앞의 남자를 실제로 보니 정말 도플갱어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같은 얼굴로만 보일 것이다. 게다가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 감탄했다. 도플갱어가 실제로 존재하는구나. 그리고 다시 감탄한 것은 우리의 얼굴이 특별히 잘생기지도 않았고 눈앞의 이 녀석이 잘생긴 것도 아닌데, 이런 초라한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는 절대로 이해 못 할 감성이었다. 허니라니 죽어도 말 못 한다. 게다가 남자한테.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지」

「응?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녀석이 왜 나르시스트가 됐는지,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우선 탈출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행히 유괴라는 비인도적인 일을 당하고 있지만 쇠사슬로 연결되거나 그런 에로  만화 같은 짓은 당하지 않았다. 남자인 내가 그런 짓을 당했다면 일어난 순간 자존심이 부서져 즉사했다.


「여긴, 당신 방…이네요」

「그래. 오늘부터 여기서 같이 살자!」


아, 이 녀석 위험해. 사람 말을 안 듣는 타입이다. 장남에게 들은 대로 마이 스위트 허니는 확실히 안쓰럽지만, 무엇보다 위험한 녀석이라는 걸 순식간에 깨달았다. 잘 생각하면 자기자신과 사귀고 싶다는 시점에서 위험하고, 사람을 납치해놓고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것도 위험하다(나이 먹은 성인 남성이 쉽게 유괴당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더 말하자면 내 의지를 모두 무시하는 것도 큰일이다. 너무 위험하다. 이 녀석을 그렇게 자극해서는 안 된다. 나는 신중하게 말을 고르면서  발언했다.


「같이…」

「아아, 그렇다! 의식주 무엇 하나 불편하지 않아. 난 의식주로 고생한 적은 없으니까. 너는 내 애인이며 분신이니, 나와 다른 일을 시킬 수는 없잖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물론 입으로 말하진 않지만.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이 표정으로 나왔는지, 날 유괴한 범인은 친절하고 정중하게 설명해 주었다.


「모르겠나 허니?」

「네…」

「그럼 설명하지. 괜찮다, 내가 아는 걸 네가 모를 리 없어. 너는 나고, 나는 너니까」

「…」

「나는 나를 사랑한다. 그리고 네 외모와 쿨한 성격을 사랑하지. 어제…아, 이름을 잊어버렸지만 됐어. 어쨌든 빨간 그의 뒤를 밟아 밤새도록 너희 집에서 모습을 살폈다만, 네가 가장 쿨하고 나이스 가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집에서 나온 네 외모를 보고 확신했지, 운명의 여신은 너와 내게 웃었다…고. 그 목소리는 냉정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재촉하는 쿨 가이잖나? 용모도 성격도 퍼펙트하다니, 나와 사귈 수 밖에 없다! 아아, 사랑한다 나!」


세게 안기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 녀석은 글렀다. 한시라도 빨리 병원을 소개해줘야 한다. 아니 이런 놈한테 얽히지 말라고 쿠소 장남. 왠지 저항할 힘도 사라졌다. 아마 뇌가 폭발했겠지.


「허나 난폭한 짓을 한 건 정말 미안하다. 믿어다오, 정말 이런 짓을 할 생각은 없었어. 그저 네 모습을 보니 흥분해버려서…뒤에서 세게 안았더니, 힘이 너무 셌는지 네가 기절해서 딱 맞으니 여기로 데려왔다」

「뭐가 딱 맞냐」


무심코 본심이 나왔다. 망했다고 생각했지만 이 유괴범은 제가 듣기에 나쁜 말은 안 듣는 멋진 귀를 가진 것 같다. 웃기만 하고 내 발언에 기분이 상한 것 같지는 않았다. 대화는 아주 조금밖에 안 했는데 이 녀석에 대한 인식을 몇분 전과는 좀 바꿔야겠다. 이 녀석은 진작에 위험함을 넘었다. 국가를 흔들 수준의 위험 인물이다. 아니, 쓰레기 니트 하나를 납치한 정도로 허풍 떤다고 생각하지만, 내 작은 세상에서는 메이데이 메이데이. 하지만 아무리 구난 신호를 보내도 도움이 오지 않는 것은 분명했다. 내가 얼마 동안 기절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제 오늘로 나의 실종 신고가 나올 리는 없고 부모님도 형제도 기본적으로 드라이하니 잘못하면 한달이나 수색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탈출하려면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밖에 없다.


「저, 여기가 어딥니까? 당신의 집 같은 게 아니라, 장소가 어딘지」


내가 도망간다고는 조금도 생각 못 할 남자에게, 일단 시험 삼아 직구로 질문했다. 가까우면 빨리 도망쳐서 집으로 돌아가자.


「여기? 규슈다만」

상상한 수십배나 대이동했다.


「도쿄는 출장으로 간 것뿐이니까. 출장도 어제로 끝이고, 널 여기로 데려왔다」


정말 성가신 일을 해주셨다. 그럼 난 얼마 동안 기절한 거야. 하늘을 우러러봤지만 보이는 건 낯선 천장뿐이라 조금 눈물이 나왔다. 원래 멘탈이 그렇게 강한 편이 아님을 이제서야 생각하고 말았다. 이 녀석이 너무 이상해서 완전히 잊고 있었다.


한 번 슬퍼지니 무용지물이었다. 아아, 도쿄의 부모님. 고양이. 덤으로 형제들이여. 나는 여기서 죽을지도 모릅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오열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하늘을 보면서 울었다. 에, 왜 이 녀석이 우는 거야. 의미를 모르겠는데. 빨개진 눈으로 유괴범을 보니 놈은 나를 보면서 울고 웃었다.


「드디어 나와 연결돼서, 기쁜 거군」


아니거든.





유괴 첫날은 내가 깨어난 게 밤이었다는 것도 있고, 함께 저녁을 먹는 걸로 끝났다. 저녁을 먹을 때도 놈은 시종 싱글벙글해서, 나 자신을 보면서 먹는 밤은 맛있구나 하고 또라이 같은 감상을 남겼다. 이 녀석에게 가장 중요한 건 똑같이 생긴 녀석이랑 먹는 거겠지. 그래서 내가 놈의 말에 맞장구를 치지 않아도 딱히 기분이 상한 기색이 없었다. 성격도 퍼펙트라고 낮에 말했지만, 내 내용물은 결국 상관 없는 게 뻔하다. 즉 내가 유괴된 이유는 어제 제일 먼저 집에 나왔기 때문이다. 이 녀석이 장남의 입발림에 넘어가지 않았으면, 내가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었으면, 애초에 장남이 이 녀석과 사랑의 도피든 뭐든 시작했으면 이런 일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장남에 대한 살의밖에 없다.


저녁은 카라아게였다. 나는 카라아게를 좋아한다고 맛있게 먹는 모습은 유괴범이 아닌 순진한 아이 같았지만 역시 유괴범이므로 공포만 느낀다. 하지만 유괴범이 내준 음식을 먹는 나도 상당히 배짱 있다. 여유롭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전혀 여유롭지 않다. 눈앞에 고양이 한 마리라도 보이면 울 정도로 불안정하다. 그럼 왜 태평하게 카라아게를 먹냐고 물으면, 내게는 아직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내일은 일하시나요」

「아까부터 생각했다만, 존댓말은 그만두지 않겠나? 난 존댓말이 서툴러서 너도 서투르잖나?」

「…내일 일해?」

「아아. 하지만 아마 7시에는 돌아올 거라 생각하니 안심해다오! 내 귀가를 기다려주는 네가 집에 있다니, 지금부터 돌아오는 게 기대된다!」


얼굴도 변하지 않고 말하는 소리는 엉망진창이지만, 뭐 상관없다. 그래, 이 녀석은 우리랑 같은 얼굴인 주제에 훌륭하게 일하는 모양이다. 집에 걸린 양복을 보면 평범한 직장인이겠지. 이건 나에게 매우 안성맞춤이었다.


「알았어」

「모처럼 이어졌는데 미안하군. 내가 없는 시간은 무척 지루하겠지만, 만나지 않는 시간이 사랑을 키운다고도 한다. 나만을 생각하며 기다려다오」


아니 안 와도 돼. 내가 나갈게. 내일은 제일 먼저 친정에 연락해서 내가 처한 상황을 전달하자고 생각하며 저녁을 다 먹었다. 드라이한 형제들이 있지만 한 명이 납치됐으니 조금은 도우려고 하겠지. 규슈는 너무 멀리 있으니까 하루는 도움이 안 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떻게든 된다. 남자가 남자한테 납치당한 안건으로 경찰에 신세를 지고 싶지는 않으니 어떻게 해줘 형제. 아니 장남은 나를 도울 의무가 있다. 

나는 형제들에 대한 믿음과 내일의 희망을 품고 잠이 들었다.




여차하면 형제가 동료가 된다.


그렇게 생각하던 시절이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장남은 노답 쓰레기였다. 다른 형제는 몰라.


다녀오세요 뽀뽀를 조르는 유괴범을 진심으로 거부했지만 결국 거부하지 못해 볼 키스로 용서하고, 깊은 절망 속으로 녀석을 쫓아낸 뒤 바로 공중전화를 찾는 여행을 떠났다. 이 시대에 공중전화는 좀처럼 없지만 1시간 정도 주변을 방황하니 찾을 수 있었다. 바지 주머니에는 기적적으로 동전이 몇 개 들어 있음을 어제 확인했으니 정든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안 받으면 어쩌나, 호출음이 울리는 동안 굉장히 두근거렸지만 친정에 연결된 순간 솔직히 조금 울었다.


「여보세요, 나 이치마츠인데」

「아? 이치마츠?」


지금 생각하면 최악이지만, 전화를 받은 건 붉은 악마였다.


「오소마츠 형? 그,」

「아침 일찍 전화 걸지 말라고~그럼 안녕―」


지금만큼 사람을 죽이고 싶었던 적이 있을까, 아니 없다.


목소리와 태도로 나타난 노답력은 아무리 생각해도 장남이다. 너무 평소 같은 녀석은 나의 희망을 몇 초로 잘라냈다. 없는 백 엔이 완전히 없어진 순간이었다. 물론 거스름돈은 나오지 않는다. 공중전화를 바닥에 내리칠 뻔했지만 아직 나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공중전화에 화풀이 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다. 지금 건 운이 나빴을 뿐. 쿠소 장남 이외라면, 제일 노답 쓰레기 이외가 전화를 받으면 내게도 아직 기회가 있다. 남은 동전 10엔 두 개와 1엔짜리. 즉 기회는 앞으로 두번. 단 두번, 그러나 두번. 

나는 아까보다 떨리는 손으로 친정 번호를 눌렀다.


「네 네 네~! 쥬시마츠임다!!」


받은 것은 한 살 아래 동생 쥬시마츠였다. 솔직히 말한다. 꺼림칙한 예감이 들었다.


「! 쥬시마츠, 나 이치마츠인데」

「아하~! 이치마츠 형임까! 응? 이치마츠 형? 이치마츠 형…오오오 이치마츠 형!!」

「응, 그래 이치마츠 형. 저기」

「잇치마츠 형! 이치마츠 형~!!」

「아니, 저, 쥬시마츠」

「이치마츠 형 전화다ーーー!!!!」

「에, 아, 쥬시,」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



지금 건 공중전화도 분위기 읽고 노카운트로 해줬으면 한다. 10엔으로 이야기를 한다니 뻔하지만, 이리 의미 없는 전화가 일본에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그 정도로 별거 아닌 전화였다. 뭐 쥬시마츠가 나온 시점에서 나의 패배는 결정되어 있다. 지금 건 내 잘못이다. 내 운이 나쁘다.


「아직, 아직 한 번 남았어」


나는 완전히 멈추지 않는 떨림을 필사적으로 누르며 전화번호를 눌렀다.


「네, 후츠마루입니다」

「누구냐고!」


나는 수화기를 본체에 던졌다. 예전부터 설치된 공중전화에 금이 간 게 보였지만 상관없다.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누른 탓에 헷갈린 모양이다. 마지막은 어떻게 봐도 내 실수였다. 후츠마루 씨의 잘못이 아니다. 한줄기 희망을 걸고 다시 주머니를 뒤져도 10엔이나 100엔도 없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완전히 답이 없다.


「망했다…」



망했다. 진짜 망했다. 이렇게 되면 최종 수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남자가 남자한테 유괴당했어요(양쪽 다 성인인 호모 안건)라니 무슨 악몽이야 라는 느낌이지만, 내게는 경찰서에 갈 길밖에 남지 않았다.


「하아…」

「잠깐, 자네」


경찰에 뛰어든 자신의 한심한 모습과, 경찰서를 찾는 수고를 생각한 나의 등에서 누가 말을 걸었다. 설마 공중전화에서 누가 말을 걸 줄은 생각지도 못한 나는 몸을 움찔하며 고양이처럼 재빠르게 뒤를 돌아봤다. 거기에 있는 것은 내가 지금 바로 생각한 존재였다.


「겨, 경찰」

「그래, 경찰」


다행이다. 찾을 시간이 절약됐다. 경찰 신세를 지기는 싫지만 눈앞에 보이니 안도로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살았다. 내 운도 아직 쓸만하다. 내 경계를 풀기 위함인지 싱글싱글 웃는 50대 정도의 아저씨, 경찰이 아니라 천사처럼 보였다. 그리고 천사 아저씨는 입을 연다. 나를 돕기 위한 말이 틀림없어, 나는 울먹이며 그 말을 기다렸다.


「아까 우연히 봤는데, 그건 자네가 한 거지?」

「예?」


그리고 천사가 가리킨 것을 보니 아무 도움도 안 된 공중전화가 있었다. 그게 왜? 머리에 물음표를 띄우면서 다시 천사의 얼굴을 보니 그 얼굴이 아까의 미소와는 다르게 바뀐 것을 보고 눈치챘다. 그 미소는 천사가 아니다.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악마의 미소이다.


「기물파손이라고 알고 있나?」

「…아!」


과연, 이해했다.


「알고 있나?」

「………죄송합니다!!」

「아, 자네! 도망가지 마!」


이 상황에서 도망가지 말라고 해서 도망가지 않는 녀석도 없을 것이다. 아니 보통 도망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튀겠습니다. 경찰 옆을 약삭빠르게 빠져나가 달렸다. 그야 거기에 머물면 확실히 경찰행이다. 몇 분 전까지 경찰서에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갈 수 없다. 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완전히 내 잘못이라 발뺌도 못 한다. 무슨 배드 타이밍일까. 아아, 그 공중전화 때문이다. 후츠마루 씨 같은 모르는 사람한테 전화를 걸어서. 아니 그 이전에 장남이 받은 게 잘못이다. 장남 진짜 뒤져라.


나는 울면서 달렸다. 기물파손. 현장 도주. 다시는 경찰서에 못 간다. 이대로 밖에 있는 것도 무섭다. 도망칠 곳은 아쉽게도 하나뿐이었다.




「꽃을 즐기는 건 무척 좋은 일이다. 난 장미를 좋아한다만, 이 화단에는 장미가 없는 게 섭섭하군. 너도 그렇지?」

「하하하…」


울면서 유괴범의 집에 돌아온 나는 자동 잠금장치라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벽에 막혔다. 그래서 아파트 앞에 심은 꽃밭의 꽃과 일체화하면서, 비참하게 경찰에 떨면서 유괴범의 귀가를 기다렸다.


「다녀왔어」

「……어서 와」


매우 본의 아니게, 마츠노 이치마츠, 한동안 이곳에서 신세 집니다.





이 녀석은 유괴했다는 자각은 추호도 없는지, 내가 밖에 나간 데에 관해서도 화내지 않았다. 화를 내기는커녕 공감해줬다. 확실히 날씨가 좋은 날에는, 다리 위에서 걸즈의 열렬한 어프로치를 기다리고 싶은 법이라는 말에는 전혀 찬성하지 못했지만, 기분을 흐리는 것은 피하고 싶어 굳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도 좋아하는 주제에 자기랑 사귀고 싶다니, 이 녀석에 관한 수수께끼는 깊어졌다.


「오늘 같은 일이 있으면 불편하겠지. 그래, 여벌 열쇠를 만들까」

「괜찮아」


확실히 밖에 나갈 때는 불편할지도 모르지만, 여벌 열쇠를 가지면 동의 상에서 함께 사는 것 같아서 싫었다. 여기에 들어온 건 분명히 내 의지지만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이므로 어쩔 수 없이 여기에 있을 뿐이다. 꼼짝없이 오늘도 건강하게 카라아게를 먹고 있을 뿐이다. 카라아게 맛있어.


「아니지!!」


아니 아니 아니, 이상하잖아. 이럴 생각이 아니었어. 유괴범이랑 같이 밥 먹는 데에 이틀 만에 익숙해진 자신의 적응력에 질렸다.


「여벌 열쇠인가…본격적으로 신혼처럼 됐군」


이 녀석은 이 녀석대로 내 말을 들을 생각을 안 한다. 필요 없다고 했잖아! 라 외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신혼이니 하는 말은 무시다 무시. 이 녀석한테 내 말이 전해지지 않는 건 조금만 같이 있어도 알 수 있으므로, 새삼스럽게 화내도 소용없다. 내 말은 완전히 무시하고, 내일은 여벌 열쇠를 만들러 가자면서 멋대로 정하고 있다. 정말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와의 대화는 괴롭다. 카라아게는 맛있지만 그건 고통이었다. 대답은 해도 안 해도 같이 있으니까 아무 말도 안 하면 되지만, 유괴범이 일방적으로 말하는 공간에 당분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미칠 것만 같다. 나는 가급적 대화라는 걸 시도했다. 대화가 아니라 목소리를 내기만 해도 조금은 유괴로 오는 스트레스의 발광을 늦출 수 있다. 지금까지 발광할 예정은 없지만.


「네가 있다고 생각하면 집에 오는 게 즐겁다. 어떻게든 일을 정시까지 모두 끝냈어」

「그래」

「아니, 실은 조금 남아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사랑 앞에서 직장은 무의미하지!」

「그러셔」

「아아 그대여, 아니 난 너무나 멋지다! 완벽한 조형미…오늘의 내게 반했다. 그렇지? 졸린 눈이 사랑스럽군 허니」

「…」



안 되겠다 미칠 것 같아!!


이대로는 안 된다. 이 녀석의 페이스에 휘말리지 마 정신이 죽는다. 유괴범의 말에 맞장구치기만 해도 안 된다. 이 녀석 내 맞장구는 전혀 안 듣는다. 나는 필사적으로 대화의 실마리를 찾았다. 이 녀석을 일방적으로 떠들게 하면 안 된다. 나를 완전히 무시할 생각은 아니니까, 내가 먼저 말을 건네면 분명 대화가 될 것이다. 힘내라 나.


「저, 저기」

「뭐지 마이 러브?」


봐 대화가 성립했다! 일보전진이라고! 스스로도 너무 작은 일보지만. 어디에 전진했는지도 모르겠고.


「그…맞아, 오늘도 카라아게네」

「응? 저녁은 매일 카라아게다만」

「진짜냐!」


대화가 성립했다고 생각했더니 충격적인 사실을 알고 말았다. 예상 밖이다.


「죽잖아!」

「? 안 죽는다만」

「빨리 죽는다는 의미야!」

「그래도 좋아하니까. 너도 그렇지?」

「아니 좋아하지만!」

「참고로 내 점심은 편의점에서 산 카라아게 도시락이다. 물론 매일」

「너 그냥 죽어!」


또 본심이 새고 말았다. 황급히 입을 막지만 유괴범은 내가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모르는 듯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이 녀석에게 나와 녀석의 관계는 내가 너고 네가 나, 인 모양이니 자기가 싫지 않은 이상 나도 싫지 않다는 게 결정사항이겠지. 이 녀석과 말하면서 바로 깨달았다. 그걸 부정해서 욱하는 것도 싫으니까 아무 말도 안 했지만, 매일 카라아게라니. 그건 마땅치 않다. 착각하지 말아 주었으면 한다. 이 녀석이 카라아게 대량 섭취가 원인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른다. 다만 아직 여길 나가려는 확신이 없는 이상, 매일 밤 카라아게는 나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냥 싫다. 엄마의 밥이 이렇게 그리운 적도 없다.


「…메모지랑 펜 있어?」

「거기 서랍에」


요리는 거의 한 적 없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나는 서랍에서 메모지와 펜을 꺼내 가정 요리 실습과 엄마의 밥을 떠올리며 떠오르는 재료를 썼다.


「퇴근하면 이거 사 와」

「왜?」

「됐으니까 사 와!」

「아, 알겠다」


방금 전까지 맛있게 느낀 카라아게도, 매일 먹을 거라 생각하니 순식간에 맛없어졌다. 그러니 할 수 없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여기서 힘낼 수밖에 없다.



다음 날은 특별히 할 일도 없어서, 빈둥빈둥 텔레비전을 보면서 하루를 보냈다. 경찰에 도움을 구하러 갈 수 없게 된 지금 밖에 나가 자동 잠금장치 앞에서 무력함을 곱씹기는 피하고 싶으니까, 집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렇게 지내다 보니 형제 다섯이서 니트 생활을 할 무렵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였다. 단 하나 다른 것은 점심때 하는 요리 프로그램을 조금 진지하게 본 것. 먹어 본 적은 있어도 만들 수 없는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조금 배웠다. 아무래도 유괴범의 텔레비전에는 녹화 기능도 딸린 모양이라 멋대로 요리 프로그램을 매일 예약해뒀다. 아마 이 정도로 화내거나 죽이진 않겠지.


「다녀왔어」


이제 어떡할까 하고 완전히 어두워진 방 안에서 생각하고 있자, 단 며칠로 익숙해진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쓸쓸하게 내버려둬서 미안하군, 자아 어서 와 허그를」

「그런 건 됐으니까 산 거 꺼내봐」

「아, 네」


꼭 유괴당한 사람같지 않은 태도를 보였지만, 유괴범은 화난 기색도 없었다. 어쩌면 뿌리는 좋은 녀석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건 아닌가? 이 녀석의 언동은 그것만으로도 범죄 수준이다. 

유괴범이 꺼낸 재료는 내가 부탁한 물건들이었다. 꿀꺽 군침을 삼킨다. 괜찮아, 나도 할 수 있어. 지금부터 만들려는 음식은 그냥 고기 채소 볶음. 썰고 볶을 뿐이다. 괜찮아 괜찮아.


「프라이팬은 어딨어?」

「그런 건 없다고?」

「…지금 당장! 사와 짜샤! 칼도!」

「오, 오우! 알았다!」


잘 생각해 보니 맨날 슈퍼에서 산 카라아게 도시락을 먹는 남자의 집에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했다.



10분 뒤 돌아온 유괴범이 사온 프라이팬은 굉장히 고급스러워, 너한테 금전 감각이 있냐고 불평할 뻔했지만 두명 동시에 배꼽시계가 울려 입을 다물기로 했다. 나와 넌 빼닮았군 하고 방긋 웃는 유괴범은 좀 이상하다.


「그럼 카라아게를 먹자」

「사왔냐!」

「저녁을 제대로 먹지 않으면 힘이 안 난다」


이렇게 준비해놓고 내가 저녁을 만든다는 일을 전혀 깨닫지 못한 이 녀석은 심각한 바보였다. 이 남자와 만나고 조금밖에 안 지났는데, 아무래도 목소리가 죽어 있다. 평소에는 그리 큰 목소리를 내지 않는 편인데 행동이 너무 이상해서 낼 수밖에 없다. 무사히 집에 돌아가게 되면, 쵸로마츠한테 항상 수고한다고 말하자.


「앉아서 기다려」

「배고프다만…」

「나도 배고파. 그래도 기다려」


딱히 기다릴 필요는 없지만, 나 혼자 힘내는 건 왠지 분하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첫 요리는 대실패였다.


채소부터 익혀야 할지, 아니면 고기부터 익혀야 할지, 도대체 얼마나 익혀야 할지 몰라서 고작 고기 채소 볶음한테 졌다. 조심스레 맛봤지만 고기는 너무 딱딱하고 채소는 까맣다. 물론 탔다. 게다가 잘 따져 보면 프라이팬도 없는 이 녀석 집에 조미료 따위가 있을 리가 없었다. 냉장고에 있는 건 냉동 카라아게와 페트병 차뿐이고 간장과 마요네즈 등은 일절 없어, 게다가 소금이나 설탕도 없었다. 그래서 맛을 속이지도 못하고 탄 냄새만 나는 고기 채소 볶음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내가 겨우 접시에 고기 채소 볶음을 거칠게 담았다. 그러자 유괴범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건……무슨 실험 결과인가?」

「먹을 거야!」


젠장, 요리로도 안 보는 건가. 확실히 매일 슈퍼에 있는 카라아게만 먹는 이 녀석에게는 낯선 음식이겠지. 여기에 올 때까지는 매일 다른 형형색색의 음식을 먹은 내가 봐도 익숙하지 않지만. 유괴범은 고개를 갸웃하고 진짜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왜 요리를 한 거지?」

「맨날 카라아게 먹으면 질리잖아」

「나는 안 질린다만…」

「난 질려」


자포자기로 고기 채소 볶음을 입에 넣는다. 좀 차가운 탓에 더 맛없다. 게다가 쌀이 없다. 방금 부엌을 뒤지고 밥솥은커녕 햇반도 없다는 걸 확인했다. 정말 못 해먹겠다. 왜 내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지. 유괴범은 거칠게 고기 채소 볶음을 먹는 나를 보고 신기한 얼굴로 나에게 카라아게 도시락을 내밀었다.


「반드시 이게 더 맛있을 거다」

「그렇겠지」

「그걸 알면서 왜 안 먹는 거지? 내가 이렇게 맛있다고 생각하니까, 너도 카라아게가 맛있을 텐데」

「……」



고집이야, 고집. 그래도 대답하기는 짜증나니까 묵묵히 실패작을 입에 넣는다. 유괴범은 이상하다는 얼굴로 나에게 내민 카라아게 도시락을 잡아 내 몫까지 먹게 됐다. 물론 녀석은 내가 만든 음식에 젓가락을 뻗지 않았다. 뭐 나도 눈앞에 실패 요리랑 맛이 보장된 도시락이 있으면 도시락을 먹을 것이다. 알고 있어. 알고는 있는데.


「……짜증나」


이렇게 비참함을 맛보는 건 사양이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 날부터 나는 녀석에게 매일 심부름을 부탁했다. 빠르게 만든 여벌 열쇠를 받았으니 밖으로 나갈 수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위축됐고 아직 경찰이 무서워서 밖에 나서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는 조미료도 잊지 말라고 부탁했다. 포기하고 카라아게 도시락을 먹을 수는 없냐고 물었지만, 당연하게도 카라아게는 전과 똑같은 맛이라 요리 실력을 높이기로 결심했다. 요리 프로라는 요리 프로는 닥치는 대로 녹화하고, 한가한 낮에는 그걸 매일 봤다. 필요하면 되감아 보면서 지식을 쌓았다.

물론 당장 요리를 잘할 수는 없으니 한동안 더럽게 맛없는 내 음식을 먹었다. 유괴범은 내 행동을 말리지 않았지만 내가 만든 음식에 손도 안 댔다. 그게 더 화가 나서 내 의욕을 높였다. 바보 취급당하면 되돌려준다더니, 그런 기력이 나한테 있는 줄은 몰랐다. 무기력 니트로 지냈을 텐데 지금 모습을 형제가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아니, 상관없지.


그리고 요리를 만들기 시작한 닷새, 유괴범이 살짝 바뀌었다. 카라아게 도시락만 먹고 내 요리는 거들떠보지 않던 녀석이 처음으로 내 요리에 손을 댄 것이다. 녀석은 뭐라고 할 수 없는 얼굴로 바로 제 도시락으로 돌아갔다. 밥상을 엎을 정도로 화가 났지만 겨우 참았다.


요리를 만들기 시작한 지 벌써 1주일 정도 지난 어느 날. 매일 한 번은 내 요리에 손을 대게 된 유괴범이 오늘도 내 음식을 입에 넣었다. 평소대로는 감상도 없이 바로 카라아게 도시락으로 돌아가는데 오늘은 달랐다.


「…맛있어」

「!」


맛있어! 맛있다고 했다 이 녀석!


「카라아게가 더 맛있지만」


위험해 때릴 뻔했다.


그래도 녀석이 맛있다고 한 건 처음이라 나는 조금 들떴다. 오늘 레시피도 고기 채소 볶음이다. 불 조절은 실수도 없고, 조미료 덕분에 본격적인 맛이 나 분명히 오늘 요리는 썩 잘됐다. 이제 고기 채소 볶음은 졸업하고 요리 프로에서 한 레시피를 시도해도 될까 생각한 참이다. 그런 때 마침내 납치범의 입에서 맛있다는 말을 끌어냈으니, 당연히 기쁘다. 어라? 왠지 목적이 이상하지 않아? 순간 제정신으로 돌아올 뻔했지만, 정신이 돌아오면 자기혐오에 빠질 것 같아서 정신 따위는 무시하자.


묵묵히 내 고기 채소 볶음(완벽)을 입에 담던 유괴범이지만, 문득 젓가락을 멈추고 저녁 중에 자주 보는 이상하다는 얼굴로 나를 봤다.


「확실히 이건 그럭저럭 맛있다. 그래도 왜 이런 걸 만드는 거지?」


너무 새삼스러운 질문에 나는 두 손 들었다.


「계속 말했잖아. 질리니까 그렇지」

「그래도 난 질리지 않아」

「계속 말하지만, 난 질려」

「…모르겠군. 너는 내가 아닌가」


또 그거냐. 이 녀석의 수수께끼 사고는 무서워서 깊이 파고들지 않고 지금까지 지냈지만, 오늘 나는 기분이 좋으므로 내 생각을 그대로 말했다.


「너랑 나는 얼굴이 닮았지만, 다른 인간이잖아」


지극히 당연한 말을 했는데 유괴범은 무척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른 인간」

「그래, 다른 인간. 그래서 취미나 음식 취향도 달라. 나도 카라아게는 좋아하지만, 맨날 먹지는 못해」

「그런, 건가」

「원래 그래」

「…그럼, 내가 널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뭐지?」

「그건…그거야. 네가 나를 너라고 생각하니까 그래. 다른 사람인데, 착각하는 거지」

「그렇군…」


내 말에 분명히 당황한 유괴범은 얼굴을 숙이고 잠시 생각했다. 이 녀석이 제정신이라고 할까 평범해진다면 고맙지만, 혹시라도 욱하면 어떡하지. 내심 떨고 있자 유괴범은 겨우 얼굴을 들고 곤란한 모습으로 나를 봤다.


「나는 내가 아니지?」

「응」

「그럼 넌 왜 여기에 있는 건가?」

「아니 네가 데려왔잖아」


갈수록 모르겠다는 얼굴이 된 유괴범은, 더 이상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갑자기 일어서서 이를 닦고 씻고 마음대로 잤다. 지금까지는 잘 자 키스니 뭐니를 졸랐는데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혹시 나한테 정나미가  떨어진 걸까. 자신과 다른 인간이라는 현실을 들이댔으니 유괴 외금(자기 결정)생활도 이제 끝일지도 모른다. 겨우 해방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 마음이 편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난 생각보다 큰 안도감을 품지 않았다. 왜일까 생각했지만 지금이 별로 곤란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 1주일만 여기서 보냈지만, 그래도 유괴 같은 비일상이 일어나서 미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가고 싶을 때 밖에 나갈 수 있고, 유괴범은 심한 나르시스트라 나에게 연인으로서의 처신을 요구하는 것만 빼면 평범하고(이것만 빼면 유괴범의 정체성이 없어질 것 같기도 하다)낮에는 평소대로 니트 생활을 하니 차이도 별로 없다. 뭐 집에 가기 싫은 건 아니니까, 일단 기뻐하자. 돌아가면 원형이 될 정도로 장남을 패기로 결정.




라고 생각한 게 어제.

그리고 오늘, 유괴범은 아주 좋은 미소로 나에게 말했다.


「오늘은 오랜만의 휴일이니, 데이트라도 하자!」


너, 나랑 네가 다른 인간이라고 안 거 아니냐? 묻고 싶었지만 싱글벙글한 웃음을 보는 한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모드라고 요 1주일간 잘 알았으니, 난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와 남자, 게다가 같은 얼굴끼리 데이트라니 웃기지도 않는다. 하지만 어디에 가도 형제로 보일 테니 그리 나쁜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만약 이 녀석과 내가 정말 연인이었다면 그런 건 위장하면 될지도 모른다. 그런 게 있을 리는 없지만.


「어디 갈 거야」

「어디 가고 싶지?」

「응?」


틀림없이 "난 여기에 가고 싶다! 너도 그렇겠지?"라고 할 줄 알았는데, 설마 내 의지를 물으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유괴범은 당황해서 시선을 헤매는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아무래도 대답을 하기 전까지 나를 계속 볼 것 같다. 한시라도 그만뒀으면 한다. 나는 인내하며 가보고 싶은 곳을 작게 중얼거렸다.


「고, 고양이 카페…」

「고양이 카페?」

「그래 뭐 잘못됐냐! 나이 먹은 남자가 고양이 카페 간다고 바보 취급하고 있지! 안다고, 어차피 나 같은 쓰레기가 그런 델 가도 수상한 사람 취급받는다고…」

「넌 쓰레기가 아니다」

「하?」

「쓰레기도 아니고 수상한 사람도 아니야. 아무래도, 넌 꽤 부정적인 모양이군」


녀석은 곤란한 듯이 웃었다. 웃는 이유를 몰라서 내가 더 난처하다.


「아, 에, 으, 응?」

「그럼 갈까」


나는 손을 빼면서 그 녀석과 함께 방을 나왔다. 만난 다음 날에 볼 키스를 요구한 탓인지, 이제 와서 손잡은 정도로는 나에게 아무런 혐오감도 없었다.




한마디로, 고양이 최고.


휴일이기도 해서 고양이 카페는 몹시 붐볐다. 나는 사람이 많은 곳에 혼자 들어가기가 어려우므로, 휴일에 고양이 카페는 온 적이 없었다. 하지만 휴일이니 고양이는 최고로 치유됐고, 무릎 위에 한 마리의 고양이가 와줬을 때는 스스로도 알 만큼 얼굴을 빛내고 말았다. 눈앞에 앉은 녀석이 살짝 웃은 게 들려 번쩍 정신이 돌아와 부끄러움으로 고양이 배에 얼굴을 묻은 것은 평생의 불찰이라고 생각한다.


고양이를 찾아 북적거리는 가게 안에 있었지만, 같은 얼굴을 한 성인 남자가 둘이서 오는 것도 드문지 누가 말을 걸기도 했다. 형제인가요? 잘 대답하지 못하는 나와 대조적으로, 남자는 상냥하게 맞다고 대답했다. 여느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 나 이외의 사람에게는 이렇게 보이는 걸까 싶어 살짝 이 녀석의 이미지가 바뀌었다. 놈은 특별히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지만, 제 근처에 다가온 고양이를 조심스레 만지고서는 만졌다고 기뻐했다.


「즐겁군. 이런 곳도」

「고양이는 치유되니까」

「확실히」


같은 타이밍에서 웃으니, 왠지 진짜 형제 같았다.





「다음엔 어디에 가고 싶지?」

「네가 가고 싶은 데로 해」

「그런가? 그럼…」


여기가 좋다고 말한 것은 기생충 박물관 같은 미지의 영역이기에, 완전히 질색이었다. 하지만 아까는 나한테 맞춰줬으니 고집부릴 수는 없다. 냉정하게 보면 나는 왜 이런 녀석한테 고집부릴 수 없다고 신경 쓰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런 위화감은 일단 무시하기로 했다.


「이런 데를 좋아하는구나…」


물속에 전시된 득실득실한 기생충을 볼 때마다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박물관은 몹시 조용해 어떻게든 버텼다. 신나서 기생충을 보는 남자는 고양이 카페에 있을 때보다 재밌어보였다. 전혀 모르겠어. 그런 내 모습을 겨우 깨달았는지 옆을 걷는 남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미안하다, 재미없었나?」

「…」



재미 없다고 하자면 재미 없다. 기생충 따위 전혀 관심 없다. 그래도 이 녀석도 고양이에 관심 없어도 어울려 줬다. 내가 불평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


「이런 세상도 있구나 했어」

「속이 깊지?」

「너무 깊어서 모르겠어」

「솔직하군」

「그런 사람이니까. 그래도 같이 다닐게, 아까 어울려 줬으니까. 게다가 점점 기생충의 매력을 깨달을 것 같아」


애매한 발언에 그 녀석은 쓰게 웃는다. 그래도 이게 본심이니까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러고 보니 오늘은 대화다운 대화가 성립한 걸 깨달았다. 웬일이냐며 오늘의 대화를 떠올리니, 이 녀석이 내 의지를 제 의지라고 결정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역시 어제의 대화가 녀석에게 변화를 준 걸까. 그렇다면 이 머리 이상한 남자는 나와 네가 다른 존재라는 당연한 사실을 겨우 깨달은 걸까. 이 데이트가 나와 녀석이 다른 인간이라는 사실을 결착 짓기 위해서라면, 어쩌면 유괴 외금 생활도 끝일지도 모른다. 그럼 이 녀석과 나는 평생 만날 일이 없다. 규슈와 도쿄라니, 지금까지 한 번도 도쿄를 나온 적이 없는 나에게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다.


「…」

「응? 왜 그러지?」

「아무것도 아니야」


조금 섭섭할지도 모른다니, 이 녀석과 같이 있는 바람에 나도 이상해진 걸까.





「오늘은 재밌었다」

「응」


솔직히 말하면, 굉장히 충실했고 즐거웠다. 고양이 카페는 말할 것도 없고 기생충 박물관도 익숙해지니 왠지 즐거워 졌다. 나는 정말 적응력이 높다. 그리고 저녁은 역시 카라아게 가게라서 살짝 웃어 버렸다. 쓴웃음이 아니라, 진심으로 웃었다. 이제 이 녀석과의 생활에도 완전히 익숙해지고 말았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유괴됐을 때 사람은 매우 불안한 상황에 빠져, 놈이 유괴한 장본인이라고 알아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래도 나는 별도라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이후에는 불안하지도 않고 제멋대로 살고 있다. 그래서 아마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녀석에게 적의보다 호의를 품게 되었다. 단순한 유괴범과 피해자 관계였는데, 오늘 하루 내 의지를 제대로 존중해주고, 같은 타이밍에서 웃어 준 이 녀석이 이제 무섭지도 않고 싫지도 않았다.


남자의 곁을 걸으며 돌아간다. 1주일 정도만 같이 있었고, 밖에는 거의 나가지도 않았지만, 이 녀석의 집이 지금은 완전히 돌아갈 곳이 되어 버렸다.




아무 말도 없이 걸었지만 어느 정도 걸었을 때일까. 곁의 남자가 갑자기 크게 심호흡했다. 중요한 말을 하는 거라고 직감으로 알았다.


「오늘 하루, 너와 지내고 알았다」

계속 말해두려고 한 걸까. 결심을 굳힌 음성은 너무나 굳어 조금 떨렸다.

「너와 나는 다른 인간이다」


당연한 사실을 드디어 깨달았다. 나는 그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모를 만큼 둔하지 않다.


「아니, 사실은 오래전부터 깨달아야 했어. 너는 나와 다르다. 나는 매일 밤 카라아게를 먹는 게 기쁘지만, 너는 화를 내지. 나는 요리는 조금이라도 할 생각이 없지만 너는 요리를 만들어 준다. 나는 뭔가 안 되는 게 있으면 금방 포기하는데, 넌 매일 연습하고 노력했어」


걷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면서 마침내 남자는 걸음을 멈췄다. 나는 녀석보다 조금 더 걸어가 뒤를 돌아봤다. 유괴범이었을 남자는 한심한 웃음을 띠며 나를 봤다.


「난 고양이에 관심이 없었지만, 너는 고양이를 좋아한다. 그리고 오늘, 너는 나에게 고양이의 사랑스러움을 가르쳐 줬다. 나는 내 의지만을 강요했지만 너는 나의 의지를 존중했지. 너는 내가 아니야. 그야 나는…날 유괴한 상대를, 그렇게 친절하게 대할 수 없다」


유괴. 남자가 한 그 말은 몹시 무겁게 느껴졌다. 그것은 아마, 눈앞의 이 녀석이 나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이다.


「유괴 따위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넌 나고 내가 나라면, 나와 함께 하는 게 가장 행복할 거라고 진심으로 믿었어. 그래도 나와 네가 다른 사람이고, 다른 생각을 품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잖아? 이건 훌륭한 범죄다」


눈앞에서 참회하는 남자의 얼굴이 울 것처럼 일그러졌다. 아마 작은 계기로 엉엉 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남자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생각해 보면, 나와 이 녀석은 1주일 정도밖에 같이 있지 않았는데, 이 녀석의 우는 얼굴을 보는 건 두 번째다. 처음 만났을 때랑 지금. 이 녀석은 감회하면 바로 우는 남자인지, 아니면 나랑 만나고 나서부터 잘 울게 됐는지, 나는 그런 것도 모른다. 이 녀석에 대해서 모르는 게 아직 산더미 같다.


「…너를 나에게서 해방하지. 도쿄까지 바래다주면 당장이라도 자수할 생각이다. 미안해…그리고 고마워. 난 아마…처음으로 내가 아닌 누군가를,」

「저기」

「아, 뭐, 뭐지?」


말을 가로막을 줄은 생각지도 못한 남자는. 당황한 것처럼 내 말에 대답했다.


솔직히 나 자신, 지금부터 이 녀석에게 하려는 말에 무척이나 놀랐다. 그래도 울 것 처럼, 목이 메서 말하는 그 녀석을 보니 계속 말하고 싶었던 유괴의 불만이나 심한 나르시즘의 공포나 그런 게 모두 날아갔다. 불만을 말하기보다는 그런 표정 지을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었으니까 어쩔 수 없다.

이게 내 의지라면 할 수 없다.


「…조금만 더, 날 유괴해도 좋아」


살짝 떨어진 곳에 있는 남자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그야 놀랄 테지. 이런 마음을 품다니, 나도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혀 예상 못 했으니.


「하, 에, 에에?!!」

「시끄러워!」

「에, 하? 지금 왜」


그러나 말하고 나서 그 말의 창피함을 깨달았다. 이 유괴가 합의 아래에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 이 녀석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렇게 생각해서 한 말이었지만 다시 생각해도 너무 부끄럽다. 게다가 그걸 되묻다니 무슨 고문인가. 그래도 물러설 수는 없다. 나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외쳤다.


「그러니까! 같이 있어도 된다고!……카라마츠!!!」


딱히 이끌린 건 아니다. 그냥 이 녀석은 나르시스트고 좀 머리가 이상한 점을 빼면 평범한 녀석인데, 그런 평범한 녀석이 잡히는 건 사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 것뿐이다. 나는 화도 안 났고, 유괴해도 좋다고 피해자가 말한 이상 이 유괴는 합의 아래다. 합의한 다음 진행된 유괴 외금 생활은 경찰도 상대해주지 않는다. 그러니 이 녀석은 유괴 사건의 범죄자가 아니다. 


나는 카라마츠에게 다가가 눈앞에서 힘껏 박치기를 했다. 카라마츠가 놀라서 충격으로 한심한 목소리를 낸다. 멋쩍음을 감출 폭력이니까 받아줘, 전 납치범.


「왜, 왜…」

「사랑이야, 사랑. 아마」

「에에…사랑이 아프다」

「시꺼.…그런 것보다, 나랑 다른 사람인 너는, 나한테 뭐 물어볼 거 없어?」

「물어볼 거?」

「물어볼 거, 그래도 괜찮아.……카라마츠」


카라마츠는 잠시 부딪힌 곳을 아픈 듯이 두 손으로 눌렀다. 그러나 내가 녀석의 이름을 부른 의미를 겨우 눈치챘는지, 두 손을 천천히 떼고 나를 진지하게 응시했다.


다시 마주 보니 역시 눈앞의 남자는 무서운 유괴범 따위가 아니었다. 유괴범이 아니라, 거기에 있는 건 서투르면서도 진지하게, 다른 사람인 나와 마주 보려고 하는 카라마츠라는 한 사람이었다.


「…네 이름을 물어도 되는가?」


이름을 묻는 걸로 이렇게 만족하다니, 평생 없을 경험이겠지.


「이치마츠인데」

「이치마츠」

「한자로, 맨 첫번째인 '이치'에 마츠니까 너랑 똑같지. 이름까지 같구나」

「아아…그래도, 내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좋은 이름이다. 이치마츠…내 이름과 네 이름도 역시 달라. 멋진 이름을 주신 부모님께, 나도 감사하고 싶군」


이런 말을 가볍게 하니까, 역시 좀 이상한 놈이라고 절실히 느끼면서, 나와 전 납치범 카라마츠의 유괴 외금 생활은 막을 내렸다.





「다녀왔어」

「어서 와…어, 어라?!」

「시꺼 톳티」

「이, 이치마츠 형이다…틀림없이 어디 길에서 쓰러져 죽은 줄 알았는데…」

「어이」

「뭐, 어쨌든 어서 와.…그런데 뒤에 있는 사람은 누구야?」

「반갑군 톳티! 나는 카라마츠. 오늘부터 이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될 남자다!」

「기다려 기다려 기다려 전혀 모르겠어」

「이해가 안 된다…칭찬이지만 이번에는 처음부터 설명하지! 나는 이치마츠를 사랑하고, 할 수 있으면 계속 단둘이 있고 싶었다. 유괴가 아니라 이번에는 동거하고 싶었어! 그래도 이치마츠가 계속 형제와 떨어져서 슬퍼하는 것도 본의는 아니지. 연인이 슬퍼하는 얼굴은 보고 싶지 않아. 그럼 내가 이치마츠의 집에서 함께 살면 문제없다! 단둘은 아니지만 그 점은 타협하자고 생각한다, 언더스탠 톳티?」

「에, 이 말 꼭 이해해야 해? 무리거든!」

「후후, 넌 핑크색이 imagecolor인가? 귀여운 색이군. 미스테리어스한 보라색이 이치마츠의 imagecolor고 톳티가 핑크…그럼 나의 imagecolor는 쿨한 파랑…인가?」

「발음 짜증나! 근데 이 사람 설마 그 나르시스트 호모…」

「호모는 아니니 안심해다오 톳티. 내가 사랑하는 건 마이 데스티니 이치마츠 캣 뿐이다」

「무슨 소리여?!」

「이 녀석은 원래 이러니까 다 태클 걸면 죽어」

「왜 이치마츠 형도 그걸 받아들이는 거야?!」

「딱히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야. 또 카라마츠, 널 좋아한다고는 한마디도 안 했어」

「무정한 허니군. 그런 점도 좋아하지만,」

「보기만 해도 토나와!」


「시끄럽네 톳티」

「오, 오소마츠 형도 뭐라고 해봐! 이치마츠 형이 이상한 거 데려왔어!」

「오, 전에 본 붉은 그가 아닌가! 이제부터는 형제로서 잘 부탁한다 브라더. 그렇지, 네 이름은 오소마츠였군. 불타는 듯한 빨강…너와 어울린다」

「아~이 느낌 이 느낌! 여전히 안쓰럽네~」

「오소마츠 형」

「아, 이치마츠잖아! 정말, 지금까지 어디 갔었어? 형아 외로웠다구?」

「…너 때문이잖냐 쿠소 장남!」

「잠, 아, 아프다니까! 왜 그렇게 화내는 거야, 응~?!」

「훗, 가고 말았군…질투하지」

「어딜?!」


「저기, 지금 오소마츠 형이 이치마츠한테 끌려갔는데 대체 언제 왔던 거야…너 뉘겨?!」

「와하~! 같은 얼굴이다!」

「녹색과 노란색인가…훗, 역시 나에게 내려진 color는 파랑밖에 없는 모양이군」

「짜증나!」

「짜증나!!」

「쵸로마츠 형, 쥬시마츠 형~…살려줘, 이 카라마츠라는 사람이 우리랑 같이 산대…」

「하아?! 뭔 소리?! 뻥이겠지! 엄마랑 아빠가 허락 안 해!」

「여섯 쌍둥이?! 우리 여섯 쌍둥이?!」

「조금씩 정을 쌓으며 지내면 된다 브라더. 또 부모님께는 이미 허가를 받았어」

「왜 허락하는 거야 그 둘!」

「다섯 명이나 여섯 명이나 똑같다는 모양이다. 그리고 내가 일하고 있다고 하니 바로 같이 살자고 하더군. 오늘부터 도쿄 근무다, 잘 부탁해」

「일한다고?! 이렇게 안쓰러운데?!」

「아니 안쓰러움은 상관없어 쵸로마츠 형」

「아~! 쵸로마츠 형 갈비뼈 부러졌어! 안쓰러워서!」

「브라더에게는 용돈을 주지」

「「와! 앞으로 잘 부탁해 카라마츠 형!」」

「넘어가지 말라고!」

「앞으로 잘 부탁하지 사랑스러운 브라더들이여! 나와 이치마츠가 사랑의 버진 로드를 달리는 걸 부디 지켜봐다오!」

「OK~제대로 볼게 카라마츠 형」

「사랑?! 세크로스임까 카라마츠 형!!」


「…태클을 못 걸겠어!!」